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당일 여의도 KBS 앞, 항상 제일 먼저 출근한다는 이문재(32)씨가 여느 때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했다. 수줍어하며 인사를 건네는 그는, TV를 통해서도 느껴지듯 참 착해 보였다. 현재 개그콘서트 ‘나쁜 사람’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는 KBS 공채 26기로 3년 차 신인 개그맨이다. 그 스스로 “인생의 시작”이라 말하는 이 ‘개콘’ 무대에 서기까지 5년 동안 13번의 개그맨 시험에 탈락하는 등 힘든 20대를 보냈다는 이문재씨.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더없이 소중한 ‘웃음’의 시간으로 만들어 가려고 노력한다는 그를 만나보았다.
요즘 일명 ‘웃픈(웃기면서 슬픈)’ 개그 ‘나쁜 사람’의 인기가 한창이다. 등장인물은 범인 한 명과 경찰 세 명. 취조를 당하는 범인과 경찰들의 묻고 답하기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은 범인의 구구절절한 사연에 빠져들며 함께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범인 : 아들 돌 반지가 필요했어요. 사진만 빨리 찍고 갖다 놓으려고 했는데….
경찰 : 동정심 유발하지 마. 직업도 있는 놈이 돌 반지 하나 못 산다는 게 말이 돼?
범인 : 집사람 병원비로 다 썼어요. (슬픈 음악이 흐르고)
“나는 피도 눈물도 아무 감정도 없는 놈”이라며 등장해 야심 차게 범인을 심문하던 형사 이문재는 결국 눈물을 흘리며 “불쌍해서 어떡하니, 풀어주자” 말한다. 그러다 이내 자기 대신 취조를 해대는 선배 경찰에게 “나쁜 사람~ 나쁜 사람~ 왜 그랬니~ 왜~” 하고 울부짖는 이문재씨의 일품 울음 연기를 보노라면, 범인 사연에 뭉클해지다가도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코너에 맞는 음악을 찾기 위해 2주 동안 1,000곡이 넘는 OST를 듣는 등 많은 노력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이 코너는, 2월 초 방송되자마자 시청자들로부터 ‘나 왜 울면서 웃고 있지?’ ‘슬픔과 웃음이 함께하는 나쁜 사람 최고!’ 등의 평을 들으며 한순간 인기 코너가 되었다.
요즘 인기를 실감하겠어요. 처음 이 코너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개그콘서트에 김준호 선배가 왕으로 나온 감수성이라는 코너가 있었어요. 거기서 권장군이 “전하, 전쟁에 나갈 병사가 없습니다” 하자 왕이 “그럼 니 아들이라도 보내야 할 거 아니야” 하는데, 슬픈 음악이 깔리며 권장군이 “제 아들은 이제 돌 지났습니다” 말하는데 너무 웃긴 거예요. 슬픈데 웃길 수 있을까? 아예 이 사람이 더 힘들어지면 어떨까? ‘비극의 희극화’를 생각하면서 짜기 시작했죠. 이렇게까지 재밌어하실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정말 감사해요.
범인이 진실을 말하는 건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하는 건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저희가 짜는 이야기에서는 범인은 죄가 없어요. 입양 간 동생 생일이어서 선물을 주려고 잠깐 만났는데, 헤어지기 싫어하는 동생 때문에 길게 데리고 있게 된 것. 양부모 입장에서는 납치라고 오해할 수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안아줄 수 있는 죄인 거죠. 그런 식으로 정말 안 좋은 상황들이 이어져서 죄를 지은 것처럼 보이는데, 오히려 오해하는 우리들, 어떻게든 널 집어넣겠어! 하는 우리들이 진짜 나쁜 거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거죠.
웃음도 있고 감동도 있고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 말씀들도 해주시는데, 사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고민도 많았어요. 우리는 웃음을 주기 위해 짠 건데, 실제 그런 사연을 가지신 분들이 계신 거예요. ‘알고 계십니까, 그게 저의 상황입니다. 이런 게 웃음이 될 수 있다는 게 씁쓸하네요.’ 게시판이나 메일로 그런 글을 보내주시는데, 너무 죄송하고 진짜 난 나쁜 사람인가 싶은 게 괴롭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거 같은 허구적인 상황을 만들려고 해요.
