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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 한국 교육계의 거목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교육만큼 중요한 문제도, 또 그만큼 많은 논의가 되고 있는 문제도 흔치 않을 것이다. 교육부장관을 역임하며, 30년 이상 이론과 실무를 통해, 교육의 해답을 고민해온 문용린 교수. IQ 위주의 교육 풍토에, 마음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감성지수(EQ)를 알리고,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기에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게 끌어내주자는 다중지능 이론을 소개하며,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다. 60여 권에 이르는 교육 관련 저서, 아이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에게 작은 방향타라도 던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평생 교육을 연구해온 교육학자, 문용린 교수를 만나보았다.  글 최창원 사진 홍성훈, 김혜진

지난 2008년 3월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은 ‘서울대인을 위한 24시간 상담 전화’를 개통했다. 그 후 1년 동안 걸려온 전화는 3천여 통. 대학생활문화원의 보고에 따르면 진로나 학교 적응 문제, 인간관계 등이 학생들의 고민이라 한다. 누구나 겪는 문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로 인해 삶의 근간이 흔들리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

이러한 시기에 문용린 교수가 제시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행복 교육’이었다. 교육의 목적을 ‘성공’이 아닌 ‘행복’에 두어야 한다는 것. 모든 부모의 꿈이자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불리는 서울대 안에서도 왜 학생들은 괴로워하고 작은 일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것일까? 단지 서울대가 목표였던 아이들은 서울대에 진학한 순간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행복을 알고, 살아갈 목표와 의미를 분명히 알고,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매진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어려움을 이겨낼 내적인 힘도 키워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삶을 산다는 것, 현재를 즐기고 원하는 길을 개척할 줄 아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것이 ‘행복 교육’의 요지였다.

이제는 ‘행복 교육’이라고 하셨는데요. 그 의미를 좀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대부분 부모들이 그러잖아요. “나중에 행복해지려면 지금 조금 더 참고 노력해야 해.” 일반적으로 행복에 대한 착각 중 하나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돌아보면, 먼저 부모부터 언젠가 찾아온다던 그 행복을 실제로 만난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그리고 현재의 즐거움 없이 성공만 추구해온 아이들의 삶을 보면 결국엔 많은 사회 문제로 나타나잖아요. 오늘 하루가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아이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늘 연습하고 경험했기 때문에 설혹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그 안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찾을 줄 알아요.

막상 부모들이 그렇게 가르치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죠. 돌아보면 저도 참 부족한 아버지였어요. 유년기의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났거든요. 유학 중에도 유학을 마친 뒤에도, 너무 해야 할 게 많다는 핑계로 제 할일에만 전념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아이들 생일이 언제인지 알기나 하냐고. 보니까 그날이 딱 아들 녀석의 생일인 겁니다. 제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 날 하루는 오로지 가족들과 함께 보내겠노라고 했어요. 그리고 집 앞에서 온 가족이 자전거를 탔는데, 생각보다 재밌는 겁니다. 그때 아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아빠, 나는 자전거 타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그 순간 참 아들에게 미안했죠. 그리고 그때, 행복도 연습과 훈련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어요. 만일 아이가 행복을 느낄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고 느낀다면, 하루에 한 가지씩만 아이에게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 어렵다면 그저 아이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요.

행복 교육과 관련해 부모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는 부모들에게 아이가 정말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차라리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시라고 말합니다. 보통 부모가 아이를 훈육할 때는 대부분 자기 과거를 떠올리잖아요. ‘내가 그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등 후회되는 기억을 떠올리며 이를 기준으로 아이에게 이것저것 강요합니다 . ‘내가 이랬으니 너는 이러면 안 돼’ 하는 절박감을 부추기고요. 하지만 부모가 경험한 과거가 아이에게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아이들도 각자 생각이 있는데, 엄마, 아버지 마음만 안 바뀌고 있는 겁니다. 정말 아이가 성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아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 이것만은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오늘 이 순간 행복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살아갈 어느 순간에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에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보통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면 행복하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남과의 비교나 경쟁을 전제로 한 조건들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으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 삶 자체를 불행하다고 인식하게 되지요. 저는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살 때 느끼는 것으로 행복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타적 삶이 주는 기쁨을 완전한 행복이라고 해요. 그건 남을 위해 무언가를 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가 아니라, 이 세상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행복은 너무나도 높고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남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즉 ‘도덕’의 문제는 문용린 교수가 서울대 교육학과에 입학한 이래, 일생 동안 연구해온 주제였다. 어떻게 보면 고리타분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교육을 통해 이뤄야 할 근본이라 여긴 그는, 아이들을 위한 도덕에 관한 인성 동화를 펴내고 사회 캠페인까지 확대시켜 도덕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자 했다.

‘도덕’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던 그가 결국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는 1990년대 우리나라에 감성지수(EQ)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다. 요즘 정서 지능(EI)이란 말로 많이 쓰는데, IQ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측면들이 인간의 삶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개념을 연구해낸 것이 감성지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심리학자 잭 블럭은, IQ가 높은 사람과 EQ가 높은 사람의 유형을 비교한 결과, IQ가 높은 사람은 지적으로는 뛰어나나 인간관계가 서투른 반면, 정서 지능이 높은 사람은 책임감과 동정심이 강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며, 자신과 타인을 편안하게 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행복한 인생을 살게 이끌어주려면, 머리보다 ‘마음의 힘’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교수는 더 나아가 인간의 다양성에 집중한 ‘다중지능이론’을 소개한다. 람은 누구나 언어지능, 음악지능, 인간친화지능 등 8가지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이중에서 누구나 강점 지능이 있는데, 똑같은 능력을 강요하지 말고, 그중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끄집어내주는’ 교육을 하자는 것. 그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주목했다.

IQ 테스트의 오류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IQ를 검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출연자들은 개그맨, MC, 연기자, 음악가 등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IQ 테스트 결과 130 이상이 한 명, 100 이하가 두 명, 80 이하도 한 명 나왔다. IQ 맹신론자에 따르면 IQ 80은 대학 교육을 이수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 수준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IQ가 높을수록 학업 성적이 좋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많은 연구에서 머리가 똑똑하다고 출세하는 것도, 성공하는 것도,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IQ 테스트는 현재 100여 종에 이를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수많은 IQ 테스트를 살펴보면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으로 기억 요인, 수 요인, 지각 요인, 추리 요인 등 7가지 기본 요인을 측정한다. 언뜻 다양한 능력을 측정하는 듯하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숨어 있다.

첫째, IQ 테스트는 인간의 능력 중 극히 일부분의 지적 능력만 측정한다. 둘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IQ 테스트는 인간의 능력 중 지적 능력만 측정할 뿐이며, 정서적인 능력이나 사회성 등은 배제되어 있다. 셋째, IQ 테스트 자체가 부정확하다. 예전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IQ 테스트를 여러 형식으로 실시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의 결과가 91~133이 나왔다. IQ 91이라면 대학교에 들어가 정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지능지수이고, 133이면 수재에 속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편차가 심한 이유는 각기 측정하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IQ테스트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단지 정상아인지 비정상아인지를 판단하는 수단으로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오류가 넘치는 IQ로 아이의 능력을 평가한다면 아이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이의 성장에도 걸림돌이 된다.

 

‘마음의 힘을 길러주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어릴 때 공부 하나는 잘했던 아이들이 훗날 정작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럴까?” 부모들로부터 들어온 자녀 교육에 대한 질문의 핵심이 그거였어요. 결국 행복 교육과 연관되는데, 그건 마음의 힘을 길러주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요즘 귀감이 될 만한 국내외의 젊은 리더들을 보면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기쁨을 위해 고된 상황을 견뎌내고 오직 자신의 길에 집중하는 능력이 있거든요. 그게 바로 마음의 힘입니다.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부모가 마음의 힘을 충분히 키워주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조그만 역경이나 곤란에 쉽게 좌절해 버리는 성향을 지니게 됩니다. 마음의 힘이란 감정과 정서와 관련된 능력이지요. 잘 참는 능력, 힘든 일을 잘 견뎌내는 능력, 흥분된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능력. 이런 마음의 힘을 최근의 심리학자들은 정서 지능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수학 능력도 열심히 공부해야 하듯이, 이 힘 역시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기에, 이것 역시 키워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교육을 연구해오셨는데, ‘교육이란 무엇이다’ 정의를 내려주신다면요.

