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어느 곳이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 ‘제일 안전한 피난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다’….

엄마 생각

김동진 시인, 수필가. 중국 길림성 훈춘시

나로 말하면 눈이 내리는 겨울, 산과 들이 하얗게 소복단장을 하는 세밑이 오면 엄마 생각에 깊이 잠기곤 한다. 그것은 바로 눈이 백포처럼 하얗게 덮인 섣달에 엄마가 하얀 옷을 입으시고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자식치고 어느 누가 아니 그러하랴만 나도 울 엄마 생각을 하면 콧등이 찡해나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엄마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것은 팔순이 넘은 로모의 왜소하고 수척한 모습이다. 성성한 백발과 밭고랑 같은 주름살, 기역 자로 굽은 허리와 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손발…. 그려보기조차 안쓰러운 엄마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다.

평생을 가난과 싸우면서 살아오신 엄마는 당신 한 몸을 운신하기도 힘든 꼬부랑 할머니로 되었음에도 다 큰 자식을 두고 내내 시름을 놓지 못하시었다.

내가 밖에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마치 물가에 나간 어린것을 기다리듯이 잠을 이루지 못하신 엄마, 내가 출장 가는 날이면 4층 베란다에 나오시어 백발을 날리시며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시던 엄마, 손녀가 사다준 보건품을 며느리 모르게 가만히 나를 먹으라고 주시던 엄마.

엄마는 이처럼 아무런 대가도 바람이 없이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식을 위해 무엇인가를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었다.

엄마는 ‘엄마’라는 숙명적인 이름으로 나에게 생명의 피와 살과 뼈를 주시었고, 엄마는 ‘엄마’라는 특정적인 이름으로 나에게 사랑의 빛과 열과 향을 주시었다.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떠나가는 그날까지 평생을 누구하고 큰소리 한 번 친 적이 없고 남보다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린 적이 없고 남에게 해코지한 적이 없이 그토록 선량하고 깨끗한 마음과 불 땐 가마목처럼 따뜻한 가슴 그리고 사슴의 눈처럼 어진 눈으로 고달픈 세상을 조용히 사시다 가신 나의 엄마!

엄마를 보내고 나서 나는 껍데기만 남은 채 처마끝 바람에 흔들리는 거미를 보면서 엄마 생각을 하였고 논코물에 떠내려가는 속이 텅 빈 우렁이를 보면서 울 엄마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올해도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고 세밑이 다가오니 코끝이 찡하게 눈물이 핑 돌게 엄마 생각이 난다.

아, 나를 울리는, 못 견디게 슬픈 ‘엄마’라는 이름이여!

이혜민 작.

<그리움>

보리차 아줌마, 김종임 여사

고욱향 68세. 주부. 전남 구례군 구례읍

‘사랑아~ 사랑아~ 내 사랑아~’
울 엄마 하면 따순밥, 따뜻한 보리차가 생각난다. 우리 엄마는 항상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셨다. 울 엄마는 부엌에서 항상 된장국을 끓여서 부뚜막에 따듯하게 올려놓았고 따순밥은 따뜻한 아랫목 이불 속에 따땃하게 넣어두었다. 어릴 적에 크면서 바라본 엄마의 모습은 항상 밝고 고우셨다. 언제나 고운 한복 차림이셨다.

옛날에는 왜 그렇게 지나가는 거지들이 많았는지 모른다. 1964년도 국민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울 엄마는 거지 아저씨, 거지 아줌마 5명을 집으로 데려오셔서 부엌에서 따뜻한 국물, 따뜻한 보리밥을 해서 아궁이에서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 그분들을 모셔놓고 따순밥을 해주셨다. 엄마는 그렇게 사랑을 퍼주시면서 살아오셨다.

우리 동네에는 5일장이 열렸다. 장날이면 엄마는 큰 가마솥에다 보리차를 끓여서 시장 상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셨다. 엄마의 별명은 보리차 아줌마. 나는 보리차 딸로 통했다. 시장에 내가 짜안 나타나면 “어서 오그라~ 어서 와~” 상인들이 나를 반겨주셨다.

그래서 나는 5일장을 기다리면서 엄마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손은 거칠어지고 불을 때느라 나무 연기, 나무 재에 얼굴을 시꺼멓게 그을려도 어머니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보리차를 끓이셨다.

“사랑아~ 사랑아~ 내 사랑아~”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셨던 울 엄마. 그런 장한 김종임 어머님은 2000년도에 사랑하는 가족들 품을 떠나셨다. 엄마 크게 한 번 불러본다.

어머니~ 김종임 엄마~!
그곳에서도 따순밥, 보리차 사랑을 실천하시나요? 하하~ 호호~
엄마의 딸 막둥이 딸 엄마를 생각하면서 살고 있답니다. 엄마가 하늘 속에서 막둥아~ 막둥아~ 하면서 꼭 나를 부르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움’
저녁노을 바라보면서 논둑길을 걸어보았다
풀 내음, 흙냄새, 엄마 냄새
코끝으로 다가와서 하늘빛이 더욱더 빨갛다
저 붉은 노을빛 속에 엄마의 웃는 모습 보이는 것 같아
지나간 시간 못내 아쉬워
오늘따라 바람결이 어머님의 따뜻한 품속 같아라

이혜민 작.

