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걷다 보면 무수한 건축물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 건물들은, 우리가 사는 집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요? 근사한 건물, 가격이 높은 집, 행복을 꿈꾸는 집….
건축가 고 정기용. 그를 알게 된 건 지난해 개봉한 <말하는 건축가>란 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멋진 건물’이기보다 ‘사람’의 삶에 가까이 다가간 그의 건축은 참 겸손해 보였습니다. 경제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일방적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야 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던 그는 자연, 사람과의 소통을 통한 건축을 꿈꿔 왔습니다. 그의 작업들은 대부분 예산은 적지만 손이 많이 가는 지역의 공공건축물입니다. 대통령 사저를 건축한 건축가이면서도 자신은 집 한 채 없이 소박하게 살다간 건축가 정기용. 그가 생전에 말해온 우리 건축과 삶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좋은 집이란 거주하는 사람의 삶의 흔적이 서서히 누적되어 그 사람의 향기가 배어나오는 집이다.’
저는 두 살 때부터 15년간 을지로에 있는 한옥에 살았습니다. 프랑스에서 건축 수업 할 때 그 집을 그린 적이 있는데 모든 게 정교하게 떠올라서 많이 놀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높은 빌딩이 들어섰지만, 그 기억이 나를 지금 살고 있는 명륜동까지 데려옵니다. 외갓집 툇마루에서 느낀 농촌의 풍경도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에요. 맑은 금강이 흐르고 강을 에워싼 높고 낮은 산들. 봄날 멀리 상여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어린 나이에도 “여기가 천국인데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생각할 정도였지요. 하지만 1970년대 전국에서 새마을운동이 진행되면서 마을 길은 포장되고 초가지붕은 없어지고… 내 고향도 사라졌습니다. 충격이었죠. 그렇게 온 국토가 경제개발로 뒤엎어지면서 집은 한 지붕 아래 가족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곳이 아닌 사고팔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 돼 버렸습니다. 똑같이 찍어낸 듯한 아파트와 상가 건물엔 소통의 흔적이 없습니다. 도시도 그런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건축가들은 ‘있어온 것’으로부터 어떻게 새롭게 건축할지 고민하고,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일이기도 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좋은 건축, 좋은 장소에 대한 체험과 교감이기 때문입니다.
‘땅, 근원적 질문, 거기에 더해 시대적 시류, 거기다 또 더하면 건축주, 사용자들의 생각들을 가급적 존중하려고 하죠. 그 네 가지가 결합되는 방식이 ‘감응’입니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만 짓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일’입니다. 건축가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어떻게 보살피고 반영할지 고민하는 사람이죠. 특히 공공건축물이 그렇습니다. 쓸 사람에게 물어야 합니다. 때문에 무엇보다 건축가는 세상과 사람에 감응해야 합니다. 건축가로서 가장 가슴 두근거릴 때는 처음 땅을 보러갈 때입니다. 과연 어떤 땅일까?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말입니다. ‘면사무소란 무엇인가?’ ‘어린이 도서관이란 무엇인가?’ 그 답을 찾기 위해 소통하는 과정은 제게 커다란 상상력과 기쁨을 안겨줍니다.
무주마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입니다. 무주 안성면사무소를 설계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한 일은 주민들을 만나는 거였어요. 필요한 공간을 물으니 대부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목욕탕을 지어달라는 겁니다. 목욕할 곳이 마땅치 않아 봉고차까지 빌려 대전까지 목욕하러 간다는 말에 가슴이 미어지는 거 같았어요. 우리가 농촌을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그렇게 해서 최초로 목욕탕이 결합된 면사무소가 들어서게 됩니다. 무주 공설운동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따가운 햇볕 때문에 주민 대다수가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걸 알게 된 군수는 운동장 둘레에 등나무 240그루를 심었지요. 우리는 거기에 등나무가 타고 오를 수 있는 철 구조물을 설계했습니다. 이제 그곳은 온갖 행사가 열리는 주민들의 친숙한 마당이자 무주의 명소가 되었지요. 당시 무주에서 배운 중요한 사실은 건축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과 식물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지, 건축가가 처음부터 완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시간과 사람과 식물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건축은 생명력 있는 건축으로 전환됩니다.
기적의 도서관의 경우 동네 도서관을 맹렬하게 운영한 아줌마들한테 배운 것을 공간으로 번역한 겁니다. 출입구 중간엔 세면대를 두어 아이들이 손부터 씻고 책 읽게 하기, 바닥은 온돌로 해서 내 집처럼 편안하게 읽게 하기, 엄마들을 위한 수유실, ‘아빠랑 아기랑’ 책을 보는 방 등이 다 그렇게 함께 고민하며 나왔지요. 덕분에 일요일엔 엄마 대신 아빠가 아이와 도서관에 방문해 책을 읽어주기도 합니다. 가족 관계가 새롭게 거듭나는 거죠.
‘어느 누구도 자기 집만 오려내서 볼 수는 없다. 모든 땅은 연결되어 있고, 강과 산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모든 풍경은 아무리 작아도 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이다.’
때론 건축가는 위험한 직업이기도 합니다. 어떤 태도와 관점에 따라 이웃과 소통할 수 있고 담을 칠 수도 있고 사회와 결별할 수도 있고 풍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제 건축의 핵심은 한마디로 현장성입니다. 현장의 역사, 지형, 사람…. 모두가 함께 꿈꾸고 더불어 사는 공간을 지어나가는 것. 그게 제가 꿈꾸는 건축입니다. 이렇게 모두의 힘이 모여 전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등나무운동장, 한국형 어린이 도서관 등이 나오게 되었고, 이 기적 같은 일에 동참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