한마디로 그 아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언지를 발견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꽃에 비유하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울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교육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사람 내면의 완성이고, 자아실현이에요. 애들 속에는 각자 다른 소질, 적성, 잠재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그것이 확 드러나게 하는 교육이 중요해요. 우리 어른들이 애들 속에 잠자고 있는 지하수, 광맥을 끌어올려주는, 그런 마중물이 되어야 하지요.

선생님께도 마중물이 되어준 분이 있었나요.

제가 성당에 열심히 다녔는데, 고등학교 재수를 할 때였어요. 그때 신부님께서 ‘우주의 근본원리’라는 책을 주시면서, 이 책을 잘 읽고 저녁 모임에서 어른들 있는데 발표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주 어려운 책인데, 보니까 재미가 있어서, 죽 읽으면서 요약 발표했어요. 그때 제가 좋아하는 누나가, “너는 대학교수 같애. 진짜 잘했어”라고 했고, 누구 칭찬보다 그 칭찬이 와 닿았죠.(웃음) 그런 칭찬들이 저에겐 마중물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에 대해 참 말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에 희망을 느끼신 적이 있다면요.

여러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용감하게 추진해나가는 청소년들한테서 희망을 보지요. 예를 들어 서태지 같은 사람. 엄마, 아버지가 이런 걸 요구하고 사회가 이걸 요구해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잖아요. 음악에서의 서태지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서태지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박태환, 김연아 선수처럼 부모님이 아이들의 소질과 적성을 밀어주는 것에서도 두 번째 희망을 보지요. 하지만 언제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풍성한 대숲을 이루기 위해 땅속에서 5년간 힘을 기르는 대나무 뿌리와 같아요. 그만큼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요. 부모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대나무를 키우는 그런 마음으로 자녀들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문용린 교수는 65년 인생길 고비마다 그때그때 만난 사람들이 자신을 이끌어주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래주었듯이 자신도 그렇게 진심으로 사람이 가는 길에 ‘희망’이 될 수 있길 기도해왔다. 한 사람을 제대로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중요한 것인지를 알기에,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도 느꼈다. 결국 교육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문용린 교수.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랑의 교육이 성장하길 바라본다.

문용린 님은 1947년 생으로,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네소타 대학원 교육심리학과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한국교육개발원 도덕교육연구실 실장,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 학과장, 교육부장관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문위원,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이사장, Safe Kids, Worldwide 공동대표로 있습니다. 저서로 <행복한 성장의 조건> <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고의 유산> <부모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쓴소리〉등이 있습니다.

주어진 조건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통해 기적 같은 감동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씩 나의 재능을 발견하는 기쁨

국지혜 27세. 병원 코디네이터.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학창 시절 나는 예체능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그림 그리고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평소 손재주가 있다는 소리도 들었기에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은 커져갔다. 하지만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컸다. 그래서 택한 것은 실기 시험이 없는 대학이었고, 수능 시험만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디자인을 마음껏 할 수 있기에 들뜬 마음으로 대학 생활을 했다.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맞았다. 실기 과제 때문에 학교에서 노숙자처럼 지내며 3일 밤샘 작업은 기본이고 매일 밀려오는 과제에 체력이 바닥날 만도 한데 공부할 때는 나타나지 않던 집중력이 쏟아져 나왔다.

매번 밤샘을 하고도 지각 한 번 하지 않았고 성적도 늘 상위권이어서 장학금도 받았다. 그동안 공부로 인정받지 못해 부모님 속을 썩였던 것을 대학에 와서 효도하는 기분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나 자신과 약속을 한 것이 있다.

“나도 이제 성인이니까 내 용돈과 과제 재료비는 내 손으로 벌어야겠다!!”

그래서 주말이면 커피숍 서빙 아르바이트를 오픈부터 마감까지 했다. 평일에는 과제를 하고 주말엔 새벽 첫차를 타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만성 피로에 시달렸고 주변에서도 걱정하셨지만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평소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많았던 내 성격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대학 졸업 후에도 디자인 회사 취업을 위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디자인 학원에 다녀야 했다. 내가 했던 일은 안내데스크와 비서직으로, 모두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는 서비스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디자이너를 꿈꿔왔던 나인데 어느 순간 생활비 마련을 위해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었다. ‘같은 과 친구들은 디자인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승진하고 있는데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 서비스직 일이 나에게 더 잘 맞는 것 같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다시 나의 미래를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디어를 내고 밤샘 작업을 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기분 좋아지게 하고 친절을 베풀 수 있다면 그 일이 더 뿌듯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던 중 병원 코디네이터 제안을 받았다. 환자를 가족처럼 챙겨주고 병원 경영도 신경 써야 하는 직업이었다. 아픈 환자들을 대할 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한다면 환자들도 좋아할 것이다. 서툰 디자인 실력도 병원 업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은 시작하는 초보 수준이지만 꿈을 위해서 치열하게 살면서 나만의 특별하고 소중한 능력을 발견한 것에 대해 출근할 때마다 감사함을 느낀다.

디자인 회사 취업을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디자인 학원 수업과 과제를 해낼 때, 정말 최강 체력으로 주경야독에 매진했다. 지금은 그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때의 시간을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힘든 일들을 하나씩 헤쳐 나가면서 자신이 진짜 잘할 수 있는 일, 혹은 몰랐던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기분은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기분이다. 그래서 신나고 감사하고 행복한 인생이다.

 

김옥희 작 <머물고 싶은 향기도 기억하고> Oil on Canvas. 21×49cm.

 

명불허전 막강 경비원으로 거듭나리!

홍경석 54세. 대전시 동구 성남동

인생이 박복하여 저는 생후 첫돌을 즈음하여 생모를 잃었습니다. 초가집의 누옥(陋屋)에서 편부와 빈곤하게 살았을지언정 그래도 초등학교 때 공부는 줄곧 우등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단한 삶의 무게는 더욱 그 중압감이 가속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래들이 까만 교복을 입고 등교할 적에 고향역 앞에서 구두를 닦는 것으로 생업 전선에 나서야만 했습니다. 삭풍이 휘몰아치는 사회에서 저처럼 많이 배우지 못한 무지렁이가 벌어먹고 살 거라곤 고작 몸으로 부대끼는 험한 일밖에는 없었습니다. 노동과 행상도 모자라 안 해 본 직업이 드물 정도입니다. 하지만 힘이 든 건 차치하고라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 당최 보이지 않았기에, 학벌보다는 능력으로써 승부할 수 있다는 세일즈 업계에 입문하기에 이릅니다. 영어 교재와 테이프를 판매하는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당시까지 영어라곤 고작 알파벳 정도밖에는 모르는 ‘무식쟁이’였던 관계로 저는 한동안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맨땅에 헤딩하는 격’으로 대들었습니다.

바로 매일 영어테이프를 들으며 교재를 깡그리 암기해 버리는 거였습니다. 얼마 안 되어 저는 실적이 우수한 사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그 여세를 몰아 이듬해엔 주임으로의 승진도 이뤄낼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소장으로 승진하여 매니저가 되자 대학을 나온 많은 사원들을 관리하는 직책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안 가 회사가 부도가 난 것입니다. 다른 회사로 취업하여 역시도 열심히 뛴 바람에 다시금 매니저를 맡기도 했지만 그 직장에서부터는 이제 기본급은 언감생심이었고 철저한 능력급만이 제 수입의 전부였습니다. 그건 바로 ‘비정규직’이라는 원초적인 함정이 만들어놓은 결과물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걸림돌이 된 것은 역시나(!) 학력이었습니다.

