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바람이 이곳을 지나간다 _몽골 1

글&사진 이용한 <시인, 여행가>

사람들은 종종 커피를 마시다 말고 카페 창밖을 보며 “아, 여행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여행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여행 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남아 “어디로 가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뭐, 글쎄 아무 데나” 하면서 얼버무린다. 어디론가 가고 싶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고자 한다면 가야 하는 게 여행이다. 어디든 일단 떠나고 보는 게 여행이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여행은 ‘지금 이곳’의 나를 ‘여기’가 아닌 곳으로 잠시 데려가는 것이다. 이용한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중에서

몽골에 도착하면 우선 말 한 필을 산다.

몽골에서는 보통 말 한 필에 50만 투그릭(한화 50만 원가량). 이제 말안장 뒤에 배낭과 텐트를 싣고, 몽골어와 한국어로 된 지도를 각각 한 장씩 사서 가고 싶은 곳으로 말을 타고 간다. 며칠을 여행하다 말이 지치면 유목민 게르에 들러 말을 교환하자고 한다. 싸게는 2만 투그릭, 많게는 5만 투그릭이면 유목민들은 말을 교환해준다. 또다시 말 타고 여행하다 말이 지치면, 유목민 게르에 들러 말을 교환한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마치고 울란바토르에 돌아오면 40만 투그릭 정도에 다시 말을 되판다. 1개월을 꼬박 여행해도 교통비로 나가는 돈은 10만 투그릭 정도면 해결된다. 실제로 이렇게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 기간이 긴 유럽과 일본의 여행자들 중에는 더러 말 한 마리를 사서 몽골을 떠도는 이들이 있다.

 

몽골에서는 화장실을 갈 때 ‘말 보러 간다’고 말한다.
그것도 모르고 눈치 없이 ‘같이 가자’고 하면 곤란하다. 몽골은 대도시를 벗어나면 따로 화장실이 없다. 눈앞에 보이는 초원과 벌판이 그냥 화장실이다. 자연의 화장실. 그러나 지평선이 보이는 몽골 초원에서 여성들이 ‘말 보러 가기’란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언덕도 없고, 바위도 없다면 더욱 난처하다. 이때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돗자리다. 한 사람이 돗자리로 가려주고 다른 사람이 돗자리 뒤에서 말을 보면 된다. 냄새는 어쩔 수가 없다. 몽골 여성들은 치마폭이 넓은 델을 입고 있어 혹시라도 초원에서 일을 볼 때면 치마폭으로 앞을 가린다.

몽골에는 이런 말이 있다. “델게르 초원에서는 모든 세상이 다 보인다.”

모든 세상이 다 보이는 초원.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델게르 대초원 한가운데는 오름 같은 봉긋한 언덕이 솟아 있고, 그 위에 어버(서낭당)가 자리해 있다. 과연 어버가 있는 언덕에 올라서자 사방의 초원과 지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초원과 지평선이다. 그 광활한 초원에 길이 몇 갈래 나 있고, 멀리서 푸르공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달려온다. 그건 마치 세상의 끝에서 또 다른 세상의 끝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초원의 모든 바람이 이곳을 지나간다.

끝없이 펼쳐진 Wind-Road.

몽골은 단순하다. 이 단순함은 원초적인 느낌에서 온다. 이를테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초원과 사막. 1년에 260일은 맑고, 1년에 7개월은 겨울이며, 두어 달의 봄날은 모래 폭풍이 휩쓸고 가는 몽골은 혹독하고, 혹독해서 더욱 눈물겹다. 몽골에서는 영하 30도의 긴 겨울과 모래 폭풍으로 범벅된 봄이 지난 뒤의 짧은 여름이 아름답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늘에서 본 몽골 또한 그저 심심하다.

가도 가도 초원이 펼쳐져 있거나 그곳을 이따금 소 떼나 염소 떼가 지나가는 풍경! 그러나 홉스골로 올라가는 북쪽이나 알타이로 이어진 서쪽은 전혀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몽골에서 드문 산악 지대와 늪지와 호수가 이곳에 펼쳐진다. 특히 물이 풍족한 홉스골 인근에서는 산악 지대를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줄기를 흔하게 만난다. 알타이 쪽으로 방향을 틀면 푸른 초원이 산맥으로 이어져 만년설을 품에 안은 봉우리의 바다를 만나게 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몽골은 티베트나 동남아, 남태평양의 섬나라처럼 대단한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심심하며,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단순하고 순진한 풍경이 바로 몽골의 진면목이다.

 

이용한님은 196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순수한 풍경과 사람, 고양이를 담아온 사진가이기도 한 님은 그동안 시집 <안녕, 후두둑 씨>, 문화기행서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옛집 기행> 고양이 시리즈 <명랑하라 고양이> 등을 펴냈으며 영화 <고양이의 춤>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여행 에세이로는 <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등 다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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