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온종일 학교를 뒤덮었다. 오후가 되자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빗방울들이 자꾸만 유리창을 두드리며 ‘비 오는데 무슨 공부냐’고 훼방을 놓았다. 아이들도 옛날이야기 하나 해달라고 보챘다. 그래. 쉬었다 가자. 나는 교과서를 덮고 실내등을 껐다. 그리고 이 학교와 나의 비밀스런 관계를 이야기했다.
나는 올해 이 학교에 처음 전근 왔다. 전근 온 첫날, 교장 선생님이 아무도 몰래 나를 교장실로 불렀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이 학교에 관한 괴담을 들려주었다.
“원래 저기 보이는 3층 별관 자리가 공동묘지 터였습니다. 옛날에 교실을 짓기 위해 공동묘지의 묘들을 강제로 이장했지요. 그런데 그해부터 괴이한 일이 벌어졌지요.”
30년 전, 비바람 불고 천둥 치던 어느 날, 학생 한 명이 학교 운동장에서 실종되었다. 아이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 책가방만 남기고 사라졌다. 이듬해 장마철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화장실에 간다던 아이가 오지 않아서 찾아보니 옥상에 그 아이의 신발 한 짝만 비를 맞고 있었다. 귀신이 곡할 일은 해마다 꼭 한 번씩 일어났다. 체육창고에서, 우물가에서, 뒤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아이들은 끝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마을 앞으로 군대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을 잃어버려서 실성한 어머니가 내 자식을 내놓으라며 길을 가로막았다. 군대를 지휘하던 장군이 백마에서 내려 자초지종 사연을 물었다. 장군은 병사들에게 여장을 풀게 하고 홀로 산꼭대기 바위에 올라 마음을 수련하였다. 며칠 후 장마가 시작되고 학교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장군은 갑옷과 투구를 입고 백마에 올라 쏜살같이 학교를 향해 달렸다.
학교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학생들은 벌벌 떨고 있었다. 장군은 시퍼런 칼을 빼어 들고 교실과 복도 그리고 장대비가 퍼붓는 운동장을 돌아다녔다. 그때 엄청나게 큰 벼락이 운동장을 때렸다. 온 천지가 진동하는 바로 그 순간, 장군은 학교에서 제일 커다란 나무를 향해 뛰어올랐다. 잎이 무성한 나무 속에서 칼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시커먼 물체 하나가 ‘쿵’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졌다. 천년 묵은 구렁이였다. 그 요물은 교실 천장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옥상 난간과 큰 나뭇가지를 타고 옮겨 다녔다. 그러다 사방이 어둑해지는 궂은 날이면 혼자 있는 아이를 덥석 물고 사라졌던 것이다.
장군은 피범벅이 된 칼을 씻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33년 후 죽은 구렁이의 아내 구렁이가 남편의 복수를 하러 다시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장군은 그때가 되면 보라면서 두루마리 족자 하나를 남기고 마을을 떠났다.
교장 선생님 목소리가 떨렸다. 올해가 바로 33년이 되는 해인 것이다. 올 정월, 교장 선생님과 마을 어른들이 비밀리에 모여 족자를 펼쳐 보았다. 그 속에는 과연 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과거에서 환생할 귀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이들이 똘망똘망한 눈으로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제자들을 위해, 족자 속에 있는 귀인의 이름을 칠판에 써주었다.
[崔亨植先生님]
아이들이 대체 무슨 글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비장한 표정으로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절대 큰 나무와 옥상과 국기 게양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한 자씩 토를 달아주었다.
[최형식선생님]
그리고 “왜 하필 올해 선생님이 이 학교에 왔는지 생각해봐라” 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교실 천장을 응시하였다. 그런데 몇몇이 저희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빙긋빙긋 웃기 시작했다. 음…. 이 순간 귀청을 찢을 듯 천둥소리가 딱 한 번만 울려주면 그야말로 초특급 울트라 호러 납량 특집극인데, 매년 비 오는 날에 공개하는 내 이야기의 종결은 그게 좀 아쉽다.^^
글 최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