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법은 관용과 용서를 전제로 합니다.” 처벌을 하기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어주는 것이 먼저라는 소년 사건 전문 천종호 판사. 그의 꿈은 부모의 사랑조차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청소년회복센터(사법형 그룹홈)라는 대안 가정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따듯한 배려를 받은 기억은 소중한 추억이 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소년범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종호(49) 판사를 만나보았다.
올해 초,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룬 SBS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이 큰 화제였다. “잘못했습니다,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하염없이 우는 아이. 학교 폭력 가해자로 법정에 선 자식을 보며 통곡하는 부모….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는 천종호 판사. 그 순간 법정은 단순히 처벌이 아닌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소년범의 70%는 저소득층, 47%는 결손가정의 아이들이다. 특히 결손가정 아이들의 재비행률은 57%에 달한다. 무조건 처벌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들. 가정이라는 최소한의 울타리조차 없고, 부모의 사랑 또한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과연 엄벌의 잣대만이 옳은 일인가? 그는 고심했다.
2010년 창원지방법원에 부임하여 소년재판을 맡게 된 후, 스스로를 ‘만사소년’(萬事少年)이라 일컬을 정도로 자나 깨나 소년들만 생각해왔던 지난 3년. 모두가 외면하는 현실에서 그는 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그 결실은 청소년회복센터 설립 등으로 이어졌다. 어느 곳 하나 마음 둘 데 없는 아이들에게 기꺼이 아버지가 되어주었던 그는, 결국 대법원에 ‘평생 소년재판만 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청소년회복센터 설립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동안 6,000여 명의 소년범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 대부분이 ‘한 번도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는 거예요. 회복센터의 가장 큰 목적은 나는 가정에서 받지 못한 걸 사회에서 받았다, 그 추억을 심어주려 하는 겁니다. 초기 비행의 경우 회복센터에서 관리해주면 비행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애들이 많습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돕는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도 있습니다.
소년법은 성인과 달리 아이들을 건전하게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해요. 단순히 소년원 가는 게 엄벌이고 안 가는 게 선처다 해선 문제 해결이 어렵습니다. 통계 자료를 보면 소년원 출신 3명 중 2명이 성인범이 되는데, 그렇다면 과연 엄벌로 끝날 수 있느냐 하는 거지요.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소년원 보낼 땐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집단적이어서 한 명 한 명 치유가 어려운 데다, 오히려 상처 입거나 안 좋은 걸 배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선처도 단순하게 해선 안 됩니다. 갈 곳 없는 애들을 사회에 내보내면 그게 더 망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최종 결론을 내리기까지 그 과정은 굉장히 혹독하게 합니다. 얼마나 피해자의 아픔을 위로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는가를 보는 거죠.
아이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게 하기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짧은 재판 시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소통 방식이긴 한데, 무조건 10번씩 ‘사랑합니다. 잘못했습니다’를 반복하게 합니다. 처음엔 마지못해 하다가 두세 번 하다 보면 울컥하면서 정말 잘못했구나 인식할 때가 있거든요. 부모님도 깜짝 놀라 껴안고 울면서 같이 공명이 되죠. 반대로 부모님이 아이를 방치했을 경우 아이들 앞에 꿇고 앉아 잘못했다고 하라 합니다. 그 순간 원수였던 부모 자식 관계가 굉장히 가까워집니다. 물론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가족 전체가 화해하는 힐링 캠프가 되면 그게 가장 좋죠.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와 비행을 일삼던 아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아이,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 집을 전전하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절도범이 된 아이….
그가 소년재판을 담당하면서 느낀 건 가정 해체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거였다. 한부모, 조모, 조부의 슬하, 혹은 집조차 없어 떠도는 등 소년범들의 딱한 처지는 단순히 법 집행을 떠나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해주었다.
때론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마주하곤 했다. 7남매를 키우기 위해 일용직 노동을 하던 아버지, 가난 때문에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친구들,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이어가던 고향 사람들…. 육성회비를 제때 내지 못해 수업 시간에 쫓겨나던 학창 시절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자리하게 했다.
“보살핌을 못 받는 아이들은 나가면 또 비행하는 악순환이 되거든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24시간 함께해줄 대안 가정입니다. 또 대부분이 학교를 이탈해서 직업 교육을 못 받았기 때문에 고등학교라도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서 꿈과 희망을 갖게 해야 합니다.”
다행히 천종호 판사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 현재 경남, 부산 등 7곳엔 청소년회복센터가 운영 중이다. 또한 2011년엔 아이들이 정규 학교 과정을 마칠 수 있는 국제금융고등학교 창원분교를 설립, 올해 처음 1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센터 설립 과정에서 어떻게 주위 분들의 공감을 얻으셨나요?
법정 현장을 공개하면서 치유 과정을 보여주었어요. 대개 결손 가정이 많다 보니 한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어요. 그런데 재판한다면 옵니다. 이혼한 엄마도 애가 걱정돼서 오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오고…. 관계 회복의 장이 되는 거죠. 가족들의 애환을 듣다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소년범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통’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년재판은 사건재판 심리를 마치고 1~2주 뒤 재판하는 게 아닌 즉시선고를 하니까 소통이 정말 중요합니다. 형식적인 재판이 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비워야 하죠. 그래야 아이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 눈짓, 몸짓을 놓치지 않고 귀담아들을 수 있어요. 근데 안타까운 건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2006년에 일본 교토가정재판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상담실 같은 구조에서 한 사건당 한 시간씩 아이들, 조사관, 부모님이 빙 둘러앉아 대화하면서 재판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나라는 2주에 한 번꼴로 하루 6시간 동안 평균 100명의 아이를 재판하다 보니, 한 아이당 불과 4~5분이거든요. 그나마 제 옆에서 정신심리전문가 국선보조인이 먼저 아이들과 충분히 대화하고, 도와주니까 정말 감사하죠.
