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깊은 바다를 품은 사람들

사진, 글 이용택 SBS-TV <최후의 툰드라> 촬영감독

모두 잠든 밤에 촬영한 오로라의 장관.

시베리아 북서쪽 야말반도. ‘야말’은 세상의 끝을 뜻한다. 툰드라의 유일한 순록 유목민 네네츠족은 겨울에는 남쪽으로, 여름에는 북쪽으로 7천여 마리의 순록과 3백여 대의 썰매를 끌고 1천㎞의 대장정에 나선다. 수천 년간 순록과 함께 살아온 툰드라 원주민의 순수한 삶은 SBS 특집 다큐 <최후의 툰드라>로 방영돼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촬영 틈틈이 스틸사진에 담은 툰드라의 삶.

툰드라 사람들이 입고, 먹고, 집을 지을 때 쓰는 것도 순록이다. 소처럼 순하디순한 순록은 그들의 삶을 지켜준 가족이다. 원주민들은 특별한 표시를 하지 않아도 자기 순록을 다 알아본다. 네네츠족의 거대한 이동은 순록이 먹을, 겨울엔 눈 밑의 이끼를, 여름엔 새순을 찾기 위해서다. 조상 때부터 이어져온 유목 생활이라 지도가 없어도 별을 보면 몇km 된 지점인지 정확히 안다. 특별한 지휘 체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수천km를 조직적으로 움직여 이동하는 것이 놀라웠다.

+ 1년 중 7개월이 겨울인 툰드라의 겨울은 보통 영하 40~60도가 예사다. 여기서 어떻게 살까 싶었다. 그러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영혼을 존중하고, 대자연을 경외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툰드라는 척박한 땅이 아니라, 풍요의 땅이다.

+ 이들은 12시간 자고 12시간 일을 한다. 큰 천막집인 ‘춤(chum)’을 짓고 같이 다니지만 남의 집 사생활엔 일절 관여를 안 한다. 가족 구성원의 일은 뚜렷이 구분되어 아빠는 순록을 키우고, 엄마는 밥 짓기 등 ‘춤’을 관리한다.

순록 가죽의 딱딱한 부분을 다듬는 네네츠족 여성. 순록의 힘줄을 꼬아 실로 만들어 바느질하며 옷을 짓는다.

+ 툰드라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집안일을 도와준다. 자신의 몸집보다 몇 배는 큰 순록 썰매를 몰고, 작은 ‘춤’을 뚝딱 지어낼 줄 알며 도시의 아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독립성과 의젓함을 지녔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살아가는 법을 자연 속에서 스스로 배우는 강인한 아이들.

+ 아이들은 무척 해맑다. 영혼이 아주 맑고 투명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아이들을 매우 존중한다. 스스로 할 수 있게끔 부모들이 이래라 저래라 지적과 간섭을 안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할 일을 찾아낸다.

이곳은 원주민이 입는 전통 의상이 아니면 얼어 죽을 만큼 춥다. 말리차라 부르는 순록 털가죽 옷을 입는다. 정말 따듯하다.

+ 왜 촬영 팀을 받아줬는지 네네츠족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는 “난 당신들이 외국인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라서 받아줬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잘사는지 묻지 않았다. ‘한국에는 호수가 몇 개 있는지’ ‘나무와 어떤 물고기가 있는지’ 등 자연에 대해 물었다.

 

+ 네네츠족에겐 삶의 원칙이 있다. 어른과 아이를 똑같이 대한다는 것. 부모는 아이에게 지시를 하지 않고 큰소리로 야단을 치지 않는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원수여도 조난당하면 구조해주고, 누구든지 집에 오면 이유를 묻지 않고 사흘간 먹여주고 재워준다. 항상 필요한 만큼, 먹을 만큼만 사냥한다.

+ 순록이 이동하기 전 간단한 식사를 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이 불을 때고 준비를 한다.

이용택 촬영감독은 1973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나 신구대학을 졸업하고, <SBS 모닝와이드>를 시작으로 영화 <워낭소리> <세계 테마 기행>(EBS) <현장르포 제3지대>(KBS) <러브 인 아시아>(KBS) <최후의 툰드라>(SBS) 등의 프로그램을 촬영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