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으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머물게 된 나만의 이야기들, 그 사랑스러운 고백을 들어봅니다.

희망을 전하는 거짓말쟁이

김숙이 47세. 전남 화순군 효성노인복지센터장.

사회복지사.

"오늘따라 너무 예쁘시네요, 무슨 좋은 일 있으셨어요? 오늘만 같으면 아주 금방 나으시겠어요…."

복사꽃 꽃망울이 터질 듯 봄을 알리는 아침, 나는 오늘도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며 어르신 댁에 들어선다. 척추 골절로 인해서 아예 서지를 못하던 80세의 어르신을 살포시 안아드리며 뽀뽀를 해준다. 어르신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그 순간, 그곳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나라로 변모한다.

어르신을 처음 뵌 것은 2008년 7월. 사회복지사로 일주일에 한 번씩, 2년 넘게 만나 뵈면서 설령 그것이 거짓말일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희망을 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시네요? 곧 걸을 수도 있으시겠어요." "이번 봄에는 같이 꽃구경 가실 수 있겠어요~ 하하하!"

그리고 다 해드리기보다는 어르신의 남은 힘으로 하실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때론 말상대가 되어 세상 이야기도 나누고 재미난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드린다. 그런 과정에서 어르신도 많이 변하셨다. 수저, 젓가락 하나도 못 들고 누워만 계시던 분이 이제는 혼자 일어나고 혼자 앉으시고 혼자 누우실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웃음을 찾으신 것이다.

"나 언제나 걸어 다닐 수 있을까?"

통 말씀도 안 하시던 분이 그 말씀을 하셨을 땐 희망을 가지시는 것 같아 너무나 기뻤다.

김주호 작. <생생관계>

마트지에 아크릴릭.

53.5×38.5cm. 2009.

나는 매주 20여 분의 어르신들을 찾아뵙는다. 다들 편찮으신 분들이기에 물리치료와 재활 마사지, 혈당, 혈압 체크도 해드리고 빨래며 청소며 반찬이며 목욕 등을 도와드린다. 분위기 쇄신을 위해 어르신이 예전에 즐겨 부르시던 노래라도 같이 불러드리면 지난 세월이 원망스러우신지 때론 엉엉 울기도 하신다.

사회복지사란 직업은 참 어렵고 힘이 든다. 하지만 가장 힘들 때는 "나는 인제 이러다 죽겄지라잉? 나 같은 것은 살아 봐야 식구들만 귀찮게 하니께 그만 살고 빨리 죽어야 하는디…"라고 하실 때이다. 몸도 좋지 않은데 그런 암울한 마음으로 살아가실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프다. 그럴 때 나는 용기를 내어 말한다.

"그런 걱정 하실 힘이 있는 거 보니까 충분히 나아서 걸어 다니실 수 있으시겠네요.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지금 얼마나 많이 좋아지시고 있는데요!"

그러면 내심 거짓말인지 뻔히 아시면서도 굉장히 좋아하신다.

그럴 때마다 안쓰럽고 마치 내가 불효자가 된 것처럼 죄송스럽지만, 단 한 시간을 살아도 이 순간만큼은 행복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나는 또 거짓말을 하고야 만다. 비록 뻔히 아는 거짓말일지라도 이 일을 멈추지 않는 한 나의 거짓말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분들이 마지막 남은 삶의 굴레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며 한 조각 희망을 잃지 않는 그날까지는….

내 인생 최악의 거짓말 세 편을 고백합니다

박필선 49세. 교사.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나의 최초의 굵직한 거짓말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집에서는 별로 대접을 못 받았으나 학교에서는 모범생으로 인정을 받고 있던 터라, 여름 방학 숙제를 하나라도 안 해가는 것은 내 이미지에 치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를 졸라 그림을 그려 달라 하고, 중학생 오빠의 국어책에서 동시를 하나 베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우리 선생님은 초등학교에만 계시니 중학교 책은 모르겠지! 떡하니 내 이름을 달아 제출했다. 다음 날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너 이 시 베껴왔지?" 하고 나를 빤히 쳐다보셨는데 나는 아무 말도 않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며 서 있었다.

그 다음 날부터 선생님은 나에게 눈길도 안 주시고 심부름도 시키지 않으셨다. 그해 2학기는 무척 힘든 학기였고, 내 마음속에 그늘 하나가 새겨졌다.

20대 시절의 가장 발칙한 거짓말은 29세 때였다. 나는 그때까지 나름 꿋꿋하게 싱글로 버티고 있었는데 내년이면 삼십이라 생각하니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김주호 작. <그런데 말이야>

질구이 삼벌. 68×47×23cm. 2009.

