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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컵 사용 줄이는 사회적기업 ‘브링유어컵’

취재 문진정 & 일러스트 최정여

밥값보다 커피값이 더 비싼 요즘, 커피 한 잔을 1,500원에 마실 수 있는 방법, 있기? 없기? 있기! 바로 청년 사회적기업 ‘브링유어컵(Bring Your Cup)’에 그 방법이 있다.

학교 선후배로 만난 이범규(23), 전지웅(26)씨는 졸업하기 전에 뭔가 의미 있고 다이내믹한 일을 해볼 게 없을까 아이디어를 낸 끝에 지난 1월, 브링유어컵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게 된다. 텀블러를 제작·판매함으로써 일회용 컵 사용도 줄이고, 제휴한 카페에 그 텀블러를 가지고 가면 아메리카노를 1,500원에 테이크아웃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든 것. 이후 김민주(25)씨와 김영준(30)씨가 합류했고 지금은 홍대 앞, 신촌 등 서울 대학가의 50여 개 카페에서 1,500원만으로도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공공장소에서의 컵 대여 서비스, 환경 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 위한 크고 작은 일들을 꾸려가고 있다. 이 청년 기업의 당찬 움직임에 동참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500원으로 커피 마시는 법

① 브링유어컵 홈페이지(bringyourcup.co.kr) 또는 제휴카페를 통해 텀블러(1만 원)나 멤버십 링(개인 텀블러가 있는 경우 사용, 3천 원)을 구매한다.

② 멤버십 링 구매 경우 링을 텀블러에 장착한다.   ③ 브링유어컵 홈페이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내 주변 제휴 카페를 검색한다.   ④ 텀블러를 들고 제휴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1,500원에 테이크아웃한다.

커피 전문점에서는 1년에 3억 개 가까이 되는 일회용 컵이 사용되는데 그중 14%만 재활용이 될 뿐 나머지는 그대로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회용 컵 사용량도 줄이고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직접 설문 조사를 해서 대중에게 인기 있는 디자인의 텀블러를 골라 제작을 했습니다.
그리고선 무작정 홍대 앞 카페를 일일이 찾아가 사장님을 만났어요. ‘1,500원’ 얘기를 꺼내자마자 ‘우리는 그런 원두 안 쓴다’고 손사래를 치셨죠.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어요. 하지만 3주간 80여 곳을 찾아다니다 보니 좋은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사장님을 한 분, 두 분 만나게 되었고, 가능성을 보게 되었지요.
반신반의하던 손님들도 한번 이용해 보고 나서는 가게 단골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좋은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마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일회용 컵 사용에 대한 경각심도 갖게 되고, 자신의 작은 행동이 환경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는 만족감과 뿌듯함도 느끼고요. 차근차근 자연스럽게 커피 문화가 바뀌고 개인 컵 소지 문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전지웅/브링유어컵

처음 저희 커피집에 제안을 하러 오셨을 때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신다 싶었어요. 그래서 선뜻 참여하게 되었고 작은 힘이나마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는 일에 쓰이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서너 분은 텀블러를 가지고 오세요. 근처의 대학생들뿐 아니라 중장년층께서도 굉장히 관심을 가지시더라고요. 손님들이 뿌듯해하시고 좋아하시는 거 보면 기분이 참 좋아요. 그리고 오히려 정상 가격보다 더욱 커피 품질에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가격이 저렴하니까 혹시나 무성의하게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안 드시게 하기 위해서요. 손님들 입장에서는 좋은 커피를 저렴하게 마실 수 있고 일회용품을 많이 안 쓰게 되니까 환경에 도움이 되고, 카페 입장에서는 홍보도 되고, 좋은 일에 참여한다는 보람도 느끼고, 여러모로 참 좋은 매개체를 만들어주는 사업인 것 같습니다.이정화/남산커피집 운영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시아버지

저희 시아버님의 연세는 올해 90세이십니다. 저는 아버님을 뵐 때마다 큰 존경심과 함께 놀라울 때가 많습니다. 여고 교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하신 아버님이 교편생활 내내 새벽 6시에 출근하신 건 충남, 대전 교육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퇴직 후에도 중소기업을 창립하셔서 88세까지 운영을 하셨습니다. 출퇴근을 하실 때도 버스를 타고 다시 지하철로 환승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도 꼭 계단을 이용해서 다니셨지요. 2년 전 회사를 정리하신 후에도 매일 한 시간 반씩 집 앞의 하상 도로를 걸으십니다. 건강해야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놀라운 일은 아버님은 모든 사람의 전화번호를 다 암기하고 계시다는 겁니다. 전화를 하면 바로 누구인지 알고, 전화를 거실 때도 암기하고 계신 번호로 전화를 하십니다.

