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 시를 써서 스타가 된 ‘시스타’가 있다. 뛰어난 재치, 촌철살인의 통찰력, 감성을 뒤흔드는 시들로, 수많은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은 하상욱(33) 작가다. 한순간에 평범한 직장인에서 인기 작가가 되었지만 그는 스스로를 ‘시를 팔아 먹고산다’며 ‘시팔이’라 부른다. ‘웃고 있는데 왠지 슬픈’ 공감 백배, 웃음 백배인 그의 시에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단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상욱 작가를 알게 된 건 페이스북에서였다. 평범한 일상사를 짧고 간단히 정리한 시 안에는 재기 발랄함을 넘어 촌철살인의 삶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었다. 재미와 웃음, 그리고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글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가 낸 첫 전자시집 <서울 시>는 1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와 함께 인기에 힘입어 두 권의 종이책으로도 발간, 15만 권 이상 팔렸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꽃무늬 넥타이를 매고 하상욱씨가 인터뷰 장소로 들어섰다. 재밌는 사람일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그는 내내 진지했고, ‘고민’이란 단어를 일상 용어처럼 반복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내다가 이젠 당당히 전업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그에겐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여전히 고민 중이라는 이 남자, 우리로 하여금 ‘드라이아이스’를 보며 새삼 고마운 인연을 생각해보게 만든 사람, 시자이너 하상욱씨에게 요즘 기분부터 물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을 거 같아요.
사실 힘들어요. 처음엔 제 SNS에 친구 공개로 시를 올린 거였거든요. 그러다가 전자책으로 내게 되고, 독자분이 재미있다고 올리면서 인터넷에 퍼져서 여기까지 온 건데 사람들은 제가 유명세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저부터 인간관계나 일적인 면에서 30년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니까 부담스럽기도 하고 적응이 안 되죠. 기존에 저를 알던 사람들과 편한 관계로 남고 싶으니까 말 하나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돼요. 가령 누군가가 부탁했을 때 부득이하게 거절하면 ‘떴구나~’ 해버리니까 답이 없어요. 뭔가 이상해져버린 느낌, 근데 이해는 가요. 이 상황을 어떻게 풀까 걱정이죠. 특히 저를 부러운 시선으로 보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들어요. 대화를 하면 ‘야, 그래도 너는…(유명해져서 돈 잘 벌면 성공한 거 아니야?)’ 그 말이 그렇게 듣기가 싫어요. 사실 저는 잃은 것도 상당히 많아요. 그게 많이 슬프고 아프기도 해요. 그다음에 내가 뭘 해도 참 힘들겠다 생각하죠. 어떤 상황에서도 그 시각으로 보니까요. 이 생활이 언젠가 끝날 텐데 다음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되죠.
사람들이 막연히 갖고 있는 고정 관념에 대해서 깨주고 싶은 게 많겠어요.
너무나 깨주고 싶어요. 고정 관념이 결국 자기를 힘들게 해요. 지금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이 예전처럼 부러워 보이지 않아요. 불쌍하다는 느낌도 많이 들고, 저는 아이돌 가수들이 요즘 되게 측은해요. 어렸을 때부터 이런 걸 겪으면서 살아왔을 텐데 제가 힘든 것과는 비교도 안 되잖아요. 보통 강인함을 갖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겠구나 싶어요.
새삼 ‘웃기려는 게 아니라 울리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하신 말이 다가오네요. 콘텐츠가 인기가 많아지면서 <서울 시>를 패러디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 안에 나름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는데, 결국 표면만 보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구나. 안타까운 것은 글에 편견을 담아 재미를 주거나 외모를 소재로 쓴다거나 너무 비판적인 글을 쓴다거나…. 그런 식으로 되는 건 슬퍼요. 형식은 빌리더라도 저와 또 다른 이야기를 하면 좋을 텐데 하죠.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거든요.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느 철학책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름대로 철학서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어요. 사실은 눈물 나게 하고 싶어요. 정말 슬픈 것은 웃기면서 슬픈 거잖아요. 저는 작은 얘기에도 큰 얘기가 똑같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쓴 글 중에 ‘아닌데? / 맞는데? / 쌩얼’ 이란 글이 있어요. 제가 강연 때 쌩얼이 어떤 거냐고 물어보면 기준이 다 달라요. 결국 우리가 겪는 갈등의 대부분이 기준 문제인 게 많거든요.
가까이에 있는 사람끼리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정말 달라지겠죠.
그 정도만 돼도 상당히 많이 바뀌죠. 사회가 바뀌기 위해선 정책이나 법이 중요한데 그것은 사람들의 의식이 만들어주는 거니까요. ‘저 사람도 저래? 나만 그런 게 아니네’ 알게 되면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상대를 배려할 수 있겠죠. 사실 모든 문제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게 아닐까요. 공감이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특권을 재밌게 누렸으면 좋겠어요.