<그리움>

엄마는 왜 이렇게 소심해?

김하정 콜롬비아 보고타 거주

울 엄마를 장장 17년(이제 18년 다 되어간다) 동안 보아온 나의 감상문(?)을 쓰자면 꼭 처음은 이렇게 시작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울 엄마는 딸내미인 내가 봐도, 킹왕짱 소심쟁이가 틀림없다. 항상 스마일 페이스에, 착한 성격 그 이름도 착할 선(善)! 심지어 일명, 빡센 아빠와(아빠 미안!) 같이 알콩달콩 애정스러운 말다툼을 자주 하곤 한다.

어느 날은 정말 두 분이 싸우시는 줄 알고 지나가던 오빠가 물었더랬다.
“둘이 진짜 싸워요?” 그러자 우리 아빠, 비실 웃으며, “아니야, 우리 같이 노는 건데, 그렇지?” 그리고는 엄마를 응시한다. 눈치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마주치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아빠의 눈빛에 약간 삐친 것 같았던 엄마도 어느새 밝게 웃으며 답해준다.
“당연하지!!”

어쩜 두 분께선 지금까지도 유치하게 잘 노시는지,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착한 이미지 때문인지, 아니면 엄청 소심한 건지 우리 엄마는 집 밖에서 화를 잘 못 내는 성격이다. 아무리 화나도,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티 안 내고 이름처럼 착하게 사느라 노력하는 그 모습이 어찌 보면 참, 엄마에게는 기립박수를 수여하고 싶다. 하지만 가끔 정말 그런 착한 엄마가 너무 답답해서 어느 날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이렇게 말했더랬다.

“울 엄마는… 너무 착한 게 문제예요!”
뒤이어 터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니 당돌한 딸내미의 멱살을 잡지 아니하고 같이 웃어주신 엄마는, 진짜 착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우리 엄마가 가끔은 어쩜 그리 귀여운지 모른다.

한날은 내가 “엄마는 왜 이렇게 귀여워?” 하고 물으니, “야… 무슨 엄마보고 귀엽다고 그러냐…”라며 작게 투정 부리는, 울 엄마는 왜 저렇게 소심하고도 귀여운지! 아니 소심해서 귀엽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런 엄마가 좋아서 항상 우리 남매는 텔레비전을 볼 때도 엄마 무릎을 가지고 쟁탈전을 벌이고는 했었다. 다 자랐다면 자란 자식들이 그러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 쟁탈전은 참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만약 아빠가 있었더라면 아마 “내 거야!” 하며 같이 쟁탈전에 참여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하며 피식 웃어본다.

한때(여기서 한때란, 그 이름도 유명한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 시절 되시겠다)는, 그런 엄마에게 거짓말도 밥 먹듯 하고, 속도 어지간히 썩이던 그때의 나, 그 시절의 하정이와 할 수만 있다면 주먹의 대화를 나누고도 싶다.

물론 엄마가 항상 소심한 것은 아니다. 자식들에게 올바른 길을 인도해주기 위해서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우리를 꾸짖으셨다.

한때는 미웠던 당신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무엇보다도 응원하고 계셨던 그 엄마의 모습을.

지금은 비록 지구 반대편에서 열심히 언어 공부를 하고 있는 터라, 직접 엄마를 볼 수 없지만, 이따금씩 영상 통화로 연락할 때 비치는 엄마의 얼굴은 항상 대한민국 아줌마일 것 같았던 그 모습이 아닌, 많이 늙어버린 모습에 왜 진작 잘해주지 못했을까 싶어, 살짝 울컥한다. 가끔은 어렸을 적 엄마 냄새가 좋답시고 엄마의 치마에 얼굴을 묻고 하루 종일 냄새를 맡던 그 순간도, 그리고 엄마의 소심한 애교도, 한겨울 “하정아, 추워! 같이 가자!” 하며 펭귄처럼 통통 튀어오던 그 엄마의 추억이 아직 내 가슴 한켠에 남아 반짝인다.

나도 엄마 딸이라 그런 건지. 어째 그렇게 맘에 안 들던(?) 엄마의 소심한 모습은, 이제 훌쩍 커버린 나의 성격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유전의 법칙인 걸까…?

그래도 이젠 그 ‘소심’이라는 단어가 그리 싫게 들리지는 않는다. 지금 나에게 소심이라는 단어는 그리운 엄마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운 그 냄새도, 얼굴도, 그리고 소심한 성격일지라도 반듯한 신념으로 자식들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 엄마가, 나는 좋다.
마지막으로, 매달 이 ‘월간 마음수련’ 책을 보시는 엄마에게 외친다!

“엄마, 이 글이 거의 다 끝나가니까 하나만 물어봐도 돼? 엄마는 왜 이렇게 소심해? 사랑스럽게…!”

이혜민 작.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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