올해 환갑인 저는 남편과 결혼을 한 지 35년이 됐습니다. 우리 가족은 타향에서 27년을 살다가 4년 전 남편의 고향인 대전으로 이사를 왔지요. 이사를 온 후 저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시댁에 갑니다. 그동안 객지에 사느라 자식 노릇 한번 변변히 못 한 게 죄송해서, 지금부터라도 저녁 식사도 함께하고 자주 뵈어야겠다 싶어서입니다.

아버님은 저와 대화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주로 집안 이야기나 자녀 교육, 정치와 역사 이야기 등을 말씀하시지요. 퇴직 후 하루 종일 집에 계시게 되면서는 컴퓨터 바둑도 두시고, 요즈음은 1000피스 퍼즐을 맞춘다 하십니다.

어머니마저 올 7월에 돌아가신 후로는 더욱 외로워 보이십니다. 치매를 앓던 어머니는 하루 종일 같은 말을 반복하시거나 물으셨지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머니의 똑같은 질문에 매번 처음처럼 대답을 해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아버님은 어머니께서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뜬 게 다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를 선산에 묻은 후 아버님은 한 달을 편찮으셨습니다. 늘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던 어깨도 축 처지셨지요. 아버님의 허전한 그 뒷모습을 보며 저도 옛날 생각이 스쳤습니다.

제가 서른일곱 되던 해였습니다.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병으로 오른쪽 폐를 절단하는 큰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 후에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아버님은 몸이 어떠냐고 늘 전화를 해주셨습니다. 또 제가 장사를 하느라 시어머니의 생신날을 기억 못 할 때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럴 때도 새벽이면 아버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잠시 방을 비웠을 때 전화를 하셔서 “어미야! 오늘 네 어미 생일이다. 이따 전화라도 해라” 하고 바로 끊으십니다.

그럼 저는 아침 9시쯤에 전화를 합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동서들과 함께 있으므로 늘 아버님이 전화를 받게 되지요. 아버님은 “어미냐? 그래. 네 어미 바꿔줄게” 하고 마치 전화를 처음 받는 것처럼 하십니다. 어머니는 전화라도 해준 게 고맙다고 늘 말씀하셨고요.

매주 월요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시집에 가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맛있는 음식만 보면 아버님 생각이 납니다. 결혼 후 안정된 생활을 못 해서 늘 걱정을 드렸던 셋째 아들인 남편은 아버지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효자입니다. 이제 우리 가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아버님께서 건강하게 오래 사시도록 잘 모시고 싶습니다.

아버님, 셋째 며느리는 아버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격려 덕분에 고단했던 인생을 잘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아버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김성희 60세. 주부. 대전시 유성구 원내동

나에게 감동을 준 사람, 특별한 사람,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 사연을 소개해주세요. (edit@maum.org)

독자님의 마음을 대신 전해드립니다.

시아버지 박민순님께

셋째 며느리 김성희님의 마음을 담아

‘소중한 시아버지께’라는 문구와 함께 예쁜 꽃바구니를 선물로 보내드렸습니다.

협찬 예삐꽃방 www.yeppi.com

열린 고민 상담소

20대 중반의 직장 여성입니다. 저는 너무 소심한 성격에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못 들어서 고민입니다. “오늘 이쁘네” 칭찬해주면 저 사람이 오늘 뭐 부탁할 거 있나? 하고 “청소하자” 하면 내 자리가 지저분한가?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그런 혼자만의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오해하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앞으로 사회생활이나 잘할 수 있을지…. 저도 심플하고 쿨하게 살고 싶은데 정말 어렵네요.

저 역시 그랬기 때문에 공감이 갑니다. 어떤 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어떤 날은 타인이 했던 말이나 동료의 행동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그런 저를 가만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보니 타인의 행동을 그냥 그 자체로 해석할 때는, 제가 건강할 때였습니다.

어떤 힘든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을 때 등 ‘자존감’이 높아진 경우이고, 반대로 제대로 못한 경우 유독 타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럴 때면 저는 제 자신을 건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녀님께 먼저 휴식을 권유하고 싶네요. 여행을 다녀오거나 좋아하는 걸 해보는 것 등 무엇이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한번 가져보세요. 그렇게 내 스스로의 자존감을 먼저 찾으려 노력해보세요. ♣ 왕지상 / 직장인

저는 소심해도 괜찮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좀 소심하면 어때요? 저도 한때는 소심한 제가 너무 싫었지만, 어느 순간 그냥 받아들이고 나니 편하더라고요. 그리고 소심한 사람은 사실 믿고 사귈 수 있어요. 소심하니까요.^^ ♣ 김진현 / 직장인

