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무모해 보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60대에 시작한 컴퓨터로 고향 알리기

노삼래 70세. 농부, ‘고향을 지키는 농부(hatfarmer.com)’ 운영자

50대 후반, 나는 나의 고향, 충남 보령시 미산면으로 귀향을 했다. 목수일, 농사일로는 자식들 키우기가 어려워 46세에 상경해 경비원부터 건어물 장사 등 아내와 맞벌이를 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았다. 그러다 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걱정돼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컴퓨터로 고향을 알리고 지키는 농부’라는 도전 아닌 도전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는 막내딸이 적적함도 달랠 겸 컴퓨터를 배워보라고 권유했다. 이 나이에 무슨 컴퓨터냐 싶어서 거절하다가, 하도 권유를 하니 배우게 됐는데 이게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만 원 주고 컴퓨터 책을 사서 독학을 시작했다. 막히는 것이 있으면 새벽에도 딸들한테 전화를 해가며 배웠다. 날도 많이 샜다. 타자를 배우려고 손가락 두 개로 두드리는 독수리타법으로 수십 만 장의 문서를 썼다. 그렇게 하니 타자 실력이 많이 늘어서, 독수리타법으로도 딸아이들과 인터넷 대화창에서 충분히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컴퓨터를 이용해 우리 고향을 알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욕심만 버리면 자연에서 사는 맛이 너무 행복한데, 젊은 사람들은 다 고향을 떠나려고만 하니 고향에 관한 홈페이지를 운영하면 조금이라도 고향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2001년 막내가 홈페이지를 만들어줘서, 홈페이지에 마을 이야기, 농사일지, 경작일지 등 꼭 필요한 정보,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이러저러한 경험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곳 찾아주신 여러분 반갑고 감사합니다. 혹시 오타가 나서 글이 틀렸다 해도 흉보지 마시고 많이 배우신 여러분이 정정해서 감으로 읽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58세에 독학으로 ‘컴’을 배운 독수리타법으로 쓰는 글이 오죽하겠습니까.ㅎㅎ’

배운 게 많지 않다 보니 맞춤법도 틀리고 그랬지만, 그럴지라도 자신감 있게 썼다. 그런데 문제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것이었다. 홈페이지만 만들면 알아서 찾아오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어렵사리 시작했는데 포기하기가 너무 아까워, 어떻게 알리면 좋을까 고민하다 다음 해부터 본격적인 홍보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 고향 보령시에는 여름에 대천해수욕장을 개방하는데, 1주일에 한 번 해수욕장을 돌며 명함을 주었다.

“우리 보령에 이러한 곳이 있어요. 와 보세요. 제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 지역과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보령시 해수욕장에 왔는데 만족하느냐, 불만은 없느냐’ 등 간단한 취재를 해서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시민들의 불만거리는 보령시에 시정을 요구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홍보하면서 나눠준 명함만 올해로 10,000여 장이 넘는다. 그리고 평소에는 홈페이지 주소를 담아 전국의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며 수없이 글을 썼다. 그러자 점점 소문이 나면서 방문자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홈페이지나 블로그라는 것이 자기 하기 나름이구나를 많이 느낀다.

홈페이지를 하려다 보니 사진도 찍게 되었고, 요즘에는 동영상도 배웠다. 특히 출향인들이 제일 많이 보는데, ‘홈페이지에서 부모님 얼굴을 뵈니까 너무 좋습니다’ ‘우리 고향 멋집니다’ 등의 응원 댓글들, 타 지역 사람들의 ‘보령에 그런 축제가 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등등의 댓글을 읽을 때면 가장 뿌듯하다. 이런 활동들이 알려지면서 방송 출연도 많이 했다. 그리고 지역 사람들이 70이 다 된 노인네에게, 어떻게 홈페이지를 운영하면 좋으냐고 자문을 구하곤 할 때면 또 뿌듯해지곤 한다.

그렇게 13년째 고향을 지키는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홈페이지 1개, 네이버 블로그 3개 등 총 9개의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내 인생 최고의 도전이라면 컴퓨터를 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날려도 보고, 실패도 하고, 수없이 연습하고 고생하면서 배운 거라 컴퓨터에 관해서는 잘 까먹지를 않는다. 용어 이런 것은 까먹어도 컴퓨터 앞에서 몸으로 배운 것은 안 잊혀진다. 늘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는 우리 자식들에게도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 못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뭐라도 지금이라도 시작해보면 좋겠다. 무엇을 하든 모든 것은 본인 마음에 달려 있다. 행복을 거저 주는 일은 세상에 없다.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나만 있을 뿐이다. 후회하지 말고 즐겁게 행복한 날들을 만들면 좋겠다.

앤서니 브라운 작.