4월의 잔인한 어느 봄날, 외롭다고 툴툴대는 나에게 여고 시절 친구가 성당 청년회 회장이라며 한 남자를 소개시켜주었다. 나이도 동갑이고 해서 같이 영화도 보고 선물도 받고 하는 사이 어느새 가을이 와버렸다. 그런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어느 토요일 밤 그 남자가 양복을 쫙 빼입고 와서는 청혼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나 부담스럽고 어색한 순간을 빨리 모면하고 싶은 마음에 다음 달에 수녀원에 들어갈 거라고 거짓말을 해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그 남자가 술만 먹고 성당도 안 나온다는 소식을 친구들로부터 들었다. 그 뒤 나는 꽤나 깊은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30대 후반 끔찍했던 거짓말 사건은 추운 어느 겨울에 어이없이 찾아왔다. 험한 고개를 두 번 넘는 장거리 출퇴근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출근을 하는데 고개 꼭대기에 눈이 하얗게 쌓여 쌀가루를 뿌려놓은 듯 별천지였다. 그 눈부신 세상은 나의 허황한 낭만주의를 자극하고 말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저 하얀 눈 위를 뽀드득뽀드득 걷고 싶은 유혹을 못 이기고 외투도 벗어둔 채 차에서 마침내 내리고 말았는데…. 아뿔싸! 그만 차문을 잠가버린 것이다.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지나가는 차를 애타게 기다렸다. 한참 뒤 꿈같이 경찰차가 고개를 내려왔고 사정을 말하니 읍내 가서 열쇠업자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곧이어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선생님이 차를 세웠는데 나는 경찰이 해결해주기로 했다며 그냥 보내 버렸다. 그리고 한동안 개미 새끼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1교시를 시작할 즈음이고 연락할 길도 없고…. 두려움이 엄습해와 추위에 떠는 것은 뒷전이었다.

한참 뒤 트럭이 하나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두 팔을 마구 흔들며 차를 세우자 온몸을 무장한 장정 대여섯 명이 내렸다. 무서웠지만 차문 좀 열어달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와중에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과 아는 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분들은 산에 야생 난을 캐러 다니기 때문에 온갖 도구가 있다면서 쉽게 열어주었다. 어찌나 고맙던지 꼭 보답하겠다고 인사를 하고 시동을 거는데, 누군가 혹시 소변이 마려워서 내린 거냐고 물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후  산꼭대기에서 방뇨를 한 여교사라는 오명을 남기고 창원으로 전근을 오게 되었다. 나의 알량한 낭만과 체면은 그 고갯마루 눈 속에 뭉개진 채….

아직도 나는 거짓말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쉬고 싶을 때 학생들이 찾아오면 바쁘다고 해 버리고, 남편과 자식에게도 최대한 내 편한 쪽으로 핑계를 댄다.

지금이라도 매순간 누구에게나 진솔할 수 있다면 남은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을 텐데, 나는 오늘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 바쁘다, 힘들다, 죽겠다 하면서!

착한 거짓말을 응원한다

조세형 41세. 삼성SDS 홍보팀,

<회사에서 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저자

내가 일하는 사옥의 식당으로 들어가는 1층 입구에는 대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들을 처음 식당으로 데리고 갈 때면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이 대나무밭에 유리벽을 쳐놓은 이유는 이곳에 판다곰 한 쌍이 살고 있어서 그래. 북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우리 기업의 적극적인 후원에 감사해서 중국 정부가 판다곰 한 쌍을 중국 본사에 선물로 주었고, 이곳에 사옥을 건립하면서 한국으로 들여왔지."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신입사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판다곰을 열심히 찾는다. 그럼 내가 또 덧붙인다.

"아, 그게. 점심시간에는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해서 곰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든. 그래서 매주 화요일하고 수요일, 이틀만 3시부터 5시까지 볼 수 있어."

신입사원들은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즉시 곰 찾는 일을 멈춘다.

 

김주호 작. <나는 지금>

캔버스에 아크릴릭.

72.5×60cm. 2009.

점심을 먹으며 나는 나의 거짓말에 대한 자수를 바로 한다. 곧 웃음이 터지고 식사 시간은 유쾌해진다. 도심 한복판에 판다곰이 살 리가 없건만 진지한 나의 말을 믿어주는 사원들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나 또한 그들과 더욱 친해지게 된다. 서먹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착한 거짓말’에 그들도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연다.

거짓말이 좋을 리는 없다. 거짓은 일단 상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다. 이처럼 거짓말이 다 나쁜 거짓말이지 착한 거짓말이 어디 있겠냐마는 가끔 동료들을 웃게 하는 거짓말이나 술자리의 분위기를 띄우는 재밌는 거짓말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기분 좋은 ‘착한 거짓말’은 정말 기분을 ‘거짓말’처럼 풀어주기 때문이다.

다만 자기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거짓말’은 절대 안 될 것이다. ‘나쁜 거짓말’은 언젠가 자기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오직 ‘착한 거짓말’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