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이프’지에 근무하면서 잡지에 실릴 사진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월터는 상당히 소심한 인물입니다. 같은 회사의 좋아하는 여직원 ‘셰릴’에게 직접 고백은커녕 인터넷 만남 사이트를 통해 ‘윙크’를 보내는 것으로 호감을 표시하려고 하는데 그마저도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그런 인물이니까요. 게다가 어머니의 부양비를 비롯해서 동생까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에 하루하루 꼼꼼하게 가계부를 작성해야 함은 물론, 다른 ‘특별한 일’을 할 여유도, 엄두도 못 내는 인물입니다.

이처럼 무엇 하나 특별한 점, 특별한 경험도 없고,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월터에게 유일한 특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는 상상의 나래 속에서는 영웅이 되기도 하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로맨틱한 고백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영화는 이런 월터의 상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특히 직장 상사와 벌이는 상상 속의 결투는 마치 슈퍼 히어로물을 보는 것처럼 박진감이 넘칩니다.

그렇게 오직 상상으로만 위로받던 월터에게 더 이상 상상만 하고 있을 수 없는 현실 속의 위기가 닥칩니다. ‘라이프’지의 갑작스런 폐간 결정! 회사는 급변의 시기를 맞게 되고,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이 분실되면서 월터는 ‘구조조정 1순위’가 되어버립니다.

월터는 결국 분실된 그 사진을 찾기 위해 작가를 직접 찾아 나서게 되고, 상상으로 시작해서 그 상상이 조금씩 현실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평범했던 한 남자의 성장기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 성장기는 월터가 갖고 다니던 물건을 통해 형상화됩니다.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된 날 누이동생으로부터 받았던 ‘생일 케이크’에서 시작된 특별한 경험은 역시 누이동생에게 받은 ‘고무 인형’을 거쳐 아이슬란드에서 ‘고무 인형’과 교환한 ‘스케이트보드’로 넘어가 음식점 ‘파파존스’를 지나 스케이트보드를 셰릴의 아들에게 건네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꼭 닮아 있었던 그 며칠간의 행보는 소심했던 월터를 누군가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남자로 변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행보 가운데는 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들기, 바다에서 상어와 싸우기 등이 포함되어 있지요. 이런 월터의 경험들은, 하루하루 정해진 틀에 맞춰 살아가느라 다른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 속의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며, 유쾌한 웃음을 선사합니다.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그리고 히말라야까지 향했던 월터의 뜻밖의 여정은 아름다운 영상으로도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현장에 직접 가서 촬영했다는 로케이션 선정 또한 아주 인상적이라, 월터처럼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아질 정도이지요. 게다가 장면 장면에 어우러지는 음악 역시 좋았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와 <매트릭스> 패러디 역시 재미를 더해줍니다.

감독이자 주인공 월터 역을 맡은 벤 스틸러는 기분 좋은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들을 통해 ‘한 번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보는 것이 어떨까?’라고 말합니다.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보라’고 권유하면서도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당신이 가장 아름답다’고도 말하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이 유쾌한 웃음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기분 좋은 여운까지 남겨줬던 영화. 새해 첫 영화로 딱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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