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 Hee Kim is 60 years old and a housewife, artist, and the mother of two. Last October she held her first exhibition entitled “Our Pictures” About 10 years ago she became interested in painting Folk Art. At the exhibition she showed 26 pieces of her work; including “Noh-an-do,” a drawing of wild geese and reeds, and “Chek-ga-do,” a drawing of a bookstand. She says that emptying the mind is like peeling away a cellophane film overlaying the original. This is her story of throwing away the mind.
On a day lit by the autumn sun I opened my first exhibition. It was my intention to prepare a small cozy place for my friends to visit, rather than present my work to the public. But thankfully many people came to the exhibition, so it was a happy time and as lavish as a fully opened yellow chrysanthemum blossom.
When I was nine years old it was my dream to be an artist. I was drawing some dolls, and also some clothes to dress them up with, when my father said to me: “you are very good at that.” Just by him saying that I thought: “Oh, I should be an artist in my life!” Since then I have never thought about another career.
I was accepted into a fine arts college and majored in oriental painting. After graduation I worked in an office, met my husband, got married and raised two children. I stopped painting for ten years in order to fulfill my duty as a mother and a housewife. One day I longed to find my way back to the artist’s life, so I started painting again. I thought this would be enough to make me happy.
At first the fact that I was able to draw again really was enough to make me feel happy. Soon, however, I wanted to exhibit my work. But since I did not have any experience and no reputation I could not enter even the smallest group exhibition. However, I was able to participate in open exhibitions and public contests. Yet I was stressed out when other artists in the exhibition received better awards than I did.
I would think: “I can do better than that… That guy is not that much better than I am…” I really hated the narrow-minded self that kept on making comparisons about others. I even promised myself that I wouldn’t do that again, but I could not escape from such thoughts at all. I kept thinking about which contests I would submit my work to and which award I wanted to receive. Art fettered me, and in the end I came to think it was not the way I wanted. Then, in 2006, I began doing Maum Meditation. Actually, when my sister suggested it to me, my son started doing it first. After he began meditation his mindset changed completely.
My son was always at the top of his classes in school, but he also had a lot of stress because he obsessively thought he had to have those top honors all the time. One day he said to me: “In the past I always had to struggle to maintain my top position in class. But after doing Maum Meditation I just have as my goal to be in the top position. Now I have fun learning more; and I still have the same result except that now I enjoy studying!” His words touched me as he had found the joy of learning and it was not laborious for him anymore. It was right after I saw this change in him that I started Maum Meditation.
While I was looking back on my life and throwing it away in the meditation, from deep down in my mind these words came to me: “It’s Freedom!” I was amazed by this! It really was the first time I had ever felt this much relief. I thought I had lived quite well, happily and freely. I felt as if something I had unknowingly been shackled to had exploded and blown off me. I continued to throw away the mind. Then, I realized that the self I had thought was “me” was not actually me, and the “real me” was the forever-living existence of the mind that is as broad as the infinite Universe. It was just astonishing!
My life had actually gone pretty smoothly. I was raised by good parents, my children turned out really well, my husband’s business was successful, and also my in-laws were very good to me as well. Yet, I didn’t have any gratitude towards anyone or anything. Even though I was doing what I enjoyed doing the most, my artwork, in reality I was only trapped in a sense of inferiority from comparing myself to others. I perceived that what people yearned for most in life was pride. Likewise, my paintings were just a projection of my pride. I felt I had to draw better than others did; I had to get complimented and highly recognized. At that very moment I became distant from my artwork. Painting is a form of expressing one’s mind world, and all of these minds had been portrayed in my paintings.
In my meditations I threw away my minds; they were like tree branches, one leading on to another one and another one after that. I threw away even the memories about painting, like the brushes, the art books, the galleries I had visited and so on. Then one day I became natural and comfortable with painting. Emptying the mind was just like peeling away a layer of cellophane that had been adhered to my life. Although you peel off that cellophane overlay, what was originally underneath is still there. So, after eliminating the colored glasses of the mind, I was able to know what it is to act and live without mind.