일주일에 한 번, 4~5분의 웃음을 주기 위해 개그콘서트 개그맨들은 누구보다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끊임없이 새 코너를 준비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는 밤샘 연습을 하기도 한다. 개그맨들에게 꿈의 무대라 불리는 개그콘서트. 군 제대 후 20대의 열정을 모두 쏟아부은 5년간의 개그맨 지망생 시절, 각종 방송사 시험에 도전하지만 13번의 탈락 후 서른 살에 치른 시험에서의 합격. 그렇게 힘겨운 과정을 거쳐 서게 된 무대이기에 서른두 살의 신인 개그맨 이문재는, 더더욱 치열한 준비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개그맨 공채 시험이 항상 2월에서 3월 사이에 있어요. 그래서 저는 26살부터 30살까지 연말 연초 때 놀아본 적이 없어요. 항상 작은 지하 공연장에서 공연 연습을 하며 보냈죠. 가장 즐거워야 할 20대를 그렇게 보낸 게 아쉬울 때도 있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을 수 있었고, 또 이 순간을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거 같아요. 지금도 이 일을 위해 포기하는 게 많아요. 노는 거, 술 먹는 거, 늦잠 자는 거…. 하지만 하나를 얻고 싶으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거 같아요.”
제일 먼저 사무실에 나와 준비를 하고,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찾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출퇴근길에도 연습을 하고…. 그렇게 노력한 결과 ‘그땐 그랬지’의 이름 없는 쫄쫄이맨을 거쳐 2012년 2월에는 신인으로서는 쉽지 않게 아이디어부터 모든 기획을 했던 ‘있기 없기’ 코너로 ‘있기 없기’라는 유행어를 배출하기도 했다. 스스로 해냈다는 자부심도 느꼈던 순간이었다.
계속 시험에 떨어지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은데, 끝까지 도전하게 만든 원동력이 있나요?
음… 자존심이랄까, 저 스스로한테 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사실 주변에서 반대도 많았어요. 부모님도 서른이 다 되도록 개그맨 지망생 한다고 있으니까 걱정하시고, 친구들도 정신 차리라고 하고. 제일 힘들었을 때는 스물아홉 살 되는 해 시험에 떨어졌을 때예요. 나는 이것밖에 안 되나, 그때 절망감과 암담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더라고요. 내년이면 서른 살인데, 꿈 찾아간다고 여태까지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무서웠어요. 부산에 있는 친구에게 가서 제가 세상에서 먹을 수 있는 술은 다 먹었죠.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마음으로 죽어라 했는데, 붙은 거죠.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죠. 지금은 부모님도 어디 가면 내 아들이 이문재다 그러세요.(웃음) 일단 한 번은 효도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개그맨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낀 적이 있다면요?
준비한 걸 딱 보여주는 순간 관객들이 막 웃어주실 때, 그때가 가장 기쁘고 보람 있죠. 제가 지망생 시절에 있었던 일인데요. ‘옹알스’라고, 세계에 나가서 한국의 코미디를 알리고 있는 팀인데, 옹알스쇼의 사전 MC를 할 때였어요. 그날 오프닝을 하다가 오늘이 특별한 날인 분께 선물 드릴게요, 손 한번 들어보세요, 했더니, 어저께 생일이었어요 등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떤 여자분이 손을 들고 “어머니 항암 치료 끝나고 웃겨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 모녀께 선물을 드렸죠. 비록 장난 선물이었지만. 그리고 선배들이 공연할 때 뒤에서 계속 어머니하고 딸을 보았어요. 계속 즐겁게 웃으시는데 병도 다 나은 거 같더라고요. 그때만큼은 비록 지금의 현실은 어둡지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일 한다, 제일 멋진 남자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은 사람에게 활력을 주니까요. 그런 건강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착한 세상이잖아요.(웃음)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무엇보다 절박해야 할 거 같아요. 장수생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떨어져? 그러면 내년에 보지. 이번에도 떨어져? 그러면 다른 방송국 보지. 저도 어느 순간 떨어지는 것에 익숙해지더라고요. 근데 스물아홉 살 때 정신이 번쩍 드는 거예요. 절박함이 끝까지 차니까 그때부터 쉬지 않았죠. 계속 공연을 짜고, 무대에 올려보고, 안 웃으면 바꾸고 또 바꾸고. 밤새 연습하다가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면 또 짜고. 그렇게 해서 붙게 된 거죠. 돌아보면 뭐 이런저런 조건 때문에 될 수 있었는데 안 됐어, 이런 건 솔직히 변명이고 핑계였어요. 제가 그만큼 안 했던 거였더라고요. 절박한 마음으로 얻고자 하면 다 되니까, 더욱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이문재씨는 고등학교 때는 합기도 선수로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할 정도로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리고 군 제대 후 권투로 종목을 바꾸고 나서는, 지금은 아예 권투 선수 출신의 선배와 함께 체육관을 차려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 집, 체육관, 개그콘서트 사무실. 이렇게 삼각 트라이앵글의 구도가 자신 삶의 대부분이라는 이문재씨. “저는 제가 하는 일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거든요. 좀 고리타분한가요?” 지금 하는 일밖에 생각할 줄 모른다는 그의 모습이 참 순박해 보였다.
