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울었어요? 그깟 놈 보내기가 그렇게 서러웠어요?”
두 번째 수술(전절제) 후 첫 회진 때 오셔서 하신 노동영 박사님의 첫 말씀이었다.
수술 결과가 어땠는지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는 그만 피식 웃음이 난다.
긴장되고 아마득한 상황에서도 박사님의 ‘툭’ 던지는 한마디는 긍정의 힘이 되어 잔뜩 웅크렸던 마음이 풀어지곤 했다. 대한민국 최고 명의답지 않은 소탈함과 친근함에 두려움은 어느덧 절반이 된다. 대부분의 환자가 여성이라는 특성도 있겠지만 몇 백 명의 여성 속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우리와 한마음이 되어 잘 어울리신다.
어느 해인가 워터파크가 있는 리조트로 수련회를 간 적이 있는데, 그곳 풀장에서 유일한 청일점이었던 박사님이 하얀 가운 대신 수영복 차림으로 물놀이를 하는 모습에서 진정으로 환자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느꼈었다. 환우가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마다치 않고 시간을 쪼개어 함께하시는 박사님, 우리 또한 박사님이 떴다 하면 구름처럼 모여든다.
등산, 야유회, 수련회, 트레킹…. 오죽하면 노교주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환자에 대한 배려는 수술실 안에서도 나타난다. 서울대 의대 오케스트라 지도 교수이기도 한 박사님은 공포에 떠는 환자를 위해 수술실에서도 은은한 음악을 틀어놓고 특유의 부드럽고 개구진 미소로 맞이하신다.
암 병원장이기도 하신 박사님은 한국유방건강재단 상임이사장이기도 하고 한국유방건강재단 설립 초기인 2000년부터 이사로서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국내 핑크리본캠페인을 해왔으며, 유방암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키고 유방암 조기 검진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계신다.
학술적으로는 유방암 수술 방법인 감시림프절 생검술의 장기적 안전성을 세계 최초로 입증하는 등 국내 유방암 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끌어왔으며 2011년에는 분쉬의학상, 홍조근정훈장을 수여받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기도 했다.
학회에 따르면 유방암의 맞춤 진단 및 치료를 위한 7건의 바이오마커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논문 170여 편을 국제학술잡지에 게재했다고 한다.
외과에서 처음으로 수상한 분쉬상 수상 소감에서 박사님은 “환자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더 많은 환자의 완치를 위해 계속 연구하고 노력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언제 어디서나 환자가 우선이고 환자만이 박사님 가슴 안에 있는 것 같은 대목이다.
당신의 인생도 리셋을 할 때가 되었다며 함께하셨던 장장 13일간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는 5천 미터 정상을 300미터 남기고 고산병으로 하산해야 했던 박사님.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면서도 죽네, 사네, 울고, 불고하던 그녀들이 당신 걸음을 앞질러 정신력과 체력으로 단단히 무장한 채 ‘씩씩하게 설산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을 기특하게 바라보셨다.
그 많은 환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다 알아보시는 세심함, 어마어마한 진단을 안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설명해주시는 자상함, 환우회 모임 때는 항상 드레스 코드를 핑크로 하시는 패션 센스, 체력을 길러야 많은 환자를 돌보신다며 스스로의 관리에도 철저하신 강인함을 지니신 분. 유방암이 아니었으면 못 만났을 큰 분을 너무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가져가신 만큼 주는가 보다. 이런 분을 내게 보내주셨으니 말이다.
지난 5월에 홍콩유방암협회와 한인여성회에서 주최한 행사에 참가했다가 드레곤스백 트레킹을 한 적이 있다. 박사님의 수술로 다시 피아노를 치게 된 서혜경씨도 함께했는데 어찌나 박사님에 대한 사랑이 큰지 1,500석 홀에서 박사님만을 위한 곡을 즉흥적으로 연주를 했고, 트레킹하는 환우들을 산 중턱에 모아놓고 스승의 노래를 즉석 개사하여 연습을 시켜서 박사님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었다. 마지막 가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 영원하리~ 노~바이처~~’
내 인생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을 꼽으라면 노동영 박사이시다. 할 수만 있다면 그분께 내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을 쪼개어 나누어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