저도 님과 비슷한 20대를 보냈습니다. 트리플A형이라고 할 정도로 소심하고 망상이 많아서 불면증도 심했고요. 30대에 접어든 어느 날, 우연히 책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세상이 보내준 선물이구나. 그걸 알게 된 순간부터는, 내 잣대로 짓고 부수기보다는, 무슨 말이든 쿨하게 나를 돌아보는 잣대로 삼았던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정말 청소를 못했다 여기면, 그때부터 청소하면 되는 거고, 예쁘다고 하면 그냥 나를 격려해주시는 소리구나, 자신감을 얻고. 용기를 내어 세상을 믿어보세요. 아무리 안 좋게 느껴지는 거라도, 정말 모든 게 나를 위한 선물이라는 것을요. 그러면 당연히 세상 사람들도 나를 반가이 맞아줄 거예요. 파이팅!^^ ♣ 장혜정 / 직장인

소심한 성격, 저는 이렇게 고쳐봤어요. 자신만의 기준을 정하는 거예요. 저도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무슨 일을 하고 나면 후회를 많이 하고 결정도 쉽게 못 내렸는데, 어느 날, 딱 3번만 생각하고 무조건 결정하기로 기준을 정했죠. 예를 들면 ‘청소하자’ 하면 내 자리가 지저분한가? 지금까지 내가 청소를 못 했나? 이렇게 두 번만 생각하고는 “제 자리가 좀 지저분한가요?” 하고 정말 궁금한 점은 물어보는 겁니다.(단, 여쭤볼 땐 항상 정중하게.^^) 그렇게 생각 끊어보기 훈련을 하다 보면, 머지않아 쏘 쿨~ 녀가 되어 있을 거예요.^^ ♣ 이주현 / 직장인

사실 말끝마다 오해하는 사람을 보면 다들 굉장히 피곤해해요. 그러다 보면 그 사람에게 아예 말을 하지 않게 되죠. 그런 고민이 될 때 살짝 미소 짓는 습관을 가져보세요. 그러면 상대방도 상큼하게 다가오고, 고민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 임정 / 직장인

자꾸만 남의 말에 신경 쓰는 것은,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다, 그런 생각이 강해서더라고요. 그러니까 우선은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마음부터 버려봤으면 좋겠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남의 시선이 아닌 바로 내가 가꿔가는 진정한 행복이잖아요. 사실 남들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지는 않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할 시간에 업무 능력을 키워보라고 해주고 싶네요. 그러면 스스로 생긴 자신감 때문에,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쿨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사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 보니 예전에 내가 뭘 그렇게 고민했나, 우스운 것이 많아요. 후회 없는 삶을 위해, 파이팅입니다.^^ ♣ 김은희 / 한국어 지도사

임신 8개월 차 직장 예비맘입니다. 맞벌이를 하고 있고요,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친정엄마는 언니 아기를 돌보고 계셔서 아기가 태어나면 시어머니께 부탁하려고 하는데, 남편은 그 핑계로 시댁에 많은 돈을 드리자고 하네요. 시아버지도 일을 하시는데 시댁 가계까지도 책임지고 싶은가 봐요. 저보고는 절대 직장을 그만두면 안 된다고 하면서. 시댁에 많은 돈을 드리면 제가 직장 다닐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남편이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경상북도 영주 무섬마을

‘육지 속의 섬’ 무섬마을!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는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해서 무섬마을이라고 불린다. 안동 하회마을, 예천 회룡포와 마찬가지로 강이 육지를 크게 휘감으며 절경을 빚고 있다.

강은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다. 내성천은 경북 봉화에서 발원해 무섬마을 직전 500m쯤에서 소백산에서 내려온 서천과 합류해 무섬마을과 예천군 풍양면의 삼강주막을 지나 낙동강으로 접어든다. 무섬 앞을 흐르는 강은 폭이 100m도 넘는다. 백사장이 넓고 물길도 고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다.

마을의 집은 40여 채. 한국전쟁 전까지 주민이 400~500명에 이르던 마을이 현재는 주민 수 40여 명의 고즈넉한 한촌으로 변했다.

그러나 숲 아래 어깨를 맞댄 오랜 고택들을 보면 이곳이 양반촌이었음이 실감 난다. 마을 최초로 지어진 만죽재와 고종 때 의금부도사 김낙풍이 살았던 해우당을 비롯해서 김뢰진, 김규진, 김덕진, 박덕우의 가옥 등 기와채 9채가 민속자료나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있다. 영주선비촌의 만죽재, 해우당, 김뢰진 가옥, 김규진 가옥은 무섬마을의 원래 고택을 본떠 지은 것들이다.

마을을 풍수지리로 보면 산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형태다. 또는 매실나무 가지에 꽃이 피는 ‘매화낙지형’,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연화부수형’이라고도 하는데 그 덕분에 많은 선비가 나오고 대대로 부를 누렸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은 “반경 30리 안에 무섬마을 소유 농토가 쫙 깔렸었다”고 회상한다.

