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를 괴롭히는 마음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모든 고민의 원인은 대부분 산 삶의 기억된 생각, 즉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마음의 사진들 때문이지요. 이번 호부터는 그런 마음의 사진들을 빼내고 진정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리얼 토크를 진행할까 합니다. 본격 솔직 대담인 만큼 본인이 꼭 밝혀달라고 원하지 않는 한(^^) 인터뷰이는 밝히지 않을까 합니다.
●○ 간단히 본인 소개를 해달라.
군대 다녀와 대학에 다니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이다.
●○ 살면서 자신을 가장 괴롭힌 마음은 무엇이었나?
나는 주로 원망, 피해의식에 많이 지쳐 있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웃으면 나를 비웃는 듯한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내가 옷을 잘못 입어서 그러나? 키가 작아서 그러나? 뭘 잘못했나? 계속 주위를 의식했다. 그러는 한편 승부욕은 또 굉장히 강했다. 학창 시절에는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용납 못 하고 공부라는 틀 속에 나를 넣으면서 강박장애가 생겼는데, 고2 때부터는 통제를 못 할 정도로 머릿속에 잡생각, 특히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이 증상 때문에 글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 정말 힘들었겠다. 그런 자신을 바꿔보기 위해 뭐든지 해보고 싶지 않았나?
고등학교 때부터 정신과에 다녔다. 약물 치료를 받았는데 완치가 안 되는 병이라고 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보려고도 하고, 책도 보고, 국토 종단도 해봤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고 세상이 두려웠다. 그러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알게 될 거라면서 마음수련 대학생 캠프를 권했다.
●○ 오~ 그래서 원인을 알게 되었나?
수련을 하며 내 마음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버리다 보니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었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너무 자주 싸우셨다. 그걸 보면서 늘 나 때문에 누군가가 화를 낼까 두려워하며 눈치 보며 살았다. 결국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두 분은 이혼을 하셨다. 아버지는 생활비를 전혀 안 주시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아버지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아버지 따위는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살겠다고 했지만, 마음을 버리면서 이미 아버지에 대한 사진이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아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버지로부터도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받은 존재다, 나 같은 놈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늘 젖어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내가 엄마랑 동생을 책임지고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에 강박장애까지 온 거였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들을 버렸다. 처음에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조차 떠올리기 싫었다. 이런 마음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점점 생각이 달라졌다. 정말 버려졌으니까.
●○ 마음이 버려진다는 것을 어떻게 아나?
한마디로 기억으로부터 해방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싸우고 있는 그 상황을 떠올릴 때, 예전에는 생각만 해도 괴로웠다면 이제는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버릴수록 점점 괴로움이 덜했다.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나를 철창 속에 가둬놓았다는 걸 크게 느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찍어놓은 마음의 사진들은 원래는 없는 것인데 나만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 마음의 사진들은 원래 없다는 게 무슨 뜻인가?
예를 들어 나와 똑같은 환경이라도 나처럼 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기억의 사진이라는 것은 세상에 객관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혼자 만든 사진세상에서 나 혼자 힘들어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진을 버리면, 원래의 나를 만나게 된다.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를 만난 그 기분은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다. 해방감, 불만에서 풀려난 느낌, 자유, 세상과 하나 된 느낌이었다.
●○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변했나?
이젠 아버지를 봐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 아버지도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사랑을 못 받고 커서 그러시지 않았나 이해도 된다. 아버지를 만나면 그때 왜 그랬냐고 묻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부터 그냥 나올 것 같다.
●○ 피해의식과 강박장애도 없어졌나?
전혀 없다. 열등감이 없어지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겐 엄마, 동생도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다. 나도 사랑받는 존재라는 걸 알면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생각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웃게 된 거였다. 주위에서도 정말 많이 변했다고 했다. 대학생 캠프 일주일이 끝나고 300여 명이 단체 사진을 찍는데, 애들은 점프를 하며 포즈를 취했다. 나도 정말 높이 뛰며 나만의 포즈를 취했다. 웃음이 났다. 사실 나는 내 반쪽인 아버지를 떼어내고 싶어서 사진도 찍지 않았었는데. 그날은 세상 모든 것이 즐겁고 감사했다. 어머니께서도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고 굉장히 좋아하신다.
●○ 정말 잘됐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행복한가?
행복하다. 내 삶에 만족한다. 지금은 생각 없이 정말 즐겁게 살고 있다. 생각이 없다는 것은 잡념이 없다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항상 생각, 공상, 망상이 많았는데, 마음수련을 하며 이게 정말 쓸모없는 독이라는 걸 느꼈다. 생각을 하면 뇌가 전체 에너지의 40%를 소비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하고 지쳤다. 그런데 요즘은 생각 없이 살다 보니 많이 부지런해지고 건강해졌다. 생각할 시간에 몸을 움직이게 된다. 집에서도 먼저 집안일을 찾아서 하게 되고, 어디 가든 그렇게 된다.
●○ 똑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마음은 모두 다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기에 버릴 수 있고, 버리고 나면 그 마음의 짐에서 벗어나 즐겁게 살 수 있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