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바람·돌의 건축가’로 불리는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1937~2011). 4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해온 그를 기리는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이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사람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그는 200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을 수상하며 세계 건축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어 2010년 한국 국적의 건축가로서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하며 일본 건축계에서도 대가로 인정받았다. 자연 앞에 겸손했던 그의 건축은 흙·돌·나무 등 날것의 소재에 빛과 바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간을 빚어냈고, 따스한 온기를 담은 건축을 탄생시켰다. 그가 직접 말하는 건축과 인간,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건축은 자연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는 특별한 건축물이 하나 있다. 하늘의 교회, 이른바 방주 교회다. 창세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 건축물은 마치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건물의 지붕은 건축가가 지난하게 고민했던 흔적들을 말해준다. 반짝이는 은빛 철제 지붕은 제주도의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표정 – 날이 좋은 표정, 흐린 날의 표정 – 등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온전히 담겨지는 것이다.
건축가 이타미 준. 그는 한국과 일본 경계 사이에서 늘 이방인의 시선을 받았던 건축가였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존재의 근원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것은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본의 수많은 건축가들은 풍부한 기술로 첨단 건축을 선보였지만, 그는 사물 본래가 가진 모습을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다. 자연은 그에게 최고의 건축 소재였던 것이다.
“건축의 경우에도 의식적으로 흙, 돌, 금속, 유리, 나무 등의 소재를 콘크리트와 대비시킨다. 유리를 통해 비쳐 드는 빛으로 인해 빛나는 금속, 그런 것들에서 소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나무나 돌은 시간의 추이에 따라 거뭇거뭇해지고, 금속은 녹이 슬면서 색이 변하고, 유리의 빛 역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한다. 예술은 태어난 곳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내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일이다. 내가 너무나 감탄한 것은 비 갠 후 물기를 머금은 돌바닥에 비친 기둥들이 만들어낸 빛과 그림자의 아름다움이었다. 말로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이 아름다움은 인간의 작위보다 자연이 오히려 한층 더 놀라운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 뒤 어떤 형태로든 내게 영감을 주었다. 지금도 그때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건축가는 도공의 마음과 같이 무심(無心)으로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
이타미 준은 고미술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1968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로, 매년 한 달에 3~4번씩 꾸준히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한국의 미를 추구했던 건축가였다. 우연히 본 조선 민화에 매료된 이후 민화를 비롯한 고가구와 벼루, 신라의 불상, 그리고 조선시대의 백자 등 이 모든 것들은 그에게 영감을 주었고, 우리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기에 이른다. 특히 “진품 백자를 만나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고백처럼, 백자는 그에겐 또 다른 스승이었다.
“백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우윳빛 표면을 손으로 만지면 저절로 달라붙는 질감…. 그 온기와 자연의 미를 건축 속에 담고 싶다. 조선 민화나 고가구, 백자 항아리처럼 튀지 않고 자연과 환경에 스며들어 빛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내 건축이 지향하는 것이다. 특히 긴장을 풀어주는 은은함을 지닌 조선 자기는 현대 건축에서 가장 부족한 온기와 소박함을 가르쳐준다.”
이타미 준은 ‘이 시대 마지막 아날로그 건축가’라고 불릴 정도로 손의 감각에서 비롯되는 건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치 도공이 도자기를 빚듯이, 손으로 스케치를 하고 드로잉을 했을 때라야 질감 표현과 온기를 담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구상 단계에서부터 구현될 건축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표현함으로써 철저히 아날로그 감성을 지키려고 했다.
“건축가는 겸손한 자세로 대지를 대하고 건축을 해야 한다”
특히, 수(水)·풍(風)·석(石) 미술관은 하나의 자연이자 예술이 되는 건축을 꿈꿔왔던 그의 건축 철학이 가장 잘 녹아 있는 건축물로 손꼽힌다. 당시 관리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미술관 짓는 것을 고민했던 건축주에게 그가 제안한 건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이었다. 그것은 관리가 따로 필요 없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자연인 물, 바람, 돌을 수집한 미술관이었다. 천장이 뚫린 덕분에 물과 하늘이 만나고, 갈대밭의 바람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어두운 박스 안 꽃잎 모양으로 열린 구멍을 통해 빛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수·풍·석 미술관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탁월한 사상에는 체온 같은 것이 있고, 탁월한 건축에도 따스한 체온이 있다고 생각한 건축가 이타미 준. 그는 인간이 그러하듯 건축 역시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가는, 영원한 자연에 비하면 잠깐 왔다 가는 아이 같은 존재라고 여겼고,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건축은 인간에 대한 찬가이자 자연 속에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바치는 또 다른 자연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