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와의 만남, 그 4년의 기록

이용한 여행 사진가. <나쁜 고양이는 없다> 저자

2007년 12월 초,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내가 집 앞에서 전화를 했다. 잠깐 나와 보라고. 달빛이 파랗게 골목을 비추던 밤이었다. 버려진 은갈색 소파에 한 마리의 어미 고양이와 다섯 마리의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오들오들 떨면서 “제발 우리를 해치지 말아요!”라고 말하던 그 눈빛! 하늘에서 막 떨어진 별빛 같은, 너무 아름다워서 왠지 측은해 보이는, 그 눈빛에 나는 한없이 끌렸다.

길고양이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와 고양이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녀석들을 다시 만난 것은 보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였다. 집을 나서는데, 집 앞 컨테이너 공터에 어미 고양이와 다섯 마리 아기 고양이가 햇빛 속에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녀석들을 위해 먹이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치던 녀석들이 처음으로 나의 접근을 허락했다. 카메라를 들고 나와 녀석들의 모습을 담은 것도 이날부터였다.

처음에는 그저 심심풀이 삼아 녀석들을 찍어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녀석들은 너무도 용감하게 카메라 앞으로 다가왔고, 카메라 따위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대담한 행동을 했다. 특히 붙임성이 좋았던 ‘희봉이’라는 고양이는 내 발밑까지 다가와 몸을 부비고, 더러는 렌즈가 더럽다며 혀로 렌즈를 닦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녀석들의 성장 과정을 사진으로 담고 기록하는 동안, 점차 더 많은 길고양이들이 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도 먹이를 주고, 성장 과정을 꾸준히 지켜보며 기록했다. 어느새 내 수첩엔, 여행 대신 고양이가 적혀 있었다.

2009년 3월, 나는 도심에서 시골로 이사를 갔다. 시골로 이사를 와서도, 나는 마당 구석에 고양이 먹이 그릇을 마련하고, ‘길고양이 먹이 주기’를 시작했다.

영역을 옮긴 뒤, 나에게로 왔던 첫 번째 고양이는 ‘바람이’였다. 좀처럼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진다고 녀석의 이름을 ‘바람이’라고 지어주었다.

녀석이 드디어 정체를 드러낸 것은 먹이를 준 지 약 3개월 만이었다. 3개월 정도 흐르자 녀석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집을 찾았지만, 여전히 무뚝뚝했다. 놀라운 것은 그런 바람이가 세 번이나 고맙다며 새 선물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고양이는 종종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선물을 한다. 주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힘들게 사냥한 것을 선물하곤 하는데, 그것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선물이란 것이 쥐라든가 새, 혹은 나방이나 벌레 같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서너 번 길고양이로부터 이런 선물을 받았다. 7개월 정도 먹이를 주며 보살펴왔던 ‘희봉이’는 집 앞에 쥐 한 마리를 두고 갔고, 길고양이 출신인 ‘랭보’는 집으로 온 뒤 첫 사냥에 성공한 나방을 물어다 내 앞에 놓고 간 적이 있다.

시골에서 만난 가장 기억에 남는 고양이는 우리 마을 최고의 꽃미냥이었던 ‘달타냥’이다. 달타냥은 파란대문 집 할머니가 키우는 고양이었는데, 거의 온종일 마당과 길에서 생활하는 길고양이나 다름없었다. 신기한 것은 이 녀석은 항상 마실 가는 할머니를 줄레줄레 따라가는 것이다. 상황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할머니는 점심 무렵이나 오후 네댓 시가 되면 경로당이 있는 마을회관으로 마실을 가시곤 한다. 이때 어김없이 할머니 뒤에는 달타냥이 동행을 한다. 녀석은 할머니가 무사히 마을회관으로 들어갈 때까지 회관 앞 차 밑에서 얌전하게 지켜본 후 다시 혼자서 타박타박 집으로 돌아온다.

파란대문 집과 마을회관의 거리는 약 50~60미터 정도. 집으로 돌아온 녀석은 이때부터 대문 밖 길가에 나앉아 회관 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린다. 회관 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나오면 녀석은 다시 회관 쪽으로 걸음을 옮겨 마중을 나간다.

“어릴 때부텀 키워서 그렁가, 사람을 잘 따라대니유.”

