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못마땅했다. 세상엔 잘난 사람들도 많은데 왜 우리 집과 형제들은 늘 고만고만한 삶에 허덕일까. 게다가 지체장애를 앓는 아들은 크나큰 걱정거리였다. 학교로 보낸 후에도 친구들에게 놀림받거나 괴롭힘을 당할까 봐 내 마음은 늘 아들에게 머물러 있었다. 머리엔 항상 수많은 안테나를 달고 사는 기분이었다. “저녁에 뭐 해먹을까” “시어머니 생신날인데 뭘 해야 하나….” 무기력증으로 온몸에 힘이 없었던 내게 의사는 “마음이 아파서 아프다”는 진단을 내렸고, 나는 마음수련을 시작했다.
마음으로 버리라는 말에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도대체 마음이 뭐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순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마음이 힘들다, 마음이 아프다…. 수많은 말을 해왔으면서도 나는 마음이 뭔지도 모르는 바보였다. 때문에 사는 게 왜 힘든지도 몰랐다. 주마등처럼 살아온 삶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해마다 봄이 되면 시골에서 지낸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친구들과 쑥 캐고 냉이 캐고 놀던 그때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고향을 떠나 그곳에 없는데도 나는 여전히 옛것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었다. 과거 어린 시절과 같은 행복이 내 삶의 기준이 되었다. 엄마라는 ‘책임감’도 없던 자유롭던 시절이었으므로…. 그러니 현실은 늘 괴로웠다. 하지만 그 탓 또한 주위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었다. 내 맘대로 따라주지 않는 남편, 내 뜻대로 자라주지 않는 아이들을 원망했었다.
그렇게 마음으로 찍은 기억에 휘둘려 과거 속에 살고 있었던 나는 정작 가장 찬란하게 빛나야 할 지금 이 순간을 놓치고 있었다.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항상 관객 입장에서 이렇다 저렇다 번뇌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수한 사진(기억)들에 휘둘려 울고 웃고 춤추었던 꼭두각시. 그게 바로 나였다.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 그것은 꼭두각시처럼 휘둘렸던 수많은 끈들을 끊어버리는 거였다. 나를 속박했던 끈들을 하나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과거 행복한 어린 시절의 끈을 놓았다. 아픈 아들을 원망하던 끈도 놓았다. ‘엄마’라는 이름의 부담감도 놓았다. 그러자 마치 새장에 갇혀 있던 새가 자유를 얻은 듯 내 마음에서 작은 날개가 퍼덕였다. 몸은 저절로 움직였고, 무기력증도 점차 좋아졌다.
점차 주변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얘기부터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할머니의 소리까지…. 말이 많다고 꾸중했던 아이의 말은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거였고, 나를 변화시키는 충고의 말이었다. 그렇게 세상은 나를 살리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었는데, 나란 벽에 갇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던 거였다. 오늘도 가족들을 위해 장아찌를 담그고, 종알거리는 아이의 말도 귀담아 들어본다. 이제야 비로소 내 삶을 사는 기분이다.
김정미 46세.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