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신영태(40). 그는 2001년 북경 유니버시아드대회 폐막 공연,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개막 공연, 2012년 MBC 드라마 <마의> 등에 출연한 대북 연주가이다. 굵직굵직한 공연을 도맡으며 승승장구했지만 언젠가부터 국악인으로서의 그 어떠한 재미와 보람을 찾을 수 없었다던 그. 왜 이러는 걸까? 스스로 괴로워하던 중 마음수련을 만난 그는 이제 국악이 갖는 본래의 이치를 깨닫고 무대 위에서의 신명도 되찾았다 한다. 신영태씨가 전하는 마음 빼기 이야기.
“그 옛날 사람들이 짐승을 잡아먹고 불쌍해서 그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죽으로 만들어 친 것이 북의 시초입니다. 북소리는 사람의 심장 소리와 비슷합니다. 심장은 평소엔 둥~ 둥~ 뛰다가 좀 힘들면 둥둥둥둥~ 난리가 납니다. 어떻게 보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자기도 모르게 평생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죠. 어떤 때는 잔잔하게 뛰고 어떤 때는 격하게 뛰고 있나 한번 확인해 보면서 오늘의 공연을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제가 한창 전국을 순회하면서 마음 토크 콘서트 공연을 하고 있는데, 이런 말로 오프닝을 합니다.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고 성찰, 치유의 길을 알려주자는 취지로 기획한 공연이다 보니, 아무래도 자신의 마음도 돌아보며 자신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이며 공연을 즐기시면 좋으니까요. 다행히 관객분들이 “오기 전엔 답답했는데 가슴이 탁 트였다”란 말씀을 해주실 때면 가장 보람이 있어요.
사실 저는 원래 가수가 꿈이었어요. 노래할 때 내 속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느낌이 참 좋았거든요.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음악 레슨은 꿈도 못 꾸고, 학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해양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죠. 아침에 일어나서 점호하고 구보하고, 제복 입고 학교를 다니니까 마치 군 생활하는 거 같았어요. 그러다 우연히 친구 따라 서울 동아리 모임에 참석하면서 우리 전통 가락을 처음 접하게 되었어요. 내 대학 생활과는 달리 또래 친구들이 판소리, 민요를 하면서 거방지게 노는데 제겐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오더라고요. 희로애락이 물씬 담긴 노래를 듣는데 순간 기운도 나고…. 그때부터 판소리와 민요,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연주하면서 몰입되는 순간을 경험하면서 국악에 점차 매료됐죠.
국악인으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건 1999년 스승이 만든 예술단에 합류하면서였어요. 그때부터 대북과 모듬북을 치기 시작했는데,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 공연은 지금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와이어를 타고 내려와서 북을 쳤을 때 수많은 관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 그 순간 전율이 전해져오더라고요. 그렇게 월드컵 전후로 공연은 줄을 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 마음이 기쁘지 않았습니다. 국악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막상 현실은 쇼 비즈니스 행사와 다를 바 없었거든요.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갈등…. 주위 사람들은 ‘많이 알려지고 공연 많이 다녀서 좋겠다’며 부러워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음악 하는 이유와 정체성을 못 찾겠더라고요. 무대에 설 때마다 관객들의 시선도 피하고 싶고 두렵고…. 그 무렵 아내의 권유로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죠.
수련을 하며 그동안 남들만큼 무던히 잘 지내왔다고 생각한 게 착각이란 걸 알았어요. 순수하게 좋아했던 국악이 어느 순간 직업이 되면서 좋은 선생과 인맥이 닿기 위해 애를 쓰고, 비전공자로서의 열등감을 충족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면서 자존심을 세웠던 나…. ‘관객들에게 어떻게 가락을 전할까?’ 고민하는 대신 돈과 명예를 좇던 모습들이 스쳐가는 거예요. 그런 마음들을 하나하나 버리고 어느 순간 우주가 본래 나임을 깨쳤을 때, 뭐랄까 마음속 깊이 희열감이 차오르더라고요. 우주 본래의 자리는 원래 이렇게 신명으로 가득 차 있구나! 결국 신명이란 참마음으로 살아갈 때 저절로 생겨나는 이치임을 깨닫게 된 거죠.
제가 오프닝 때 북을 치는 이유는 관객들이 공연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더 집중하도록 마음을 열어주고, 작게 뛰든 크게 뛰든 관객들의 심장 소리를 그 순간만큼은 북소리 하나로 모아주기 위함인데, 이것이 바로 국악 본래가 갖는 신명이란 걸 체득한 거죠.
결국 진짜 신명이란 나를 온전히 비웠을 때 가능한 거였어요. 그래야 국악 본래가 갖고 있는 본래의 힘과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마음을 버리며 왜 그동안 무대에서 내려오면 허무감이 밀려오는지도 알게 됐죠. 혼자만 잘하려고 애를 쓸수록 국악과 북이 갖는 본래의 의미에서 자꾸 멀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부터 음악 하는 자세가 조금씩 달라졌어요. 혼자 잘하기보다는 전체 조화를 중요시하게 됐지요. 원래 국악은 ‘크게 하나 되게 하는 밝은 음악’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악에 대해 말할 때 ‘잘한다’ 하지 않고 ‘이면이 깊다’고 표현해요. 마을에서 풍악놀이가 벌어져 가락에 맞춰 흥겹게 놀다 보면 미워했던 사람과도 저절로 화해하게 되듯이, 음악이 본래 가진 신명이란 사람들의 근심 걱정을 털어내고 저절로 하나 되게 하는 것인 거죠.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무대에서 연주하다 보면 힘들고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는데, 결국 내가 하는 일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려주는 거구나…. 풍물(風物)의 뜻이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이거든요. 음의 기운을 일으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고 꽃비가 되어 사람들 마음의 근심 걱정들을 털어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렇듯 음을 타는 이치를 정확히 깨치고 나니까 요즘은 연주할 때도 참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모두가 신명 나게 하는, 참된 북소리가 세상 곳곳에 울리게 하고 싶습니다.
그 옛날 전쟁에서 이기면 북소리로 승전을 알렸듯이, 여러분들도 거짓마음을 버리고 참마음을 되찾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진정한 승전고를 울렸으면 좋겠습니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