‘정식 대학’엔 가지 못할지언정 지식만은 쌓자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주말마다 공공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수년간 엄청난 양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내공을 쌓았습니다. 그러자 깡마른 사시랑이와도 같던 내게도 지식과 지혜의 샘물이 졸졸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식들에 대한 ‘진정한 투자’도 시작했습니다. 물론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들과 딸이 고교를 다닐 당시 도합 6년간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배웅    (등교)과 마중(하교)을 나갔습니다. 또한 가급적이면 칭찬과 격려로서 동기부여를 함에도 소홀함을 두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학원에는 못 보냈지만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에 같이 다녔습니다. 그러한 ‘자양분’이 동기가 된 덕분이었을까요. 아들은 국립대학을 장학생으로 다닌 후 취업하였고, 딸 역시도 현재 서울대 대학원에 재학 중입니다.

그러던 중 작년 가을 제가 불의의 실직을 당했습니다. 명색이 가장인지라 두문불출의 백수건달이 되고 보니 가족들 보기 면구스러워 견딜 재간이 없었습니다.

취업코자 이력서를 낸 곳에서 이윽고 연락이 온 건 작년 말이었습니다. 다행히 1월 1일부터 근무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난생처음으로 맡아서 하게 된 일은 바로 경비원입니다. 하루는 주간 근무로써 오전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튿날은 반대로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아침 8시까지 근무하는 시스템입니다.

소식을 듣고 아들과 딸도 모처럼 집에 왔습니다. 경기도가 직장인 아들과 서울서 대학원에 다니는 딸이 이 아빠를 응원하고자 ‘작당’하여 오자 어찌나 반갑던지요! 새로운 직장 생활에 충실하느라 평소 물처럼 즐겼던 술조차 일부러 한모금도 안 마시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들이 따라주는 술은 차마 거절할 수 없더군요.

“아빠, 힘내세요! 그리고 조금만 고생하세요. 제가 승진하고, 동생이 취업까지 하게 되면 아빠의 지금 고생도 종착역에 닿으실 겁니다. 그러고 나면 평소 아빠의 소원이라는, 글만 쓰실 수 있는 환경을 꼭 만들어 드릴게요.”

아들의 그 한마디는 물질적으론 여전히 가난뱅이일망정 자식 농사만큼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진정한 만석꾼이란 자긍심이 들게 해주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오늘날 이처럼 자타공인 효자가 된 아들딸은 기실 어려서부터 효심을 강조하고 더불어 많은 책을 읽도록 배려한 때문이라 믿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을 미래의 동량으로 키우겠노라는 저의 의지는 그야말로 한 땀 한 땀의 정성에서 기인했던 것이죠. 저 또한 한 땀 한 땀의 노력과 정성으로 명불허전(名不虛傳) 막강 경비원으로 거듭날 작정입니다.

 

김옥희 작 <꽃잎들이 춤출 때> Oil on Canvas. 38×38cm.

 

‘나를 감동시킬 정도의 노력’이 나를 바꾼다

김정환 36세. IT 디자이너.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새벽 4시. 몇 년 전부터 내가 일반적으로 기상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새벽에 눈을 뜰 때마다 스스로에게 내뱉는 말이 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오래전부터 항상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정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온 거 같다. 디자인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정말 끊임없는 노력을 많이 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나 할 수 있는 게 노력이고,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꿈을 이루게 된다고 항상 믿어왔다. 특히 ‘나를 감동시킬 정도의 노력’이라는 말은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참 멋진 말로 다가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전형적인 ‘올빼미족’이었다. IT쪽에 종사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상 야근, 철야는 피해갈 수 없는 당연한 생활의 일부였다. 예전에는 이런 생활 패턴 때문에, 즐기면서 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이 일에 대한 회의도 많이 들었고, 슬럼프에도 자주 빠지면서, 건강까지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상황을 탓하기보다 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여겼다. 나는 이전의 부족하고, 비효율적인 내 자신을 없애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시기에, 여러 가지 책을 읽던 중 ‘새벽형 인간’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고, 나한테 꼭 필요한 거라 여겼기에 바로 실천에 옮겼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수십 년간 가져온 나의 생활 문화, 패턴을 근본부터 바꿔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우선 취침 시간을 많이 앞당겨야 하기에, 늦은 시간까지의 지인들과의 만남을 할 수도 없었고, 술도 마실 수 없었으며, 이밖에도 정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금욕을 해야 했다. 또 겨우겨우 새벽에 일어난다 해도, 졸 때도 많았고, 멍한 상태가 지속되기 일쑤였다. 힘들었지만 나를 바꾸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고 노력했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유일한 평등은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간이라도 남들보다 더 많이 확보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을 버티니, 점차 몸이 적응했고, 점차 전에는 가져보지 못했던 ‘순수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새벽 시간에는 나를 방해할 외적인 요소가 아무것도 없었고, 굉장히 집중이 잘되었다. 당연히 일의 효율과 성과는 엄청나게 높아졌다. 또한 올빼미족 때 가졌던, 나쁜 습관들이 상당수 고쳐지면서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남들보다 더 양질의 시간을 확보하고 시작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자기 전엔 늘 기분이 좋고, 다음 날이 기다려지는 미래 지향적인 긍정적 마인드 정착이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싶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했다. 경제적으로는 대기업을 다니는 지인들보다 수입이 많으며, 일적으로도 인정받고 있고,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일을 즐기고 있다. 나는 지금 내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바꾸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에 대한 결과들이 얼마큼 자신을 바꿀 수 있는지를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나를 감동시킬 정도의 노력’을 하려면, 본인의 생활 패턴을 완전히 바꿔보려는 노력, 자신의 나쁜 습관을 A부터 Z까지 고쳐보려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나 싶다.

 

김옥희 작 <시간은 흐르다, 추억이 된다> Oil on Canvas. 38×38cm.

주어진 조건을 탓하기보다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통해 기적 같은 감동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시각장애인, 뉴스 앵커가 되다

이창훈 28세. KBS 프리랜서 앵커

“안녕하세요. <뉴스 12>의 생활뉴스 앵커 이창훈입니다.”

2011년 11월 7일, 뉴스 앵커로서 첫 방송을 했다. 523: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국내 방송 최초로 시각장애인 앵커로 뽑혔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생후 7개월 만에 뇌수막염을 앓아 시력을 완전 잃었다. 딸만 셋이었던 집안에서 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기대가 컸던 터라 백방으로 아들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력은 계속됐지만, 어느 순간 그것조차 당신의 욕심임을 깨달은 어머니는 신앙을 갖게 되면서 마음을 추스르셨다.

2006년 대학교 3학년 때, 헌법재판소의 ‘시각장애인 안마업 독점’ 위헌 판결이 내려지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각장애인들의 비극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의 상황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했다. 우리들에 대해 알려나가면서 느낀 건 사람들이 차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잘 알지 못해서란 거였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2007년부터 시각장애인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면서 내가 만든 콘텐츠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PD, 작가, 엔지니어 등 다양한 역할을 해내면서 방송의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작년 6월 KBS에서 앵커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았을 때, 새로운 기회란 생각이 들었고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먼저 뉴스를 많이 들었다. 뉴스 기사를 스크랩해서 점자 단말기에 넣어 점자로 읽어 내려갔다. 그다음 목소리 녹음한 걸 반복해서 듣는 등 하루 4~5시간 꾸준히 연습해 나갔다.

결국 서류 전형과 카메라 테스트를 거쳐 최종 면접에서 쟁쟁한 열 명을 제치고 합격했을 때는 얼떨떨할 뿐이었다.

많은 분들이 방송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뉴스를 할까…’ 사실 여느 앵커와 다른 건 점자 정보 단말기로 뉴스 멘트를 읽어나간다는 것뿐이다.

올해부터는 직접 앵커 멘트까지 작성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일도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그래서 더 많은 장애인들이 다양한 분야에 도전할 수 있도록 길을 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더욱이 며칠 전 초등학교 아이가 사인해달라고 다가왔을 때 사람들이 허투루 보지 않는구나 싶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학교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 이렇게 하면 공부가 잘되는구나’를 알고, 뉴스를 보면서 ‘아, 이런 시각이 있구나’를 배우고, 기존 앵커들의 뉴스를 들으면서 ‘아, 이렇게 하면 좀 더 전달력이 좋구나’를 익히는 등 매 순간 주변의 이야기들을 경청하려고 했던 마음가짐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 않았나 싶다.

