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는 저를 보면서 여전히 짜증 난다고 말합니다. 저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본모습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원챈스>의 개봉에 맞춰 내한한 폴 포츠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성공한 후의 자신에 대해 물어보자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실수투성이라며 우리나라에 와서도 커다란 간장을 넘어뜨려 와이셔츠를 버렸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왜 그는 자신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당연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듯이 말했을까.
폴 포츠. 아마도 그의 성공담을 모르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영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나와 독설가 심사 위원으로 유명한 사이먼 코웰을 미소 짓게 만들었던 인물. 뚱뚱한 몸에 훈남이라고도 할 수 없는 외모, 게다가 당시에도 적지 않은 나이의 이 휴대전화 판매원이 오디션 무대에서 그것도 대중적이지 않은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했을 때 관객은 물론이고 심사 위원들조차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부르는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오디션장을 가득 채웠을 때 관객들과 심사 위원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는 단 한 곡의 노래로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폴 포츠의 삶이 워낙 드라마틱해서인지 그를 다룬 영화 <원챈스>는 특별한 이야기를 가미하지 않고도 극적인 영화가 되었다. 흔히들 폴 포츠를 ‘인생 역전’의 대명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원챈스>라는 영화를 통해 폴 포츠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접해보면 그 안에는 ‘인생 역전’ 같은 세속적인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폴 포츠는 <브리튼즈 갓 탤런트> 우승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하고 자신의 이야기가 책은 물론 영화화되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왜 달라진 것이 없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는 걸까.
폴 포츠의 성공은 무언가 대단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오페라에 빠져 있었고 타고난 외모 때문에 왕따를 당할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고 그래서 또 노래를 하고…. 이 무한 반복이 그의 유년과 청소년 시절의 대부분이었다는 것. 하지만 오페라 같은 건 남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아버지 밑에서 억눌려 있었다. 그러니 그는 엄밀히 말하면 휴대전화 판매원으로 일하다가 오페라 가수로 변신한 게 아니다. 그는 본래부터 준비된 오페라 가수였지만 현실에 억눌려 다른 삶을 자기 삶인 것인 양 치부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따라서 폴 포츠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꿈’을 이루는 ‘인생 역전’의 스토리가 아니다. 대신 그것은 자신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이고, 따라서 그 본래 모습이 무엇이든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삶의 자세다. 폴 포츠는 자신의 부족한 면들을 모두 긍정했고, 또 부족한 삶이 만들어낸 노래에 대한 열정(그가 왕따를 당하면서도 살아낼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이 노래가 아니었던가!)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래서 어느 날 그에게 운명처럼 날아든 단 한 번의 기회(One chance)는, 사실상 준비된 그에게는 자신의 본모습이 갖고 있는 매력을 드러내는 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승리와 절망을 만났을 때 그 두 사기꾼을 똑같이 대하라.’ 이 키플링의 시는 폴 포츠가 어렸을 때부터 간직하고 있는 좌우명이라고 한다. “승리와 절망은 실체가 없고 우리가 겪는 과정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에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폴 포츠의 이 말은 성공이든 실패든 변치 않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앞으로 걸어 나가는 그의 인생을 고스란히 드러내준다. 폴 포츠는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당신 그대로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