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교육만큼 중요한 문제도, 또 그만큼 많은 논의가 되고 있는 문제도 흔치 않을 것이다. 교육부장관을 역임하며, 30년 이상 이론과 실무를 통해, 교육의 해답을 고민해온 문용린 교수. IQ 위주의 교육 풍토에, 마음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감성지수(EQ)를 알리고,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르기에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게 끌어내주자는 다중지능 이론을 소개하며, 선풍적인 반향을 불러오기도 했다. 60여 권에 이르는 교육 관련 저서, 아이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에게 작은 방향타라도 던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평생 교육을 연구해온 교육학자, 문용린 교수를 만나보았다. 글 최창원 사진 홍성훈, 김혜진
지난 2008년 3월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은 ‘서울대인을 위한 24시간 상담 전화’를 개통했다. 그 후 1년 동안 걸려온 전화는 3천여 통. 대학생활문화원의 보고에 따르면 진로나 학교 적응 문제, 인간관계 등이 학생들의 고민이라 한다. 누구나 겪는 문제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로 인해 삶의 근간이 흔들리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
이러한 시기에 문용린 교수가 제시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행복 교육’이었다. 교육의 목적을 ‘성공’이 아닌 ‘행복’에 두어야 한다는 것. 모든 부모의 꿈이자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불리는 서울대 안에서도 왜 학생들은 괴로워하고 작은 일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것일까? 단지 서울대가 목표였던 아이들은 서울대에 진학한 순간 삶의 의미가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행복을 알고, 살아갈 목표와 의미를 분명히 알고,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매진하는 법을 배운 사람은, 어려움을 이겨낼 내적인 힘도 키워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삶을 산다는 것, 현재를 즐기고 원하는 길을 개척할 줄 아는 아이가 성공한다는 것이 ‘행복 교육’의 요지였다.
이제는 ‘행복 교육’이라고 하셨는데요. 그 의미를 좀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대부분 부모들이 그러잖아요. “나중에 행복해지려면 지금 조금 더 참고 노력해야 해.” 일반적으로 행복에 대한 착각 중 하나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즐거움을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돌아보면, 먼저 부모부터 언젠가 찾아온다던 그 행복을 실제로 만난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그리고 현재의 즐거움 없이 성공만 추구해온 아이들의 삶을 보면 결국엔 많은 사회 문제로 나타나잖아요. 오늘 하루가 행복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아이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늘 연습하고 경험했기 때문에 설혹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그 안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찾을 줄 알아요.
막상 부모들이 그렇게 가르치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죠. 돌아보면 저도 참 부족한 아버지였어요. 유년기의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났거든요. 유학 중에도 유학을 마친 뒤에도, 너무 해야 할 게 많다는 핑계로 제 할일에만 전념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아이들 생일이 언제인지 알기나 하냐고. 보니까 그날이 딱 아들 녀석의 생일인 겁니다. 제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 날 하루는 오로지 가족들과 함께 보내겠노라고 했어요. 그리고 집 앞에서 온 가족이 자전거를 탔는데, 생각보다 재밌는 겁니다. 그때 아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아빠, 나는 자전거 타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요.” 그 순간 참 아들에게 미안했죠. 그리고 그때, 행복도 연습과 훈련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어요. 만일 아이가 행복을 느낄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고 느낀다면, 하루에 한 가지씩만 아이에게 낯설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 어렵다면 그저 아이를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요.
행복 교육과 관련해 부모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저는 부모들에게 아이가 정말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차라리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시라고 말합니다. 보통 부모가 아이를 훈육할 때는 대부분 자기 과거를 떠올리잖아요. ‘내가 그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등 후회되는 기억을 떠올리며 이를 기준으로 아이에게 이것저것 강요합니다 . ‘내가 이랬으니 너는 이러면 안 돼’ 하는 절박감을 부추기고요. 하지만 부모가 경험한 과거가 아이에게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아이들도 각자 생각이 있는데, 엄마, 아버지 마음만 안 바뀌고 있는 겁니다. 정말 아이가 성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아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만들어주세요. 이것만은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오늘 이 순간 행복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살아갈 어느 순간에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에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보통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면 행복하리라 생각해요. 하지만 남과의 비교나 경쟁을 전제로 한 조건들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으면,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할 때 삶 자체를 불행하다고 인식하게 되지요. 저는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살 때 느끼는 것으로 행복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타적 삶이 주는 기쁨을 완전한 행복이라고 해요. 그건 남을 위해 무언가를 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세상은 넓고 할 일도 많다가 아니라, 이 세상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행복은 너무나도 높고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남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즉 ‘도덕’의 문제는 문용린 교수가 서울대 교육학과에 입학한 이래, 일생 동안 연구해온 주제였다. 어떻게 보면 고리타분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교육을 통해 이뤄야 할 근본이라 여긴 그는, 아이들을 위한 도덕에 관한 인성 동화를 펴내고 사회 캠페인까지 확대시켜 도덕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자 했다.
‘도덕’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던 그가 결국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는 1990년대 우리나라에 감성지수(EQ)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한다. 요즘 정서 지능(EI)이란 말로 많이 쓰는데, IQ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측면들이 인간의 삶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개념을 연구해낸 것이 감성지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심리학자 잭 블럭은, IQ가 높은 사람과 EQ가 높은 사람의 유형을 비교한 결과, IQ가 높은 사람은 지적으로는 뛰어나나 인간관계가 서투른 반면, 정서 지능이 높은 사람은 책임감과 동정심이 강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며, 자신과 타인을 편안하게 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행복한 인생을 살게 이끌어주려면, 머리보다 ‘마음의 힘’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교수는 더 나아가 인간의 다양성에 집중한 ‘다중지능이론’을 소개한다. 람은 누구나 언어지능, 음악지능, 인간친화지능 등 8가지 지능을 가지고 있다. 이중에서 누구나 강점 지능이 있는데, 똑같은 능력을 강요하지 말고, 그중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끄집어내주는’ 교육을 하자는 것. 그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주목했다.
