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버스 한 대 타고 400일간 전 세계를 돌며 우리 김치를 알리고 온 젊은이들이 있다. 경희대 조리학과 선후배 사이인 류시형(30), 김승민(30), 조석범(26) 씨. 4년간의 준비, 27개국 130여 개의 도시, 390kg의 김치, 53번의 시식 행사. 8,000명의 시식 인원.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가능하다 했던 김치버스 길에서, 그들은 우리 김치의 힘을 더욱 실감했고, 이젠 보다 큰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류시형씨가 전한다.
“우리는 한국의 전통 음식 김치를 알리기 위해 온 청년들입니다. 김치는 채소로 만든 발효 음식으로 세계 5대 건강 음식으로 꼽힌 최고의 웰빙 음식입니다. 배추김치, 겉절이, 깍두기 등등 김치 종류만 해도 400가지가 넘습니다.”
2011년 10월 30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김치버스 첫 행사. “오, 낌치?” 우리들의 설명에 그 자리에 모인 300여 분의 러시아인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그들에게 선보인 첫 메뉴는 ‘사과김치카나페’. 러시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흑빵과 햄에 김치와 사과를 섞은 소스를 얹어내 만든 퓨전 요리. 맛을 본 러시아인들은 “낌치,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첫 행사였다.
김치버스를 처음 생각한 것은 군 제대 후, 2006년에 유럽으로 무전여행을 갔을 때였다. 조리학을 전공하던 나는, 유럽의 가정식 문화가 궁금했고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무작정 부딪혀보자 생각하고, 달랑 26유로와 편도 티켓만 가지고 여행길에 나섰다.
“나는 유럽의 가정식 문화가 궁금해 여행을 하는 학생이다. 괜찮으면 집에 초대해줄 수 있느냐?” 그러면 흔쾌히 오케이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게 220일간 18개국을 다니며 문화를 직접 체험했다. 그러면서 아쉬웠던 건 한국 음식에 대해 궁금해하는 외국 친구들도 많은데 제대로 보여주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 음식을 제대로 세계에 알려보면 어떨까?” 유럽 여행 후, 그런 생각이 구체화되었고 같은 과 후배인 승민이와 석범이가 마음을 합쳤다. 아무래도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음식이 아닐까 생각했고, 주 종목을 김치로 정했다. 하지만 처음 이 ‘김치버스 프로젝트’를 위해 드는 엄청난 비용을 후원해줄 곳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여러 곳에 제안서를 넣고 실무진들과 미팅도 시도했지만, 99%는 부정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고 준비하면, 언젠가 도와줄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것을. 그건 무전여행 길에서 수없이 느낀 확신이었다. 비는 오는데 갈 데는 없고, 밤은 깊어지고. 하지만 기다리면 언젠가는 도와줄 사람을 만나게 된다. 만나기 전에 포기하느냐, 만날 때까지 계속하느냐가 꿈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의 관건인 것이다.
역시나 제안서를 낸 지 5개월 만에 현대자동차에서 차량에 관한 것을 협찬해주겠다며 연락이 왔다. 그리고 광주 감칠배기에서 김치를, 배송은 광주시청에서, 코오롱에서는 침낭, 텐트, 옷 등을 협찬해주겠다고 했다. 정말 너무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4년 동안의 준비 끝에 김치버스 팀은 2011년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시작으로 러시아 모스크바, 폴란드, 체코 프라하, 우크라이나,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 동유럽 국가들부터 김치를 알려나갔다. 미리 계획을 잡고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우선 그 나라에 가서 대사관이나 한국 문화원에 가서 요청하기도 하고, 시청, 공원, 해변 등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지 게릴라 홍보를 했다. 한국 마트가 있어 배추라든지, 고춧가루 등의 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에서는 김장 행사도 진행했다.
새봄을 맞으며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영국 등의 서유럽 쪽으로 이동했다. 김치버스가 온다는 게 알려지면 현지 방송국, 신문사에서도 100% 취재 요청이 들어왔다. 우리는 우리의 일정을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SNS를 통해 알렸는데, 유럽에서는 특히 페이스북으로도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 연결이 된 것이다.
사과김치카나페 만드는 방법
유럽 김치버스의 마지막 종착역은 파리. 저녁에는 파리 비스트로(bistro) 1위를 차지한 레스토랑 <카페 데 뮈제(Café des Musées)>에서 김치버스만의 한식 4가지 코스 요리를 판매했는데, 100여 분의 손님들이 최고의 음식이었다며, 레스토랑 메뉴에 한식을 추가하라고 조언할 정도로 만족했을 때는 우리 한식의 경쟁력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2012년 7월, 유럽 일대를 경유하던 김치버스는 이제 대륙을 이동해 미주에서 일정을 수행하게 되었다. 어느새 여름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동안 어려운 일들도 많았다. 비자 문제, 김치버스 차량 내부 절도 사건 등등. 제일 힘들었을 때는 김치버스가 고장이 났을 때였다. 김치버스는 차가 생명인데 차가 고장 나면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유럽에서는 구하기 힘든 차의 부품을 수배하고 수리하느라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아무 대가 없이 도와주시던 분들도 만났고, 매번 위기라고 생각했던 순간은 또 다른 기회가 되어주었다.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빨리 순응하고, 인정하는 법도 배웠다. 마라톤처럼 긴 일정이었기 때문에 발목 잡히는 일이 생길 때마다 다시 일어서서 걸어가야 할 것만 생각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우리들도 성장해 나갔다.
2012년 11월, 우리는 LA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마지막 행사를 진행했다. LA의 많은 미디어들이 취재해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김치를 알리는 방식도 좀 더 과감하고 새로워졌다. 음식도 처음에는 김치브리또, 김치햄버거, 김치피자, 김치파스타 등 그 나라에 맞게 즉흥적으로 개발한 퓨전요리를 많이 선보였는데, 점점 외국 사람들이 한국 전통 김치 맛에 더 호기심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면서는 그냥 한식 그대로를 많이 재현했다. 김치볶음밥, 김치전, 김치말이국수 등등. 프랑스 남부나 스페인 등에서는 매워서 잘 못 먹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좋아해주시는 외국인들을 보면서 좀 더 잘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을 많이 느꼈던 시간들이었다.
400일간 김치버스를 타고 김치를 알리고 왔다고 하면 “대단하다” 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평범한 젊은이들인 우리가 대단할 것은 없지만, 굳이 말한다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준비하고 기다렸다는 점인 것 같다. 우리의 도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꿈을 꾸면서 살 수 있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김치버스 사진 전시회, 책 발행, 김치버스 팀이 개발한 메뉴 판매 등등을 계획 중이다. 혹시 길 가시다가 김치버스와 마주치신다면 반갑게 아는 척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