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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로 향하는 아내의 굳은 심지

백일성

일요일 오후 아내가 안방 화장실 안에서 문을 빼꼼 열고, 마치 영화 ‘링’에 나온 귀신 사다코처럼 머리를 풀어헤치고 화장실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놀래서 지켜보고 있는 저에게 힘겹게 한마디 합니다. “자기야… 아… 아… 병원… 가자… 아….” 전날 밤부터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속이 안 좋다고 하더니 아침에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밥도 못 먹고 죽도 겨우 한 수저 뜨다 말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습니다. 휴일이라 응급실이라도 가자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계속 누워 있었습니다.
점심때가 지나고 열도 좀 내리고 좋아지는가 싶었는데 급기야 화장실에서 앞이 노래지는 현상을 느끼고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에 사다코가 되어 화장실을 기어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워하는 병원인데 자기 입으로 가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정말 급했나 봅니다. 부랴부랴 지갑과 차 키를 챙겨서 아내를 부축하고 서둘러서 나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잠시 저의 행동을 제지합니다. 그리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마디 합니다.

“아… 자기야… 아… 좀… 씻고… 아….” 그리고 다시 화장실로 기어 들어갑니다. 이런, 잠시 후 나온 아내를 다시 부축해서 나가려고 하는데 다시 아내가 제 손을 힘없이 뿌리칩니다. 그리고 또 한마디 합니다. “아… 아… 자기야… 속옷 좀… 속옷 좀… 갈아입고… 아….” 이런, 주섬주섬 속옷을 찾아서 건네주니 이제 얼굴까지 하얗게 질린 아내가 웅얼거립니다. “아… 아… 자기야… 그… 색깔 말고… 보라색… 보라색 꽃무늬… 아….”


이런… 씨, 속옷까지 갈아입히고 나가려는데 제 손을 또 잡습니다.

“또 왜?” “아… 자기야… 이 옷 땀에 젖어서… 안 돼… 옷 갈아입고… 아….”

옷장에서 트레이닝복 한 벌을 꺼냈습니다. 아내가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청바지를 집었습니다. 다시 고개를 젓습니다. 검정 레깅스를 집었습니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래도 윗도리는 아내가 베이지색 후드티를 직접 지목해서 빨리 찾았습니다. 옷을 다 갈아입히고 아내를 다시 부축하는데 아내의 눈빛이 떨립니다. “뭐? 또? 뭐?”

“아… 아… 자기야… 그래도… 양치는 하고 가자… 아….” 이런, 망고씨….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꼼꼼히 어금니까지 양치질을 다 끝내고 마지막으로 혓바닥을 닦다 기어코 변기통을 부여잡습니다. 부축을 해서 나온 건지 아니면 멱살을 잡고 나온 건지 하여간 아내를 데리고 현관으로 나섰습니다. 현관문이 닫히는 순간에도 아내는 현관문 안에 대고 웅얼거립니다. “아… 송이야… 아… 저녁 챙겨 먹고… 저기 냉동실에… 아… 돈까스….” 할 수 없이 목덜미를 잡아끌고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장염 판정을 받고 응급실에서 3시간 동안 수액 두 병, 주사 한 대, 해열제 한 통을 맞았습니다. 아내 곁을 지키는 동안 일요일 저녁 응급실은 참 분주했습니다.

교통사고로 실려와 나란히 누운 신혼부부, 피를 토하고 실려 오신 할머니, 술에 잔뜩 취해 길거리에 누워 있다 119에 실려 온 여고생, 한꺼번에 약 13봉지를 먹었다는 아주머니, 그리고 5시간 동안 소변이 마려운데 안 나온다던 아가씨….
아내가 좀 살 만한지 배고프다며 일어납니다. 김치가 먹고 싶다고…. 그리고 그제야 응급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봅니다. 귓속말로 한 침대 한 침대 알려주며 무슨 일로 왔는지 아내에게 이야기해줬습니다. 이제는 웃음까지 되찾은 아내가 나지막이 물어봅니다. “저 사람들이 나는 왜 누워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까? ㅎ.”