무섬마을 토박이 김한세씨는 “무섬은 태백산의 끝자락이고, 마을 앞에 보이는 산은 소백산의 끝자락이며 근방 아홉 개 골짜기의 물이 한곳에 모여 마을 앞으로 흐른다”고 설명한다. 집들의 방향이 서쪽으로 많이 치우쳐진 것은 물의 정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함이란다.

박정희 정권 때에는 이처럼 좋은 마을의 기운이 끊길 뻔했다. 굽이치는 강물을 직선으로 만들려는 토목공사가 계획되고 기공식까지 성대하게 치러졌기 때문. 다행히 주민의 결사반대로 공사가 무산돼 오늘날까지 수려한 풍광이 남게 되었다.

무섬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 경찰의 탄압을 피해 아도서숙(亞島書塾)이 들어서며 독립운동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1928년 10월에 세워진 아도서숙은 일제의 창칼에 의해 폐쇄될 때까지 5년 가까이 계몽사상을 교육하고 독립 의식을 일깨우는 장소로 사용됐다. 물길에 의해 고립된 지리적 장점이 아도서숙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다.

마을을 외부와 연결하는 것은 오로지 외나무다리였다. 마을이 번창할 때에는 문수초등학교와 분교 두 곳 등 초등 교육 시설이 주변에 3개 있었고 학생 수도 500명 안팎으로 시끌시끌했다. 그때 등굣길로 이용되던 다리가 현재의 시멘트 다리(수도교) 자리에 있었고, 그 외에도 다리가 2개 더 있었다.

외나무다리는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상징물이었다. “무섬은 한번 시집오면 죽을 때까지 나가지 못했어요.” 김한세씨의 설명이다. 유교적 규율이 엄격한 지역이라서 여성의 입지는  좁을 수밖에 없었다. 가마 타고 시집올 때 건넜던 다리는 생을 마치고 상여에 실려 나갈 때 마지막으로 통과했다. 인생의 처음과 끝을 의미하는 곳이 외나무다리다.

그런데 그 다리가 요즘은 낭만과 추억을 쌓는 상징물로 변해 관광객의 시선을 끄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무섬 사람들은 2005년부터 옛 정취와 전통을 되살리고 마을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가을마다 성대한 축제를 벌인다. 여름 홍수 때 다리가 떠내려가는 것을 염려해 다리를 걷었다가 가을에 다시 설치하기를 반복한다.

초가지붕과 골목에 박덩이가 뒹굴고 다양한 꽃과 곡식이 숲과 함께 조화를 이뤄 옛 정취를 물씬 풍기는 전통 마을 수도리는 마음이 착잡할 때 조용히 가볼 만한 여행지이다. 바람이 스치는 너른 강줄기, 그 위로 노을 지는 석양이라도 바라본다면 부자 마을의 풍요로운 기운이 온몸에 전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무섬마을은 너무 현대화된 하회마을과 지세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른 고즈넉한 여행지다.

글&사진 이두영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의 저자

 

<여행 쪽지> 무섬마을을 한눈에 감상하려면 수도교에 다다르기 약 300m 전에서 ‘술미’ 이정표를 보고 산길로 올라가야 한다. 고갯마루에서 산으로 들어서서 10분 정도 걸으면 강물에 휘감긴 마을이 보인다.

여행문의 alps220@naver.com

MBC-TV 특집 드라마 <못난이 송편>

최근 방송된 특집 드라마 ‘못난이 송편’이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짧은 특집극인 만큼 전체 구성이나 인물 설정 등은 단편적이었지만 그만큼 효과적으로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큰 호응은 ‘왕따’ 현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왕따의 논리는 동물의 세계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강자는 살아남아도 약자는 버림받는 원시적인 약육강식의 논리이자,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힘의 문제입니다. 드라마에서 언급한 대로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는 행위임에도 틀림없고요.

반장 예빈(주다영 분)의 따돌림으로 인해 자살까지 시도한 세진(조정은 분)은 같은 반 친구인 유민(김보라 분)을 왕따시키면 자신은 안전한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역으로 왕따가 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거죠. 한때는 가해자였던 세진은 아슬아슬한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약한 동물이 되어버렸습니다. 가해자 아이들은 피해자가 잘난 척해서, 못생겨서, 남들과 달라서라고 각종 핑계를 대지만 왕따의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은 수천 수만 가지가 있습니다. 그들이 동물적인 생존 원리에 동의하고 추구하는 이상 핑계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드라마 속 아이들은 하나같이 왕따의 조건을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남들에게 약점 잡히지 않는 훈련을 어릴 때부터 받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입장에 서면 최소한 자신은 왕따를 당하지 않으니 먼저 선동하는 법도 본능적으로 배웁니다. 왕따를 주도하는 아이는 이런 질서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익숙하게 반응합니다.

