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일성
일단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내가 퇴근길에 동네에 사는 처제네 집에서 매실을 얻었나 봅니다. 들고 가기가 너무 무겁고 해서 학원 가기 전 집에서 쉬고 있는 듬직한 중3 아들 녀석을 호출했답니다. “엄마 지금 이모네서 내려왔으니까 너도 지금 집에서 나와. 어느 길로 갈 테니까 중간 정도에서 만나서 엄마 좀 도와줘.” 그렇게 통화를 하고 아내는 낑낑거리며 길을 나섰나 봅니다. 그러다 결국 예상했던 중간 지점을 넘고 급기야 쇼핑백을 끌다시피 집 앞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다시 전화를 했답니다. “어디냐?” 최대한 화를 누르면서 했겠죠. 전화기 너머로 에코가 잔뜩 들어간 아들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밤늦은 시간 안방에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아들 녀석 방으로 갔습니다. “엄마하고 한바탕했다며? 네가 꾸물거리고 안 나오니까 그게 엄마는 화가 난 거지.” “그렇게 시간 안 걸렸어요. 하던 일 정리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똥이 마려운 걸 어떻게 해요? 똥은 싸고 가야죠.” 아들 녀석이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죽이려는 자와 변기에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자와의 오간 대화를 대충 말해줬습니다. 그걸 대본체로 옮기면…
아내 : 너 뭐해? (화장실 문을 세차게 두 번 두드린다)
아들 : (놀란 표정으로 변기에 앉아 고개를 들며) 똥 싼다니까요.
아내 : (화장실 문에 바짝 다가서며) 네가 지금 똥 쌀 때야?
아들 : (자세를 가다듬으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마려우면 싸는 거죠? 시간이 따로 있어요?
아내 : (한 발짝 물러나 팔짱을 끼며) 엄마가 나오라고 한 지가 언젠데 지금 한가하게 똥을 싸고 있어?
아들 : (한층 더 억울한 표정으로) 제가 지금 한가해서 똥을 싸는 거예요? 생리 현상을 어떻게 참아요?
아내 : (다시 문으로 바짝 다가서며 문에 발길질을 하며) 이 시끼야, 그럼 똥 싼다고 전화를 해줘야지 엄마가 기다리든가 하지, 엄마가 저 무거운 거 질질 끌고 오는 동안 똥이나 쳐 싸고 있어?
아들 : (흥분해서 일어났다 다시 급히 앉으며 읊조리듯) 아니 제가 지금 몇 살인데 똥 싼다고 엄마한테 전화까지 하고 싸요!
화장실 문을 사이에 두고 아내와 아들은 이런 원초적인 대화를 나누고 잠시 후 거실에서 마주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가 참고 참았던 울분을 섞어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시원하냐, 시끼야?” 아들 녀석도 변기에 앉아서 당한 울분을 섞어 대답했답니다. “그 상황에서 시원하게 봤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