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 중요하다.’
건축가 승효상. 그는 이렇게
‘빈자(貧者)의 미학’이란 철학으로 건축을 설계해왔다.
가난했지만 함께 모여 살았던 달동네처럼
이웃을 배려하며 짓는 것이 건축의 공공적 가치라는 것.
그는 또한 집을 짓는다는 건 ‘삶을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 최초 국가공원인
용산공원 국제 설계 공모에 당선된 건축가,
건축을 통해 치유를 꿈꾼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승효상(60)씨를 만나보았다.
글, 사진 김혜진
서울 동숭동 이로재. 1만여 권의 책과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1층 사무실은 건축가 승효상씨의 작업실이다. 책상 한 켠으로는 그가 최고의 건축자재라고 말하는 다양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건축이란 결국 다른 사람의 삶과 연관되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엔 책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란다. 직원들이 언제나 스스럼없이 들어와서 책을 볼 수 있는 열린 공간에서 승효상씨는 설계에 여념이 없었다. 도면에 선을 하나 긋는 것은 그렇게 지으라는 명령이자, 훗날 그 집에서 살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라는 것이기에 선 하나를 긋는 데도 굉장히 진지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설계한 그의 건축물에는 여백이 살아 숨 쉰다. 한 건물이 통째로 우뚝 서 있기보다 조금씩 부분 부분 나뉘어서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서 있고, 누구나 앉아서 쉬고 싶은 열린 마당에서는 자연과 교감한다. 비움을 지키는 집이라는 수백당(守白堂)을 비롯, 공간을 나누고 비움으로써 숨 쉴 수 있는 도시를 표현한 웰컴 사옥, 퇴촌주택, 소석원 등 그가 설계한 100여 개의 건축물에는 하나같이 빈자의 미학이 담겨 있다.
최근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공원인 ‘용산공원’ 설계 국제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조경가 아드리안 구즈와 공동으로 설계한 이 작품에는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제와 미군의 주둔으로 훼손된 용산기지의 생태적, 역사적 상처를 치유한다는 내용을 담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치유의 공원’이라는, 깊이 있는 인문학적 성찰을 담았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치유의 공원’, 어떤 방식으로 그 의미를 담으려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자연, 역사, 장소 등 세 가지 복원을 통해서 치유하자는 거죠. 땅으로 보면 용산은 백두산에서 발현된 백두대간과 연결되니, 땅이 깎여 있으면 돋우고 끊어져 있으면 이어서, 백두산 다람쥐가 한강까지 내려오도록 자연과 생태를 복원하여 치유하자는 거고요, 또 하나는 외세에 의해 점령당하고 훼손된 역사들을 살려내서 다시 우리 역사로 편입 복원시키는 것, 그게 역사에 대한 치유이고요, 세 번째로 용산이 담으로 둘러싸여서 주변과는 섬처럼 분리되어 있는데 그 담을 다 걷어내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장소로 복원시키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건축 하나로 많은 의미를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건축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땅이죠. 건축은 땅을 떠나서는 지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것은 땅의 물리적인 형상뿐만 아니라 땅에 새겨진 모든 기록들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사는 모습도 땅에다가 부지런히 뭔가를 새기는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새길까 따져봐야 하는 것이고 그게 건축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이 될 수 있죠. 최근 김훈씨가 쓴 소설 <흑산>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와요. ‘사람이란 모름지기 터전을 잡고 머물러야 그게 본(本)이고 거기서 이(理)가 생기고, 사람의 모든 존재는 터전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그건 정말 진실이죠. 오래 머물러 살아야 가문과 문화가 형성되니까요. 자기 집을 부동산으로만 알고 이익을 위해 빨리 팔고 딴 집 가고 한다면 도시의 유목민처럼 가벼운 삶, 터무니없는 삶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터무니없는 삶’이라 하시니, 요즘 자주 말씀하시는 ‘터무늬’가 떠오릅니다.