Painting itself is a joy to me now. I no longer have such thoughts like I must paint exceptionally well; or that the color selection must be just right. I just paint, and the color comes naturally. Now, the pieces get done.
From time to time I feel that the fine arts people in olden times also had this kind of mindset when they created their artwork. Our ancestors painted to reflect deeply on their inner selves rather than to gain recognition from others. Therefore they tried to empty their minds beforehand. These days I truly feel deeply that one has to subtract one’s mind. If you are full of thoughts then you are overwhelmed by them and cannot faithfully live in the moment, no matter what you do.
A middle aged man who visited my exhibition said “I like your paintings as they portray no self.” I was grateful for him, and honestly liked his comments. Another visitor also told me “I just want to sit and rest here, your gallery is so peaceful.”
It is my wish that my paintings genuinely give comfort when they are hung in a home. There have been many pieces created by many folk artists down thru history. I would like to create pieces that always fit into any home, art that feels like it belonged there from the beginning. I would like to live such a life.
20대 중반의 직장 여성입니다. 저는 너무 소심한 성격에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못 들어서 고민입니다. “오늘 이쁘네” 칭찬해주면 저 사람이 오늘 뭐 부탁할 거 있나? 하고 “청소하자” 하면 내 자리가 지저분한가?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그런 혼자만의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오해하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앞으로 사회생활이나 잘할 수 있을지…. 저도 심플하고 쿨하게 살고 싶은데 정말 어렵네요.
저 역시 그랬기 때문에 공감이 갑니다. 어떤 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어떤 날은 타인이 했던 말이나 동료의 행동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런 저를 가만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보니 타인의 행동을 그냥 그 자체로 해석할 때는, 제가 건강할 때였습니다.
어떤 힘든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을 때 등 ‘자존감’이 높아진 경우이고, 반대로 제대로 못한 경우 유독 타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럴 때면 저는 제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녀님께 먼저 휴식을 권유하고 싶네요. 여행을 다녀오거나 좋아하는 걸 해보는 것 등 무엇이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한번 가져보세요. 그렇게 내 스스로의 자존감을 먼저 찾으려 노력해보세요. ♣ 왕지상 / 직장인
저는 소심해도 괜찮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좀 소심하면 어때요? 저도 한때는 소심한 제가 너무 싫었지만, 어느 순간 그냥 받아들이고 나니 편하더라고요. 그리고 소심한 사람은 사실 믿고 사귈 수 있어요. 소심하니까요.^^ ♣ 김진현 / 직장인
저도 님과 비슷한 20대를 보냈습니다. 트리플A형이라고 할 정도로 소심하고 망상이 많아서 불면증도 심했고요. 30대에 접어든 어느 날, 우연히 책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세상이 보내준 선물이구나. 그걸 알게 된 순간부터는, 내 잣대로 짓고 부수기보다는, 무슨 말이든 쿨하게 나를 돌아보는 잣대로 삼았던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정말 청소를 못했다 여기면, 그때부터 청소하면 되는 거고, 예쁘다고 하면 그냥 나를 격려해주시는 소리구나, 자신감을 얻고. 용기를 내어 세상을 믿어보세요. 아무리 안 좋게 느껴지는 거라도, 정말 모든 게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것을요. 그러면 당연히 세상 사람들도 나를 반가이 맞아줄 거예요. 파이팅!^^ ♣ 장혜정 / 직장인
