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 듣기가 어디 쉬운가요. 상대방이 말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생각은 딴 나라(딴 세상)로 가버리기 일쑤인 걸요. 사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우리네 모습을 보면, 잘 듣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이청득심(以廳得心), 귀 기울여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처럼, 잘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비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 지혜를 모아보았습니다.
– 편집자 주
듣지 못하는 것은 사람과 멀어진다. – 헬렌 켈러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이다. – 레베카 폴즈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 칭기즈칸
–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장민숙
“힘들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주위 사람이었어요. 내가 힘들다고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조용히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나에게 말하라고 다그치지도 않았어요. 그냥 조용히 내 옆에 있어준 사람들 덕분에 힘을 냈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존재 자체로 위로가 돼요. 고통을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거예요.
누구나 누구에게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말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사람이 없어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뭘 하라고 시키는 사람만 있고 뭘 하고 싶은지 들어주는 사람이 없죠. 사상이 뭔지 얘기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사람이 없어요. 난 사실 그런 역할을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들어주는 역할, 옆에 있어주는 역할이요.”
– 김제동. <당신, 이제 행복해도 됩니다>
(시드페이퍼) 중에서
– 올리버 웬들 홈스
– 노만 아우구스틴
도전자를 상담원과 의뢰인으로, 다시 상담원을 친절, 불친절한 상담원으로 나누어 대화하게 하는 것. 결과는 흥미로웠다. “그게 고민이라는 거예요?” 의뢰인들은 불친절한 상담원들 앞에서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잘 들어주는 친절한 상담원과의 대화에서는 마구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미션이라는 걸 모두가 알았지만, 그러한 간단한 장치 앞에서도 인간은 속수무책이라는 것. 그게 경청의 힘이라고 방송은 결론을 내린다.
데일 카네기는 ‘절대로 사람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했다. 이긴다 해도, 진 상대는 자존심에 상처받고, 그 의견은 바꾸지 않을 것이기에. 그래서 논쟁을 피하고, 대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말한다.
들어주기는 대인 관계에 있어 정말 중요하다.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정말 온 힘을 다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반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내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어도, 결국 내 얘기를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선생님들은 나의 필터링되지 않은 온갖 고민과 잡념들을 판단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셨다. 적재적소에 터져 나오는 선생님의 “맞아” “정말 그래”라는 말씀이 그렇게 맛깔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한 후 나설 때면, 나는 온전히 이해받았다는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고민 자체는 해결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내가 말한 것을 누군가가 열심히 들어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 김영서. 22세.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아내의 말을 다정하게 들어주는 남편 한번 되어볼랍니다!
부부간의 다툼은 대부분 사소한 일이나 싸울 일도 아닌 일상의 대화에서 시작하지요.
부끄러운 제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루는 아내가 친구 부부가 해외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사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그 집 아이들이 외국 문화를 쉽게 접하며 사는 것도 좋아 보인다고 하더군요.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가 얼마나 가고 싶기에 저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과 가고 싶어도 갈 시간도 돈도 부족한 제 현실에 슬슬 한쪽이 꼬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아내에게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아 실천하지도 못할 말들을 내뱉습니다. “우리도 해외여행 가자! 가면 되지!” 하구요. 하지만 아내는 현실적이었습니다. 돈도 없고 휴가도 못 낼 거면서 왜 그런 말들을 하느냐고 핀잔만 돌아왔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저는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죠. 아내도 누가 해외여행 가고 싶어 그런 거냐고 화를 냈고 부부 싸움이 돼 버렸습니다.
아내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 친구 사는 모습이 부럽다고 얘기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게 그거 아니야?” “가고 싶은데 못 가서 짜증 내는 거 아니냐?”며 화를 냈습니다. 전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저의 무능력을 원망하는 것 같아 화가 났습니다.
뒤에 아내가 “뭘 해달라는 게 아니잖아! 그냥 들어줄 수 없어?” 하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했습니다. 아내가 바라는 건 그저 자기 얘기에 동조해 달라는 것임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냥 “우와! 걔들 참 좋겠다. 부럽다 그치?” 하면서 호응해 주면 되는 것을, 제 자신을 무능력자로 만들고 화내면서 머릿속은 휴가 때 해외여행 계획까지 짜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듣기를 정말 못 했던 겁니다. 아내의 말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었으니까요.
해외여행 자주 가는 친구네가 부럽지만 그래도 친구 남편보다 내 남편이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내 남편이라는 아내의 말에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저와의 행복한 삶을 꿈꾸기에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같이 부러워해주며 우리의 행복한 앞날을 함께 계획했다면 싸우지 않았을 것이란 걸 싸운 뒤에야 깨달은 것이지요. 아내에게 뭐든 해줄 수 있는 슈퍼맨이고 싶은 남자의 욕심과 자존심은 빼고, 아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아내는 선물을 가득 안겨주는 능력 있는 남자보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다정한 남편을 원할 테니까요.
– 황재범. 38세. 대구시 북구 복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