 

김옥희 작 <스쳐 지나가는 향기도 기억하고> Oil on Canvas. 21×49cm.

 

자격증은 아이들의 꿈을 달고

윤정현 53세. 전남 장흥실업고등학교 교사

20여 년간 전남 농어촌고등학교에서 근무를 했다. 대부분의 농어촌 특성화 고등학교가 그러하듯이 가정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도 있었고, 성적이 좋다 해도 의욕을 상실한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어떻게 하면 이 아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줄 수 있을까. 나는 자격증을 생각해냈다.

몇 년 전 보성실업고에 근무할 때였다. 고1 때부터 맡았던 한 학생이 틈만 나면 학교에서 잠만 잤다. 가정환경이 너무 곤란해서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여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고교 3년 동안 식당, 편의점, PC방, 주유소 등에서 일을 했는데, 그중에서 온종일 허리 한번 펼 시간도 없이 설거지를 하는 식당 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이 학생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소질에 맞는 자격증을 따게 해서, 사회인의 길을 잘 걷게 해주는 것이다.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서는 독서반을 만들어 먼저 ‘가나다’부터 가르쳤다. 1년 해서 안 되면 2년, 2년 해서 안 되면 3년에 하면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이전에 자격증을 따서 사회에 나가 성공한 제자들에게 강연도 부탁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학생에 맞는 자격증 일정을 체크해서 기능사 시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아이들의 취업 상담을 위해 경제 신문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구독했다. 진로 상담도 개개인의 적성은 물론 그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하여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짬짬이 내어 정말로 3년 동안 눈물겹게 공부를 했다. 그 결과 자동차정비와 건설기계 자격증 등을 13개나 취득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대학생도 들어가기 어려운 부사관 시험에 합격해서 직업 군인의 길을 걷고 있다. 부사관 시험에 응시한 학생들 중 자격증 수가 가장 많았던 것이다.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 학생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몇 년 전 맡았던 한 여학생도 생각난다. 그 학생의 장래 희망은 할인점 판매원이었다. 단칸방에서 삼대가 살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 보니, 그것이, 그 학생이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꿈의 크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총명하고 열의가 넘치는 학생이었기에,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하나하나 안내를 했다. 방과 후와 주말에, 상담과 전화 독려로 이론 공부를 시켰다. 방학에는 모자란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습시켰다. 매일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관련 자료를 나눠주며 공부를 시켰다.

원서비와 시험을 보러 갈 때는 교통비를 대주고 부산, 광주, 목포 등 시험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데려다주었다. 그 결과 그 여학생은 자동차정비 기능사, 건설기계정비 기능사, 불도저, 굴삭기, 지게차 기능사 등 건설기계 분야의 거의 모든 자격증을 취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정보처리기능사, 인터넷 정보 관리사 등 무려 34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결국 특별 전형으로 조선이공대 자동차과를 전액 장학생으로 다녔던 그 여학생은 현재 보험 회사 자동차 대물분야를 담당하고 있고, 자동차 분야 최고 전문가를 꿈꾸고 있다.

그 외에도 한글도 못 읽던 아이들이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8번 만에 자격증을 딴 아이도 있다. 학원비가 없어 식당 일을 하며 주경야독한 제자들, 그렇게 자격증을 따서 자신의 길을 잘 개척해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누구나 한 발짝, 한 발짝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면 반드시 그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김옥희 작 <지금 스며드는 진한 향기> Oil on Canvas. 38×38cm.

 

글라디올러스와 수선화, 두 꽃이 이뤄낸 기적

강명식 83세. 경남 거제시 예구마을 공곶이 농원

‘거제 8경’ 중 하나로 불리고 ‘종려나무숲’이라는 영화의 촬영지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우리 농원은 해마다 봄이면 꽃의 바다가 된다. 샛노란 수선화와 글라디올러스, 붉은 동백, 새하얀 조팝나무가 쪽빛 바다와 어우러지는 모습이 가히 절경인 이곳은 아내와 내가 40여 년간 피땀으로 일군 곳이다.

내가 공곶이에 처음 온 것은, 1957년 중매로 아내를 만나면서 처가가 있는 예구마을로 선을 보러 와서이다. 아내와 마을 뒷산을 산책하다가 ‘눈에서 불이 번쩍 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발견했는데, 바로 공곶이었다. 결혼 뒤 공곶이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10여 년간 마산 등 대도시에서 돈을 번 후, 1969년 마침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토록 이곳에서 살기를 바랐지만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방도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 궁리를 하던 중, 우연히 옆집 화단에서 가꾸던 글라디올러스란 꽃을 발견하게 되었다. 두 개의 어미 뿌리에 새끼 뿌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꽃 뿌리 하나에 콩알보다 작은 종자 15개가 붙어 있네. 뿌리 하나에 10원만 하더라도 10만 개면 100만 원… 1년, 2년 지나면 몇 만 평에 뿌리를 내리겠구나.’

이 단순하고도 간단한 계산 방식으로 몇 년이 지나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생겨났다. 나는 글라디올러스를 손에 들고 외쳤다.

“이것이다. 비록 두 뿌리로 시작하지만 언젠가 이 땅 전체를 얻을 것이다!”

그 드넓은 땅에 또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길을 걷다가 한 가게에서 수선화 뿌리를 보게 되었다. 주머니를 몽땅 털어도 수선화 두 뿌리밖에 살 수 없었다. 많이 사면 그만큼 소득이 클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형편상 접을 수밖에 없었다.

꽃을 심기 위해, 새벽부터 해가 질 때까지 때론 어두컴컴한 밤까지 일은 계속 됐다. 아내도 내가 하는 일에 묵묵히 따라와 주었다. 당시엔 농기계가 없었던 터라 일일이 호미와 삽으로 때론 손으로 척박한 산을 개간해나갔다. ‘손’을 농기구라 말할 정도로, 손끝은 닳고 닳았다. 어느덧 산은 다랑이 밭으로 층을 이루었고, 그 길이가 4km를 넘었다. 산을 개간하다 보니 걸어 다닐 때마다 미끄러워, 개간하다 나온 돌로 333개의 계단을 만들었다. 길을 중심으로 동백나무가 심어졌고, 땅에는 수선화와 글라디올러스를 비롯해 밀감나무, 유자나무, 종려나무 등이 심어졌다.

처음엔 자연 재해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1969년, 1~2년간 2천 그루의 밀감나무를 심었지만, 60년 만에 한파가 오면서 밀감나무가 모두 얼어 죽어버렸다. 열대 나무인 밀감나무가 얼까 봐 가을이면 나무마다 가마니를 덮어씌우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해 키웠건만, 이제 막 열매를 맺을 찰나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돼버렸을 땐 좌절감도 컸고, 그때 충격으로 내 머리는 하얗게 새어 버렸다.

그다음 시도했던 동백나무도 마찬가지였다. 동백나무는 꺾꽂이를 해서 심기 때문에 뿌리가 내리기까지 1년 내내 공을 들여야 한다. 잎을 따주고, 줄기 끝은 깎아 흙에 꽂아주고, 때에 맞게 물을 주고, 여름엔 볕을 보면 말라 죽기에 발을 쳐주는 등 애지중지 키워나갔다. 하지만 다음 해 태풍 때문에 동백나무 10만 그루가 죽는 아픔을 겪었다. 그 후에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때마다 ‘자식들을 잘 키우는 것 이상으로, 이 땅을 알뜰히 가꿔서 아름답게 지켜나가자…’라고 힘든 마음을 추스르며 계속 밭을 일구고 꽃과 나무를 심어 나갔다.

그렇게 10~20여 년의 세월이 흐르자 비로소 꽃과 나무를 팔며 생계유지를 할 수 있었고, 땅은 정직하게 손길이 닿은 대로 화답해주었다. 이제 해마다 봄이 되면 노란 수선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 두 뿌리로 시작했건만 땅을 가득 메운 수선화를 볼 때면 자연의 위대함을 실감한다.

