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중학교 2학년 딸아이를 깨우려고 방에 들어갑니다. 방문이 안 밀립니다. 안에서 잠가놓은 건 아닌데 잘 안 밀립니다. 좀 더 힘을 줘서 밀어보니 제 몸 하나 겨우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확보됩니다. 문 앞에 딸아이의 책가방이 놓여 있습니다. 어깨끈이 문 밑에 끼어서 잘 안 열렸습니다. 책가방뿐만 아니라 문 앞에 널브러진 물건들이 많습니다. 문 앞에서 딸아이가 누워 있는 침대까지 약 네 걸음….
첫발에 무언가 걸렸습니다. 딸아이가 벗어놓은 바지, 형체 그대로 홀라당 뒤집혀 있습니다. 두 번째 발걸음, 발바닥에 심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생라면 부스러기를 밟았습니다. 세 번째 발걸음에 무언가 미끄덩하며 중심을 잃었습니다. 딸아이의 스타킹을 밟았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물건이 그냥 방바닥에 널려 있습니다.
“야~~~ 개딸~~~ 일어나라~ 7시다~~~”
딸아이가 미동도 없습니다.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미끄덩하고 손이 미끄러집니다. 잠들기 전 동백기름을 바르고 잤는지 머리에 기름기가 좔좔입니다.
“야~~ 개기름 딸~~~ 개딸~~~ 빨리 일어나~~~” 그제야 딸아이가 눈을 부스스 반쯤 뜹니다. “야, 가시나야 너 어제 또 라면 끓여 먹고 잤냐? 얼굴 부은 거 봐라 눈 코 입이 다 파묻혔다.”
커튼을 올리며 딸아이의 방을 한 번 훑어봤습니다. 책상에는 온갖 책과 참고서가 널려 있고 교복은 의자에 반쯤 걸쳐 소매 부분은 의자 바퀴에 끼어 있습니다. 딸아이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길게 하품을 한 번 합니다. 볼에 하얗게 침 자국이 선명합니다.
내 딸이지만 정말…………………… 개를 닮았습니다.
15년 전 두 살 많은 오빠 밑으로 딸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정말 예쁜 내 강아지였습니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정말 15년 후에 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쁜 애완견이 아닙니다. 일요일 아침 동물농장에 가끔 나오는 녹색 그물에 포획되어 발버둥치는 유기견의 몰골입니다. 다시 그물 속으로 아니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딸아이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저는 방문을 나와 발바닥에 붙어 있는 라면 부스러기를 털어내며 출근을 했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퇴근을 하며 집 앞 슈퍼에 들러 개딸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한 통 사서 들어가는데 마침 딸아이가 슈퍼 앞을 지나칩니다. 길 건너로 달려가는 오빠 친구와 인사까지 하면서 희희낙락입니다. 경비실 앞을 통과하는 딸아이 뒤를 따랐습니다. 한겨울에 짧은 반바지를 입었습니다. 위는 하얀색 두꺼운 털 스웨터를 한쪽 어깨가 보이게 삐딱하게 걸쳤습니다. 가방은 어디 수산시장 아줌마들이나 들 법한 비닐 가방을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등까지 흘러내린 긴 생머리는 드러난 어깨 반대편으로 쓸어 넘겨져 있습니다. 딸아이를 불러 세웠습니다. 저를 돌아보는 딸아이의 얼굴이 경비실 불빛에 환하게 다가옵니다. 입술에 뭔가를 처발랐나 봅니다. “학원 갔다 오냐?” 딸아이가 저에게 달려옵니다. 아침에 봤던 개딸과는 전혀 다른, 이제 아가씨 티가 나는 것도 같은 딸아이가 반갑게 저를 향해 달려옵니다. 두 팔을 벌렸습니다…………… 왼쪽 손에 들려 있던 아이스크림 봉투만 낚아채서 집 쪽으로 뛰어갑니다. 진짜 개라면 꼬리라도 흔들 텐데…… 썅.
조금 전에 길 건너로 내달리던 오빠 친구 녀석은 과연 알까요? 밤마다 생라면을 먹으며 수프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고 이불에 쓱쓱 닦는 우리 개딸을… 하루 종일 신었던 스타킹을 고스란히 침대 밑으로 쑤셔 넣는 우리 개딸을… 분홍색 베개 커버에 알록달록 침 자국을 남기는 우리 개딸을… 침대에서 아이스크림 먹다 질질 흘리고 그냥 손으로 쓰윽 닦고 처자는 우리 개딸을….
15년 전 신생아실 창밖에서 꼼지락거리는 우리 딸아이를 바라보며 “우리 똥강아지~~ 아빠야~~”라고 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도 아직 똥개까진 아닌 거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렵니다…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