오순복(경수진 분)은 놀림당하지 않기 위해 오아영으로 개명합니다. 세진의 부모는 잘못했어도 약점이 될까 봐 사과하지 않습니다. 못생긴 아이는 성형수술을 하고 뚱뚱한 아이들은 살을 뺍니다. 시골 출신이란 것과 가난도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게 약점이 될 수 있는 학교에서 재수 없이 걸리면 왕따를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나만 왕따를 당하지 않으면 된다’는 그들의 질서는 살벌하다 못해 끔찍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생존을 가르친 건 바로 우리들의 사회입니다.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해도 아이들의 생존 원리는 전혀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한 경쟁을 추구하는 사회, 인간성을 상실한 사회라는 자조 섞인 비평을 우리는 수없이 들어왔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원시적인 생존 본능만 배우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그대로 지켜주고 싶다면, 또 행복한 학창 시절을 갖게 해주고 싶다면 누군가 먼저 달라져야 하고 그 주체는 성인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약점부터 감추고 남의 약점을 들추는 아이로 자라서는 안 된다면, 부모들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세진이의 어머니가 깨닫고 선생님 주희(김정화 분)가 변하고 소정(장지은 분)이 순복을 위로하기 시작한 것처럼 누군가는 먼저 변해야 희망이 생긴다는 것이죠.

드라마 한 편이 잘못 흐르고 있는 사회의 질서를 바꿔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꼭 언급되어야 할 사회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생각과 태도가 바뀌는 사람들도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남과 다르면 못나고 약한 것이 아니라 ‘못생긴 송편일수록 더 눈에 잘 띄고 맛도 좋다’는 말을 기억해주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샤인 문화칼럼니스트 &

칠리소스 치킨구이

배달 치킨보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칠리소스 치킨구이입니다. 야들야들, 쫄깃한 닭다리 살이 매콤하고 달콤한 소스와 잘 어우러져 시원한 맥주와 함께 즐기기에도 좋습니다.

재료(2인분) 닭다리살 4개분, 고추장 1큰술, 케첩 2큰술, 토마토 1개, 양파 1/4개, 식용유 1큰술

① 닭다리살은 깨끗이 씻은 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앞뒤로 노릇하게 익히면서 속까지 익힌다. ② 토마토와 양파는 다진다. ③ 분량의 고추장, 케첩, 다진 토마토, 다진 양파를 골고루 섞어 한소끔 끓인다. ④ 철판에 ①의 고기를 담은 후 ③의 소스를 올린다.

Single’s Tip

닭다리살은 뼈를 발라놓은 것을 활용하면 편리합니다. 취향에 따라 닭날개나 닭안심도 활용해보세요. 토마토는 푹 익혀도 좋지만 살짝 살캉하게 씹히는 질감이 있도록 익히면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인영 / 자료 제공 지식채널

문인영님은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현재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다양한 잡지와 방송매체를 통해서 메뉴 개발과 스타일링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싱글만찬> <다이어트 야식> <메뉴 고민 없는 매일 저녁밥>이 있습니다.

아내와 아들 녀석의 화장실 대첩

 
 

 

백일성

 
퇴근을 하자마자 집 아래에서 아내를 불렀습니다. 퇴근 전 마트 가야 된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내 조수석에 올라타는 아내의 얼굴을 마주했는데 찬 기운이 싸늘합니다. “왜? 또 아들하고 한바탕하셨나?” 요즘 아내 기분의 99%를 좌지우지하는 존재는 16년 된 아들이란 생명체입니다. “아~~ 정말 형우시끼 때문에 열불 나 죽겠네.” 제 예상이 맞은 듯합니다. 요즘 아들 녀석 이름 뒤에는 영웅재중… 믹키유천… 유노윤호… 뭐 이렇게 형우시끼란 네 글자의 호칭이 익숙합니다.

일단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내가 퇴근길에 동네에 사는 처제네 집에서 매실을 얻었나 봅니다. 들고 가기가 너무 무겁고 해서 학원 가기 전 집에서 쉬고 있는 듬직한 중3 아들 녀석을 호출했답니다. “엄마 지금 이모네서 내려왔으니까 너도 지금 집에서 나와. 어느 길로 갈 테니까 중간 정도에서 만나서 엄마 좀 도와줘.” 그렇게 통화를 하고 아내는 낑낑거리며 길을 나섰나 봅니다. 그러다 결국 예상했던 중간 지점을 넘고 급기야 쇼핑백을 끌다시피 집 앞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다시 전화를 했답니다. “어디냐?” 최대한 화를 누르면서 했겠죠. 전화기 너머로 에코가 잔뜩 들어간 아들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똥… 싸….” 최악의 대답이 나왔고 아내는 매실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바람과 같은 속도로 집으로 올라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한바탕했다고 합니다.