<고릴라 가족> 2012

‘고릴라 작가’라 불릴 정도로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에는 침팬지, 고릴라 등 다양한 유인원이 등장한다. 그는 유인원이 종류별로 다양하고 다르듯 사람도 나이, 성별, 인종이 다르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모두 ‘하나’라 말하고 있다.

내 인생의 무(모)한 도전들

이중철 대학생. 23세. 경남 거창군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종종 엉뚱하게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곤 했다. 그 시절 나의 우상이었던 119 아저씨들이 고층 빌딩에서 사람 구하는 모습을 따라 한다고 절벽에다 노끈만 맨 채 내려오다 떨어진 일 등등, 나의 무모한 도전은 필연적으로 많은 사고들을 야기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우리 집은 과수원을 하고 있는데, 요즘처럼 기계가 발달치 못했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들짐승들을 쫓기 위해 일일이 몸을 움직여가며 쫓아야 했다. 요즘의 아이들처럼 그때의 나도 컴퓨터 게임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자꾸 어머니께서 밭에 있는 까치 좀 쫓으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게임을 방해하는 까치들에게 악한 마음을 먹었지만, 산으로 들로 쫓아다니며 상대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그러다 기발하게 폭죽을 이용해서 쫓아버리자 생각했다. 우레와 같은 소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폭죽 한 다발을 놓고 불을 붙이면 되겠다 싶어서 그렇게 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마치 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빵빵~ 터지는 것이었다. 당연히 까치는 멀리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서둘러 뒤처리를 하고 다시 게임을 하러 집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남아 있던 불씨가 바람에 번지면서 조립식 집이 홀라당 타버리고 만 것이다. 그땐 정말 죽고 싶었다(요즘 말로 멘붕 쓰리콤보였다).

이 밖에도 정말 사연들이 많다. 한번 해봐야겠다 싶으면 무모하게 도전을 해대는 통에 부모님 속도 많이 썩혔다. 하지만 나의 이런 호기심과 도전 정신이 빛을 발한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중학교 3학년 때 ‘전국 이야기 말하기 대회’에 나가게 된 것이다. 나는 나의 온갖 사연들로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다. 그리고 그 결과 경남 전체에서 1등을 했다.

어릴 때는 엉뚱한 사고를 빵빵 터트리곤 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의 무모한 도전 정신은 진짜 큰일을 이뤄내기도 했다. 역시 중3 때, 우연히 유도를 접하게 됐고, 중학교 졸업 전에 유도 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따고 싶은 꿈을 갖게 되었다. 이를 악물고 연습한 끝에 3개월 만에 전국체전 경남 지역 선수 선발전에서 은메달을 땄고, 그 후 3개월 뒤에 나간 유도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땄다. 모두가 깜짝 놀랄 성과였고, 그때 나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따라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어 재수할 때, 나의 무모한 도전은 정점을 찍었다. 무식한 도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수리 영역을 만점 맞고 싶어서, 중학교 1학년 교과서부터 새롭게 시작했다. 하루에 17시간씩 공부한 끝에 한 주에 한 학년씩의 분량을 끝낼 수 있었다. 봄이 되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자, 머리와 눈썹을 밀고 혈서를 썼다. 밥 먹으러 가는 시간도 아까워 라면을 2박스 사서 독서실에서 아침 점심만 먹으며 한 달을 버텼다. 잠도 독서실 바닥에서 자고, 심할 땐 27시간을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공부한 적도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6월을 지나 9월 모의고사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이 다른 누가 보기에 강박관념이었든, 어쨌든 상관없다. 목표가 있고 꿈이 있다면, 입 다물고 묵묵히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그때 그 시절 나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그 모든 순간순간들이 나에게는 얼마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이 되었음에 감사한다. 그때의 무모했던 내가 오늘의 멋진(?) 내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으니 말이다.

JUST DO IT!! 그것이 무모한 도전이 되었든, 무한 도전이 되었든, 나는 나의 목표를 향해 오늘도 ‘무척’ 열심히, 그리고 무모하게 달려갈 것이다.

에르베 튈레 작.

<책 읽기>

아크릴릭+잉크 / 2010

60일간에 걸친 미국 대륙 6,000km 자전거 횡단기

이동진 26세. 경희대 건축공학과 3학년

학창 시절 부끄러워서 질문도, 발표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이런 자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2008년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도전한 것이 마라톤이다. 3시간 59분 기록으로 완주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그 후 내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울진에서 독도까지 240km 릴레이 수영 횡단, 히말라야 곤도고로라 5,800m 등정, 브라질 아마존에서의 222km 정글 마라톤 대회 참가…. 많은 도전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11년 여름, 뉴욕에서 LA까지 자전거로 6,000km 미국 대륙을 횡단했던 일이다.