자연은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런 노력의 흔적으로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4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농원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수선화, 동백나무, 종려나무, 조팝나무 등 많은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큰 자연 정원을 이루고 있다. 내 자신도 이 일을 해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글라디올러스와 수선화, 이 두 꽃을 일컬어 기적의 꽃이라 부른다. 이 두 꽃은 불가능을 가능케 해주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자연경관에 감동할 때마다 그동안의 수고가 헛되지만은 않았구나 싶어 감사하다. 또한 이렇게 되기까지 묵묵히 따라와 준 아내와 건강하게 잘 커준 아이들에게도 고맙다. 사람들은 꽃과 나무를 보며 천혜의 자연 농원이라 칭송하지만, 그것은 부족한 내게 하느님이 허락하신 삶이었다.

 

김옥희 작 <사랑-정> Oil on Canvas. 38×38cm.

 

버리고 비우는 웰빙라이프의 지혜 (18)

옛날 어느 마을에 한 나무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며 노모를 극진히 모셨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이 없었고,

행여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흐트러질까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그의 나이 환갑을 맞게 된 날이었습니다.

여느 날처럼 나무 한 짐을 지게에 올려놓고, 잠시 낮잠이 들었을 때입니다.

꿈인 듯 생시인 듯 신선이 나타나 말했습니다.

“너의 성실함과 효심에 감동한 하늘의 선물이니라.

이제 가난에서 벗어나 남은 생만큼은 부귀와 영화를 누리도록 하여라.”

눈을 떠 보니 항아리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 금덩이가 가득 있었습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나무꾼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금항아리를 지고 가려면 저 나무를 다 내려놔야 할 텐데, 아까워서 어쩌지?’

‘금항아리는 한 번도 안 져봐서 힘들겠어. 난 나무 지는 게 더 편한 걸.’

결국 그는 금항아리는 놔둔 채 익숙하디익숙한 나뭇짐을 지고 가버립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의식은 ‘나무꾼’에 묶여 있었습니다.

나무꾼으로서의 관념 관습이 뼛속 깊이 배어버렸기에,

그는 부귀영화를 준다 한들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익숙해져버린 것, 지금까지의 자신만 버리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건만,

우리의 의식 역시 그렇게 과거에 묶여 있지는 않았는지요.

뿌리 깊은 관념 관습을 버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버리면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늘의 선물입니다.

 

 

빼기가 대안이다

아이들의 성윤리에 대한 가치관 상승시켜줘

박필선 50세. 보건 교사. 창원 합포고등학교

근래에 초등학생들의 성폭력 관련 사건들이 자주 뉴스에 등장한다. 청소년 성문제는 인터넷의 대중화와, 대중문화 전반에 퍼져 있는 성 상품화, 성교육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환경은 청소년기에 부정적인 성 가치관을 형성하여 인생 전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20년 가까이 보건 교사를 해오면서, 과학적 지식이나 성윤리를 강요하는 현재까지의 성교육이 실제 아이들의 성 가치관 변화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다 근본적인 의식의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마음 버리기 프로그램을 기존 성교육에 접목하는 것이 아이들의 성 가치관 함양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한 초등학교 5학년 두 학급을 임의로 뽑아 연구를 실시하였다. 연구반과 비교반으로 나누어 연구반 학생들에게는 8주에 걸쳐 12번, 수업 시간 도입부와 후반부에 10분씩 마음 버리기를 지도하였고 비교반은 기존의 성교육만 실시하였다. 그 결과 연구반 아이들의 성 가치관이 눈에 띄게 긍정적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수련 소감

 ♥ 모르고 음란물을 봤는데 그 마음을 버릴 수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 여자는 바지를 많이 입으면 안 된다는 지긋지긋한 고정관념을 버릴 수 있어서 개운하다.

 ♥ 항상 있던 쓰레기들이 없어지는, 꼭 더러운 방을 치운 것 같고, 가뿐해졌다.

 ♥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마음수련을 가르쳐주신 보건 선생님께 감사하다.

 ♥ 해가 다시 뜨는 것처럼 마음이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신체적 열등감, 성에 대한 충동의 기억 버리게 해

설문지 응답 결과 사춘기 변화에 대해 60%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성에 대한 우월감이나 열등감, 남자 혹은 여자라서 차별받았던 기억,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게 했다. 또한 뚱뚱해서, 키가 작아서, 여드름이 나서, 축구를 못해서 등 스스로 생각하는 신체에 대한 열등감, 몸에 신체 변화가 처음 나타났을 때의 불안감이나 두려움, 친구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 성에 대한 호기심, 충동이 일어났을 때의 기억들도 찾아서 버리도록 지도하였다.

‘불쾌한 접촉, 우연히 본 음란물에 대한 기억 버리고 싶어요’

누군가로부터 신체적 불쾌감을 느꼈던 경험에 대해 발표를 시켜 보면 서로 하겠다고 손을 들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가까운 부모나 형제, 친척들로부터 불편한 신체적 접촉을 경험하였다고 했다. ‘기억들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불편하고 너무 싫은데 안 지워져요’ ‘선물이 왔다고 해서 이메일을 클릭했는데 기분 나쁜 동영상이 나왔어요’라고도 했다. 조사에서 나온 수치보다 상당히 많은 성폭력과 음란물에 노출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성폭력에 관해 듣거나 경험한 이야기, 뉴스나 인터넷, 드라마, 영화 등에서 본 음란물 등을 버리는 시간을 특히 많이 가졌다.

마음수련 전후에 대한 설문 조사

설문 조사는 총 20문항으로, ‘나는 지금 나의 성에 만족한다’ ‘나의 몸이 어른처럼 변해가는 것이 이상하고 불안하지 않고 기쁘게 느껴진다’ ‘아버지도 가정일이나 아이 교육 문제 등을 엄마와 같이 책임져야 한다’ ‘장난으로라도 이성 친구의 몸을 만지거나 껴안는다든지 하는 행동도 성폭력이라 할 수 있다’ 등을 질문했다. 답변은 ‘매우 그렇다~전혀 아니다’의 5가지 항목을 선택하게 했다. 각 질문을 ‘성 심리 및 성 역할’ ‘이성과 결혼’ ‘사회적 환경 및 성윤리’ 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매우 그렇다’와 ‘그렇다’를 합한 긍정적 응답자 수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연구반은 3가지 영역 모두에서 20~31% 증가했음이 밝혀졌으나 일반적인 성교육만 받았던 비교반은 1~7.5%가 증가하거나 감소한 영역도 있었다.

마음수련 프로그램이 초등학생의 성 가치관 함양에 매우 효과적이며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을 검증할 수 있었다.

* 이 내용은 2009년 ‘전인학회 춘계학술대회’ 때 발표된 바 있습니다.

 

빼기가 나를 바꾼다

불면증,

너 잊은 지 오래구나

 

처음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잠만 자면 꿈에 싫어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주로 가족들, 주변 친구들이었다. 잠을 깨면 또 악몽을 꿀까 봐 다시 잠들기가 두려웠고 잠자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한숨도 못 자는 날이 많았다. 이틀에 한 번 낮잠 한두 시간을 자며 학교에 다녔다.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을 비롯해서 모든 일에 의욕이 전혀 없었다. 식욕도 뚝 떨어져 하루에 한 끼를 먹었고 몸은 너무 힘든데 잠은 오지 않는 상태가 몇 년간 계속됐다. 건강은 안 좋아지고 몸무게도 10kg 가까이 줄어들었다.

아버지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하셨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기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불면증 치료보다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막연하게 어떤 자유로움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자유를 찾아 밴드에 들어가 악기도 배우고, 종교나 역사에 관련된 책도 많이 읽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 봐도 결과는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가슴이 정말 답답했다. 나 혼자 사회 부적응자가 된 기분이었다.

마지막 선택으로 한국을 떠나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결정했다. 한편으로는 아예 돌아오지 않을 생각도 있었다.