저도 나지막이 대답해줬습니다. “다 알 거야 아마… 아까 간호사하고 나하고 얘기하는 거 들었을 거야… 당신 화장실에서 똥 싸다 쓰러졌다고 말했거든.” “이런… 레몬씨, 포도씨, 수박씨… 아저씨 둑는다~~” 동갑내기 아내의 입이 걸어진 거 보니까 다 나았나 봅니다. ㅎ

 

올해 마흔세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학생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열린 고민 상담소

4년 차 주부입니다. 처음에는 시부모님을 친정 부모처럼 모셔보리라 생각했고, 전화도 자주 하고 용돈도 자주 드리는 며느리였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어머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불편하게 다가왔어요. “오징어 데침은 한 번 더 썰어라.” “명절 선물은 다른 걸 준비해라.” 별것 아닌 말씀에도 상처받기 시작하면서 이젠 전화도 하지 않는 무심한 며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저에게 어머니는 “우리 며느리가 변했네” 하십니다. 그렇지만 저는 시골 가기 전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잔소리와 트집 잡히는 것이 두려워서요. 물론 필요한 대화는 하지만 죄송하고 불편할 뿐입니다. 현명하게 시부모님과 대화할 방법이 있을까요?

저 같은 경우엔 시부모님으로 인해 속상할 때면 남편에게 꼭 얘기해요. 대신 미리 말하죠. 난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 나쁘게 말하려는 게 아니고, 이렇게라도 얘기해야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 거 같아서라고. 그러니 그냥 들어주기만 해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마음이 좀 정화가 되고, 내가 잘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일단 남편에게 이야기해서 좀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마음을 풀고 다시 한 번 밝은 척 푼수 짓도 하고 너스레도 떨면서 시어머니께 다가가 보세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가족이니 노력이 필요하죠. 힘내시고 꼭 극복하시길 바라요. 파이팅!!  ♣ 김선미 주부

저도 며느리가 둘이에요. 사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세대 차이가 있다 보니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고, 이런 부분은 이렇게 해주면 좋을 텐데 싶은 게 있기 마련이에요. 그런 게 아무래도 며느리 입장에서는 잔소리처럼 느껴지겠죠. 하지만 시어머니도 잘 지내고 싶어서 그러는 거거든요. 근데 우리 며느리들은 섭섭한 건 그때그때 다 말하는 편이었어요. 처음엔 참 당돌하다 싶고 되게 어색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흘러보니 그렇게 대화를 한 게 앙금도 남지 않고 서로 편하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이제는 모녀지간 같아요. 사실 침묵이 싸우는 것보다 안 좋다고 하잖아요. 우선 며느님이 잘 살피다가, 이때가 괜찮겠다 싶으면 애교스럽게 팔짱 끼면서 “어머니, 저 그때 서운했었어요” “저의 마음은 이러이러했어요” 하는 방법으로라도 대화를 시도해보면 좋겠어요.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침묵하는 며느리보다 그렇게 다가오는 며느리가 더 좋고,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겁니다.  ♣ 황안나 도보여행가

“우리 며느리가 변했네”라는 말이 힌트인 것 같아요. 시어머니는 살가운 며느리가 좋으셨던 거 아닐까요? 그런데 ‘나도 너가 좋다’는 표현에 서투셔서, 예쁘다, 잘한다는 말씀 대신 살림을 간섭하고, 말과 행동에 트집 잡는 걸로 대화를 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저희 어머니도 그런 분이어서 잘 알 것 같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향해 가졌던 마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고, 조금만 더 마음을 열고 다가가 보면 어떠실는지요.  ♣ 이명희 직장인

저는 시아버지를 17년째 모시고 사는 주부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다 맞춰드렸어요. 형편이 어려운데도 현금서비스를 받아서라도 용돈을 드리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예전에 돈을 버실 때 쓰시던 가락이 있다 보니, 카드를 긁어서라도 쓰시고, 친구들 사주시고. 말 한마디에도 ‘니가 뭘 아냐’며 부정적이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기본적인 대화 이외에는 눈도 안 마주쳤어요.