처벌보다 치유를 강조하시는데, 그 치유의 힘은 어디에서 생긴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가정의 사랑이죠. 저는 인성 교육의 핵심을 사람과의 부대낌이라고 생각해요. 이 아아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개는 것도 모르고 밥 먹고 자기 전에 양치질하는 것도 모릅니다. 옷을 벗으면 아무 데다 던져 놓고요. 그래서 밥상머리 교육이 중요합니다. 회복센터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엄마의 정이 그리워서인지 엄마 역할을 하는 센터장이나 여자 지도 선생님들을 엄마라고 쉽게 부릅니다. 처음 엄마라고 불러본 아이들도 많죠. 잘 때도 보면 엄마라 부르는 센터장님과 함께 거실에 나와 모두 껴안고 자요.(웃음) 아이들에게 엄마란 존재는 너무 큰 거 같아요. 사랑을 받아야 결핍된 부분이 채워지고 자존감을 가진 아이들로 자랄 수가 있습니다.
물론 재비행을 저질러서 다시 잡혀오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럴 땐 엄벌에 처하죠. 다른 한편으론 재판할 때 최선을 다했나 돌아봅니다. 아이의 마음을 못 읽은 건 아닌가 자책이 되면서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희망적인 건 소년범 재비행률이 평균 37%인데 회복센터에서 생활한 아이들은 18%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한 번이라도 사회에서 배려를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묵묵히 수긍하고 열심히 살려고 하거든요. 그런 애들은 눈빛부터가 완전히 달라져서, 우리도 놀랄 정도이지요. 그것이 변화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아이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순간…. 그는 법정에 들어가기 전 늘 기도한다. ‘비행소년 역시 애정으로 보살펴야 할 대한민국 소년이라는 걸 잊지 않게 해달라고, 편견과 아집, 건성에서 벗어나 소년들의 소리 없는 외침에까지 귀 기울이게 해달라고….’
시간이 날 때마다 청소년회복센터를 찾아가 운영자들을 격려하고 아이들도 챙긴다. 스스럼없이 ‘아빠’라 부르며 다가오는 등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지켜볼 때 가장 행복하다는 천종호 판사. 친자식 이상으로 살갑게 보살펴주는 운영자들 덕분에 처음엔 애정 결핍으로 인해 하루에 8끼를 먹던 아이들이 식탐이 줄면서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대접을 잘 받았어요.” 한 번도 가족과 외식한 경험이 없는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다가 아이가 불쑥 던진 그 한마디에 뭉클해지고, 아이들이 정성껏 끓여준 삼계탕(삼양라면에 계란을 넣은 것)을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일들까지…. 흐뭇하게 ‘아빠미소’를 짓게 하는 아이들과의 만남은 어느새 그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쉼터에 가게 된 건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좋은 분들을 만나면서 안 좋은 습관도 고칠 수 있었고, 부정적인 마음도 긍정적으로 변했거든요. 먼저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할 줄 알게 되었고요. 에어컨 설치 기술을 배워서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앞으로 멋진 기술자가 되는 게 꿈입니다.”
지난 1년간 청소년회복센터에서 생활해온 조민규(20)군의 말이다.
법도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다운 사회가 되려면 ‘법 위의 법’이 활성화되어야 하죠. 그것은 용서와 베풂, 헌신과 희생입니다. 그것이 실질적으로 우리가 따라야 하는 마음의 법입니다. 소년법도 마찬가지고 우리 일상에서도 그렇습니다. 가령 친구에게 천만 원을 빌려줬는데 안 갚아서 소송을 할 때, 법대로 하면 판사들의 권한은 원금 천만 원과 이자를 지급하라, 그것밖에 없어요. 근데 돈 빌린 사람이 오백만 원만 주고 끝내자 하면 꿔준 사람의 양보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은 법의 영역이 아니거든요. 친구 말대로 양보하면 관계는 회복되지만, 법대로 하면 관계가 끊어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용서, 화해하고 양보하는 절차로 들어가야 하죠.
앞으로 어떤 법관으로
남고 싶으신지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쭉 돌아보면 판사가 되고 소년 사건을 맡게 되기까지, 이 모든 게 제 힘으로 된 게 아니었어요. 늘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기에 감사하죠. 사법시험 준비할 때 왜 공부하느냐고 물으면 힘들고 어려운 사람 돕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그 약속을 조금이라도 지키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이 사회를 위해 제대로 봉사하는 아이로 길러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람이 없습니다.
사랑받아본 적이 없어서 사랑할 줄도 모르는 아이들. 천종호 판사는 그런 아이들에게 사랑의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그 순간이 비록 반딧불처럼 아주 작게 빛날지라도, 외롭게 살아온 아이들에게 때로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별빛이 되어줄 것이기에.
그렇게 이 사회의 어른이라면 우리도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천종호 판사가 무수히 아이들 앞에서 되뇌었다는 바로 그 말을 함께 되새기면서 말이다.
“외로운 네가 방황할 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우리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어할 때 손 내밀어주지 못한 우리가 오히려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