밤늦은 시간 안방에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아들 녀석 방으로 갔습니다. “엄마하고 한바탕했다며? 네가 꾸물거리고 안 나오니까 그게 엄마는 화가 난 거지.” “그렇게 시간 안 걸렸어요. 하던 일 정리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똥이 마려운 걸 어떻게 해요? 똥은 싸고 가야죠.” 아들 녀석이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죽이려는 자와 변기에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자와의 오간 대화를 대충 말해줬습니다. 그걸 대본체로 옮기면…

 

아내 : 너 뭐해? (화장실 문을 세차게 두 번 두드린다)

아들 : (놀란 표정으로 변기에 앉아 고개를 들며) 똥 싼다니까요.

아내 : (화장실 문에 바짝 다가서며) 네가 지금 똥 쌀 때야?

아들 : (자세를 가다듬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마려우면 싸는 거죠? 시간이 따로 있어요?

아내 : (한 발짝 물러나 팔짱을 끼며) 엄마가 나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지금 한가하게 똥을 싸고 있어?

아들 : (한층 더 억울한 표정으로) 제가 지금 한가해서 똥을 싸는 거예요? 생리 현상을 어떻게 참아요?

아내 : (다시 문으로 바짝 다가서며 문에 발길질을 하며) 이 시끼야, 그럼 똥 싼다고 전화를 해줘야지 엄마가 기다리든가 하지, 엄마가 저 무거운 거 질질 끌고 오는 동안 똥이나 쳐 싸고 있어?

아들 : (흥분해서 일어났다 다시 급히 앉으며 읊조리듯) 아니 제가 지금 몇 살인데 똥 싼다고 엄마한테 전화까지 하고 싸요!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아내와 아들은 이런 원초적인 대화를 나누고 잠시 후 거실에서 마주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참고 참았던 울분을 섞어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시원하냐, 시끼야?” 아들 녀석도 변기에 앉아서 당한 울분을 섞어 대답했답니다. “그 상황에서 시원하게 봤겠어요?”

 

 
 
 

 

 
 

 
아들 녀석 방과 안방을 오가며 서로의 입장을 정리해주고 적벽대전에 버금가는 화장실대전을 대충 정리해줬습니다. 얼마 전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하는 특별활동 테디베어반에서 만든 두 번째 작품을 아내에게 선물했습니다. 아들 녀석이 곰 인형을 주면서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 나한테 화나는 일 있으면 이놈 목을 졸라~~” 그런데 오늘 밤도 아내는 원수 같을 거 같은 그 곰 인형을 꼭 끌어안고 자고 있습니다.
 

 

 
 
 

올해 마흔두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학생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The Time Of Subtraction When Man Can Fulfill Human Completion Has Begun

Man is born with a mind that wants to possess, so he seeks satisfaction and happiness through possession. However, there is no end to such means; ultimately, he cannot be satisfied or happy. All greed arises from his mind of inferiority and when he is not able to have or achieve what he wants, this turns into feelings of regret and bitterness. Only when he discards his greed, will those feelings of regret and bitterness truly disappear. Until now, man has lived trying to possess what he can because of his mind that wants to make everything his. At present, this is the way all people live. The world is in a state of instability;

people have lost their trust in each other and they live struggling to appease their feelings of inferiority. Rather than learning how to possess more, in this age learning how not to possess is the way to become complete and live a better life. This is because instead of just thinking that we must discard money in our minds, we will be able to carry it out into action.

A mind full of greed is always anguished; and a life lived following one’s anguish is without action; it is a life with thoughts leading only to more thoughts. If the past was the age of adding to one’s mind, now is the age of subtracting what is in his mind. A person who subtracts his minds in this time will recover his original nature. Consequently, the whole human race will become one and the world will become complete because everyone will live for others and the world. Human completion is becoming God’s mind by subtracting all of one’s own minds. One will then be able to live well for he will have wisdom and his mind that is the Soul and Spirit will live eternally. Subtracting all human mind – all the mind one has, that he has “eaten” – is completion.

Woo Myung founded Maum Meditation. For his outstanding dedication to the service of humanity, he was awarded the Mahatma Gandhi Peace Award by the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Educators for World Peace (IAEWP). He is the author of numerous books including World Beyond World, The Way To Become A Person In Heaven While Living, Nature’s Flow, Mind and Stop Living In This Land, Go To The Everlasting World Of Happiness, Live There Forever which have been published in English. His other books, Heaven’s Formula For Saving The World, The Living Eternal World, The Book Of Wisdom, and The Enlightened World are in the process of being translated into English as well as Chinese, French, German, Italian, Japanese, Portuguese, Spanish and Swedish.

