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 용복마을의 행복한 마을 만들기

성현옥
‘완주 문화의 집’ 운영자

나의 고향은 전북 완주군 경천면 용복마을이다. 천년 사찰 화암사 어귀에 위치한 국도 변 마을, 어린 시절 우리 마을은 집집마다 인삼과 감 농사를 지었고 인근 마을 중 가장 풍족하고 정이 넘치던 마을로 기억한다. 집집마다 피어 있는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쪽두리꽃들은 내 어린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그런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고 결혼도 했다. 그리고 문화 예술 분야 일을 하며 다시 찾은 내 고향. 그 사이 고향은 너무 달라져 있었다. 100여 가구였던 마을은 40가구로 줄어 있었고, 꽃이 소담하게 피어 있던 마당과 흙길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 많던 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꽃씨를 나누어주시던 마당 넓은 집 할머니가 그리워졌다. 옛날에는 부잣집이었음을 엿보게 하는 높은 담장들은 흉물이 되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친구들과 동네 언니 오빠, 삼촌들은 다 어디에…?”

이장직을 맡으셨던 친한 친구 아버님께 옛 이야기를 띄우며 “동네에 생기 넘치는 일 한번 해볼까요?” 하니 “이제 뭐 어떻게 해볼 수 있겠어, 다들 나이가 들어서…” 하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러다 2007년, 근무하던 문화의 집 협회의 공모 사업이 있었다. 부족하지만 마을 이야기를 담아 나이 든 아버지의 뒷모습 같은 골목에 꽃씨를 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어르신들께 작게라도 시작해 보자며 설득했고, 비슷한 사례로 성공을 거둔 다른 지역을 견학하신 어르신들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다.

그렇게 2007년 7월부터 5개월간의 ‘마을 꾸미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마을 구석구석 방치돼 있던 쓰레기를 치우고, 썩은 이끼가 붙은 담벼락도 깨끗이 털어냈다. 청소만 했는데도 마을은 환해지는 것 같았다. 어르신들과 교회 청년부의 도움으로 페인트도 칠하고 돌을 주워다 길가의 나무 화단도 둘러주고, 문화의 집 미술 강사들과 아이들, 동호회 회원들의 마음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높은 골목 담들에는 동화 속의 그림들이 그려졌다.

“아이들의 조잘거림과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라며 인근 교회 사모님은 요새는 아이와 함께 매일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이야기 나눈다고 하고, ‘우리가 뭘 하겠어?’ 하며 멀리서 바라보던 어르신들도 점차 다가오기 시작했다. 작업하는 이들에게 새참을 가져다주며 신나게 마을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옛날엔 여기 우물이 있었는디, 집집마다 물 길러 여기로 다 모였당께.” “우리 용복마을이 복이 들어오는 마을이여, 이름 안에 용이 누워 있다고도 하고….”

어르신들의 옛이야기가 길이 되어, 우물이 있던 그 자리엔 우물을 그리고, 오래된 방앗간엔 방아 찧는 토끼 간판이 걸렸다.

한 해가 지난 봄이었다. 국도 변 마을 회관 입구에 꽃들이 만발했다.

“면에서 해주었어요?”라고 묻자 “아녀, 언제 했는가 모르게 의사할머니가 만들었어” 하는 말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마을 회관 앞집에 홀로 사시는 팔순 넘으신 할머니의 솜씨였다.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농사도 안 징게 살살 만들었지….”

차들이 쌩쌩 달리는 국도 도로가에 꽃밭을 만들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노구를 이끄시며 왔다 갔다 하셨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처음 심었던 꽃들이 다 지자 할머니는 다시 가을에 피는 과꽃나무를 심으셨다. 그런데 가을이 되자 국도 변을 오가는 차량들, 차를 멈추고 꽃 따가는 손놀림이 신나셨다. ‘아니, 저걸 할머니가 어떻게 심으신 건데….’ 나는 속상했지만 할머니는 오히려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이외에도 흐뭇했던 일은 우리 동네 수호신 같은 정자나무 이야기다. 아무리 더운 날도 그 나무 아래에 누우면 세상 부러울 게 없던 정자나무 이파리가 말라가며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모두 속상한 마음만 있을 뿐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이니 함부로 손댈 수도 없고 나무를 덮고 있는 콘크리트를 보아도 한두 푼의 예산으로는 어찌 해볼 여력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마을 순회를 하던 군수님이, 이쁜 마을 만들겠다고 더운 날 땀 흘리는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요청하는 나무 살리기에 감탄해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셨다.

마을의 역사이자 상징인 정자나무가 살아나서일까. 그 후 우리 마을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가던 사람들이 예쁜 마을이라며 사진 찍어 블로그에 올리면서 점차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생겼고, 마을 분들은 ‘우리 집을 찍어갔다’며 굉장히 뿌듯해하셨다. 어느 날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2위에 있는 걸 보고 나 역시 놀란 적이 있다.

“컴퓨터에도 나오고 유명해졌는디 어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댜. 옛날에는 쳐다도 안 보던 우리 집구석도 이쁘다고 항게 자꾸 청소도 하고… 일은 많아졌어도 좋당게.”

2008년 용복마을은 농림부 ‘예쁜 마을 콘테스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잘 그린 그림이어서가 아니고 동네 주민들의 애정이 담긴 구석구석 이야기가 좋았다고 한다.

2009년에는 완주군에서 지원한 ‘참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선정되어 마을 공동 사업장인 두부 공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집집마다 콩 농사를 하고 남은 콩을 활용해 마을 공동 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동네 두부 참 맛있다고 난리여…’ 자랑을 늘어놓는 어머님들의 행복을 어찌 말로 표현할까.

요새 어르신들은 컴퓨터를 배우러 다닌다. “마을 일 하다 본께 배워야겠더라고… 그 참에 손자들이랑 메일도 주고받고, 새끼 난 강아지 사진 찍어서 보내주면 난리여, 좋아서….”

복이 들어오는 곳, 용복마을. 한동안 잃었던 제 이름을 찾은 걸까. 어릴 적 기억을 풍요롭게 해주던 나의 고향, 언제까지나 어르신들의 행복한 삶의 터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