하지만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결혼 7년 차쯤 저는 용기를 내서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죠. 형편이 어려울 때는 이래저래 해서 돈을 못 드린다고 말씀드리고. 대신 여건이 되면 아버지랑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찜질방도 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아버지의 살아오신 얘기들을 풀어내셨지요. 그 뒤로 조금씩 바뀌시더니, 지금은 오히려 저를 정말 많이 도와주세요. 제가 일하느라 늦게 들어오면 밥도 해놓으시고 빨래까지 해놓으실 때도 있어요. 지금은 아버지랑 같이 살게 돼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저는 우선 고민녀님이 어머니께서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를 들어볼 시간을 가져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머니가 왜 그러실 수밖에 없는지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될 수 있을 거예요. 한 번 해서 안 되면 몇 번이고 대화를 해나가야죠. 조금 더 솔직하게 진실하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시기를 바랍니다. ♣ 정해옥 주부

고1, 중2 딸을 둔 40대 엄마입니다. 딸들은 서로 부딪히기만 하면 얼굴 붉히며 싸우기가 일쑤입니다. 욕설이 섞인 말이 오가고 양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혼내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지만 그때뿐입니다. 인성이 바른 딸들로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걱정은 걱정인형에게’ 돈워리컴퍼니 김경원 대표

취재 문진정

시험 걱정, 취업 걱정, 가족 걱정, 나라 걱정까지 세상의 크고 작은 걱정들로 괜스레 불안하고 답답해서 밤잠을 설치다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걱정을 털어놓을 누군가를 찾는 이들을 위해 걱정인형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그들의 걱정을 나누는 사람이 있다. 독립 영화 감독이자 사회적기업 ‘돈워리컴퍼니’의 대표 김경원씨다.

김경원씨는 미국 유학 시절 과테말라인 친구로부터 걱정인형 이야기를 처음 접하게 된다. 과테말라 고산지역 인디언들은, 평소에 걱정이 많아 잠을 못 자는 어린아이에게 걱정인형을 선물했는데, 인형에게 걱정을 이야기하고 잠들면 밤사이 인형들이 걱정을 대신 해준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은 과테말라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고 했다. 순간 김경원씨는 한국 친구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2009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걱정인형을 직접 만들고 홈페이지를 통해 사람들의 걱정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손가락 마디만 한 이 작고 귀여운 ‘걱정이’들은 입소문을 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며 예상치 못한 인기도 끌게 되었다. 애초에 이 캠페인으로 돈을 벌 생각은 없었던 김경원씨는 걱정인형 10세트가 팔릴 때마다 1개의 축구공을 제3세계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덕분에 현재까지 축구공 1,500여 개와 스케치북, 크레파스 등이 캄보디아, 필리핀 등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전해졌다. 소박한 공간에서 걱정을 털어놓고 서로 위로하다 보면 내 걱정은 사소해지고,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주게 되는,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재미있고 신기한 나눔이다.

걱정인형 만나기

① 돈워리컴퍼니(dontworryworry.com) 혹은 Yes24 홈페이지에서 걱정인형을 주문한다. (걱정인형 1set(5개)에 만 원) ② 자신의 걱정을 돈워리컴퍼니 홈페이지에 남긴다. ③ 100% 수작업으로 한 땀 한 땀 만들기에 일시 품절, 배송이 지연될 수 있지만 걱정 말고 기다린다. ④ ‘걱정이’들에게 내 걱정을 다 털어놓고 편히 잠든다.돈워리컴퍼니 바로가기

돈워리컴퍼니 바로가기 http://dontworryworry.com

김경원씨 이야기

걱정인형을 판매하는 이 캠페인은 Don’t Worry Be Happy의 Be를 따서 B캠페인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내가 여기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두었고요. 걱정을 말하고 또 들어주는 것 자체를 피곤하고 귀찮아하는 시대에 ‘그래도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묵묵하게 들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됩니다. 그래서 걱정인형을 주문하실 때는 걱정을 적어달라고 부탁드리고, 저희는 그 걱정을 읽고, 마음이 편해지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인형을 만듭니다. 몇 년째 수많은 걱정을 듣다 보니 오히려 제 걱정에 대해서는 덤덤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어떤 걱정이든 마음먹기에 따라 어떨 땐 도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때문에 걱정이라기보단 극복 가능한 도전이라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걱정에 따라서 간혹 손편지로 답변을 해드리기도 합니다. 온라인상에 걱정을 적어주었지만 그 걱정을 보고 있는 사람은 실제 사람이라는 걸 알리는 따뜻한 방법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든지 걱정인형을 통해서 마음이 한결 편해지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인형을 제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소박한 걱정이라도 아무리 힘든 걱정이라도 언제든지 걱정이 있으시면 찾아주시고, 이야기해주세요. 무엇이든 다 괜찮습니다.

