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사람들이 함께 차려내는 ‘내 인생의 밥상’ 이야기

엄마의 김치와 마음수련

신윤경 34세. 직장인. 경남 하동군 하동읍

하동에서 생활하는 딸에게 김해에 계시는 엄마가 김치를 담갔다며 보내주셨다. 택배를 통해 받아보니 냉장용 플라스틱 박스에 여러 개의 봉지, 봉지에 갖가지 김치를 담고, 일일이 어떤 김치인지 알아보기 쉽게 견출지 같은 것에 파김치, 새김치, 찌개용김치, 무우김치, 도라지무침 등등 밑반찬까지 종류도 다양하게 다 적었다.

제일 눈에 띄는 건 엄마의 편지. 근데 봉투가 너무 웃기다. 중학교 때쯤 영화 시리즈 편지 봉투를 잔뜩 샀었는데, 아직도 다 쓰지 못했던 걸 잘 찾아내 쓰셨다. 봉투에는 영화 ‘시월애’의 전지현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있고, 그 옆에 이렇게 쓰여 있다. ‘사랑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편지 내용도 예사롭지 않다.

내 사랑, 경아

그 무엇도 자유와 사랑이란다.

인생에서 하고자, 이루고자 했던 마음들 다 내려놓고

오직 자연에 순응하면서 우주의 마음으로 마음 없이

추위 속에서도 온몸을 다 내어주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나를 없애고 우주까지 없앤 속에서의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본단다.

생활 속에서의 수련을 하고자 노력은 하고 있다.

춥고 서글플 때도 있겠지? 나가 없이 살아가자.

외로울 때도 항상 나와 함께하고 있는 우주가 있지 않는가?

난 언제나 하나가 아니고 우주 전체요,

그 우주일 테니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그래, 진리로 우주로 살아라. 그곳은 오직 완성이잖아.

경아, 김치 솜씨가 없어서 맛은 없지만 개체와 전체가 하나인 모두인 너에게 보낸다.

먹어주었으면 좋겠어.

내일 시골 가야겠다. 할아버지 입원 중이시란다.

추위에 감기 조심하고 건강하게 지내주길 바란다. 사랑해.

… 엄마가

이미경 작.

<나 어릴 적에> 100×60cm

Ink pen on paper / 2009

눈물이 핑 돌기도 하면서, 왜 이렇게 웃긴지 모르겠다. 편지 내용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다. 엄마는 한창 마음수련 중이시다. 나의 소개로 수련을 시작하시고, 여리기만 하시던 엄마가 많이 달라지셨다. 떨어져 지내는 딸이 그리워서 많이 애태우셨는데, 요즘은 원래 모습, 소녀 같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게 느껴진다. 내 밥상에 택배 온 김치가 올라올 때마다 늘 함께하는 엄마에게 고맙고 감사하게 된다.

수능 날의 그 도시락

장하란 30세. 방송 진행자, 스피치 강사.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2002년 11월. 그해는 수능 한파가 찾아오지 않은, 따뜻했던 수능 날로 기억한다. 교문 앞까지 데려다 준 엄마는 나에게 책가방 두 개를 건넸고, 오른쪽 왼쪽 어깨에 각각 가방 한 개씩을 메고 난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그 가방 한 개에는 순전히 도시락과 각종 보온 통으로만 가득 차 있었으니…. 점심시간. 가뜩이나 긴장되어 잘 넘어가지도 않는 상황에서 나의 도시락으로 가득 찬 책가방에서는 정말 끝도 없이 무언가 계속 나왔고 친구들도 놀라면서도, 놀리는 듯 웃었다. 소풍 온 것도 아닌데 몇 단으로 된 도시락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각종 반찬들, 보온 통에는 따뜻한 물, 따뜻한 차, 국이 종류별로 들어 있고 심지어 국을 덜어 먹으라고 집에서 먹던 국그릇까지 가방에 넣어놓으셨다. 친구들과 나눠 먹어도 다 먹지도 못해 절반은 남기고 점심시간은 끝났다.

시험을 무사히 마친 후, 내가 시험 보러 갔지 밥 먹으러 갔냐고 엄마에게 한마디 할 작정을 하고 집에 갔는데 엄마는 집에 안 계셨고, 그동안 고생했으니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라는 문자 메시지 한 개만 보내오셨다. 엄마 말대로 오랜만에 후련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밤 10시경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밌게 잘 놀고 있니? … 내일 새벽 5시 반까지 택시 타고 00병원으로 올 수 있지?”

