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김.성.환.씨의 이야기 26세. 대진대 생명과학과 4학년
특별히 되고 싶은 게 없었다. 그저 점수에 맞는 대학에 들어갔다. 어렸을 때는 나름 꿈이 있었는데 막상 성인이 되고 현실을 따지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수업은 땡땡이, 방학 땐 음주가무에 흠뻑 빠져 살았다.
그러던 중 집으로 날아온 입영통지서. “군대 가면 인간 된다.”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그래, 군대 갔다 오면 다 해결되겠지!’ 하지만 군 생활 2년은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뿐이었다. 그동안 누구도 나를 통제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군대의 계급 생활은 훨씬 더 큰 구속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얘기만 해도 내 험담을 하는 거라 착각할 만큼 피해 의식에 빠졌고 그 마음은 나를 정말 우울하게 했다. 사회에 나온 지 이틀째 되는 날 나는 마음수련 대학생 캠프에 들어갔다.
수련을 하며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대학교수, 부모님은 명문대 출신이셔서 나에 대한 기대치가 컸다. 한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이 안 나와 엄청난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게 다 마음속에 쌓여 있었다.
왠지 안 될 것 같고, 뭘 할지 모르겠고, 공부할 때도 잡생각 때문에 우왕좌왕 했던 기억,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하러 간 군대. 선임의 ‘갈굼’에 부딪쳤던 내 자존심과 이기심. 평생 내 멋대로 살았기에 조그만 통제도 유난히 힘들어했던 나. 나를 좌절하게 했던 기억들도 다 버렸다. 힘든 마음도 분노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버리며 그것이 다 가짜임을 알았고 신기하게 정말 사라졌다.
예전의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는 것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가장 행복한 일임도 알게 되었다. 이제 현실 도피나 방황은 끝났다.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 없이 할 수 있는 일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다니, 너무 행복하다.
동생 김.지.환.씨의 이야기 23세. 강원대 건축학과 2학년
나는 마음속에 화가 많았다. 왜 그런지는 몰랐지만 형과 비교하는 아버지도 매사에 간섭뿐인 엄마도 싫었다. 학교 선생님과도 싸웠다. 고3 때는 학업 스트레스가 더해져서인지 턱에서 계속 소리가 나고 아팠다. 힘들어서 그냥 쉬고 싶었다.
엄마와 형의 권유로 마음수련 대학생 캠프에 들어갔다. 아빠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부터 같이 있는 것도 싫었던, 고집 세고 자존심 강했던 아빠. 그런데 수련을 하며 내 입장에서 벗어나 보니 아빠의 진짜 모습이 보였다. 우리를 위해 평생 고생하신 너무나 감사한 아버지. 부끄럽고 죄송해서 밤새 눈물만 흘렀다.
내가 싫어했던 아빠의 모습들은 알고 보니 내 마음속에만 있는 나의 모습이었다. 이 마음을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는 없어 방학 내내 아빠에 대한 마음들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버렸다. 부모님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 그래서 반항했던 일들, 형에 대한 열등감도 다 버렸다. 다시 아빠를 만나자, 신기할 만큼 편안했다. 그렇게도 아빠와 있는 모든 순간이 무섭고 괴로웠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제 엄마가 안 계실 때면 새벽에 일어나 식사도 챙겨드리는 등 아빠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모든 게 남 탓이었다면 지금은 모든 게 내 탓임을 안다. 그리고 진짜 자유와 행복을 느낀다. 이런 행복이 정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면 참 좋겠다. 부모님께, 그리고 옆에서 늘 함께해주는 형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