소심한 성격, 저는 이렇게 고쳐봤어요. 자신만의 기준을 정하는 거예요. 저도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무슨 일을 하고 나면 후회를 많이 하고 결정도 쉽게 못 내렸는데, 어느 날, 딱 3번만 생각하고 무조건 결정하기로 기준을 정했죠. 예를 들면 ‘청소하자’ 하면 내 자리가 지저분한가? 지금까지 내가 청소를 못 했나? 이렇게 두 번만 생각하고는 “제 자리가 좀 지저분한가요?” 하고 정말 궁금한 점은 물어보는 겁니다.(단, 여쭤볼 땐 항상 정중하게.^^) 그렇게 생각 끊어보기 훈련을 하다 보면, 머지않아 쏘 쿨~ 녀가 되어 있을 거예요.^^ ♣ 이주현 / 직장인
사실 말끝마다 오해하는 사람을 보면 다들 굉장히 피곤해해요. 그러다 보면 그 사람에게 아예 말을 하지 않게 되죠. 그런 고민이 될 때 살짝 미소 짓는 습관을 가져보세요. 그러면 상대방도 상큼하게 다가오고, 고민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 임정 / 직장인
자꾸만 남의 말에 신경 쓰는 것은,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다, 그런 생각이 강해서더라고요. 그러니까 우선은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마음부터 버려봤으면 좋겠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남의 시선이 아닌 바로 내가 가꿔가는 진정한 행복이잖아요. 사실 남들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지는 않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할 시간에 업무 능력을 키워보라고 해주고 싶네요. 그러면 스스로 생긴 자신감 때문에,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쿨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사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 보니 예전에 내가 뭘 그렇게 고민했나, 우스운 것이 많아요. 후회 없는 삶을 위해, 파이팅입니다.^^ ♣ 김은희 / 한국어 지도사
임신 8개월 차 직장 예비맘입니다. 맞벌이를 하고 있고요,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친정엄마는 언니 아기를 돌보고 계셔서 아기가 태어나면 시어머니께 부탁하려고 하는데, 남편은 그 핑계로 시댁에 많은 돈을 드리자고 하네요. 시아버지도 일을 하시는데 시댁 가계까지도 책임지고 싶은가 봐요. 저보고는 절대 직장을 그만두면 안 된다고 하면서. 시댁에 많은 돈을 드리면 제가 직장 다닐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남편이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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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문진정 & 일러스트 최정여
밥값보다 커피값이 더 비싼 요즘, 커피 한 잔을 1,500원에 마실 수 있는 방법, 있기? 없기? 있기! 바로 청년 사회적기업 ‘브링유어컵(Bring Your Cup)’에 그 방법이 있다.
학교 선후배로 만난 이범규(23), 전지웅(26)씨는 졸업하기 전에 뭔가 의미 있고 다이내믹한 일을 해볼 게 없을까 아이디어를 낸 끝에 지난 1월, 브링유어컵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게 된다. 텀블러를 제작·판매함으로써 일회용 컵 사용도 줄이고, 제휴한 카페에 그 텀블러를 가지고 가면 아메리카노를 1,500원에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든 것. 이후 김민주(25)씨와 김영준(30)씨가 합류했고 지금은 홍대 앞, 신촌 등 서울 대학가의 50여 개 카페에서 1,500원만으로도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공공장소에서의 컵 대여 서비스, 환경 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한 크고 작은 일들을 꾸려가고 있다. 이 청년 기업의 당찬 움직임에 동참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500원으로 커피 마시는 법
① 브링유어컵 홈페이지(bringyourcup.co.kr) 또는 제휴카페를 통해 텀블러(1만 원)나 멤버십 링(개인 텀블러가 있는 경우 사용, 3천 원)을 구매한다.
② 멤버십 링 구매 경우 링을 텀블러에 장착한다. ③ 브링유어컵 홈페이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내 주변 제휴 카페를 검색한다. ④ 텀블러를 들고 제휴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1,500원에 테이크아웃한다.
커피 전문점에서는 1년에 3억 개 가까이 되는 일회용 컵이 사용되는데 그중 14%만 재활용이 될 뿐 나머지는 그대로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회용 컵 사용량도 줄이고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직접 설문 조사를 해서 대중에게 인기 있는 디자인의 텀블러를 골라 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선 무작정 홍대 앞 카페를 일일이 찾아가 사장님을 만났어요. ‘1,500원’ 얘기를 꺼내자마자 ‘우리는 그런 원두 안 쓴다’고 손사래를 치셨죠.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어요. 하지만 3주간 80여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좋은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사장님을 한 분, 두 분 만나게 되었고, 가능성을 보게 되었지요.
