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이런 곳이?
모르는 사람을 위해 커피 값을 내고, 또 누군가가 미리 계산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가게가 있다. 햄버거 가게면 햄버거를, 빵집이면 빵을 미리 계산하고 또 무료로 먹는 것이다. 동서울대학교 김준호 교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커피 값을 미리 계산해놓는 유럽의 나눔 문화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 운동을 알게 된 후, 한국에도 이런 운동을 전파해야겠다 결심하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이름을 ‘미리내가게’라 붙였다.
처음에는 커피 10잔을 마시면 한 잔을 무료로 주는 음료 쿠폰에서 착안해 손님들이 한두 개 찍고 버리는 쿠폰의 도장을 모아 생기는 무료 커피를 기부하는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손님들이 원하는 메뉴를 미리 계산하거나 특정 누군가를 지정해 미리 계산을 하는 등의 가게마다 운영 방식을 다양화했다.
지난 5월 처음으로 시작한 경남 산청의 커피숍 이후 7개월 만에 전국은 물론 스리랑카와 일본까지 모두 100여 곳의 미리내가게가 생겼을 만큼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미리내 네트워크. 최근에는 이화여대 내 학생 식당도 미리내가게가 되었다고 한다.
누군가를 위한 따듯한 밥 한 끼 살 수 있고, 또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모두에게 고마운 일이다. 받는 사람은 기분 좋고, 미리 내는 사람은 더 기쁜, 생활 속 나눔 운동이다.
‘미리내맨’ 김준호 교수 이야기
기부라고 하면 뭔가 큰 결심을 해야 할 수 있는 거지만, 나눔은 ‘지금 있는 데서 조금 떼어주는 거’잖아요. 누구나,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게 나눔이라고 생각해요. 기부라고 하면 어려운 사람과 아닌 사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나누게 되는데요, 그냥 너도나도 편하게 먹고 또 내주기도 하는 새로운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특히 요즘 청소년들과 어른들은 세대가 단절되다시피 했는데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미리 빵 값이라도 내주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도 쌓고 그러다 보면 아이들도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동네 가게들이 새로운 가치를 나눌 수 있는 매개 공간으로 바뀌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서스펜디드 커피 이야기를 SNS를 통해 접했어요. 너무 좋은 아이디어 같아서 나 혼자라도 할까 했는데 미리내가게라는 게 생긴 걸 알고 너무 기뻤어요. 와~ 나 같은 사람 또 있네! 바로 김준호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지요. 다들 걱정하시는 부분이 ‘아무나 먹으면 어쩌지?’예요. 그런데 막상 시작하니 공짜로 먹는 사람보다 미리 내는 사람이 더 많더라고요. 그래서 오시는 분들께 편하게 드시라고도 권하고 여름철 고생하시는 택배 기사님께 시원한 커피 한 잔 드리기도 해요.
한 번 미리 내보신 손님들은 “이렇게 기분 좋은 거”였냐며 굉장히 좋아하세요. 올 때마다 미리 내주시는 단골손님도 있고요. 따로 시간 낼 필요 없이 생업 속에서 할 수 있는 나눔 운동이라 저로서도 더 뿌듯하고 자신 있게 손님들께 권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이런 착한 가게다’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따듯한 마음을 나누는 공간을 만드시고 싶은 사장님들께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