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며 매의 눈으로 땅을 바라보면 세상사 자잘한 것들까지 모두 보일까. 풀과 흙과 자갈과 모래가 모두 한눈에 보이고 한 가슴에 젖어들까.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고 들을 지나는 바람을 따라가면, 가슴에 밟히고 눈에 밟히는 것은 흐르는 강이고 휘어지는 논두렁이고 빛나는 아지랑이구나.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 병아리 떼 쫑쫑거리는 봄날의 땅 가에서 일찍이 고향을 잃어 상처 난 마음 살에 보송보송 솜털 같은 새살이 돋아나는구나. 아버지는 삽을 들고 새벽안개 가득한 들판으로 나가 안개 따라 다가온 동녘햇살 한 삽 한 삽 퍼 올려 들판 가득 채우시고, 어머니는 들밥 광주리 이고 나가 햇살 푸짐한 들판에 고수레 뿌리시니 보리싹 새싹이 아지랑이 반주에 흔들흔들, 고랑고랑 논고랑 밭고랑에 촉촉한 젖빛 물이 깃든다. 종달새 종종 대는 봄날, 농부들이 고랑을 치고 밭을 갈 때, 강을 따라 걷거나 들길을 따라 걷는 일은 지상에서의 가장 큰 축복이다. 바람은 부드럽고 햇살은 따뜻한데 땅에서는 아른거리는 추억이 솟아나면 맨발로 걸어볼 일이다. 천지의 기운이 혈관을 타고 오를 것이다.
들은 땅이고 땅은 흙이다. 강과 산은 들을 키우고 흙을 거름지게 한다. 들은 세상의 품이고 들은 농심이고 농심은 흙이다. 언 땅이 풀리고 흙이 젖어들며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농부의 마음은 부풀어진다. 이때가 농부가 가장 부자 마음일 때다. 아무리 거창하게 이야기를 시작해도 땅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농심으로 돌아온다. 이는 우리 정신 속에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고향을 품고 있는 DNA 때문이다. 이는 또 먹고 사는 즐거움이 된다. 보리와 쌀, 고구마와 감자, 푸성귀, 옥수수, 된장과 고추장, 풋고추 등등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들판에 가득하다.
봄날 오면, 봄 햇살 가득한 들판의 농부들은 가래질, 쟁기질, 호미질, 삽질을 하다가 들밥을 기다린다. 농사는 들밥 먹는 재미로 한다고 했다. 어쩌면 들판의 곡식도 들밥과 막걸리를 먹고 크는지도 모른다. 우수 경칩이 지나고 아지랑이 피어오를라치면 도시락 싸들고 들밥 먹으러 들로 나가 고수레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