내가 수능 시험을 보던 10시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딸의 중요한 시험 전날 먼 곳으로 보내신 거였다. 나로서는 수능을 끝낸 그다음 날이 마지막 모습도 못 뵌 외할머니의 발인 날이었다.

장례식장에서 본 엄마는 어제 내 시험장 앞에서 책가방 두 개를 건네주던, 종류별로 도시락을 가득 채워줬던 강인한 우리 엄마가 아닌, 엄마를 잃고 슬퍼하는 딸의 모습이었다.

이미경 작.

<애련리 가게> 55×45cm

Acrylicink pen on paper / 2012

그때로부터 어느덧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후에도 계속 나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한 밥을 먹으며 20대를 보냈다.

엄마를 잃은 슬픔을 삼키며 딸을 위해 싸준 도시락을 먹은 그 딸은 원하는 학교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지금 이렇게 서른 살 어른이 되어 있다. 그리고 날 넘치게 사랑해주셨던 부모님의 품에서 나와, 곧 나의 가정을 꾸리기 위한 준비 중이다.

남들보다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제 막상 결혼이라는 과제 앞에 서니 고마운 것을 고마운 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기에 난 자신 있다. 그만큼의 사랑을 나도 내 새로운 가정에 쏟으리라. 그런 예쁜 모습으로 성장할 딸의 모습을 기대하며 그날도 엄마는 내 도시락을 싸고 계셨던 거겠지.

10년 전 그날, 죄다 남기고 왔던, 내가 좋아하는 파 송송 계란말이, 들기름에 들들 볶아 깨 솔솔 뿌려 있던 감자볶음, 햄이 들어 있는 김치볶음이 생각나는 겨울밤이다.

엄마가 계셨기에 행복했습니다

오지연 다음 요리 블로거.

blog.daum.net/01195077236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질 않고, 자식은 봉양하려고 하나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세월이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것이 어버이다.”

풍수지탄의 참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일흔 살에 늙으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색동저고리 입고 어린이처럼 기었다는 반의지희(斑衣之戱), 그럴 수만 있다면 백 번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이를 즐겁게 여겨주실 부모님이 안 계시니…. 시아버님께서는 20년 전에 돌아가셨고 친정아버님도 10년 전에 떠나신 지금, 시어머님만 생존해 계신다. 전화를 드려도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음식을 만들 때면 올해 위암으로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외할머니의 손맛을 물려받으셨던 엄마의 손은 요술 손이었다. 집 앞 채마밭에서 깻잎을 따다 계란 부침 안에 넣고 둘둘 말아 향긋한 맛을 내시는 센스는 기본이고, 시금치 물, 쑥물, 오미자 물 등을 내어 음식에 물을 들이곤 했다. 고추장, 된장도 직접 담그시고, 된장 속에 묵은지나 알타리무를 넣어서 곰삭혀 놓은 쩜장(충청도 말)으로 밥을 비벼 먹으면 너무나 맛있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김장용 채소를 심기 위해 채마밭 늙은 오이 넝쿨을 걷어내고 노각(늙어서 빛이 누렇게 된 오이)을 따다 무침을 만들고 싸리문 호박 넝쿨에 매달린 호박으론 조림을 만들어 백중 음식으로 차려내셨다. 김장철이면, 커다란 단지에 무, 배, 쪽파, 고추 등을 넣고 적당히 소금물로 간을 하여 시간이 지나면 사이다 맛이 나는 동치미를 만들어주었다. 동네 잔칫날이면 어김없이 과방엔 울 엄마가 치프(chief)가 되었고, 형형색색 여러 가지 음식들을 담아낸 모습이 너무 고와 손을 대기 아까웠었다.

내가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며 떡, 화전, 게장, 약식 등을 바리바리 싸오시곤 했다. 그런데도 “막상 풀어놓으니 먹을 게 없네” 하셨던 엄마.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위해 하늘이 준 축복”이라 여기셨던 엄마. 매일매일 블로그에 요리를 올리고, 우연한 계기로 다문화가정 엄마들과 아이들에게 한국 음식을 가르쳐온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엄마의 손맛을 따라가지는 못하겠다.

