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강남스타일 열풍
그리고 민간외교관 스타일
나는 얼마 전 남자 친구 마크의 어머니 헤다의 50세 생신 잔치에 초대받아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남자 친구는 네덜란드 서쪽의 아주 작은 마을 오멘 출신이다.
7개월 전 한국 덴마크 대사관과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우리는 강남에서 처음 데이트를 했다. 한국에 있을 당시 우린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유럽에서 다시 듣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마크가 공항으로 픽업을 나왔다. 암스테르담에서 마크가 사는 오멘까지 차로 약 2시간. 차 안에서 마크는 자연스레 라디오를 켰고, 동시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다.
정말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이 노래, 그래도 네덜란드에서 다시 들으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마크의 어머니는 몇 달 전부터 이 파티를 계획해 왔다고 한다.
70명 가까이 초대를 했고, 초대받은 사람은 ‘예측할 수 없는 의상’을 입어야만 파티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아이를 둔 중년 남편들은 모두 부인 옷을 입고 나타났고, 많은 중년 부인들은 70년대 로큰롤을 연상시키는 디스코 의상을 입고 파티에 참석했다.
나는 마크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바에서 파티에 온 사람들에게 음료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졌다. 마크의 어머니가 무대로 올라가 감사 인사를 하는데, 갑자기 “잠깐, 중요한 걸 잊었네요. 내 아들 마크가 한국에서 인턴을 마치고 돌아왔어요. 기념품과 함께요. 사랑스러운 딸! 수아를 소개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수아를 위해서 준비한 노래가 있어요! 싸이의 강남스타일! 자, 모두 함께 춤춰요!”
마크의 사촌 동생들이 내 손을 잡고 무대로 올라갔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함께 말춤을 췄다. 남자 친구의 가족을 처음 만나는 날, 예뻐 보이고 싶었는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내 이미지를 다 망가트렸다. 하지만 평상시 유쾌한 성격에 부끄러움을 타지 않는 나는, 사람들과 함께 강남스타일 노래가 끝나는 순간까지 100% 즐겼다. 한국어를 모르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오빤 강남스타일” 함성과 함께. 결코 예뻐 보이기는 힘든 춤이지만, 한국을 조금 더 친숙하게 만들어준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이날만큼은 너무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나는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고, 이후 영국 그리고 스웨덴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맞는지,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항상 가지고 있고 기회가 날 때면 틈틈이 그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호러물과는 색다른 감정을 자극해내는 ‘빈집’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괴물’ 같은 한국 영화는 북유럽 친구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있다. 한국어로 ‘Hello’를 어떻게 말하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어니언(양파)’과 발음이 비슷한 ‘안녕’을 가르쳐 주곤 한다.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친구들이 반기며 말한다. ‘어니언!’
한번은 아리랑 방송국의 한 피디님께서 ‘민간외교관’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셨다. 별명 때문일까? 그 이후, 민간외교관 스타일에 맞도록 더욱더 열심히 한국을 홍보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이른 아침 수업이 있는 오늘, 런던의 2층 버스에 앉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듣는다. 이제 졸업을 앞둔 나의 꿈은 외교관이 되는 것이다. 한국인들을 세계로 빠르게 배출시키고, 외국 스타들이 한국 무대를 ‘꿈의 무대’라고 부르는 날이 오게끔 다양한 국제 문화 정책 활동에 힘을 쏟고 싶다.
싸이 같은 국제 스타와 함께 한국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부정 스타일에서 긍정 스타일로
우리 가족은 삼 형제와 엄마 아빠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첫째인데 삼 형제여서 그런지 조용할 날이 없고, 마찰이 생기지 않은 날도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더 많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특히 중학교 3학년 1학기 때가 가장 심했던 거 같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오늘 또 학교 가야 하나? 싫어하는 과학 수업은 왜 매일 있는 거야, 아, 오늘 체육 시간이 있어? 옷 갈아입기 귀찮은데…. 학교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학교는 왜 이렇게 늦게 끝나는 거야, 이 공부를 왜 해야 하지, 다른 사람 만 원짜리 밥 먹을 때 이만 원짜리 먹겠다고 공부를 해야 하나. 저 선생님은 왜 저렇게 센 척을 하지, 이런 쓸데없는 과목은 왜 배우냐…. 누구를 보든 무엇을 보든 부정적으로 삐뚤게 생각을 했다. 한마디로 그때의 나의 모습은 완전 짜증 불만 부정 스타일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남들한테는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겉으로는 밝은 척을 했다. 그렇게 부글부글 마음속 짜증을 집에 와서 첫째 동생에게 화풀이를 했다. 중1인 첫째 동생이 초1인 막내에게 막 대하고 장난치는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다. “막내한테 왜 그러냐, 그건 옳지 못하다.”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하다가,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동생을 때리기도 했다.
그해 3학년 여름 방학 때 엄마가 마음수련을 해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수련을 하며 동생한테 많이 미안했다. 첫째 동생이 막내에게 한 행동은 내가 첫째 동생에게 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선생님들께도 죄송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는 욕하고. 내가 왜 이런 마음들을 갖고 살았지, 하면서 막 마음을 버렸다. 마음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7살 때부터 어깨가 조금 삐뚤어서, 항상 한의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점점 어깨까지 발라지는 것이었다.