할머니는 당초 쥐를 잡기 위해 키웠는데, 쥐만 잡는 게 아니라 혼자 사는 할머니의 길동무까지 되어주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작년 봄, 달타냥은 고양이별로 돌아갔다. 동네 사람들의, “텃밭 파헤치니 고양이 좀 묶어놓으라”는 성화에 고양이를 묶어놓았는데, 그 줄이 올무처럼 잘못 묶여 죽게 된 것이었다. 할머니는 밤나무 옆에 묻어주었노라며 눈물을 훔쳤다.

“정이 들었쥬. 3년이나 같이 살았는데유. 내가 딸네 집 가느라구 그때 열흘이나 집을 비우구 왔더니만, 저기 대문에서부터 쫓아와서는 앞에 막 드러눕구, 얼굴을 비비구. 그런 고양이가 어딨어유. 밭에 갈 때두 따라오구, 회관 갈 때두 따라오구.”

혼자 사는 독거노인인 할머니에게, 친구이자 아들이나 다름없었던 달타냥. 집으로 돌아오며 자꾸만 달타냥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한참이나 펑펑 울고 말았다.

그동안 고양이 책을 내고,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길고양이에게 전해달라며 사료 후원을 받은 것만도 100여 포대 이상. 그 사료는 고스란히 길고양이의 생명을 구하고, 인간의 사랑을 전하는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고양이를 싫어하던 고깃집 아저씨가 완전히 바뀌어서, 텃밭에다 길고양이 집까지 지어주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렇게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길고양이를 쓰레기나 뒤지는 도둑고양이 취급을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길고양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길어야 3년, 이 세상을 살다 간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흔하지만, 항변하지 않고, 토 달지 않고 그냥 살아간다. 고양이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사실 고양이 사진을 통해 내가 말하려는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의 이야기….

이 땅에 고양이로 태어나 한평생 천대받고 살다가 고양이별로 돌아가는 고양이의 삶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대부분은 콧방귀를 뀔 게 분명한 고양이 이야기를 저 바람에게라도 들려주고 싶었다.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다.

고양이도 이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이고, 살아갈 권리를 갖는 동물이니 해치지만 말아달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이것뿐이다.

집냥이가 10~15년이란 수명을 사는 것에 비해 길고양이는 인간의 포획과 교통사고, 먹이를 구해야 한다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고작 평균 수명이 3~5년밖에 되지 않는다.  먹이를 주면 길고양이 개체수가 증가할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영역 생활을 하는 길고양이는 먹이를 준다고 해서 그 영역으로 우르르 모여들지 않는다. 정기적으로 먹이 급식을 받는 길고양이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뜯지 않음으로써 거리의 환경에 도움이 되고, 생존의 안정성을 느껴 새끼를 덜 낳게 된다.

2010년 가을 어미를 잃고 애타게 울던 꼬리 짧은 고양이 꼬미. 꼬미의 단짝인 재미는 꼬미의 할머니인 대모가 낳은 아기 고양이다. 꼬미와 재미가 놀다가, 꼬미 녀석이 그만 발을 헛디뎌 벼랑으로 미끄러지자, 재미가 벼랑에서 미끄러지는 꼬미에게 손(앞발)을 내밀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렌즈를 통해 그 모습을 보는 나는 공연히 가슴이 느꺼워졌다.

덩달이와 두 마리의 강아지도 못 말리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덩달이가 사는 마당에는 본래 덩달이와 개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곳에 두 마리의 강아지가 태어났고, 어느 정도 걷게 되면서 녀석들은 줄기차게 덩달이의 꽁무니를 따라다녔다. 이제 많이 컸지만, 여전히 덩달이만 보면 핥아대고 올라타고 짓누르고 물어뜯고 장난을 친다. 성격 좋은 덩달이는 그런 강아지들의 장난을 다 받아내고 있다.

어디를 가든 붙어 다니는 너무 다정한 길고양이 남매.  어미냥이 떠나면서 얌이는 이제 오빠인 멍이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애교도 떤다. 멍이는 그런 얌이를 다 받아주는 든든한 오빠다.

이용한 작가는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15년간을 여행가로 살았다. 2007년 12월, 우연히 집 앞에서 아기 고양이 다섯 마리를 만나게 된 인연으로, 블로그에 ‘길고양이보고서’를 꾸준히 연재해왔다. 저서로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명랑하라 고양이> <나쁜 고양이는 없다>를 출간했고, 2011년 11월에는 영화 <고양이춤>을 개봉했다. 그 외 시집 <안녕, 후두둑 씨> 여행에세이 <바람의 여행자>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등을 펴냈다. 블로그 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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