반신반의하던 손님들도 한번 이용해 보고 나서는 가게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좋은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일회용 컵 사용에 대한 경각심도 갖게 되고, 자신의 작은 행동이 환경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는 만족감과 뿌듯함도 느끼고요. 차근차근 자연스럽게 커피 문화가 바뀌고 개인 컵 소지 문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전지웅/브링유어컵
처음 저희 커피집에 제안을 하러 오셨을 때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신다 싶었어요. 그래서 선뜻 참여하게 되었고 작은 힘이나마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일에 쓰이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서너 분은 텀블러를 가지고 오세요. 근처의 대학생들뿐 아니라 중장년층께서도 굉장히 관심을 가지시더라고요. 손님들이 뿌듯해하시고 좋아하시는 거 보면 기분이 참 좋아요. 그리고 오히려 정상 가격보다 더욱 커피 품질에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가격이 저렴하니까 혹시나 무성의하게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안 드시게 하기 위해서요. 손님들 입장에서는 좋은 커피를 저렴하게 마실 수 있고 일회용품을 많이 안 쓰게 되니까 환경에 도움이 되고, 카페 입장에서는 홍보도 되고, 좋은 일에 참여한다는 보람도 느끼고, 여러모로 참 좋은 매개체를 만들어주는 사업인 것 같습니다.이정화/남산커피집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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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시아버님의 연세는 올해 90세이십니다. 저는 아버님을 뵐 때마다 큰 존경심과 함께 놀라울 때가 많습니다. 여고 교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하신 아버님이 교편생활 내내 새벽 6시에 출근하신 건 충남, 대전 교육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퇴직 후에도 중소기업을 창립하셔서 88세까지 운영을 하셨습니다. 출퇴근을 하실 때도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로 환승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도 꼭 계단을 이용해서 다니셨지요. 2년 전 회사를 정리하신 후에도 매일 한 시간 반씩 집 앞의 하상 도로를 걸으십니다. 건강해야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아버님은 모든 사람의 전화번호를 다 암기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전화를 하면 바로 누구인지 알고, 전화를 거실 때도 암기하고 계신 번호로 전화를 하십니다.
올해 환갑인 저는 남편과 결혼을 한 지 35년이 됐습니다. 우리 가족은 타향에서 27년을 살다가 4년 전 남편의 고향인 대전으로 이사를 왔지요. 이사를 온 후 저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시댁에 갑니다. 그동안 객지에 사느라 자식 노릇 한번 변변히 못 한 게 죄송해서, 지금부터라도 저녁 식사도 함께하고 자주 뵈어야겠다 싶어서입니다.
아버님은 저와 대화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주로 집안 이야기나 자녀 교육, 정치와 역사 이야기 등을 말씀하시지요. 퇴직 후 하루 종일 집에 계시게 되면서는 컴퓨터 바둑도 두시고, 요즈음은 1000피스 퍼즐을 맞춘다 하십니다.
어머니마저 올 7월에 돌아가신 후로는 더욱 외로워 보이십니다. 치매를 앓던 어머니는 하루 종일 같은 말을 반복하시거나 물으셨지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머니의 똑같은 질문에 매번 처음처럼 대답을 해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어머니께서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게 다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를 선산에 묻은 후 아버님은 한 달을 편찮으셨습니다. 늘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던 어깨도 축 처지셨지요. 아버님의 허전한 그 뒷모습을 보며 저도 옛날 생각이 스쳤습니다.
제가 서른일곱 되던 해였습니다.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병으로 오른쪽 폐를 절단하는 큰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 후에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아버님은 몸이 어떠냐고 늘 전화를 해주셨습니다. 또 제가 장사를 하느라 시어머니의 생신날을 기억 못 할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때도 새벽이면 아버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잠시 방을 비웠을 때 전화를 하셔서 “어미야! 오늘 네 어미 생일이다. 이따 전화라도 해라” 하고 바로 끊으십니다.
