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문진정
“아유~ 예쁘다~ 여기 보자!”
찰칵, 찰칵. 제주시 도남동에 위치한 제주다문화센터에는 아기 돌 사진 촬영이 한창입니다. 비록 번듯한 스튜디오는 아니지만 색색의 종이를 배경 삼아 찍고, 컴퓨터의 힘을 약간 빌리면 그럴듯한 돌 사진이 완성됩니다. 돌 사진의 주인공들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지요. 사진가는 다름 아닌 중국인 김정림(40)씨. 제주다문화센터의 교육팀장이자 결혼이주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다문화센터를 만든 사람입니다.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던 그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진을 찍던 오명찬(48)씨를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2006년 제주도로 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을 뿐더러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지요. 중국과 일본에서 받은 대학 졸업장이 무용지물이 되자 그녀는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해 열 개가 넘는 자격증을 땄고 비로소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이주 여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국어, 중국어, 일어까지 3개 국어가 가능한 김정림씨는 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부부 싸움 통역, 밀린 아르바이트비 받아주기 등 각지에서 온 이주 여성들을 친동생처럼 챙겼고 어느새 그녀들의 시어머니, 시누이, 남편들 사이에서까지 유명 인사가 되지요.
밤낮없이 걸려오는 SOS 전화 덕분(?)에 어렵사리 취직한 직장에 사직서를 내야 했던 그녀는 결국 남편과 함께 2007년 제주다문화센터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사진작가인 남편에게 이주 여성들을 위한 사진 촬영 봉사를 제안합니다.
“외국 여성이랑 결혼식 올리는 것, 돌잔치 하는 것 하나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또는 돈 때문에 못 하는 분들이 많아요. 나중에 아이들이 자란 후 돌 사진이라도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남편 오명찬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다문화가정 부부를 위한 사진 교실도 열었습니다. 남편은 사진 촬영을, 정림씨는 컴퓨터로 사진 보정을 가르쳤지요. 서먹했던 부부들이 사진을 배우면서 소통하게 되고, 배운 사진 기술로 함께 봉사도 하니 1석 3조의 큰 수확이었습니다.
“아픈 사람 마음은 아파 본 사람이 안다고 다문화센터가 아무리 많아도 사람 마음 가는 데는 따로 있잖아요. 임신했을 때 눈치 안 보고 고국 음식 맘껏 해먹을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친정집으로 만들고 싶어요.”
친정엄마처럼 따듯하게 품어주는 정림씨 덕분에 이주 여성들은 매일 이곳에 들러 진심으로 위로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2천여 명 회원들의 이름만 들어도 가족은 몇인지, 직장은 어딘지 자동으로 줄줄 꿰게 되었다는 김정림씨. 365일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동생들’을 위해 뛰는 그녀에게 이 일은 그 무엇보다 천직인 듯싶습니다.
“저도 같은 이주 여성이다 보니 더 동질감을 느끼고 믿어주시는 것 같아요. 모든 이주 여성이, 남편이나 아이들도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