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번역가 이기욤씨의 마음 빼기 이야기

외로운 학창 시절, 혼혈아라는 놀림. 이기욤씨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들었다고 합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자라며 ‘싸움 없이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는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늘 떠나지 않았다는 기욤(Guillaume)씨. 다행히 그는 아버지의 소개로 마음수련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종이 다르다고 차별받지 않는 세상, 모두가 하나 되어 사는 평화로운 세상의 답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기욤(32)씨의 마음 빼기 이야기입니다.

저는 늘 제 뿌리를 찾고 싶었습니다. 과연 나는 프랑스 사람일까? 한국 사람일까? 나는 누구일까? 하지만 제 힘으로는 어디에서도 답을 구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 마음수련을 하며 무한대 우주가 원래의 나라는 걸 알았고, 혼혈아라는 열등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외로움도 원래는 없는 거란 것도 알게 됐고요. 본래 마음엔 외로움, 화, 슬픔 등 인간마음은 없으니까요. 그동안 나만의 마음속에 갇혀서 고통 속에 살았다는 것. 그걸 아는 순간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그 답을 찾았다는 기쁨이 너무나 컸습니다.

수련을 시작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부모로서 책임감 없이 어린 나이에 혼자 둬서 미안하다. 내 잘못이다”라고. 마음이 뭉클해지고, 미안했어요. 아버지한테 철없이 화냈던 게 떠올랐거든요. 부모님도 제게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주신 거였다는 걸 겨우 알았을 때였으니까요.

저는 10살 때(중학교 1학년)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어요. 한국에 있는 사촌 형이 프랑스로 유학을 오면서 그 형을 따라 학교를 옮겨 기숙사 생활을 했거든요. 시골 학교에 다니다가 부잣집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로 간 거였는데, 친구들이 눈이 찢어졌다며 중국 사람 같다고 놀리기도 하고, 싸구려 옷을 입었다고 무시하기도 하고 그랬지요. 어린 나이에 되게 슬프고 외로웠습니다.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도 학교를 자주 옮기다 보니까 친구들을 사귀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동떨어진 기분이었죠.

가장 힘들었던 건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였어요. 부모님도 사이가 안 좋아서 결국 이혼을 하셨거든요. 그나마 제겐 음악이 힘든 마음을 풀어내는 유일한 탈출구였어요. 랩 가사도 쓰고 작곡도 하면서 거리 공연도 했습니다. 즐겁게 노래하며 공연했지만 내 마음은 언제나 슬펐습니다. 그런 내 마음이 관객들한테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기까지 하더군요. 음악을 하든 무엇을 하든 내 마음부터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은 게 컸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마음은 외로움이었어요. 그래서 사람한테 집착했고요. 스무 살 때 만나 2년 정도 사귄 여자 친구가 갑자기 제 곁을 떠난 후엔 우울증이 더 심해졌어요.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혼자 남겨졌다는 배신감에 우울해하다가 어느 순간 화가 폭발하곤 했어요. 희망이라곤 하나도 없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프랑스란 나라가 너무 싫었고, 한국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2005년에 한국에 왔는데 아버지께서 마음수련을 권유하셨습니다. 마음수련은 진짜 세상과 하나가 되는 공부라면서.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불교에 관심이 많아서 원래 너와 나의 구분은 없고 모두가 하나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아버지께서 너무 확실하게 말씀하시니까 많이 놀랐어요. 어릴 때 제가 별똥별을 보며 빌었던 소원이 모든 사람들이 부처가 되는 거였거든요. 그러면 서로 다르다고 놀리지 않고, 싸움도 없고, 차별도 없을 테니까요.

마음수련을 하며 너무나 이기적인 제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부끄러워 바닥에 엎드려 펑펑 울었죠. 사랑받지 못했다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사람들한테 화내고 미워하고…. 왜 고통스럽게 살 수밖에 없는지도 알게 됐어요. 나만 아는 좁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세상을 원망했으니 힘들 수밖에요. 이런 나를 진짜 버려야겠구나, 그 생각뿐이었어요. 그렇게 잘못된 나를 계속해서 버리는데 어느 순간 내 마음이 없어지고 의식이 확 커지면서 ‘와, 모두가 다 하나구나’ 마음으로 알게 되니까 너무나 신기했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도 함께 녹아내렸죠. 그러면서 알게 됐어요. 그동안 주위 사람들과 대화가 어려웠던 건 상대를 원망하면서 공격적으로 대했던 내 마음 때문이었구나! 그걸 알고 나니까 이젠 누구와도 대화가 잘돼요. 특히 어머니하고 편안해졌어요. 어머니가 그러세요. “기욤, 네가 참 행복해 보인다. 이제 네 인생의 꽃이 활짝 피는 시기인 거 같다”고요.

수련하면서 확실하게 안 것은 답은 내 안에 있다는 거예요. 내가 바뀌면 세상 전체가 바뀌는 이치를 알게 된 거죠. 세상은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있듯이, 잘못된 나를 버리면 세상은 같이 밝아지고 변화된다는 것도요.

저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왜 세상은 불공평할까. 부자들은 너무 잘사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 한 끼도 먹지 못해 굶어 죽을까. 모두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무리 제도, 사상이 좋아도 사람들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결국엔 자기 명예와 욕심과 가짐으로 하니까요. 근데 수련해 보니까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내가 없어야 긍정적으로 살 수 있고 세상이 평화로울 수 있었어요. 원수를 사랑해라, 남을 도우며 살아라 좋은 말들은 많이 하지만, 그런 건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비워 참마음으로 살아갈 때 저절로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원래 모든 일들은 남을 위한 일이었더라고요. 농사를 짓든 음악을 하든 그 무엇을 하든 간에. 하지만 인간이 어느 때부터인가 자기가 있어서 자기가 했다고 한 순간부터 불행해지고 다툼이 생긴 거란 것도 알게 됐죠. 결국 남을 위해 산다고 하는 것은 내가 없어져서 모든 것과 하나가 됐을 때 가능하더라고요. 그랬을 때라야 국가 간의 경계도 없고, 너와 나의 구분도 없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요. 사람들이 진짜 자기를 알고 의식이 바뀌어서 너나 구분 없이 평화롭게 살고, 모두가 하나 되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 그게 제가 꼭 하고 싶은 일입니다.

정리 & 사진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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