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탕~! 20평형의 벽으로 둘러싸인 코트에 파워풀하게 공을 치는 소리가 가득 울린다. 지난 10월, 인천에서 열린 제94회 전국체전 스쿼시 남자 일반부 4강전. 접전 끝에 대전시체육회 소속 스쿼시 최정운(31) 선수는 동메달을 따낸다. 2011, 2012년 동메달에 이은 세 번째 성과였다. 시합 때의 반복적인 실수 등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지배하는 몸의 기억마저도 버리며 훈련하기에, 경기 당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는 최정운 선수. 그는 마음 빼기야말로 최고의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국체전에는 총 46개 종목 3만여 명의 선수가 출전한 가운데, 저는 스쿼시 선수로 남자 단체전에 참가했어요. 모든 스포츠는 심리전이라고 할 정도로 시합에서 얼마나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마음수련 덕을 많이 봤어요. 수련한 이후로 시·도 대표팀 선수로도 선발되고, 4년 연속 전국체전에도 참가하게 되었으니까요.
스쿼시는 대학 1학년 때 강사분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막상 해보니까 재미도 있고 해서, 방학을 이용해 자격증을 땄고, 이후 스포츠 센터 강사를 하면서 학교생활을 해나갔습니다.
스쿼시는 원래 ‘볼을 구석에 밀어 넣는다’는 의미로 영국의 죄수들이 교도소 벽에 공을 친 데서 유래됐습니다. 당구 치는 원리와 비슷해서, 가령 상대 선수가 한쪽 구석에 있으면 받아치지 못하도록 반대쪽 구석으로 공을 보내야 할 때, 옆벽을 쳐서 앞 벽을 맞춘 후 반대편 구석으로 보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순간 판단력과 순발력, 몸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지구력도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많아요. 보통 사람은 5~10분 정도 공을 치고 나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되죠.
그럼에도 스쿼시가 좋았던 건 공이 제대로 파워풀하게 맞았을 땐 마음이 뻥 뚫리면서 마치 응어리진 마음들이 한결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러다 공을 내 맘대로 컨트롤하게 되면서 상대 선수를 제압했을 땐 뭐랄까, 그 희열감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대회에 출전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지는 내가 싫은 거예요. 승부욕도 생기고, 자존심도 올라오고. 제대로 한번 배우고 싶었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스쿼시란 운동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고 체계화가 안 돼서 배우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어요. 게다가 선수에 대한 국가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라 자기 직업을 갖고 운동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선수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어요.
다행히 그 무렵 아는 형을 통해 국가대표 선수들과 9개월간 함께 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어요. 직접 가르침을 받은 건 아니지만, 같이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렇게 실력을 키우는 동안 운 좋게도 2006년부터 스쿼시가 전국체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각 시·도에서도 선발전을 통해 대표팀을 꾸리기 시작했어요.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은 마음에 저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됐죠.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결과가 좋지 않은 거예요. 제가 시합 때 안 좋은 버릇이 있거든요. 가령 공을 쳤는데 제대로 안 들어가거나 실수하면 경기 중에 계속 그 생각만 하는 겁니다. 이미 지나간 것인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할 때 여자 친구 소개로 마음수련을 하게 됐어요. 처음 수련 상담을 하는데, “사람은 여태 더하기만 하고 살았는데 이건 마음을 빼는 공부다, 그럼 다 없는 거다”라는 말이 제겐 희망의 메시지처럼 들렸습니다.
사실 선수로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은 안 겪어보면 모를 거예요. 정말 어마어마하거든요. 특히 큰 시합이 앞에 닥치면 오만 생각이 다 떠올라요. ‘지면 어떡하지? 부상당하면 어떡하지? 연봉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뭐라 할까….’
선수라면 공을 갖고 놀아야 하는데, 거꾸로 공에 휘둘리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래서 평소 실력은 좋은데 실전에서는 제대로 기량을 발휘 못 하는 선수들이 많습니다.
수련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니까 삶의 기억들이 물밀듯이 떠오르더군요. 어렸을 때 외로웠던 것, 시합 때 안 좋은 기억들까지…. 놀라운 건 마음뿐 아니라,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그 기억이 다 담겨 있다는 거였어요. 덕분에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도 깨닫게 됐지요.
운동선수라면 다 알 거예요. 예전에 했던 그 실수를 결정적인 순간에 반복하고 있는 자신. 정말 나도 모르게 나와요. 열심히 반복 훈련해서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한순간 경기는 엉망이 되죠. 무의식적인 행동들, 그 원인이 몸의 기억 때문이라니! 마치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수수께끼를 푼 기분이었어요. 그다음부터는 무조건 빼기를 했죠.
수련하고 가장 큰 변화는 오직 경기에만 집중한다는 거예요. 마냥 좋아서 운동했던 그 마음을 되찾은 기분이랄까. 어느 순간 웃으면서 경기를 즐기고 있더라고요. 여유가 생기니까 시야도 넓어지면서 내가 혹은 상대가 어떻게 경기를 하는지도 보이고요. 몸, 마음이 담고 있는 기억에 얽매이지 않으니까 원하는 플레이를 하게 되더라고요.
전국체전의 경우 2010년부터 개인전에서 단체전으로 바뀌면서 세 명의 선수가 한 팀이 돼서 시합을 해요. 그러다 보니 선수 간의 팀워크가 굉장히 중요한데 이번에 전국체전을 앞두고 두 달간 합숙훈련을 했어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서로가 발전이 되는 윈윈 플레이를 했다는 거예요. 제가 ‘이 정도 하면 끝나겠지’ 하고 쳐낸 공을 선수들이 다 받아치니까 긴장을 늦출 수가 없더라고요. 서로 다른 플레이를 통해 제가 부족했던 부분도 채울 수 있어서 동료 선수가 참 고마웠어요. 예전 같으면 공 하나 제대로 받아치지 못했다며 자책했을 텐데, 그걸 교훈 삼아 부족한 점들을 미리 파악해서 대비를 하니까 경기력도 점점 향상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선수 입장에선 자신이 노력한 만큼 시합에서 기량을 발휘하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모든 선수들이 마음 빼기를 통해 최고의 기량으로 멋진 플레이를 펼쳤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 모든 선수들을 응원합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