마음의 카타르시스를 주던 그 선배

우리가 살면서 가장 믿을 만한 친구를 만나는 시기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고등학교 이전이나, 대학교 이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마음을 열고 편하게 이야기할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선배를 통해 알게 되었다.

15년간의 적성에 맞지 않는 직장 생활 끝에, 나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대학원에 들어가 조교를 겸하며,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정말 잘하고 싶었다. 나의 아이들에게도 자기 계발을 하는 당당한 엄마이고 싶었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통계학이나 역학 등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과목들도 잘하게 되었고, 동기들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에게 물어봤다. 수업 시간에 질문도 많이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그런 나를 교수님들도 인정해주었다. 돌이켜 보면 다른 선배들 눈에는 내가 좀 재수 없게 보였을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런데 그 선배만은 달랐다. 나보다 다섯 살 정도 더 많은 한 학기 선배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계속 학과목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산업전문간호사 생활을 병행하며, 대학원을 시작하신 분이었다. 그 선배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한번은 “보통 선배가 후배에게 질문하긴 쉽지 않은데 선배는 대단한 거 같다”고 했더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못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한테 도움받는 게 어때서. 그러면서 같이 살아가는 거지. 그리고 최은희, 나같이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 네가 돋보이는 거야. 나한테 고마워해야 돼~.”

“인생이라는 게 잘난 사람이 있으면, 못난 사람도 있고 못난 것도 인정하면 즐거운 거”라는 지론을 갖고 여유 있게 사는 그 선배가 점점 편해졌다.

집 방향도 같아서 같이 집에 가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조교 역할을 하며 일의 진행 때문에 어려워하면 “너의 역할은 욕을 먹는 역할이다. 칭찬은 교수님이 받아야 하는 거고” 하며 뭔가 나의 뒤통수를 한 대씩 치는 듯한 명답을 해줄 때가 많았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나는 ‘그 사람밖에 없냐. 이제 안 찾는다, 다른 사람을 찾거나 내가 혼자 하고 만다’는 식으로 아예 피해 버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선배는 “그건 네가 잘나서 그런 거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상대방한테는 오히려 상처일 거다. 너의 진정한 배려는 너의 자존심이 상함에도 불구하고 다가가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그 선배랑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이 위안이 되고 치유가 되는 것 같았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선배라고 해야 하나.

한번은 그 선배가 쓰던 석사 영문 교재를 받기로 한 적이 있었는데, 자꾸 잊어버려서 시험을 코앞에 두고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그거 돈 얼마나 된다고 내가 그냥 사자’ 마음먹었는데, 그 선배가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끝에, 결국은 퀵으로 부랴부랴 보내주어 받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선배가 말했다. “책을 늦게 갖다 준 것은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럴 때 기다려주는 게 나에 대한 배려야. 만약에 내가 주기로 했는데, 네가 사게 되면 나는 너한테 미안함을 갖게 될 거야.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관계가 서먹해질 수 있어. 상대방이 미안함을 갖지 않게 하는 것도 상대에 대한 배려인 거지.”

그렇게 그 선배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나는 내가 왜 그동안 인간관계가 힘들었나 하는 것도 돌아볼 수 있었다. 그 선배는 자존심을 꺾고 다가갈 줄 아는 사람이었고, 나는 자존심 때문에 아예 관계를 피해 버리는 사람이었다.

항상 내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해준 후에야 일의 해결 방식을 이야기해주던 선배. 많은 것이 서툴기만 했던 나에게 인생의 선배가 되어준 그분은 2012년 여름, 졸업을 하고 지금은 산업간호협회 국장으로 계시는 손숙경 선생님이다.

‘내가 이 나이가 되니까 세상에 중요한 것은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더라’고 하던 선배. 늘 나에게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빠른 길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을 제시했던 선배. 언제나 자랑하고 싶은 누구보다도 존경스러운 선배님이다.

