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 자원봉사 성우 이진화씨

취재, 사진 김혜진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드려요. 시각장애인은 TV 소리를 들을 뿐, 어디에서 누구와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잖아요. 저 사람들이 공원을 거닐고 있구나, 알 수 있도록 설명해 드려요.”

이진화씨는 일주일에 3~4번 서울 노원구에 있는 시각장애인복지관으로 출근한다. 화면 해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녹음 스튜디오에 영화 <전우치>의 장면들이 펼쳐지자, 등장인물이 어디로 걸어가는지,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장면 장면마다 성우 이진화씨의 내레이션도 곁들여진다.

1977년 TBC 성우 공채 9기로 입사한 이진화(54)씨는 특이한 음색을 잘 살린 폭넓은 목소리 연기로 <개구쟁이 스머프>의 허영이, 욕심이 역을 비롯해 <토이 스토리>의 포테이토 부인 역, <MBC 주말의 명화> <동물의 왕국> 등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다.

그녀가 봉사를 결심하게 된 건 2년 전. 우연히 휴먼 다큐를 보게 되면서였다.

“휴먼 다큐를 보면 우리가 보살펴야 할 것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나누며 살잖아요. 특히 제 맘에 불을 지핀 건 호주의 닉 부이치치에 관한 다큐를 보면서였어요. 머리와 몸통만 있는 장애인이지만 너무나 사랑스런 표정을 짓고 열심히 사는 걸 보면서 나는 그 사람보다 건강한 육체를 갖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지,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그 첫 시작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소리샘 방송이었다. 집에서 전화 사서함으로 전화를 걸어 책을 읽고 녹음 저장 버튼을 누르면 되는 것으로, 한 달에 2번 좋아하는 소설을 골라서 낭독했다. 그러다가 방송국 PD의 소개로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미디어접근센터와도 인연이 닿았다. 미디어접근센터는 2000년부터 국내에서 유일하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 방송을 만들어 온 기관으로 <전원일기>를 비롯해 현재까지 1만여 편의 프로그램을 제작해왔다.

“가족들하고 같이 TV를 봐도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는데 화면 해설이 있어서 좋았다. 더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한 시각장애인의 소감처럼, 그동안 TV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시각장애인들에게 화면 해설 방송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였다.

이진화씨는 현재 KBS 드라마 <우리 집 여자들>, KBS <현장르포_동행>, EBS <한국영화시리즈> 등의 해설을 맡고 있다. “녹음하기 전에 눈을 감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힘드실까….” 때문에 미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 느낌을 어떻게 전달할지, 어떻게 해야 듣는 분들이 편안할지를 늘 고민한다는 이진화씨.

근황을 묻는 후배들에게 본업보다 “시각장애인 자막 해설 방송을 하고 있다”는 말을 먼저 하게 된다는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로 상상의 세계를 펼쳐드린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

그 작은 나눔이 주는 행복은 내면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늘 남들과 비교하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고, 내게 주어진 조건에 대해 감사하게 된 것.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말처럼 한 번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된 것도 봉사를 통해 배운 지혜였다. 그녀는 사회를 위해 미약하게나마 무언가를 한다는 기쁨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각장애인들이 제 목소리를 듣고 행복해하는 걸 상상만 해도 너무 좋아요. 나중엔 괜찮은 드라마를 각색해서 보이는 라디오 드라마도 해보고 싶어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하면서 예쁜 할머니로 나이 들고 싶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