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50이 넘어 보니 그 말이 실감이 난다. 나보다 어른들이라면 대개는 60대에서 70대 이상의 분들이다. 그들은 욕심과 거리를 두고 안쓰러운 것들에 눈길을 보낸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그게 누가 되었든 노력하는 젊은이를 위해 손을 걷어붙이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자신들이 겪었던 어려움, 그 미로에서 헤매는 젊고, 용감하고, 가여운 영혼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 어른들이 있어 세상은 살 만하다. 내 가장 힘든 인생길에서 만난 정춘수 어른도 그렇다.
나는 30대에 사업을 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IMF로 모든 것을 잃어야 했다. 우연한 계기로 승마 일을 접하게 되었다. 새벽 6시, 마장에서 말똥을 치웠다. 말똥을 치우던 그 첫 삽에서부터 나의 인생은 새로 시작되었다.
이후 ‘찾아가는 승마교실’을 열고 장애인들의 치유를 위한 재활승마교육, 매년 말을 타고 하는 기마국토대장정 등 승마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일을 기획하고 시도했다. 보람도 있었지만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고 힘들 때도 많았다.
그때 정춘수 어른이 들려준 말씀은 늘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 어른은 내가 남양주 쪽에서 운영하던 승마장의 땅 주인이었다. 71세신데, 키가 185에 지금도 사냥하러 다니실 정도로 건장한 장수 스타일의 분이다.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다 은퇴하고 농장 일을 하고 계셨다.
어른은 두 번 정도 기마국토대장정에 함께하며 도움을 주셨는데, 그 과정에서 더욱 관계가 깊어졌다. 사업을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오해를 받을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이 사람은 그럴 사람 절대 아니다”라며 당신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셨다. 그분이 3년 전 들려주신 말씀을 아직도 새기고 있다. 스트레스로 힘들었던 그날, 어른은 나를 보더니 식사나 하자 하셨고, 그 자리에서 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내가 젊을 때 우리 아버님이 돌아가셨지. 내가 외동이야. 젊을 때 성질도 괄괄했지. 그러니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얼마나 걱정이 많으셨겠어? 그분이 유언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어.
‘나 죽고 난 후, 네가 살다가 힘든 일을 만나, 누구 이야기할 데도 없으면 무조건 여행을 떠나라. 어디든 아무 마을에라도 들러서 그곳의 제일 어른을 찾아가. 가서 아무 말씀이라도 들려 달라고 해봐. 아무리 촌로라도, 그분들은 인생을 살면서 굉장히 중요한 어떤 것들을 깨달았을 거야.’
그렇게 해서 나는 얻은 게 있었지. 늘 웃는 것과 남에게 굽히는 것. 언제나 뻣뻣하게 덤벼드는 놈들은, 늘 어디서고 깨지지. 굽히고 들어가서 좀 도와달라는데 누가 죽이려 들겠냐 말이야? 게다가 웃으면서 굽히면, 누가 굳이 뺨을 때리려고 들겠어?
내 말 오해 말고 들어요. 김대장도 말이야. 카우보이 모자 쓰고 늘 아주 빳빳하잖아? 특히 승마 부츠를 봐봐. 어른들 볼 때는 딱 일본 순사라니까? 덩치나 작어? 그런 사람이 허리 꼿꼿하게 펴고 다니면 다들 뒤에서 뭐라고 하지. 그러니 늘 웃으면서 굽히고 들어가. 그러면 누가 뭐라 하겠어? 특히나 김대장처럼 큰일 할 사람은 어디서나 적이 있어서는 안 돼요.”
어른의 진심이 전해져 뭉클해졌다. “뭐 그다지 큰일 할 위인은 못 되지만, 그래도 늘 명심하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이후로 좀 더 유연하게 상대방 입장에서 조금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정춘수 어른은 요즘도 혼자 여행을 하신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제 일흔한 살이니 나도 나이 많이 먹었다 생각했는데, 이번에 여행 가서 혼자서 텐트 치고 다 하는 83세 어른을 만나고 나니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네. 김대장 자네는 아직 어린 애니 열심히 하시게.”
정춘수 어른을 뵈면 나도 내 후진들에게 뭔가 쓸 만한 말을 남기는,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곱게 나이 들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