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에는 걸어서 출근한다. 도시의 길은 아침과 낮과 저녁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다.
가로수 속 새소리가 선명한 아침 거리는 도로 저 먼 곳까지 시원하게 열려 있어서, 무심결에 스쳐간 사물들이 새롭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사거리 모퉁이에 국수집이 새로 생겼고, 동네에 하나뿐인 줄 알고 있던 약국이 하나 더 있었고, 시내버스 정류장 옆에 하늘색 공중전화 박스가 그대로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 도시에 이사 오고 얼마 안 되어 작은 일상의 기쁨 하나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작은 세탁소이다. 여느 세탁소와 다름없이 실내 가득 꼬리표를 붙인 옷가지가 주렁주렁 걸려 있고, 긴 줄로 이어진 스팀다리미가 칙칙거리고, 딱 한 사람만이 서서 일할 수 있는 좁은 공간에 언제나 그가 있었다. 지난겨울 사방이 아직 어슴푸레한 이른 아침. 나는 종종걸음으로 출근하였고 우연히 그 세탁소를 처음 보게 되었다.
길가의 점포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이른 아침에, 그 세탁소만이 환하게 실내등을 켜고 있었다. 세탁소 안에는 머리가 백발인 초로의 남자 주인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혼자서 다림질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다려서 입고 있는 하얀 와이셔츠가 눈에 확 들어왔다. 풀을 먹여 곱게 다려 입은 한산 모시옷처럼 눈부셨다. 남자의 옷차림이 어쩌면 저렇게 단아할까. 성성한 백발과 눈부시도록 밝은 흰 와이셔츠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세탁소 유리창을 수놓고 있었다.
어떤 이의 소소한 모습이나 행동으로 인해 내가 각별한 느낌을 받는 일은 행운이다. 그에게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해왔던 일상이었겠지만, 그날 내가 느낀 감흥은 특별했다. 마치 한가로이 길을 걷다가 소담하게 쌓인 눈을 바라보거나 부드러운 바람결에 전해오는 은은한 연꽃 향을 맡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후 나는 자주 걸어서 출근하였고 그 세탁소를 지날 때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햇빛이 동쪽 산마루에서 나지막한 사선으로 내려와 건물 끄트머리에 앉는 요즘 출근 시간, 나는 이제 세탁소를 지나갈 때 드러내놓고 세탁소 유리창 쪽을 바라본다. 어쩌다가 가끔 창밖을 바라보는 세탁소 주인과 눈길이 마주치기도 한다. 우리는 서로 가볍게 목례를 나눈다. 나는 가끔 아내를 대신해서 세탁물을 맡기러 간 터이라, 우리는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어도 서로에게 익숙하다.
그 나이쯤 되면 나도 변두리쯤에 세탁소를 차리고 싶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실내등을 환히 켜고 첫 손님에게 다리미의 따스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옷을 건네주고 싶다. 작은 일상에 감사하며 아침을 열고 싶다. 그래서 내심 내가 차릴 세탁소 이름도 지어놓았다.
친절 봉사로 여러분을 모시는 ‘둥지 세탁소’이다. 먼 훗날 혹시 어느 지방을 지나다가 상쾌한 아침 거리에서 반짝이는 ‘둥지 세탁소’라고 쓴 작은 간판을 보거든 꼭 한번 들려주시기 바란다. 따끈한 모닝커피 한잔 대접하겠다.
글 최형식 일러스트 유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