사람에게 각자 지문(指紋)이 있듯, 땅에도 고유한 무늬(地紋·지문)가 있습니다. 그걸 터무늬라 하는데 거기엔 인간의 삶이 남긴 기억과 이야기가 있습니다. 근데 요즘은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우는 등 터에 새겨진 무늬를 다 지워서 집을 지으니 말 그대로 ‘터무늬 없는 집’이고 ‘터무니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거죠. 하지만 산동네 같은 데 가면 땅이 생긴 대로 짓거든요. 그건 우리 옛 선조들의 건축물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지혜입니다. 서양은 자연을 지배하지만, 우리는 자연과 교감하며 땅에 맞는 건축을 해왔으니까요. 가령 병산서원에 가면 자연을 어떻게 건축 속에 빨아들이는가를, 부석사에 가면 철저히 건축이 자연의 한 부분이 돼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죠.
그는 부산의 난민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화가나 성직자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반대로 좌절되었고, 누나가 대신 건축을 권유했다. 1971년 서울대 건축과에 입학한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김희춘 교수의 추천으로 김수근 선생이 이끄는 건축사무소 ‘공간’에 들어간다. 김수근 선생은 올림픽주경기장, 경동교회, 서울법원종합청사 등을 지어온 당대 최고의 건축가로, 건축의 생명은 건물을 어떻게 예쁘게 짓느냐가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아름답게 조직하느냐에 있다는 것을 주창했던 인물이다. 밤을 새워가며 김수근 건축을 탐닉하던 어느 날 갑자기 스승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한동안 방황했다. 과연 ‘승효상의 건축’이란 무엇인가?
그러다 우연히 금호동 달동네를 지났을 때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한국 전쟁 때 이북에서 피란 나온 여덟 가구가 마당을 함께 쓰고, 골목이 마당이 되고 놀이터가 되고 창고가 되었던 곳. 옆집 담이 우리 집 벽이 되고 우리 집 벽이 앞집의 지붕이 되었던 공동체 마을. 가난했기에 오히려 나눠 쓰고 같이 살았던 달동네의 골목길이야말로 건축의 온갖 지혜가 응축된 곳이었다. 모여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움,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건축과 마주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미학이란 건축 철학이 담긴 ‘빈자의 미학’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건축가로서 가장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옆집보다 크려 하지 않고, 길이 있으면 자기 땅 안으로도 길을 내어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가 오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는 것, 또한 도시민의 배경으로 있을 뿐 튀지 않는 것, 그게 선한 건축이죠. 어떤 건축주들은 건축을 자기의 사리사욕을 위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 집은 당신 집이 아닙니다. 개인 돈으로 지어도 사용권만 있지 그 소유권은 시민과 사회에 있습니다” 했더니 화를 내고 가버리더군요. 그래서 굶기도 많이 굶었어요.(웃음) 건축가는 시민과 사회에 봉사해야 합니다. 개인의 욕망을 위해 헌신하는 하수인이 되면 그건 건축가가 아니에요.
건축주의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하네요.
네. 좋은 건축가는 좋은 건축주가 만듭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얘기예요. 어떻게 보면 모든 시민들이 잠재적 건축주니까 건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건축주는 건축이 자기 소유가 아니라는 걸 인식해야 합니다. 자기 집을 지을 때도 절제하면서 지을 줄 알아야 하는 거죠. 그런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아는 건축주를 만나면 그지없이 반갑습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는 전심전력을 다해 일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빈자의 미학, 그 첫 번째 결과물인 수졸당(守拙堂)은 그래서 의미가 깊다. 겉은 보잘것없으나 정신만은 풍요로운 집이라는 그곳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잘 알려진 유홍준 교수의 집이다. 당시 가난한 학자였던 그는 승효상 대표에게 설계비 대신 현판을 하나 건넸다. 이로재(履露齋), 아침 이슬을 밟으며 청빈한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그 뜻에 반한 승대표는 자신의 건축사무소 이름으로 삼았다.