개그맨들마다 다 개성이 있잖아요, 개그맨 이문재의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 그런 건 정말 전혀 없어요.(웃음) 사실 저는 그렇게 끼는 없거든요. 사석에서는 잘 못 웃겨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아직도 사람들 앞에 나가면 부끄럽고 쑥스럽고 그래요. 뒤에서 잘 준비해서 준비한 것만 하는 스타일이랄까. 그러니까 저는 죽어라 노력하고 연습하는 것밖에 없어요. 매번 코너가 끝날 때마다 항상 멤버들과 통화를 해요. 여기서 이랬으면 좋지 않았을까, 서로 조언을 해주면서 고쳐나가는 거죠.
개그콘서트 내에서도 서로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다고 들었어요. 새로운 코너를 준비해가도 쉽게 통과되기도 어렵고, 녹화하고도 편집이 된다거나. 그럴 때 실망감도 클 거 같아요.
‘어르신’에서 ‘나쁜 사람’ 하기까지 새로운 코너 10개 정도를 피디님과 작가님께 보여드렸죠. 근데 다 별로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웃음) 밤새 의상이며, 음악이며 준비해서 갔는데 단번에 아니라는 소릴 들으면 힘들긴 하죠. 근데 그런 걸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야 해요. 자기와의 싸움인데 지면 못 하는 거죠. 제가 만날 후배들한테 하는 말이, 물론 후배라고는 한 기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웃기는 재미가 아니라, 아이디어 짜는 재미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말합니다. 그리고 운동한 것이 도움이 돼요. 운동도 정말 힘들 때부터가 운동 시작이거든요. 조깅할 때도 땀 떨어지면 그때부터 내 몸의 칼로리를 쓰는 거예요. 그래서 힘들다 느낄 때 스스로에게 말해요. 지금부터 시작이다, 힘들지만 난 할 수 있다, 다운당해도 난 일어난다.(웃음)
감옥에 갇힌 죄수와 여자 친구 이야기를 다룬 ‘있기 없기’, ‘나쁜 사람’ 등 어떻게 보면 좀 무거운 소재로 개그를 해왔는데요, 앞으로 하고 싶은 개그 스타일이 있다면요?
앞으로는 밝은 개그를 하고 싶어요. 이문재 코너를 보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개그. 나쁜 사람이 ‘비극의 희극화’라면, 지금은 ‘희극의 희극화’ 기쁨에 기쁨을 더해주는 코너를 준비하고 있어요. 잘되면 가을쯤에 보실 수 있을 거예요.(웃음)
“어떤 일을 하느냐, 얼마나 버느냐보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재밌게 하면서,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큰 행복인 거 같아요.”
허황한 꿈 꾸지 않고, 한결같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하며 인생의 행복을 만들어가는 정직한 사람, 이문재. ‘나쁜 사람’에서 이문재씨가 맡았던 형사처럼, 그를 대상으로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착한 사람~ 웃긴 사람~ 왜~ 왜~” 하고 외치게 된다.
그가 앞으로 만들어 갈 기쁨에 기쁨을 더해줄 ‘밝은 개그’란 무엇일까. ‘웃픈’을 넘어서는 ‘웃웃(웃기디웃긴)’ 개그를 들고 나타날 그의 새로운 모습에 벌써부터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