열린 고민 상담소

50대 중반의 남자 직장인입니다. 아이가 셋인데, 첫째가 대학생이고 나머지는 고등학생, 중학생이에요.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까 앞길이 막막한데, 퇴직 압박만 다가옵니다. 젊은 사람들은 치고 올라오는데, 몸은 잘 안 따라주고, 머리도 예전만큼 안 돌아가고요. 집에서는 근엄한 가장처럼 보이지만, 제 안의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네요. 제가 이 아이들을 끝까지 잘 키울 수 있을지 하루하루가 무겁습니다.

마치 몇 년 전의 제 모습 같아 공감이 많이 가네요. 저도 23년간 다녔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면서 많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이 모든 게 이 나이 대에 겪는 당연한 거다, 받아들이고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찾게 되었지요. 장점도 많더라고요. 풍부한 경험, 다양한 인맥, 긍정적인 마음 같은 것. 님께서도 님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한번 찾아보세요. 고개를 조금만 들어보면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지금 하는 일과 인연을 우선적으로 소중히 대하다 보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 잊지 마시고 힘내시기 바랍니다.

임왕규 / 덕산케미컬 대표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고민을 듣자니 마음이 애잔해집니다. 간혹 아버지 연배 분들을 만나면, 그동안 가족들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셨음에도 잔뜩 움츠린 어깨가 늘 안타까웠습니다. 그럴 때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지더라고요. 아버님께 지면상으로나마 소주 한잔 올립니다. 그동안 저희들 키우시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 파이팅입니다!

김진솔 / 직장인

님과 같은 고민을 하는 남편과 함께 그 고비를 지나온 주부입니다. 제 경우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 남편 사업이 어려워졌어요. 참 힘들었지요. 그런데 오히려 그 고비가 아이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어요. 어려운 상황이 되니까, 장학금도 받으려 애쓰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지혜롭게 생활을 꾸려가더라고요. 그간 아빠가 성실하게 살아오셨으니, 퇴직한다 해도 아이들도 이해를 해줄 겁니다. 아빠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아내와 자식들이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혼자서만 고민하지 마시고, 가족들과 마음을 나눠보세요. 열심히 살아도 실패가 올 수 있는 게 인생입니다. 그 나이가 되면 누구나 자신감이 떨어지고요. 아빠는 괴로운데, 나머지 가족들이 행복하긴 어렵죠. 이 고비가 가족들을 더 단단히 만들어줄 겁니다. 김성희 / 주부

우리 아빠도 예전에 이런 고민을 하셨을 거 같아 글을 써봅니다. 제가 중학교 때 아빠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졌거든요. 그땐 아빠를 많이 원망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돈 벌러 지방에 가신 아빠에게 짧은 메일이 왔는데, 마지막에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쓰셨어요. 그거 받고 진짜 많이 울었어요. 아빠는 혼자 많이 힘들었을 텐데, 너무 죄송했어요. 사실 저도 아빠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아빠가 먼저 다가오시니까, 대화도 하게 되고 아빠를 이해하게 됐어요. 자식들이 아빠를 이해해 주기만 해도, 고민의 많은 부분이 풀리실 것 같아요. 말로 하기 힘드시면 편지를 써보세요.^^ 홍연희 / 대학생

저는 79세 노인입니다. 지금에 와서 50대 중반의 나이를 바라보면, 참 젊었구나 싶어요. 정말 젊은 나이고, 무엇이든지 시작해볼 나이지요. 지금 생각을 바꿔보세요. 나는 젊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고. 별 생각이 다 들어도, 그런 것 따위는 버려버리고 활발하고 떳떳하게 사시면 좋겠네요. 퇴직하고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 나이에 일을 하고 있고요. 사람이 한평생 살다 보면 바른 길도 있지만, 구부러진 길, 오르막길 다 걷게 되지요. 그런 것을 겪어내고 나서야 더욱 큰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운동하세요. 그게 자신감의 비결이 될 겁니다.

장래원 / 직장인

20대 중반의 직장 여성입니다. 저는 너무 소심한 성격에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있는 그대로 못 들어서 정말 고민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 이쁘네” 칭찬해주면 저 사람이 오늘 뭐 부탁할 거 있나? “청소를 하자” 하면 내 자리가 지저분한가? 지금까지 내가 청소를 못 했나?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그런 혼자만의 생각 때문에 사람들을 오해하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이런 성격으로 앞으로 사회생활이나 잘할 수 있을지…. 저도 심플하고 쿨하게 살고 싶은데 정말 어렵네요.

유유자적살롱, 은둔하는 청춘과 음악으로 소통하다

취재 문진정 & 사진 홍성훈

학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나 홀로 집에만 있는 청소년들을 집 밖으로 불러내 음악도 가르쳐주고 재미있게 놀아주기도 하는 형, 누나 혹은 삼촌들이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 뮤지션들이 모여 만든 사회적 기업 ‘유유자적살롱(줄여서 유자살롱)’이다.