그해 여름, 나는 모 항공사에서 주최하는 대학생들의 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서 1등을 하면서 미국행 왕복 티켓을 받게 되었다. 24살의 뜨거운 젊은 날, ‘타는 듯한 삶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면서 나는 또 다른 도전을 계획했다. ‘도전이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을 기꺼이 해내는 것이다’라는 신념대로 미국 대륙 자전거 횡단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많은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내겐 세 가지 면이 부족했다. 100만 원도 되지 않는 자금, 부족한 영어 실력, 아는 사람이라고는 LA 근처에 사는 지인 두 분 외에는 전혀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런 불리한 조건들은 오히려 도전하기에 충분한 명분과 이유가 되어주었다. 2011년 10월 22일. 미국 지도 한 장과 스마트폰의 GPS만을 가지고 무작정 서쪽으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60일’이란 기간 동안 지도상에 매일매일 도착해야만 하는 소도시를 정해서 ‘최소한 이곳까지는 매일 달리자’며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지도상의 일직선과 달리, 수십 개가 넘는 오르막 내리막길과 구불구불 산등성이를 타고 가야 하는 길이 내 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결국 길은 길일 뿐이었고, 계속 달리다 보면 북미 대륙 끝에 있는 LA가 나오는 것은 절대적인 사실이었다. 자전거 횡단을 할수록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는 길이 있다’는 말이 무수히 떠올랐다. 하루하루 갈수록 피로는 쌓여갔지만, 자신감과 확신은 더 가득 차기 시작했다.

‘나에겐 돈이 부족하니까, 미국인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먹을 것을 얻고, 잠자리를 구해보자.’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절박함과 해내고야 말겠다는 신념이 통했던 것일까. 첫날은 현지인들에게 묻고 물어서 2시간 만에 교회 목사님 댁에서 여장을 풀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요령이 생기다 보니, 단 하루도 밖에서 텐트를 치지 않고, 60일 동안 40여 가구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인디언 집에서도 자보고, 60억짜리 집에서도 자보고, 홈리스들과 함께 자기도 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이 300여 명. 돈과 계획이 없었기에 더 완벽한 여행이었다. 만났던 분들 중에는 헤어지기 싫어 눈물을 훔치는 분도, 돈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시는 분도, 파티에 초대해주시는 분도, 다른 지역에 사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주시는 분도 계셨다. 대륙 횡단 여정을 통해 진정한 정이 무엇인지, 인간의 대가 없는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횡단 중에 캠핑카, 트레일러, 트럭, 4륜 오토바이, 요트, 경비행기 등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직선 도로의 11개 주를 지나면서 한국에는 없는 시간 경계선을 3번이나 넘었고, 눈과 비를 맞아가면서 달리는 날도 있었다. 결국 60일 만에 무사히 LA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동안 숙식에 쓴 돈은 3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싶었기에,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통해서 삶의 기회와 가능성을 찾아내고자 했고, 결국 그런 무모함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나는 못 해’란 생각에서, 생각한 모든 것을 바로 실행하는 자신감과 용기가 생긴 것이다.

앞으로도 도전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도전은, 인생을 무한하게 그리고 상상하지 못했던 가능성의 모습으로 바꿔줄 것이라 확신한다.

마르크 부타방 작.

<무당벌레 새집 찾기>

디지털 / 2011

나도 ‘아티스트이다’ 展

작 가 들  경 계 를  허 물 다

2013년 8월호 ‘에세이 앤 갤러리’의 작품은 앤서니 브라운, 세르주 블로크, 에르베 튈레, 나탈리 레테 등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들의 그림입니다. 현재 이 작가들의 그림책 원화들이 <나도 ‘아티스트’이다> 전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각 작가들마다 ‘경계 허물기’라는 주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줍니다. 작가와 감상자와의 경계, 다른 문화와 종교라는 경계, 인종과 더 나아가서는 인간과 동물 간의 경계 등 그들의 세계를 엿보며 그들의 창작 과정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앤서니 브라운과 그의 동반자인 한나 바르톨린이 함께 작업한 2013년 신간 <꼬마곰과 프리다>의 원화도 공개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계 일러스트 거장들의 원화뿐 아니라, 그들의 작업하는 모습, 작품 제작에 사용되는 작가별 다양한 재료들 등 참여 아티스트의 실제 아뜰리에 모습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눈으로 보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실제로 만져보고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아이와 함께하면 좋을 다양한 무료 체험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나탈리 레테의 ‘꼴라쥬 조각놀이’ 세르주 블로크의 ‘빨간 실을 이용한 공간드로잉’ 크리스티앙 볼츠의 ‘애니메이션 만들기’ 에르베 튈레의 ‘12가지 감성놀이 책 읽기’ 등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전시 기간 5.1~8.21   장소 고양아람누리 갤러리누리(Tel. 031-901-4368)

자료 제공 (주)아트센터이다  www.artcenteri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