봄 여름 가을 겨울
화사한 봄날이면 아지랑이가 아롱다롱
지게 진 사람은 진달래꽃을 꺾어 지고 오고 있고
나물 캐러 간 처녀들은 건넛마을 밭에서
달래랑 쑥이랑을 캐고
또 산나물을 한 보따리를 이고 오는구나
동리에 있는 바위샘에서는
동리 아줌마들이 빨래를 하고 있고
냇가에는 봄기운에 만상이 움트고 있구나
따스한 봄날이면 보리골을 타는데
하늘에서는 종달새가 울고
보리밭 사이에 집을 지어놓은 종다리는
못내 자기 집을 다칠까 봐 걱정을 하고 있구나
비포장된 신작로에는 뿌연 먼지를 내며
이따금씩 자동차가 지나가고
강가에는 조개를 잡는 이도 있구나
화전놀이에 처녀 총각이 닭을 잡아 국을 끓이고
나무에는 그넷줄에 처녀들이
그네를 화사한 한복 차림에 타고 있구나
살기 좋은 봄의 시절은 보릿고개라 하여
식량이 모자라서 끼니를 못 먹는 사람들도 있어서라
빼깃잎과 물금을 담그고
나물로 배를 채우는 일도 많아서라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면 산천에 나무는 푸르르고
소 먹이는 아이들은 소를 산천에 던져놓고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구나
손발이 불어서 부었구나
객지 간 형제들이 이따금씩 고향을 찾으면
모두 다가 어느 집에 누구라는 것을 알구나
소를 먹이고 또 소풀을 하여 집에 돌아오면
저녁은 호박범벅과 국수로
허기진 배를 정신없이 퍼먹어 채우구나
들에는 모를 심은 나락이 자라고 있고
밭에는 콩이랑 목화가 자라고 있고
산천에는 이런저런 묘가 있고
어느 가문에 누구 묘라는 것까지 알 수가 있고
장터는 십여 리가 되고
그 장터에 필요한 것을 사러 나가서 돌아올 때는
술이 만탕이 되어 장 보아 올 곡식을 판 돈으로
볼일을 못 보고 돌아온 남정네에게
이웃집 아줌마는 소리 높여 야단이구나
모깃불에 잠시나마 모기를 피할 수가 있으나
모깃불이 없으면 모기가 극성이구나
늙고 젊고 간에 밤에는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하고
나이 또래의 처녀 총각이 모여서 놀고 있구나
가을이면 운동회가 있고 추석이 있고
봄여름 가꾼 나락 농사를
포기 포기마다 낫으로 베어 논에 깔아놓고 있구나
여름에 푸르던 나무들도 단풍이 지기 시작하고
풀들도 누른 색깔로 변하여 가고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할 때 겨울이 시작이 되는구나
겨울에는 나무를 하러 가고
밤에는 김치를 훔쳐 먹고 또 닭도 훔쳐 먹고
화투 놀이를 호롱불 밑에서 하고 있구나
밤늦게 사람들이 갈 즈음에는 방이 다 식어 싸늘하구나
머나먼 이국땅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 곳도 있고
여름만 있는 곳도 있고
봄 가을이 없고 겨울과 여름만 있는 곳도 있고
세상에는 이런저런 곳이 많기도 하구나
젊어서 등산을 많이 하고
나대로 인간무상에 관하여 생각도 많이 했어라
봄의 산천과 여름의 산천 가을 겨울이
마냥 다녀도 그 산은 달랐어라
이름 있는 명산은 그 절경들이 신선이 놀던 곳과 같아서라
이곳 미국은 넓기도 하고
이곳 미국은 좁은 나라 살다 와 보니 크고 넓어서라
이곳에 나의 뜻인 인류가 하나가 되고
너의 나라 나의 나라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구나
글, 그림 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