세포 하나하나의 부정적인 마음을 빼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또 만날 들었던 “너 어깨가 삐뚤다, 어깨가 바로 되어야 할 텐데” 하는 말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정말로 내 어깨는 삐뚤다는 마음이 있으니, 더욱 삐뚤어졌던 거 같다. 그 마음들도 많이 버렸다. 그러면서 정말 뭔가 마음이 시원하고 탁 빠진다는 느낌이었다.
방학 때 마음 빼기를 하고 오니 내가 변해 있는 점이 너무 많았다. 우선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게 됐다. 예전엔 오만 부정적인 생각들만 하다가 겨우 일어나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으니 그런 거 같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청소도 했는데, 엄마가 깜짝 놀라셨다. 전에는 첫째 동생한테 윤기동, 윤기동 하면서 늘 성까지 붙여서 불렀다. 막내 동생한텐 친절하게 이름만 불렀는데. 미안해서 그다음부터는 기동아, 기동아 한다.
생각해 보니까 나도 차별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잘해주면, 첫째 동생도 막내를 대하는 게 바뀔 거 같다.
공부할 때도 엄청 집중력이 생겼다. 학교에서도 정말로 마음속이 조용해졌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올라오더라도, 어느 순간 이런 생각해서 뭐하냐 버리고, 현재가 선물이다, 현재가 중요하다,면서 집중하게 된다.
한날은 친구가 “전에는 이상한 말만 하더니, 수련하고 온 뒤로 완전 편해 보인다”고 했다. 예전에도 안 그런 척한다고 했는데도 나의 부정 스타일을 친구는 눈치를 챘었나 보다.ㅋㅋ
예전엔 긍정적인 척을 했는데 지금은 진짜로 긍정적으로 된 거 같아 좋다. 나는 이제 곧 아르헨티나로 유학을 간다. 다른 나라에서 지내는 게 힘들 수 있겠지만 가족들과 한 지구에 있는 거니까 괜찮고, 또 재밌을 거 같다. 내가 유학을 간다고 가족끼리 사이판 여행도 갔다 왔는데 참 좋았다.
커서 다시 한 번 가자, 기동아, 형욱아. 엄마, 아빠. 보고 싶을 거예요. 그리고 규동아, 혜성같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항상 나눌 줄 알고 남에게 지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긍정적으로 변한 거 축하하고, 건투를 빈다.ㅎㅎ
상큼발랄 나만의 스타일을 갖기까지
나는 이제 갓 결혼한, 신혼의 달콤함에 푹 빠져 있는 24살 새댁이자 직장인이다.
직장 동료들은 나에게 정말 귀엽다고들 한다. 스타일만 그런 게 아니라 늘 생글생글 잘 웃고 웃기는 말도 잘한다면서 넌 개그맨 스타일이라고도 한다.ㅋㅋ
사실 나는 학교 다닐 땐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는 그저 지극히도 평범한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19살 다른 친구들이 다 대학에 갈 때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어떠한 과를 가고 싶다는 확고한 신념이 없는 한은 대학보다 일을 먼저 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였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나의 모습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패션과 스타일에 눈이 떠지고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조금은 작고 평범한 편인 나에게 맞는 스타일은 어떤 걸까? TV도 많이 보고 잡지도 많이 보았다. 그러면서 옷 스타일도 바꾸어봤다. 그리고 항상 머리를 묶는 당고 머리 아니면 땋은 머리였는데, 머리 스타일에도 변화를 줘보았다. 단발머리에 볼륨 매직도 해보고, 웨이브도 주고, 노랗게 염색도 해보았다.
점점 “예쁘네” “귀엽다” 말해주는 사람들도 생기고, 나를 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성격도 밝아졌다. 옛날에는 정말 조용했는데, 사람들에게 장난도 치게 되고 웃기는 말도 한 번씩 하고, 내 안에 숨겨져 있던 개그 본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할까. 그렇게 겉모습과 내면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는 점차 상큼발랄 스타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물론 스타일을 찾아가기까지 시행착오도 있었다. 괜찮겠다 싶어 산 옷을 입고 갔는데 나이가 들어 보인다, 전혀 안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는다거나.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내겐 밝은 색상들의 옷과 헤어스타일이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니 바빠서 요즘엔 머리를 손질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질끈 동여맨 당고 스타일을 많이 하고 다니지만 그래도 발랄귀염을 추구한다. 날씨가 쌀쌀해진 요즘엔 니트 재질의 옷을 많이 입는다. 은행잎 색깔 스웨터나 분홍색 스웨터 그리고 블랙이나 녹색 야상 아니면 갈색 재킷을 주로 입는다. 그리고 스카프나 조금 얇은 소재의 목도리를 믹스매치해서 포인트를 준다. 그리고 이 계절에 빠질 수 없는 롱부츠~!를 잘 매치해주면 나름 멋스럽게 보인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도 자기 스타일을 찾기에 따라 매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패션 전문가들은, 연예인 같은 이들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개성을 잘 살려서 옷을 입으면 그게 더 매력적이라 말한다. 정말 그런 거 같다.
지금 내 스타일에 완전 자신 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고 싶다. 외모뿐 아니라 내면도 모두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밝음을 전해주는 스타일을 갖고 싶다.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줄 아는 품격 있는 여자이고도 싶다. 때론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혼자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안 좋은 일이 있어도 툭툭 털어내버릴 줄 아는 쏘~쿨한 여자이고 싶다.
그렇게 소신 있게 내 삶을 만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