최은희 40세. 대학원 박사과정. 서울시 도봉구 창동

손숙경님께는 ‘감사한 손숙경 선생님께’라는

후배 최은희씨의 마음을 담아 난 화분을 보내드렸습니다.

나에게 감동을 준 사람, 특별한 사람,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 사연을 소개해주세요. (edit@maum.org) 독자님의 마음을 대신 전해드립니다.

협찬 예삐꽃방 www.yeppi.com

순대볶음

퇴근길에 분식집에 들러 사온 순대는 다 못 먹고 남길 때가 많죠. 먹자니 배부르고, 버리자니 아깝고, 이럴 때는 냉장고에 하루 정도 보관했다가 집에 있는 채소와 함께 볶아주면 근사한 순대볶음이 됩니다.

재료(2인분) 순대, 떡볶이떡 가는 것 1컵, 양배추 4장, 양파 1/4개, 깻잎 4장, 다시마물 1컵, 고추장 2큰술, 설탕 2작은술, 고춧가루 1작은술, 통깨 약간

① 깻잎과 양배추, 양파는 모두 채 썬다.
② 프라이팬에 양배추와 양파, 떡볶이떡을 넣고, 다시마물을 부어 채소가 부드럽게 잘익을 때까지 끓인다.
③ 냄채소와 떡이 익으면 순대를 넣고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을 넣고 골고루 섞어 약한 불에서 끓여준다. 순대는 속이 풀어지지 않을 정도로 볶는다.
④ 모두 맛이 배면 깻잎을 넣고 통깨를 뿌려준다.

Single’s Tip

돼지고기 육수 대신 불고깃감으로 손질된 뒷다리살로 빠른 시간에 맛을 낼 수 있어요. 라면 사리 대신 생라면을 넣으면 더 좋아요.

문인영 / 자료 제공 <메뉴 고민 없는 매일 저녁밥>(지식채널)

문인영님은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현재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다양한 잡지와 방송매체를 통해서 메뉴 개발과 스타일링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싱글만찬> <다이어트 야식> <메뉴 고민 없는 매일 저녁밥>이 있습니다.

택배는 우리가 지킨다 _에어박스

이름은?
에어박스(Air Box). 공기(Air)를 불어 넣어 Aircap(일명 뽁뽁이)을 만들고 상자 안의 내용물을 보호하는 컨셉의 디자인이다 보니 자연스레 Air Box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택배를 받았을 때 내용물이 덜렁거리고 파손된 경우가 가끔 있었다. 기분 좋게 책을 주문했는데 새 책이 구겨져 있으니 기분이 나빴다. 단순히 Aircap을 상자에 같이 넣으면 된다고 하지만 Aircap을 항상 소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Aircap이 박스와 언제나 함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박스 안에 Aircap을 붙여 만드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제품의 재료는?
상자(종이)와 Aircap(비닐)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자를 접어서 박스를 만들면 안쪽으로 접혀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것으로 내용물을 고정시키는 효과를 줄 수 있다. (필요 없다면 옆으로 치워도 된다.) 그리고 Aircap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 빵빵하게 만들면 쿠션 효과가 있어 내용물을 보호할 수 있다. 상자와 Aircap이 파손되지 않는 한 계속 재사용이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Aircap의 부푸는 정도에 대해 좀 더 보완해야 할 것 같다. 바람을 불어 넣은 뒤 입구를 접어서 테이프로 닫는 형식도 좀 더 좋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 상용화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참 좋을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디자인이란 참 재미있는 일인 것 같다. 주변에서 생활의 불편한 점을 재미있게 잘 풀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상상을 만들고 그 상상으로 웃음도 주고, 고마움도 주는 것이 참 좋다. 이런 재미난 일을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싶다.
만든 사람 하명관, 김현수, 오세원 호서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4학년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김지성

