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피부로 인해 ‘숲 속의 귀족’이라 불리는 자작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백두산 일대와 강원도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북위 45도 이상의 추운 지방에서 잘 자라며, 기름기가 많아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는 우아하다. 엄동설한의 추위를 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곧게 뻗어 올라간 자작나무들의 희디흰 직선은 한겨울의 흰 눈과 만나 보석이 된다. 태양 빛을 받으면 또 그렇게 고스란히 붉은 빛깔과 하나가 된다. 추위 속의 당당함, 범접하기 어려운 웅장함, 그것이 자작나무다.
자작나무는 역사다. 얇은 껍질 9개가 겹겹이 싸여 있는 자작나무는 매끄럽고 질겨서 종이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경북 경주의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것이다. 또한, 잘 썩지 않는 특징이 있어서 백두산 지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묻었고, 심마니들은 산삼을 캐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보관하기도 했다.
자작나무는 빠르다. 귀한 건축물의 기둥과 대들보로 쓰이는 소나무인 금강송의 경우 20m 자라는 데 200년이 걸리는 반면, 자작나무는 20년이면 충분하다. 다른 나무들에 비해 성장 속도가 5~10배 빠른 셈이다.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산불과 병충해로 인해 나무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해 자작나무를 심어왔다.
자작나무는 지혜다. 20~30m 높이로 자라는 자작나무는 햇빛을 흡수하기 위해 높은 가지인 우듬치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모든 가지를 도태시키는 아픔을 감수한다. 가지가 떨어지면서 생긴 검은 생채기는 하얀 껍질과 어우러져 기하학적 무늬로 표현된다.
이 겨울, 자작나무 숲을 한번 거닐어보면 어떨까. 겨울철 낙엽마저 떨군 하얀 자작나무 숲을 마주하는 순간 빛으로 가득한 세상과 마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따뜻한 햇살마저 비춰질 때 반짝반짝 빛나는 자작나무 숲은 그야말로 동화 속 설국처럼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장관을 이룬다. 순백의 수직선들이 만들어내는 한 폭의 수묵화에는 고요함과 편안함이 나지막이 흐른다. 그곳에 세상의 모든 빛이 차곡차곡 저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