원래는 웹디자이너 일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처음에 시를 올렸을 때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그 재미로 했었죠. 그리고 디자이너다 보니까 이미지가 아닌 글로도 재미를 찾아보고 싶었거든요. 규칙을 만들고 싶었는데 디자인하는 습관이 글에도 담기더라고요. 그래서 시자이너란 말을 쓰기도 했고요. 일단 길게 쓰는 게 싫었고 짧게 압축하면서 쓰는 게 재밌더라고요. 페이스북의 영향이 컸어요. 디자인의 첫 번째 원칙은 단순화거든요. 어떤 작품에서 한 요소를 더 빼면 타인이 내 의도를 못 알아보는 시점이 있는데, 그때까지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죠. 좋은 디자인은 ‘더 이상 뺄 게 없는 디자인’인데, 똑같은 개념을 글 쓸 때도 대입시켰죠.
<서울 시>를 읽으며 디테일한 감정을 잘 포착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남들이 보기에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해요. 말을 하고 나서 괜히 불편할 때가 있잖아요. 다들 아는데 애써 말하지 않는 것들…. 가령 일을 하다가도 ‘아까 커피숍에서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지?’ 곰곰이 생각하는 거죠. 가령 인터뷰를 하다가도 인터뷰가 끝나면 할 말이 없잖아요. 그런 어색한 상황은 왜 생길까. 이모티콘을 쓰는 게 나은가 안 나은가 그런 고민들을 깊게 해요. 그런 디테일한 감정들을 알아가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말실수가 없는 편이에요.
사실 상대방과 말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상처 줄 때가 많잖아요.
그런 경우가 많죠. 저는 왜 이렇게 마르셨어요, 살 좀 찌세요. 그런 말을 되게 많이 듣거든요. 근데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이 저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 대화 속에는 마치 좋은 말처럼 포장되어 있는 말들이 있어요. 오히려 진짜 가까운 사람들은 살 좀 찌라고 안 하거든요, 그냥 존중해주죠. 사소하게 던지는 말, 긍정적인 말에도 공격적인 말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 것들을 되새겨 보기 위해 글 쓸 때 고민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제 글 대부분이 관계에 대한 글이 많아요. 우리 관계가 왜 이렇게 됐지?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거죠.
글을 쓸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 쓰시는지 궁금해요.
사람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조사 하나, 1인칭, 3인칭 시점 등을 많이 생각해요. 그리고 내 이야기처럼 쓸 때 맘이 더 편하겠다, 남의 이야기처럼 쓸 때 맘이 더 편하겠다 구분하면서 써요. 가령 강한 비판이 담긴 글은 내 이야기처럼 써요. 그래야 맘이 더 편하니까. 남을 비판하는 것처럼 쓰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굉장히 되바라진 느낌이거든요. 가령 얼마 전에 쓴 글인데 ‘진짜 친구가 아니라며 실망만 했네 / 진짜 친구가 되어주려 하지 않고’ 이런 글들은 내 이야기로 쓰죠. 이걸 반대로 쓰면 굉장히 불쾌한 글이 돼요. ‘왜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 뭐라고만 하니 / 진짜 친구가 되어주진 않고’ 이렇게 글을 쓰면 고민하지 않게 돼요. 내가 아닌 남이 나한테 잘못한 거니까. 결국 내 탓일 때 돌아보게 되거든요. 뉘앙스 하나가 사람한테 생각하게 하느냐 마느냐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아요.
쉽게 쓴 글처럼 보이는 면도 있었는데 그렇게 섬세했구나 싶어 놀랍네요.
쉽게 한두 편은 쓸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고민이 없었다면 5, 6백 편의 글들이 욕을 먹어도 진작 먹었을 거예요. 저는 공감만큼 사람을 안심시키고 편안하게 해주는 게 있을까 싶어요. 사실 <서울 시>에 담은 글은, 저는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을 던지는 글이에요. 이왕이면 우리가 좋아하는 감정들, 찐한 웃음, 슬픈 눈물 속에서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개인의 판단에 맡기는 거죠. 누가 누구를 가르쳐줄 수 있다고 생각 안 해요.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글 중 하나가 ‘계기가 없는 걸까, 의지가 없는 걸까’예요. 누군가가 나를 바꿔줄 거란 기대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거든요.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나요?
20대 분이었는데 나중에 자기 딸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서울시 1, 2권에서 슬픔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지금의 바람은 제 글들이 몇 년 후에 봤을 때는 공감이 안 되는 게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어떤 생각을 만드는 글이 됐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그런 글이 되면 어떨까’라고 하셨죠. 사실 창작자라면 자기 작품이 오래 남길 바랄 텐데, 그런 마음까지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있나요?
어떤 게 비호감일까 생각해보면 대부분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물론 누군가는 저도 그런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유명해지는 게 목적이었다면 예능 프로를 여러 개 하고 있었을 거예요. 전 그런 생각을 해요. ‘나는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다, 영원히 머물 사람처럼 행동하면 이게 다 내 것처럼 행동하면 내려놨을 때 살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오늘 하루 잠깐이라도 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그것도 큰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누군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사람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랬듯이 누구나 평범함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거니까요.” 누군가의 성공을 쫓아가기보다는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먼저 사랑하게 되길 바란다는 하상욱 작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타인과 세상을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가 평범한 우리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