2009년 하자센터(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에 자리를 잡은 ‘유자살롱’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는 ‘무중력 청소년’들에게 음악과 밴드 활동을 통해 자신감과 사회성을 키워주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름 하여 ‘집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

이들이 말하는 ‘무중력 청소년’이란, 학교나 친구 등 사회의 ‘중력장’에서 벗어나 혼자 고립된 채 외로움, 우울감, 낮아진 자존감으로 무기력하게 지내는 아이들을 말한다. 그런 친구들 또한 적절한 기술을 배우거나 친구를 만난다면 중력을 거슬러 무한히 날아오를 수 있기에, 이들에게 작게나마 중력장을 만들어주고, 그런 친구들을 적당한 중력으로 품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것이 유자살롱 멤버들의 마음.

현재 이충한, 전일주 공동대표 그리고 정호경, 고서희, 정신우, 한겨레씨까지 모두 여섯 명의 뮤지션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올가을 6기째를 맞이했다. 한 기수의 수강생은 8~10명. 공식적으로 책정된 수강료는 있으나 수강생의 반 정도만 전액을 낸다. 나머지 운영비는 ‘유자밴드’의 공연, 외부 음악 작업 수입이나 후원금으로 마련된다.

‘집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는…

대상 : 울 수도권 거주 혹은 통학 가능한 15~24세. 특별한 사회 활동을 하지 않고 종일 집에서 지내며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서류상 학교에 등록되어 있어도 무관)

수강료 : 월 40만원 × 3개월 (학생들의 사정에 따라, 서태지 팬들의 모임인 ‘매니아 기빙 서클’의 장학금으로 감면, 혹은 전액 면제의 혜택이 있음)

문의 : 070-4268-5177  hello@yoojasalon.net

요즘 학교를 자퇴하는 학생만 1년에 7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자퇴는 안 했더라도 폭력이나 집단 따돌림, 심한 경쟁 상황에 대한 압박감으로 학교를 겉도는 친구들도 많고요.

그 친구들에게 뭘 가르친다기보다 “그 나이 때는 그게 당연하다” “네 잘못이 아니다” “사실 나도 힘들었는데 이런 과정들이 다 지나고 나니 나중에는 도움이 되더라, 걱정 말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줘요. 솔직히 음악인들도 은둔 기질이 있거든요. 유자살롱 스태프들도 평균보다는 외롭게 자란 편이라 경험에서 나오는 공감대가 있어서인지 아이들이 더 신뢰를 하고 마음을 여는 것 같아요.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공부하고 경쟁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공감해주고, 말을 건네고, 들어주면서 사회의 ‘중력 발전소’ 역할을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악기를 조금씩 배우다가 나중에는 합주를 하는데, 합주라는 게 틀렸다, 맞다, 따지기보다 노래에 자기 악기를 맞추고 서로의 마음을 맞추는 일종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밴드 활동은 사회적 소통을 시작하는 데 아주 좋은 계단인 셈이에요. 3개월쯤 지나면 ‘얘들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만큼 에너지가 가득 차 있어요. 한창 웃고 떠들고 놀 나이인데, 그걸 이삼 년 동안 못 하다가 여기서 3개월 동안 즐겁게 지내는 걸 보면서 마음이 울컥할 때도 있고요.

프로그램이 끝나고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간 친구도 있고, 대안학교를 간 친구도 있고, 친구끼리 밴드를 만든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자기와 비슷한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아이도 많고요. 은둔을 해봤던 그 친구들이 제2의 유자살롱을 만든다면,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외롭고 절망스러운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겠죠.

그게 진짜 유자살롱인 것 같아요.

‘유자살롱’ 공동대표 이충한씨

저는 16살이고 ‘유자살롱’에서 기타를 배우고 있습니다. 작년에 4기로 시작했는데 5기 때 심화 과정을 끝내고 지금은 또래 스태프로 6기 친구들을 도와주고 있어요. 중1 여름 방학 끝나고부터 학교에 안 갔어요. 집에만 1년 넘게 있다가 몸이 아파서 3개월 정도 병원에 있었는데 병원 선생님이 유자살롱을 소개해주셨어요.

제가 좀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웠는데 밴드를 하고 합주를 하다 보니까 꼭 이야기로 사람을 사귀는 게 아니구나, 싶어서 좋았어요. 자기 악기, 역할을 가지고 만난다는 거요. 또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새로운 해결 방법을 찾아줄 때도 있고, 안 되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밖에 안 하지만 그래도 좋은 것 같아요.

여기 있으면서 사람들 만나는 것도 재밌어지고 스스로 뭔가 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이 기회에 유자살롱 선생님들께, 아… 오글거려서 한마디밖에 못 하겠는데…. ㅎㅎ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집밖에서 유유자적’ 프로그램 4기 참가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