172분이라는 무시무시한(?) 상영 시간에도 불구하고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대해서는 할 말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이 상황에 딱 어울리는 말일 듯싶네요. 최근 본 영화들 중에, 혹은 이제껏 본 영화들 중에,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스토리는 처음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여타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며 이제까지의 영화들이 감히 가질 수 없었던 매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에 넣은 영화라고 할까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줄거리는 간단히 정리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윤회 사상을 기반으로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특정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과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어내면서 윤회 사상은 물론 카르마(업보)나 ‘만물은 연결되어 있다’ ‘모든 생명은 다 똑같은 생명이다’ 등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동양의 사상들이 영화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어 우리가 죽고 난 후에도 계속된다’라는 말이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중심이자 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시대를 초월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연기한 탓에 주연 배우들은 모두 1인 다역을 했습니다. 짐 스터게스는 1인 7역, 톰 행크스, 휴고 위빙, 할리 베리, 배두나(복제인간 포함), 휴 그랜트는 1인 6역, 벤 위쇼, 짐 브로드벤트는 1인 5역, 키스 데이빗, 제임스 다시, 저우쉰, 수잔 서랜든은 1인 4역, 데이빗 기아시는 1인 3역을 연기했죠. 이는 조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는 모두의 일생은 물론 전생과 후생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었겠지요.

1인 다역은 혼신의(?) 분장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백미 중 하나가 각 장면에서 누가 누구로 분장했는지 눈치채는 것이죠. 이 분장이라는 것이 나이, 성별, 인종을 초월하기에 눈치채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각 배우들이 맡았던 배역들의 얼굴이 차례대로 지나가는 보너스 영상이 나오는데,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면서 다 알아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영상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죠.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습니다.

한쪽 삶에서 비극적으로 헤어지거나 사별한 연인들, 혹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꿈꿨던 사람들, 자유와 존재에 대한 사상을 공유했던 사람들이 다른 삶에서 어떻게 만나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초점을 두어 영화를 감상하고 곱씹어보는 맛, 정말 최고입니다.

또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치고 <클라우드 아틀라스>만큼 우리나라와 관련된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물론 여기엔 배두나씨의 영향력이 컸겠지만 말입니다. 일단 옴니버스 구성 이야기들 중 하나가 미래의 서울에서 진행되는 것부터가 그렇습니다. 사방에 한글이고 사방에서 한국어가 들리는데, 묘한 짜릿함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윤회 덕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등장인물들의 또 다른 새로운 삶에 대한 나름의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것도 매력입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등장인물들의 운명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죠. 비록 이번 삶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에겐 ‘영원’이 있습니다. 우주와 호흡하는 영원의 시각에서 볼 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릅니다.

모든 바람이 이곳을 지나간다 _몽골 1

글&사진 이용한 <시인, 여행가>

사람들은 종종 커피를 마시다 말고 카페 창밖을 보며 “아, 여행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여행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여행 가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남아 “어디로 가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뭐, 글쎄 아무 데나” 하면서 얼버무린다. 어디론가 가고 싶지만 거기가 어딘지는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고자 한다면 가야 하는 게 여행이다. 어디든 일단 떠나고 보는 게 여행이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여행은 ‘지금 이곳’의 나를 ‘여기’가 아닌 곳으로 잠시 데려가는 것이다. 이용한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중에서

몽골에 도착하면 우선 말 한 필을 산다.

몽골에서는 보통 말 한 필에 50만 투그릭(한화 50만 원가량). 이제 말안장 뒤에 배낭과 텐트를 싣고, 몽골어와 한국어로 된 지도를 각각 한 장씩 사서 가고 싶은 곳으로 말을 타고 간다. 며칠을 여행하다 말이 지치면 유목민 게르에 들러 말을 교환하자고 한다. 싸게는 2만 투그릭, 많게는 5만 투그릭이면 유목민들은 말을 교환해준다. 또다시 말 타고 여행하다 말이 지치면, 유목민 게르에 들러 말을 교환한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마치고 울란바토르에 돌아오면 40만 투그릭 정도에 다시 말을 되판다. 1개월을 꼬박 여행해도 교통비로 나가는 돈은 10만 투그릭 정도면 해결된다. 실제로 이렇게 여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행 기간이 긴 유럽과 일본의 여행자들 중에는 더러 말 한 마리를 사서 몽골을 떠도는 이들이 있다.