그러다가 호주 행을 2주 정도 남겨두고, 유학 준비로 지친 마음을 추스를 겸,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다.

나는 항상 부모님이, 주변 사람들이 내 마음에 못을 박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처받고 그 상황에서 도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련을 하며 내 속을 들여다보니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속으로 꾹꾹 눌렀던 나만의 감정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힘들게 했고 악몽으로 나타났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기대하고 또 실망해서 멀리 떠나버리고 싶고…. 오랜 세월 그걸 감당해야 했을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했다.

수련 일주일이 지나자 그 마음들이 빠져나가면서 그동안 힘들고 괴로웠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주만큼 큰 마음이 되어 보니 상처 줄 일도, 상처받을 일도 없었다. 진정한 자유로움은 바로 변하지 않는 참마음에 있었다.

나는 호주 행을 취소하고 계속 마음 버리기에 매진했다. 수련 둘째 주부터는 잠도 아주 푹 잘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개운한 잠은 7년 만이었다. 몸무게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련을 시작한 지 1년이 흘렀다. 이제 불면증이란 건 잊은 지 오래다. 꿈도 잘 꾸지 않고 깊이 자고 가끔은 늘어지도록 늦잠도 잔다. 덕분에 직장 생활도 잘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잠깐 일시적으로 느끼는 자유가 아니라 변하지 않는 영원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행복이자 변화이다.

이시연 26세. 직장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완전한 신은 영원히 존재한다

       글, 그림 우명

사람들은 고뇌하며

사람들은 마음에 짐을 지고 사누나

마음의 짐이란 자기가 만든 마음에서

그 짐이 있는 것이라

자기 속에 그 짐은 가진 마음이라

그 가진 마음에서 행하고 사는 것은 그 사진인 허상이

시키는 대로 살아만 가니 바쁘기만 바쁘고 고통이라

사람들아 인간의 한세상은 수만 가지의 사연이 있어

그 속 사는 자는 한세상이 지루하기만 할 것이다

그 속 사는 자는 고통 짐 속에 살 것이다

가도 가도 갈 곳이 없고

이룬다고 이루고 이루어도 이룬 것이 없는 것은

부질없는 없는 인생사에 그럴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만상은 그 조건에 나고 있고 살지 않느냐

천지만상이 난 것은 이것저것에 어우러짐에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 이것이 있는

천지의 조화에 난 것이라

본래에서 보면은

일체가 본래의 화신이고

일체가 본래의 자식이라

만상의 근원은 본래인

만상의 근원은 본 정과 신이라

사람이 본래의 이야기 만들어 뜻과 의미가 없는 것이라

진리인 그 본래로 되돌아가서 다시 난 자는

죽음이 없고 인생사에 일체로부터 벗어난 대자유고 해탈이라

인간사에 좋다 나쁘다도 없고

뜨겁다 안 뜨겁다도 없고

있다 없다도 없고 산다 죽는다도 넘어선

완전한 자리는 스스로 그냥 그대로 영원히 존재하는 신의 자리라

사람이 신이 되는 것은

옛 사람인 망념의 사람이 다 죽으면 신만이 남고

그 신으로 다시 나는 것이라

완전한 신이란

그 정과 신이 살아 있어 우리도 이 정과 신으로 다시 나면

신의 나라에 신으로 살 수가 있는 것이라

신의 나라에는 인간의 관념 관습으로부터 일체 벗어난

허상 인간인 나가 없어 자유이고

허상 인간인 나가 없어 해탈이고

허상 인간인 나가 없어 지혜요

허상 인간인 나가 없어 완전함이고

허상 인간인 나가 없어 인간의 관념 관습으로부터 벗어난 자리라

신의 자리는 물질이 아닌 비물질적 실체라

아무것도 없으나 그 정신이 존재하시고

그 정신으로 거듭 다시 나려면

나가 죽어야 거듭 다시 날 수가 있는 것이라

내가 다 죽는다는 것은

나의 마음의 세계와 나가 다 죽어야 다 죽는 것이라

자기를 다 없애면 안 죽는 정신만이 남고

자기를 다 없애면 그 정신으로 다시 날 수가 있다

이 천지가 다시 난 세상이요

이 천지가 천극락이요

이 천지에서 죽음이 없이 영원히 살 것이다

완전하다는 것은 죽음이 없어야 완전한 것이고

완전하다는 것은 이것저것의 침해로부터 벗어난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완전한 존재다

사람도 이 존재로 거듭나고 다시 나

이 존재의 나라 살아야 완전하다

과거가 있어 현재가 있고

현재가 있어 미래가 있다

인생은 하나의 인생의 삶을 살고 있기에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기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 것이라

신의 세상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것은

과거라는 사진의 세상이 없어 과거가 없고

그냥 존재하는 다시 말하면 신의 마음이라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라

이 존재는 항시 한마음이신 살아계신 존재라

그 존재의 나라는 시공을 초월한 나라라

그 존재의 나라는 살아 있되 삶 속에 있지 않고

해도 한 바가 없는 나라라

이 존재의 나라는 부족함이 일체가 없는

이것저것으로부터 벗어난 자리라

있되 있음 속에 있지 않고

그 허상이 아닌 실상의 살아 있는 마음만이 있어 신이라

지혜의 신이라

우 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인간 내면의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UN-NGO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하늘이 낸 세상 구원의 공식> <영원히 살아 있는 세상> <세상 너머의 세상> 외 영역본과 일역본, 시집 등 다수가 있습니다.

wisdom of life through throwing away

 

Subtraction is the solution

Reducing Aggression and Gaining Confidence

from <Influence of Maum Meditation on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sense of self-worth> master’s thesis 2011. 2. 24

These days the news is filled with story after story of middle school violence and consequent suicides. These events expose the seriousness of adolescent aggression, the prevalence of violence, and serve as an impetus to reflect on the problems in our educational system.

Instead of character development and providing a complete education, most middle and high schools are oriented towards preparation for college entrance exams. This trend gives students emotional anxiety, a sense of inferiority and causes a loss of sense of self-worth. Sense of self-worth is particularly related to aggression levels, and research has shown that cases of students with a low sense of self-worth are prone to be hostile, angry and use violent language and actions.

Therefore in order to reduce aggression, it’s important for these children to throw away the stored up negative minds to recover their original character and improve their sense of self-worth.

At the 2010 Maum Meditation Youth Camp I had the opportunity to observe a group of ten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for a period of twenty days. These children, ages 14 to 18, were able to subtract negative minds and throw away violent tendencies. Within the first few days the children, who came from all different backgrounds, warmed up to each other and I noticed a visible decrease in aggression and an improvement in their sense of self-worth. I will present examples of two middle school students who had strong violent tendencies.

Case of Student Yoon

Yoon’s parents divorced when he was nine. He did not have a good relationship with his parents and during his study abroad in China he had to withdraw from school due to not attending school for a long time. After his return to Korea, Yoon fought with his classmates and had a hard time adjusting. He was often angry and included swear words in his language, like “XXX what are you looking at?”

At the beginning of camp, I asked the group if they would like to participate in a singing performance and Yoon answered, “I don’t want to. You should throw away that thought.”

Towards the middle of camp session, after Yoon had thrown away a lot of anger and irritation, he began to smile and talk comfortably with his teachers and peers. He even cleaned the area without being asked.   At the end-of-camp talent show, Yoon volunteered to sing. He had gained positive self-esteem. Here is what he wrote on an evaluation sheet given to the students.

Yoon’s Thoughts on Maum Meditation:

Three minds that have been thrown away my face getting flushed, skin, emotions

Three things that have improved after camp relationships with others, setting clear goals, understanding one’s duty

Thoughts on camp If one does Maum Meditation with one’s life on the line, one will succeed.

    If a young person meditates, he will find his sense of duty. Overall, one will see improvement.     If the world can become one through Maum Meditation,     I think we won’t have criminals and we won’t need police anymore.