IQ 테스트의 오류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IQ를 검사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출연자들은 개그맨, MC, 연기자, 음악가 등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IQ 테스트 결과 130 이상이 한 명, 100 이하가 두 명, 80 이하도 한 명 나왔다. IQ 맹신론자에 따르면 IQ 80은 대학 교육을 이수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 수준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들이다. 보통 사람들은 IQ가 높을수록 학업 성적이 좋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많은 연구에서 머리가 똑똑하다고 출세하는 것도, 성공하는 것도,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IQ 테스트는 현재 100여 종에 이를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수많은 IQ 테스트를 살펴보면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으로 기억 요인, 수 요인, 지각 요인, 추리 요인 등 7가지 기본 요인을 측정한다. 언뜻 다양한 능력을 측정하는 듯하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숨어 있다.
첫째, IQ 테스트는 인간의 능력 중 극히 일부분의 지적 능력만 측정한다. 둘째,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IQ 테스트는 인간의 능력 중 지적 능력만 측정할 뿐이며, 정서적인 능력이나 사회성 등은 배제되어 있다. 셋째, IQ 테스트 자체가 부정확하다. 예전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IQ 테스트를 여러 형식으로 실시한 적이 있다. 한 학생의 결과가 91~133이 나왔다. IQ 91이라면 대학교에 들어가 정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지능지수이고, 133이면 수재에 속하는 수준이다. 이렇게 편차가 심한 이유는 각기 측정하는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IQ테스트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단지 정상아인지 비정상아인지를 판단하는 수단으로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오류가 넘치는 IQ로 아이의 능력을 평가한다면 아이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이의 성장에도 걸림돌이 된다.
‘마음의 힘을 길러주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어릴 때 공부 하나는 잘했던 아이들이 훗날 정작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그럴까?” 부모들로부터 들어온 자녀 교육에 대한 질문의 핵심이 그거였어요. 결국 행복 교육과 연관되는데, 그건 마음의 힘을 길러주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요즘 귀감이 될 만한 국내외의 젊은 리더들을 보면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기쁨을 위해 고된 상황을 견뎌내고 오직 자신의 길에 집중하는 능력이 있거든요. 그게 바로 마음의 힘입니다.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부모가 마음의 힘을 충분히 키워주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조그만 역경이나 곤란에 쉽게 좌절해 버리는 성향을 지니게 됩니다. 마음의 힘이란 감정과 정서와 관련된 능력이지요. 잘 참는 능력, 힘든 일을 잘 견뎌내는 능력, 흥분된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능력. 이런 마음의 힘을 최근의 심리학자들은 정서 지능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수학 능력도 열심히 공부해야 하듯이, 이 힘 역시 오랜 시간과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기에, 이것 역시 키워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교육을 연구해오셨는데, ‘교육이란 무엇이다’ 정의를 내려주신다면요.
한마디로 그 아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무언지를 발견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꽃에 비유하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울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게 교육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사람 내면의 완성이고, 자아실현이에요. 애들 속에는 각자 다른 소질, 적성, 잠재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그것이 확 드러나게 하는 교육이 중요해요. 우리 어른들이 애들 속에 잠자고 있는 지하수, 광맥을 끌어올려주는, 그런 마중물이 되어야 하지요.
선생님께도 마중물이 되어준 분이 있었나요.
제가 성당에 열심히 다녔는데, 고등학교 재수를 할 때였어요. 그때 신부님께서 ‘우주의 근본원리’라는 책을 주시면서, 이 책을 잘 읽고 저녁 모임에서 어른들 있는데 발표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아주 어려운 책인데, 보니까 재미가 있어서, 죽 읽으면서 요약 발표했어요. 그때 제가 좋아하는 누나가, “너는 대학교수 같애. 진짜 잘했어”라고 했고, 누구 칭찬보다 그 칭찬이 와 닿았죠.(웃음) 그런 칭찬들이 저에겐 마중물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에 대해 참 말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에 희망을 느끼신 적이 있다면요.
여러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용감하게 추진해나가는 청소년들한테서 희망을 보지요. 예를 들어 서태지 같은 사람. 엄마, 아버지가 이런 걸 요구하고 사회가 이걸 요구해도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잖아요. 음악에서의 서태지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서태지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박태환, 김연아 선수처럼 부모님이 아이들의 소질과 적성을 밀어주는 것에서도 두 번째 희망을 보지요. 하지만 언제나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풍성한 대숲을 이루기 위해 땅속에서 5년간 힘을 기르는 대나무 뿌리와 같아요. 그만큼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요. 부모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대나무를 키우는 그런 마음으로 자녀들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문용린 교수는 65년 인생길 고비마다 그때그때 만난 사람들이 자신을 이끌어주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래주었듯이 자신도 그렇게 진심으로 사람이 가는 길에 ‘희망’이 될 수 있길 기도해왔다. 한 사람을 제대로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중요한 것인지를 알기에,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도 느꼈다. 결국 교육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문용린 교수.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랑의 교육이 성장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