 

몽골에서는 화장실을 갈 때 ‘말 보러 간다’고 말한다.
그것도 모르고 눈치 없이 ‘같이 가자’고 하면 곤란하다. 몽골은 대도시를 벗어나면 따로 화장실이 없다. 눈앞에 보이는 초원과 벌판이 그냥 화장실이다. 자연의 화장실. 그러나 지평선이 보이는 몽골 초원에서 여성들이 ‘말 보러 가기’란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언덕도 없고, 바위도 없다면 더욱 난처하다. 이때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돗자리다. 한 사람이 돗자리로 가려주고 다른 사람이 돗자리 뒤에서 말을 보면 된다. 냄새는 어쩔 수가 없다. 몽골 여성들은 치마폭이 넓은 델을 입고 있어 혹시라도 초원에서 일을 볼 때면 치마폭으로 앞을 가린다.

몽골에는 이런 말이 있다. “델게르 초원에서는 모든 세상이 다 보인다.”

모든 세상이 다 보이는 초원.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델게르 대초원 한가운데는 오름 같은 봉긋한 언덕이 솟아 있고, 그 위에 어버(서낭당)가 자리해 있다. 과연 어버가 있는 언덕에 올라서자 사방의 초원과 지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초원과 지평선이다. 그 광활한 초원에 길이 몇 갈래 나 있고, 멀리서 푸르공 한 대가 먼지를 날리며 달려온다. 그건 마치 세상의 끝에서 또 다른 세상의 끝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보인다. 초원의 모든 바람이 이곳을 지나간다.

끝없이 펼쳐진 Wind-Road.

몽골은 단순하다. 이 단순함은 원초적인 느낌에서 온다. 이를테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초원과 사막. 1년에 260일은 맑고, 1년에 7개월은 겨울이며, 두어 달의 봄날은 모래 폭풍이 휩쓸고 가는 몽골은 혹독하고, 혹독해서 더욱 눈물겹다. 몽골에서는 영하 30도의 긴 겨울과 모래 폭풍으로 범벅된 봄이 지난 뒤의 짧은 여름이 아름답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하늘에서 본 몽골 또한 그저 심심하다.

가도 가도 초원이 펼쳐져 있거나 그곳을 이따금 소 떼나 염소 떼가 지나가는 풍경! 그러나 홉스골로 올라가는 북쪽이나 알타이로 이어진 서쪽은 전혀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몽골에서 드문 산악 지대와 늪지와 호수가 이곳에 펼쳐진다. 특히 물이 풍족한 홉스골 인근에서는 산악 지대를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줄기를 흔하게 만난다. 알타이 쪽으로 방향을 틀면 푸른 초원이 산맥으로 이어져 만년설을 품에 안은 봉우리의 바다를 만나게 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몽골은 티베트나 동남아, 남태평양의 섬나라처럼 대단한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하고 심심하며, 지루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 단순하고 순진한 풍경이 바로 몽골의 진면목이다.

 

이용한님은 196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순수한 풍경과 사람, 고양이를 담아온 사진가이기도 한 님은 그동안 시집 <안녕, 후두둑 씨>, 문화기행서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옛집 기행> 고양이 시리즈 <명랑하라 고양이> 등을 펴냈으며 영화 <고양이의 춤>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여행 에세이로는 <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등 다수가 있습니다.

이 겨울 가장 찬란하게 빛나리 _자작나무

사진 & 글 박강섭 국민일보 기자. <우리나라 그림 같은 여행지>의 저자

하얀 피부로 인해 ‘숲 속의 귀족’이라 불리는 자작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백두산 일대와 강원도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북위 45도 이상의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며, 기름기가 많아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는 우아하다. 엄동설한의 추위를 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곧게 뻗어 올라간 자작나무들의 희디흰 직선은 한겨울의 흰 눈과 만나 보석이 된다. 태양 빛을 받으면 또 그렇게 고스란히 붉은 빛깔과 하나가 된다. 추위 속의 당당함, 범접하기 어려운 웅장함, 그것이 자작나무다.

△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

△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는 역사다. 얇은 껍질 9개가 겹겹이 싸여 있는 자작나무는 매끄럽고 질겨서 종이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경북 경주의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것이다. 또한, 잘 썩지 않는 특징이 있어서 백두산 지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묻었고, 심마니들은 산삼을 캐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보관하기도 했다.