이미경 작.

<붕어빵 가게> 55×55cm

Ink pen on paper / 2010

얼마 전 엄마가 떠나시고 49재 탈상을 마친 후 처음 맞는 친정엄마의 음력 생신날이 왔다. 엄마 떠나신 후에도 한동안은 습관처럼 매일 집으로,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곤 했었는데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생일이 되어서야 이 세상에 아니 계심을 실감하게 된다. 세상의 딸들은 여리나 세상의 엄마라는 존재는 참으로 숭고하고 위대하다.

엄마와 친정엄마! 결혼하여 딸을 키워 본 후에야 그 엄마보다도 더 애틋한 것이 친정엄마였음을, 그리고 이제 그 친정엄마가 안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니, 마음속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또 훔친다. 지금껏 내가 행복한 것은 우리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 험한 세상을 야무지고 똑똑하게 살아가도록 내 딸을 훈육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제 이 땅에 남겨진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거라곤 살아생전에 즐겨 드시던 음식들을 기억해내 생신상을 차리는 것뿐이다. 돌아가시고 나서 첫 번째 맞이하는 생신은 살아계실 때처럼 차려 드리는 게 도리라 한다. 눈물과 아쉬움으로 정성껏 만든 친정엄마 생신상을 바라보면서 정작 생전에는 좋아하는 음식 한번 마음껏 드시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을 별처럼 헤아려 본다.

같이 먹는 밥이 진정한 ‘집밥’

박인 27세. 함께 먹는 밥,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 ‘집밥’ 대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하루를 보내고 허기진 배를 간단한 인스턴트로 달래고 나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아, 집밥 먹고 싶다.”

사실 나는 가족과 둘러앉아 제대로 집밥을 먹어본 적이 없다. 부모님이 인도에서 사업을 하셔서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살았다. 이사도 자주 다니고 하다 보니 혼자 밥 먹는 일도 많았다. 영화 ‘카모메 식당’이나 ‘심야식당’에 보면 묵묵히 음식을 만들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먹는 모습들이 나온다. 그런 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따듯한 집밥을 먹고 싶다는 막연한 그리움 같은 걸 품고 있었던 것 같다.

2012년, 3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고민하며 한동안 백수로 있을 때였다. 혼자 집에 누워 있다 보니 왠지 우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냥 오가며 인사 정도 하고 지내던 이웃집 할머니께서 카레를 가지고 오셨다.

“젊은 처자가 혼자 고생이 많네. 카레를 많이 해서 조금 갖고 왔는데 한번 먹어봐” 하시는데, 어 이건 뭐지? 처음 받아보는 이웃의 친절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조금이라 하셨지만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할머니 마음을 생각하니 남기기는 아깝고, 어떡할까 고민하다 페이스북에 ‘카레가 있는데 같이 드실래요?’ 하고 카레 사진과 함께 올렸다. 뜻밖에도 얼굴은 모르지만 인터넷 친구였던 사람들의 연락이 왔다. 그래서 카레를 싸들고 가서 나누어 먹었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다 보니, 이게 정말 집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경험이 너무 좋아서, 이웃집 할머니께 음식을 부탁드리고 사람들과 함께 먹는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예 함께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정을 쌓는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 <집밥>(www.zipbob.net) 프로젝트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다.

함께 ‘집밥’ 먹고 싶으신 분들 모여라~!!! 모이는 주제, 시간, 장소를 공지해서 인터넷에 올렸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오셨다. 17살 고등학생부터 50살 아주머니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집안에 화를 당해서 사람들에게 위안을 받고 싶어서 신청하신 분, 남편이 실직했는데 용기를 얻고 싶어서 오신 분. 그런 분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밥을 먹으며 고민을 나눴다.

이미경 작.

<밤나무골 가게> 180×120cm

Acrylicink pen on paper / 2012

“모르는 사람과 밥을 먹는다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여길 와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용기를 얻었고 위안을 얻었다.” “너무 외로웠는데 여기 와서 참 따듯해졌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먹는 따듯한 밥상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솔직히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에 목말라 있던 내 콤플렉스도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먹는 밥이 집밥이 아니라, 같이 먹는 밥이 집밥이구나,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나누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밥벌이’하느라 힘든데 ‘같이 밥 먹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과 모임을 만들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일단 한번 같이 드셔보세요. 그럼 아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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