Case of Student Lee

Lee’s family moved to Malaysia and he had a hard time adjusting. He even considered suicide. His answer for everything was, “no” and he opposed everything. At the beginning of camp Lee couldn’t concentrate on the meditation and always complained about his family. He swore at people, and often talked about horror movies and scary stories. By the middle of the camp session he was able to meditate more and get along with his friends.   He reflected on himself, and felt sorry for how he had treated his family and said he had thrown away a lot of jealous mind.

Lee’s Thoughts on Maum Meditation:

Three minds that have been thrown away not doing well on tests, not wanting to meditate, passive mind

Three things that have improved after camp mind has become calmer, made a lot of friends, learning gratitude

Thoughts on camp I changed a lot after coming to camp. Before I came, I always fought with my mom.

    However, as I meditated I saw that I always hurt people with my words, I was cynical about everything     and I ignored adults. As I threw that away, I realized I had lived so carelessly.     So I decided that after camp finishes I will tell my parents that I’m sorry and that I’m thankful.

By Suk Gee Lee Deputy Director of School Policy in the City Office of Education, Busan, South Korea

 

 

Subtraction is the solution

An Armful of Tulips

To My Friends:

I’m Sorry. And Thanks.

 

During the summer break when I was thirteen I moved from a rural area in South Korea up to Seoul.  I stayed at my grandmother’s house and studied art at a studio in the wealthy part of Seoul in order to enter a middle school for the arts.

In the countryside, I had always won prizes in competitions, and my teachers had high expectations for me.  Out of thanks to my parents and the desire to make the most of this opportunity, I made the hour-long journey back and forth to the studio every day.

Life in Seoul was more unfamiliar than I expected.  All the kids in my class were pretty and fancy.  They were outgoing and they spent a lot of money.  I was shocked at how they would spend so freely what was a month’s allowance to me.

I started to feel inferior.  In order to hide my sense of inferiority, I always forced a smile and acted outgoing when drawing or on field trips.  But I was easily hurt by my friends’ careless words and it was hard to make up after I fought with my friends.  So instead I threw myself desperately into drawing.  At least with drawing I was confident.  I was always the last to leave the studio the night before exams, and I maintained top scores.

I received scholarships and got into a high school for the arts. But on the inside my heart was rotting away.  My grades started to drop and I often cried in front of my friends.  One time I called my mom and wept in the bathroom of a subway station while I was on the phone to her.  I couldn’t attend school regularly and was unable to keep up in class.  That winter I ended up dropping out of school.

While I was worrying about what to do, my father, a teacher, recommended Maum Meditation to me.  I was attracted to the fact that the meditation allowed everyone to become one.

As I looked back I regretted and felt sorry for how harshly I had treated my friends.  At first it was hard to throw away my mind, which had built a wall between me and others.  But as time passed and I threw away inferiority and the habit of comparing myself to others, I became more comfortable and energetic.  I began to laugh more and was able to talk, laugh and embrace people of all ages.  

I was even able to throw away the ‘I’ in ‘I have to improve and get better.’  

I returned to Seoul, took the high school equivalency exams, and tried to contact my friends.  On graduation day, I took an armful of tulips to school and handed one out to each of my friends.

This was my way of apologizing and reconciling with my friends who had suffered because of my sense of inferiority.  This act of gratitude was something that I couldn’t have imagined doing in the past.

Later I was admitted to the university I wanted to attend, and nowadays I have even more friends.  The more I throw away the judgment of others, the more I am able to comfortably interact with people.  Now that I’ve thrown away the minds that tormented me, I can embrace people and I am thankful.  I am happy.

By Ara Go

-Devoting Oneself to Others is Only Possible after Emptying the Mind

After two years of research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ind and disease, Professor Mi Han Kim from the Kyung Il University Department of Nursing, has confirmed a significant reduction in stress, depression, and anxiety in Maum Meditation participants.  Because nurses are in constant contact with patients in emergency situations who are anxious, angry and irritated, and they directly receive those extreme emotions, Professor Kim proposes that the Maum Meditation program be a compulsory requirement in the nursing education curriculum.

I became a professor at the relatively young age of thirty. Many people around me were envious and I was happy to have realized my dream so early. However, the happiness only lasted for a moment.  I lived constantly setting and chasing after new goals. I was always competing with others; always comparing and never being content. I began to think this was not all there was to life.

Then I remembered the Maum Meditation brochure my professor gave me when I was getting my Ph.D. The phrase “Let’s put a comma in life” (meaning ‘let’s take a rest’) resonated with me so I started Maum Meditation in the summer of 2002.

For me, life was a sprint.  I was always making plans for tomorrow or what I have to do in the future. When I worked as a hospital nurse on a three-rotation schedule, the 24 hours in a day were filled with emergency room duties, sleep, and study. That lifestyle continued after I became a professor. Preparation for class, work for the department, advising students… I was unable to escape from the rat race.

The nursing profession is about devoting oneself to others. However, instead of understanding that sense of duty, I felt frustrated because I didn’t receive as much recognition as doctors did. That’s when I started dreaming of becoming a professor. Later, I was displeased when I saw students who couldn’t keep up in class. I thought to myself, “They have to get good grades to find a job at a reputable hospital…” I expected my students to follow my way in life of seeking rank and reputation. I imposed my way of life on my students as if it were the only way. Because I was so used to the title of “professor,” I ordered people around and was unable to be humble.

Every paper I presented, every seminar I attended was driven by a sense of competition and the pressure to do well.

I lived my life with the intent to show off my name: Mi. Han. Kim.

When I realized this, I was ashamed.

What kind of mindset did I have as I taught my students?

As I meditated I was able to erase the attachment to my name.

I repented for only thinking of myself and hurting those around me.

The fact is, the nurse is the first person a patient meets when they are in a most difficult and dangerous situation. Therefore it’s important for nurses to devotedly give all of themselves to their work. No matter how tired or stressed a nurse is, he or she cannot complain to the patient because the patient is always in a more critical situation. Accordingly, it’s absolutely necessary for nurses to have a calm composure as they come into direct contact with the patient’s anxiety, irritation or anger.

The best thing I gained from Maum Meditation is the conviction

that the fundamental problem in human relationships can be resolved;

because as we meditate, we discover our origin and learn that everyone is one.

Through Maum Meditation, one can transcend being simply a nurse with good technical skills to become a nurse who can accept patients as they are and treat them completely and holistically.

In conclusion, the greatest happiness I received is when I learned humans weren’t born to eat and live well only for themselves; that only when humans help the world do they live a meaningful life. My hope is that we can apply Maum Meditation to nursing when treating cancer patients, patients nearing their end, or patients with mental illnesses so that patients, when in their most difficult situations, can receive comfortable and peaceful care.

-Overcoming Thyroid Cancer and Living the Real Life

By Young Ae Kim School Nurse

I wish there was an eraser that could erase the mind. I want to erase the present, the past, and all the people I know. Why did this happen to me? Was I too conceited? I told myself over and over “It’s okay. It’s going to get better.” But then sorrow and anger would flood over me and make me miserable. It’s my mind, but why can’t I control it? People weren’t born to live like this, isn’t there a way to escape from these bonds?

This is an excerpt from my diary in the beginning of 2005. At the time I had been diagnosed with thyroid cancer and had been through surgery to remove my vocal cords. I was depressed everyday and wanted to bury myself deep in the ground.

The people who cared and worried about me seemed fake. My pride stopped me from admitting what a hard time I was having.  So I forced a cheerful façade in front of people. “It’s not a big deal, there are more serious illnesses.  I’m okay, I’m fine…” But as I continued to deceive myself, my mind grew darker.

After surgery I continued working and taking chemotherapy, but eventually I had to take a sick leave.  I didn’t have a single peaceful day. Life felt like hell, and I realized my mind was creating this hell. Then one day my sister said to me, “You can empty your mind” and told me about Maum Meditation. “I can empty my mind?  If I go there, everything will be resolved.”  I started meditating immediately.