그럼 저는 아침 9시쯤에 전화를 합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동서들과 함께 있으므로 늘 아버님이 전화를 받게 되지요. 아버님은 “어미냐? 그래. 네 어미 바꿔줄게” 하고 마치 전화를 처음 받는 것처럼 하십니다. 어머니는 전화라도 해준 게 고맙다고 늘 말씀하셨고요.
매주 월요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시집에 가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맛있는 음식만 보면 아버님 생각이 납니다. 결혼 후 안정된 생활을 못 해서 늘 걱정을 드렸던 셋째 아들인 남편은 아버지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효자입니다. 이제 우리 가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아버님께서 건강하게 오래 사시도록 잘 모시고 싶습니다.
아버님, 셋째 며느리는 아버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격려 덕분에 고단했던 인생을 잘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글 김성희 60세. 주부. 대전시 유성구 원내동
나에게 감동을 준 사람, 특별한 사람,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 사연을 소개해주세요. (edit@maum.org)
독자님의 마음을 대신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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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 박민순님께
셋째 며느리 김성희님의 마음을 담아
‘소중한 시아버지께’라는 문구와 함께 예쁜 꽃바구니를 선물로 보내드렸습니다.
협찬 예삐꽃방 www.yeppi.com
배달 치킨보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칠리소스 치킨구이입니다. 야들야들, 쫄깃한 닭다리 살이 매콤하고 달콤한 소스와 잘 어우러져 시원한 맥주와 함께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재료(2인분) 닭다리살 4개분, 고추장 1큰술, 케첩 2큰술, 토마토 1개, 양파 1/4개, 식용유 1큰술
① 닭다리살은 깨끗이 씻은 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앞뒤로 노릇하게 익히면서 속까지 익힌다. ② 토마토와 양파는 다진다. ③ 분량의 고추장, 케첩, 다진 토마토, 다진 양파를 골고루 섞어 한소끔 끓인다. ④ 철판에 ①의 고기를 담은 후 ③의 소스를 올린다.
Single’s Tip
닭다리살은 뼈를 발라놓은 것을 활용하면 편리합니다. 취향에 따라 닭날개나 닭안심도 활용해보세요. 토마토는 푹 익혀도 좋지만 살짝 살캉하게 씹히는 질감이 있도록 익히면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글 문인영 / 자료 제공 지식채널
문인영님은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현재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다양한 잡지와 방송매체를 통해서 메뉴 개발과 스타일링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싱글만찬> <다이어트 야식> <메뉴 고민 없는 매일 저녁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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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에코 토일렛(Eco Toilet), 친환경 변기로 세면대에서 사용한 물을 변기에서 재사용하는 것이다. 변기가 세면대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인데 변기에 수조와 레버가 각각 2개씩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라 이름 지을 때도 세면대보다는 변기(Toilet)에 더 높은 비중을 두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물을 절약하는 콘셉트는 아니었다. 평소에 물 절약이라고는 샤워를 5분, 양치질을 2분 안에 끝낸다는 확고한 생활 수칙 외에는 별로 없다.(겨울에는 1분 감소^^;) 원래 가구를 좋아해서 세면대와 변기를 책상과 의자처럼 만들면 어떨까 하는 형태적인 호기심으로 접근하였다. 스케치를 여러 장 하다 보니 세면대와 변기가 마침 높이도 서로 달라서 세면대의 물이 자연스럽게 변기로 흐르는 아이디어를 추가했다.
제품의 원리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물 내리는 레버가 2개, 수조 통이 2개로 나뉘어 있다. 세면대에서 사용한 물은 왼쪽 수조로 모이는데 물이 차면 센서가 감지하여 레버 옆의 작은 LED가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게 된다. 그때 왼쪽 레버를 내려서 물을 사용하면 된다. 오른쪽 수조는 왼쪽 수조가 다 차지 않았을 때 언제나 사용할 수 있다.
어려웠던 점은?
