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아들 녀석의 화장실 대첩

 
 

 

백일성

 
퇴근을 하자마자 집 아래에서 아내를 불렀습니다. 퇴근 전 마트 가야 된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내 조수석에 올라타는 아내의 얼굴을 마주했는데 찬 기운이 싸늘합니다. “왜? 또 아들하고 한바탕하셨나?” 요즘 아내 기분의 99%를 좌지우지하는 존재는 16년 된 아들이란 생명체입니다. “아~~ 정말 형우시끼 때문에 열불 나 죽겠네.” 제 예상이 맞은 듯합니다. 요즘 아들 녀석 이름 뒤에는 영웅재중… 믹키유천… 유노윤호… 뭐 이렇게 형우시끼란 네 글자의 호칭이 익숙합니다.

일단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내가 퇴근길에 동네에 사는 처제네 집에서 매실을 얻었나 봅니다. 들고 가기가 너무 무겁고 해서 학원 가기 전 집에서 쉬고 있는 듬직한 중3 아들 녀석을 호출했답니다. “엄마 지금 이모네서 내려왔으니까 너도 지금 집에서 나와. 어느 길로 갈 테니까 중간 정도에서 만나서 엄마 좀 도와줘.” 그렇게 통화를 하고 아내는 낑낑거리며 길을 나섰나 봅니다. 그러다 결국 예상했던 중간 지점을 넘고 급기야 쇼핑백을 끌다시피 집 앞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다시 전화를 했답니다. “어디냐?” 최대한 화를 누르면서 했겠죠. 전화기 너머로 에코가 잔뜩 들어간 아들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똥… 싸….” 최악의 대답이 나왔고 아내는 매실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바람과 같은 속도로 집으로 올라가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한바탕했다고 합니다.

밤늦은 시간 안방에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아들 녀석 방으로 갔습니다. “엄마하고 한바탕했다며? 네가 꾸물거리고 안 나오니까 그게 엄마는 화가 난 거지.” “그렇게 시간 안 걸렸어요. 하던 일 정리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똥이 마려운 걸 어떻게 해요? 똥은 싸고 가야죠.” 아들 녀석이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죽이려는 자와 변기에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자와의 오간 대화를 대충 말해줬습니다. 그걸 대본체로 옮기면…

 

아내 : 너 뭐해? (화장실 문을 세차게 두 번 두드린다)

아들 : (놀란 표정으로 변기에 앉아 고개를 들며) 똥 싼다니까요.

아내 : (화장실 문에 바짝 다가서며) 네가 지금 똥 쌀 때야?

아들 : (자세를 가다듬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마려우면 싸는 거죠? 시간이 따로 있어요?

아내 : (한 발짝 물러나 팔짱을 끼며) 엄마가 나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지금 한가하게 똥을 싸고 있어?

아들 : (한층 더 억울한 표정으로) 제가 지금 한가해서 똥을 싸는 거예요? 생리 현상을 어떻게 참아요?

아내 : (다시 문으로 바짝 다가서며 문에 발길질을 하며) 이 시끼야, 그럼 똥 싼다고 전화를 해줘야지 엄마가 기다리든가 하지, 엄마가 저 무거운 거 질질 끌고 오는 동안 똥이나 쳐 싸고 있어?

아들 : (흥분해서 일어났다 다시 급히 앉으며 읊조리듯) 아니 제가 지금 몇 살인데 똥 싼다고 엄마한테 전화까지 하고 싸요!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아내와 아들은 이런 원초적인 대화를 나누고 잠시 후 거실에서 마주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참고 참았던 울분을 섞어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시원하냐, 시끼야?” 아들 녀석도 변기에 앉아서 당한 울분을 섞어 대답했답니다. “그 상황에서 시원하게 봤겠어요?”

 

 
 
 

 

 
 

 
아들 녀석 방과 안방을 오가며 서로의 입장을 정리해주고 적벽대전에 버금가는 화장실대전을 대충 정리해줬습니다. 얼마 전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하는 특별활동 테디베어반에서 만든 두 번째 작품을 아내에게 선물했습니다. 아들 녀석이 곰 인형을 주면서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 나한테 화나는 일 있으면 이놈 목을 졸라~~” 그런데 오늘 밤도 아내는 원수 같을 거 같은 그 곰 인형을 꼭 끌어안고 자고 있습니다.
 

 

 
 
 

올해 마흔두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학생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