 

I had lived an ordinary life with my older sister, younger brother and my parents, who ran a farm. In 1998 when the IMF financial crisis hit and everyone was struggling to find work, I was lucky enough to get a job immediately after graduation as a school nurse. Everything seemed to go my way and I held myself in high regard. Then, as I turned thirty, I started to feel tired and my neck swelled up. Out of nowhere I was diagnosed with thyroid cancer. The doctor reassured me my voice would return after surgery and I would recover, but things didn’t look good. My voice was low and husky. Because of my low thyroid function I was always tired and swollen, and I gained a lot of weight. I was anxious about whether or not my voice would return and that I would continue to gain weight. I was resentful and angry. It felt like my happiness was stolen out from under me.

As I meditated, I was able to honestly face myself for the first time. I realized that my sense of inferiority was like an iceberg, hidden under the surface. In order to not expose that inferiority, I pretended to be happy, to have a bright personality. I wanted people to envy me.

I recalled the pictures that were the source of my inferiority. The first thing that triggered my inferiority was my sister. My sister was smart, the first born and she received a lot of love. My parents wanted their second child to be a son, but I was born instead. I recalled a memory from first grade: I was sitting at my desk resolving to study hard; that way I would receive love from my parents and recognition from the people around me. Every moment was spent working hard to disguise my inferiority. I was constantly stressed and anxious, always focused on myself, my parents, and my level of education.

I was a chameleon, pretending not to be jealous, pretending to be positive. I wore a mask to hide my sense of inferiority and to be recognized by the people around me. Never once was I honest with myself and I lived always trying to show off and be the best. Reflecting on how much greed and attachment I had, it’s no wonder I became ill.

I wept.  I was wrong to my body, wrong to my family, I felt ashamed and sorry to all the people around me. Inferiority, pride, conceit, saving face, fear… I couldn’t help but throw away these minds when I imagined all that built up filth concealed in every one of my cells. These minds were an invisible hell, and I knew if I didn’t throw them away I would forever be a slave to them.

So I threw and threw away until one day, suddenly, I felt something clear out from inside my neck. The boulder-like burden that weighed down my heart broke away and I could feel the blocked energy start to flow through my body. Later my voice, which had been trapped in the low pitch range, returned to its original tone. It was a miracle! Finally!  I had my voice back.

Slowly I lost weight and my body recovered. When I began to think of my body as a product that naturally wears down with use, I was able to let go of a lot of attachment to my body. I could see illness was a natural occurrence.  If it breaks, it can be fixed. My doctor had said singing would be hard but I’m now singing in a choir. My strength and stamina has significantly improved. Before, I couldn’t stay up past ten; these days I can go to bed at one or two and wake up early the next morning feeling refreshed.

In 2006 I returned to work. I saw there were a lot of people around me with thyroid disease. Stress is the main cause of thyroid disease. Even if the diseased parts are removed with surgery, the lingering thought that the illness is still there blocks recovery. When I tell people they need to throw away that thought to be truly free from the disease, they heartily agree.

Although I recovered my health through Maum Meditation, what I am truly thankful for is the discovery of my true self. When times were hard, I resented life and wondered why people were born to live with such painful burdens. But I realized that I created those burdens through my self-centered mind. If I can throw that mind away, throw myself away, the eternal, living, real existence is revealed and I can live happily as that existence.

When I was young, people asked me, “What’s your dream?” I always answered, “To live well.” When they asked how, I remember answering, “Happily!”  Now I’ve realized that dream through Maum Meditation. If I think about it, thyroid cancer guided me to the real life.

-Words That Are Of Use -What Is Salvation? It Is Falseness Becoming Truth

The world is a noisy place, full of many words, and although much has been said, none of it is of any use. Useful words are the words of Truth; words that save people. Useful words are living words. Living words must have life, And living words are words of life. In conclusion, they are useful words. Words that have life, and are living, are of use; they are the words of a person who is alive, they are the words that are themselves living. Words of use are the words of Truth, and words of use are the words of life.

In Christianity it is said Christ, the Savior, will come down on a cloud with trumpeting angels. In Buddhism, it is said that Maitreya will come to the world of sentient beings, the saha world, to save people. Jung-san told us the Great Commander, Dae-doo-mok, will come, and So-tae-san also said that Maitreya will come.

The terms used above are all different but they denote the same existence.

They all refer to the empty space, the world’s original master, coming as a human being.

The master of the world is the master that made all of creation. The master is the existence of Truth. It is natural that this existence – the existence of Jung and Shin that is the source of this Universe- must come to the world in order for the world to be resurrected as the existence of Jung and Shin.

This existence is the place before all of creation came forth and because all of creation came forth from this place, this existence is the living Truth that is the Creator and true existence.

Countless people have tried to become Truth and failed. The reason they were unsuccessful despite their efforts is they were not Truth and a method to become Truth did not exist. Therefore, they could not know Truth.

If someone had achieved Truth, there would have been a method by which he had done so. People believe there have been many saints and enlightened people in the world, but if these people had truly been enlightened, a method would exist.

We seek and search in religion as well as other places in other to become complete because we are incomplete.

The existence spoken of in all religions is Truth. Man’s salvation is becoming this existence? it is when man who is false becomes Truth.

Drawings and writings of Woo Myung

Woo Myung founded Maum Meditation. For his outstanding dedication to the service of humanity, he was awarded the Mahatma Gandhi Peace Award by the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Educators for World Peace (IAEWP) in 2002. He is the author of numerous books including World Beyond World and The Way To Become A Person In Heaven While Living which have been published in English. His other books, Where You Become True Is The Place Of Truth, Heaven’s Formula For Saving The World, The Living Eternal World, The Book Of Wisdom, Mind, Universal Order and The Enlightened World are in the process of being translated into English as well as Chinese, French, German, Italian, Japanese, Portuguese, Spanish and Swedish.

동네 노는 아저씨의 친절한 고민 상담소

결혼 적령기에 든 30대 초반 직장 여성입니다. 이제는 누구를 만나면 결혼까지 해야 한다 생각하니 점점 눈만 높아져요. 누군가 만나게 되도 이것저것 재고 있으니, 제대로 만나지지 못하고요.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게 뭔지 좀 알려주세요! 너무 비현실적인 거 말구요.

제가 어릴 적 일요일 아침 8시만 되면 누나들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누나들 틈 사이로 빼꼼히 들여다보면 TV 화면에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며 여자아이 하나가 들판을 처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늘 위로 뭉게뭉게 샤방샤방한 꽃미남 오빠들이 나타납니다. 키 큰 놈, 머리 긴 놈, 곱슬머리인 놈…. 얼굴의 반이 눈인 저 여자아이는 전생에 대륙별로 나라를 하나씩 구했는지 참 복도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녀님은 결혼 적령기에 접어드셨군요. 이제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막상 결혼을 염두에 두고 이성을 만나려니 많이 부담되고 생각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본인 스스로가 너무 눈이 높다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시는데, 얼굴의 반이 눈인 저 여자아이도 큰놈, 긴놈, 뽀글이를 놓고 간을 봅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과 하나를 고를 때도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고르려고 노력하는데 하물며 인생의 반려자를 고르는 데 눈도 높아야 되고 이것저것 재서 만나셔야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배우자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게 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셨는데,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겠습니다. 성실한 사람 찾으세요. 어디서건 결과적으로 인정받는 건 성실성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재력 그리고 약간의 인물 그리고 약간의 센스…. 현실적으로 좋은 거라면 조금이라도 없는 거보단 있는 게 훨씬 좋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즐겁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죠.

참고로 캔디는 계단에서 뒤따라 뛰어내려와 백허그를 하며 처울던 머리 긴 놈하고는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포니동산에서 ‘꼬마 아가씨는 웃는 모습이 더 예쁘다’며 동산 아래를 같이 바라보던 알버트 아저씨와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ㅋ

동네 노는 아저씨 백일성. 올해 나이 41세,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초딩 남매 그리고 1930년대생 부모님과 함께 한집에서 박 터지게 살고 있음. 3년 전 우연히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박 터지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게 됨. 2년 전에는 <나야나 가족 만만세>라는 수필집도 발간했음. 좌우명이라고 할 거는 없지만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말, “지랄도 많이 하면 는다~”를 한 가지 일에 꾸준히 하라는 말로 새기고 살아오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