수조가 2개일 때 생기는 문제, 센서 작동 가능성, 왼쪽 수조에 물이 넘칠 때 빠지는 배수구, 재사용수의 위생 처리, 머리카락 청소 등 사용하면서 생기는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재사용수의 청결에 대한 기준 또한 사람마다 다른데, 재사용수를 중간 통로에서 정수 처리하거나 일정 시간마다 약품 처리하는 방법으로 청결 문제를 보완할 여지는 있지만 ‘재사용’이기에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비용을 추가한다면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반응은?
각국에서 다양한 분들이 반응을 보여주셨다. 어떤 분은 ‘자신만의 재활용수 화장실을 만드는 걸 몇 년 동안 실패했는데 이 제품을 보고 다시 도전한다’는 메일을 보내셨다. 또 끝내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멕시코 주택청에서 이 제품을 보급하고 싶다는 연락도 왔었다.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디자인을 하면서 좋은 디자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알 수 있었다. 우연찮게 발견한 아이디어 때문에 나 스스로도 생각이 바뀌었듯이 다른 사람들도 이 디자인을 보고 물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다.
만든 사람 장우석(30)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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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된 특집 드라마 ‘못난이 송편’이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짧은 특집극인 만큼 전체 구성이나 인물 설정 등은 단편적이었지만 그만큼 효과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큰 호응은 ‘왕따’ 현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왕따의 논리는 동물의 세계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강자는 살아남아도 약자는 버림받는 원시적인 약육강식의 논리이자,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힘의 문제입니다. 드라마에서 언급한 대로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행위임에도 틀림없고요.
반장 예빈(주다영 분)의 따돌림으로 인해 자살까지 시도한 세진(조정은 분)은 같은 반 친구인 유민(김보라 분)을 왕따시키면 자신은 안전한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역으로 왕따가 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거죠. 한때는 가해자였던 세진은 아슬아슬한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약한 동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가해자 아이들은 피해자가 잘난 척해서, 못생겨서, 남들과 달라서라고 각종 핑계를 대지만 왕따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수천 수만 가지가 있습니다. 그들이 동물적인 생존 원리에 동의하고 추구하는 이상 핑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드라마 속 아이들은 하나같이 왕따의 조건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남들에게 약점 잡히지 않는 훈련을 어릴 때부터 받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입장에 서면 최소한 자신은 왕따를 당하지 않으니 먼저 선동하는 법도 본능적으로 배웁니다.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는 이런 질서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익숙하게 반응합니다.
오순복(경수진 분)은 놀림당하지 않기 위해 오아영으로 개명합니다. 세진의 부모는 잘못했어도 약점이 될까 봐 사과하지 않습니다. 못생긴 아이는 성형수술을 하고 뚱뚱한 아이들은 살을 뺍니다. 시골 출신이란 것과 가난도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게 약점이 될 수 있는 학교에서 재수 없이 걸리면 왕따를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나만 왕따를 당하지 않으면 된다’는 그들의 질서는 살벌하다 못해 끔찍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생존을 가르친 건 바로 우리들의 사회입니다.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해도 아이들의 생존 원리는 전혀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한 경쟁을 추구하는 사회,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라는 자조 섞인 비평을 우리는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원시적인 생존 본능만 배우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그대로 지켜주고 싶다면, 또 행복한 학창 시절을 갖게 해주고 싶다면 누군가 먼저 달라져야 하고 그 주체는 성인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약점부터 감추고 남의 약점을 들추는 아이로 자라서는 안 된다면, 부모들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세진이의 어머니가 깨닫고 선생님 주희(김정화 분)가 변하고 소정(장지은 분)이 순복을 위로하기 시작한 것처럼 누군가는 먼저 변해야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죠.
드라마 한 편이 잘못 흐르고 있는 사회의 질서를 바꿔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언급되어야 할 사회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생각과 태도가 바뀌는 사람들도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남과 다르면 못나고 약한 것이 아니라 ‘못생긴 송편일수록 더 눈에 잘 띄고 맛도 좋다’는 말을 기억해주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글 샤인 문화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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