자작나무는 빠르다. 귀한 건축물의 기둥과 대들보로 쓰이는 소나무인 금강송의 경우 20m 자라는 데 200년이 걸리는 반면, 자작나무는 20년이면 충분하다. 다른 나무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5~10배 빠른 셈이다.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산불과 병충해로 인해 나무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 자작나무를 심어왔다.

자작나무는 지혜다. 20~30m 높이로 자라는 자작나무는 햇빛을 흡수하기 위해 높은 가지인 우듬치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모든 가지를 도태시키는 아픔을 감수한다. 가지가 떨어지면서 생긴 검은 생채기는 하얀 껍질과 어우러져 기하학적 무늬로 표현된다.

이 겨울, 자작나무 숲을 한번 거닐어보면 어떨까. 겨울철 낙엽마저 떨군 하얀 자작나무 숲을 마주하는 순간 빛으로 가득한 세상과 마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따뜻한 햇살마저 비춰질 때 반짝반짝 빛나는 자작나무 숲은 그야말로 동화 속 설국처럼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장관을 이룬다. 순백의 수직선들이 만들어내는 한 폭의 수묵화에는 고요함과 편안함이 나지막이 흐른다. 그곳에 세상의 모든 빛이 차곡차곡 저장돼 있다.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두문동재의 상고대가 핀 자작나무

극락조 열여덟 마리를 팔았다

목요일은 고단한 날이다. 저녁상을 물리자 포만감과 피로가 함께 밀려왔다. 목뒤로 팔베개를 하고 누웠으니, 옆에서 신문을 뒤적거리던 아들이 텔레비전 방송 편성표가 있는 면을 접어 내 코앞에 쑥 들이밀었다.   “아빠, 우리 오늘 밤에 이 프로 같이 봐요. 재미있겠어요.”

꼼짝 않고 누운 채 읽어보니 야생 동물 보호 다큐멘터리였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묵묵부답하였다. 옆에 있던 아내가 아들을 거들었다. “오랜만에 식구끼리 한번 봐요.”

나는 비스듬히 몸을 일으켜 신문 속 사진을 자세히 보았다. 사냥꾼이 야생 원숭이를 결박하고 송곳니를 제거하고 있었다. 인간의 무자비한 도륙이 단박에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모르긴 해도 동물판 ‘지옥의 묵시록’일 것이다. 피곤해, 잔인한 것을 보고 흥분하기도 싫어. 불쌍한 모습들도 귀찮아. 나는 신문을 접어 방구석으로 툭 던졌다.

“싫다! 안 볼란다. 징그럽다!”

다시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러다가 스르르 초저녁잠에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창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는 밤 열한 시를 넘어가고, 식구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 있는 귤 접시를 들고 와서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그리고 습관처럼 리모컨을 톡 눌렀다.

화면은 열대우림 속, 원주민이 숨을 죽이고 사냥총에 총알을 장전하고 있었다. 총구는 나무 끝 가장 높은 곳에만 앉는다는 극락조를 향하고 있었다. 초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시청하기를 거부한 프로그램을 우연찮게 혼자 보게 된 것이다. 다행히 잔인한 장면이 다 지나가고 프로그램은 마무리 중이었다. 그런데 해설자의 마지막 내레이션이 내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원주민들은 그날 숲속에서 잡은 극락조 열여덟 마리를 군인들에게 넘겼다. 군인들은 또 돈을 주지 않고 가버렸다. 다음 날 원주민들이 군인들을 찾아가 말했다. ‘당신들은 월급을 받지만 우리는 극락조를 팔아서 한 끼를 때우는 소금과 설탕을 사야 합니다.’”

극락조 열여덟 마리가 제물이 된 것 또한 운명이다. 소금과 설탕을 얻기 위해 극락조를 잡아 파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원주민은 끝내 소금과 설탕을 얻지 못했다. 검고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원주민과 높은 나무에서 추락하는 아름다운 극락조 생각에 가슴 한쪽이 아팠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프로그램이 끝났음을 알리는 자막이 아래로 눈물처럼 쏟아졌다. 목요일은 역시 고단한 날이다. 텔레비전을 껐다.

최형식 & 일러스트 유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