평소 빈자의 미학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건축이라는 게 자기를 객관화시키지 않으면 설계를 못 해요. 왜냐하면 자기 집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을 짓는 거니까 항상 제3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죠. 건축 도면이라는 게 그래요. 평면도란 위에서 쳐다보는 그림 아닙니까. 평면도를 정확히 보려면 무한히 위로 올라가야 돼요. 그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 완전하게 자기를 객관화시키는 거니까. 제도에 쉽게 휩싸이거나 주관적인 입장에 휘몰리면 안 됩니다. 그러면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없어요. 자기를 경계 밖으로 내몰아내야 경계 안을 쳐다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건축가로 아돌프 로스를 꼽는다. 아돌프 로스는 1907년 오스트리아 빈 시내에 장식이 없는 건물인 로스 하우스를 세운 인물이다. 당시만 해도 화려한 장식이 빈의 정체성이라 믿어온 이들에게 아돌프 로스의 행보는 파격이었다. 그 이후 모더니즘이 태동하면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건축을 세웠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철학자 칼 크라우스는 로스 하우스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아돌프 로스는 미카엘 광장에 건축이 아니라 철학을 세웠다’라고. 그것은 한 사람이 건축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큰 깨달음이었다. 이처럼 그는 건축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꾼다고 믿는다. 부부가 서로 닮아가는 것은 그들이 한집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했기 때문인 것처럼. 좋은 건축은 좋은 삶으로 이어지기에 그에게 건축은 삶을 짓는 것과 같다. 건축은 곧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사는 방법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가 건축을 기술이나 예술이 아닌 인문학으로 보는 이유다.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을 하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이 만들어 나간다고 하셨지요.
언젠가 내가 지은 건축물은 허물어질 걸 압니다. 건축물을 세우자마자 거주하는 사람이 바꾸어도 무방합니다. 설계한 대로 살라는 건 독재죠. 건축가는 그 바탕만 제공하는 거예요. 다만, 바라는 건 맨 처음 상태가 어떠했는지 알려주면 근사하겠죠. 건축은 공간으로 만들어지지만, 시간으로 완성되니까요. 시간이 지나며 바뀐 결을 따라 기억들이 쌓이고 그게 살아온 궤적을 나타내고…. 그것이 우리 삶을 멋지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거죠.
가장 아름다운 집이란 어떤 집일까요?
우리 삶을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집이죠. 똑같이 주어진 하루도 어떻게 보내느냐는 다르듯이, 어떤 사람은 별이 떠도 별을 못 보고, 해가 떠도 해를 못 봐요. 근데 건축이 그걸 근사하게 보여줄 수가 있어요. 떠오르는 해를 보여주기 위해 가장 아름다운 배율로 창을 뚫고, 빗방울 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들리도록 처마를 낼 수 있죠. 또한 주변 집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굉장히 선하게 만들 수가 있어요. 주변 집에 군림하듯 서 있으면 자기 마음이 완악하게 되죠. 하지만 자기 분수에 맞고, 염치가 있는 집을 지으면 그게 사람을 선하게 만들죠. 그런 집은 불편해야 돼요. 그래야 사람이 생각하게 되고, 움직이고, 창조하게 되니까요. 동선도 좀 길어야 하고, 대문도 나가서 열어주고, 집이 좀 좁아야 가족끼리 지나칠 때 살결도 부딪치고 만져볼 수 있잖아요. 그래서 불편한 집이 좋은 집이에요.
그의 건축사무소 이로재는, 손님이 오면 직접 나가서 문을 열어줘야 한다. 걸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 덕에 바깥 경치도 보고 서로 소통할 수 있어 그 불편함을 즐긴단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콘크리트로 찍어내듯 우뚝 솟은 건물 못지않게 우리 마음도 시멘트처럼 차가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을 때 버튼 하나로 눌러 끝나는 게 아니라 정겹게 문을 열어주는 우리의 따듯한 감성을 찾아내는 것, 그는 그렇게 건축을 통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삶의 공간을 일궈나갈 것이다.
“언젠가는 마을을 하나 설계하고 싶습니다. 정말 근사한 공동체를 만들어 촌장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안 되면 청소부라도.”(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