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역사가 좀 있으니 일단 말은 놓을게. 요즘 많이 덥지? 한여름 뙤약볕 아래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답답하고 열이 나면서, 맥을 못 추고 어지럽다가, 심한 경우 쓰러지는 경험도 해봤을 거야. ‘더위’를 먹어서 생기는 증상이지. 날씨가 무더워지면 체온이 지나치게 올라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평소보다도 30% 정도 많은 혈액이 피부 근처로 몰리게 되거든.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위장과 근육들이 혈액 순환이 잘 안돼서 그래. 때문에 소화도 쉽게 되고 열이 많은 음식을 먹어 냉~해진 위장과 간을 보호해줘야 해. 즉 나 삼계탕이 답인 거지. 왜 나인지 지금부터 설명해줄게, 잘 들어봐.
닭과 인삼이 처음 만난 게 언제냐 하면
사실 삼계탕 한두 번 안 먹고 여름 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삼계탕의 인기가 이 정도로 된 데는 사연이 좀 있어. 여름엔 소화 잘되고 열이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위에서 얘기했지.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여름 보양식으로 개고기 보신탕을 많이 먹었어. 근데 1988년 서울올림픽 때 국제동물보호단체 등이 한국인의 ‘개고기 문화’를 비하하고 혐오 식품으로 여론몰이를 하는 바람에 보신탕집이 된서리를 맞고 뒷골목으로 숨게 됐잖아. 그 덕에 삼계탕이 여름 보양식의 으뜸으로 자리를 잡게 된 거지.
알고 보면 우리 삼계탕이 아주 대단히 오래된 음식은 아니야. 신라 천마총(A.D 5세기)에서 달걀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닭은 꽤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했어. 그런데 인삼이 이 땅에서 만들어진 것은 16세기부터야. 당시에도 세계적인 영약으로 알려진 산삼을 공납하기 위해 백성들이 산속을 헤매느라 농사에 전념할 수 없었다고 해. 이런 폐단을 안타깝게 여긴 주세붕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직 중이던 1541년에서 1545년 사이에 산삼 씨앗을 구해서 인삼 재배법을 개발해내신 거야! 그러니까 나 삼계탕은 그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봐야지.
영계백숙? 연계백숙?
‘백숙(白熟)’은 간을 하지 않고 맹물에 마늘과 닭을 넣고 끓인 음식을 말하는 거야. 근데 보통 새끼를 낳지 않은 닭 혹은 병아리보다는 크지만 아직 살이 무른 햇닭을 연계라고 불렀어. 또 한편으로는 어린 닭의 살이라 야들야들하고 연해서 ‘연계(軟鷄)’라고 부른 것 같아. 이 연계가 나중에 젊은 닭을 뜻하는 young+계(鷄)=영계란 말로 변형된 거야.
아무튼 이 백숙이 주세붕 선생이 재배한 인삼을 만난 이후부터 찹쌀, 밤, 대추와 함께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끓여 먹는 음식으로 발전했어. 근데 처음부터 삼계탕이란 이름으로 불린 건 아닌 것 같아.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월간지 <조선>에 보면 “더위가 오면 부자들은 거의 매일 계삼탕을 복용한다”는 기사가 나오거든. 계삼탕이 삼계탕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인삼이 대중화되고 외국인들이 인삼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 1960년대 이후 음식점 주인들이 삼계탕으로 간판을 고쳐 걸게 된 이후부터로 보고 있어.
영양 면에서도 화려하기가 특급이지
삼계탕의 주연급인 닭고기는 소화·흡수가 잘되고 단백질과 불포화 지방의 비율이 높아서 소고기보다 건강에 좋은 재료야. 특히 메티오닌을 비롯한 필수 아미노산이 많아 새살을 돋게 하는 데 효과가 있고, 닭 날개 부위에 많은 뮤신은 성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고 성기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그리고 인삼 좋은 건 세상 사람이 다 알잖아. 진세노사이드라고 불리는 사포닌 성분이 원기 회복과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데 큰 도움을 줘. 조연들도 무시할 수 없어. 황기는 머리를 맑게 해주고, 마늘은 항암 효과가 있고, 밤과 대추는 위를 보하면서 빈혈을 예방해주고….
요즘은 맛으로 즐겨 먹는 맛객들로 인해 사시사철 삼계탕집이 붐비고 있기도 하지. 삼계탕 국물을 보면 어느 가게는 말간 국물인가 하면 또 어떤 집은 뽀얗고 걸쭉한 국물이기도 해. 작은 영계로 국물을 내면 말간 국물이 나오지. 그런데 이것이 심심하다 생각했는지 곡물이나 견과류를 갈아 넣어서 국물을 낸 거라는군. 점점 이런 고소하고 걸쭉한 국물의 삼계탕을 만드는 집이 늘어나는 추세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음식 문화인지라 얼마 후에는 이것이 삼계탕의 일반적인 레시피가 될지도 모르지. 그러면 또 어디선가는 ‘옛맛’ 삼계탕이라고 간판을 걸고 맑은 국물로 마케팅할지도.
소음인에 특히 좋은 삼계탕, 체질 가려서 미안해
한편에서는 평소 몸에 열이 많은 사람, 고혈압이나 뇌졸중을 주의해야 할 사람에게는 삼계탕을 권하지 말라는 얘기도 있어. 한의학에서 보면 삼계탕은 대표적인 소음인 음식이래. 추위도 많이 타지만 특히 여름에 기운이 없고 땀을 많이 흘리는 소음인들은 허열(가짜 열)을 갖고 있는데, 삼계탕이 바로 이런 허열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야. 하지만 태음인이나 태양인에겐 맞지 않는 음식이란 말도 맞대. 그렇지만 예전의 한국 토종닭들은 사납고 심지어 하늘을 날았다니까 요즘의 비실비실한 양계장 닭들은 조상들보다 약성도 떨어질 거야. 삼계탕이 약은 아니지만 효력 면에서 본다면 예전만은 못하겠지.
모처럼 회식하러 삼계탕집 갔는데, “나는 체질에 안 맞아서…” 하고 빼면 눈총받을지 모르니까 미리 친한 친구랑 삼계탕집 가서 한 그릇 가지고 임상 실험이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