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철이면 우리나라에 불어닥치는 황사의 진원지라 알려진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의 쿠부치 사막.
그 광대한 사막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가느다란 녹색 띠가 보인다.
사막 동쪽 끝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15km에 달하는 녹색 만리장성이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던 이곳에 나무를 심은 이가 있다.
1998년 당시 주중대사였던 권병현씨.
모두 어리석은 일이라 만류했지만 그의 진정 어린 노력과 열정은 몇 년 후 푸른 녹색장성을 만들어냈다.
이제 다시 사막 이전의 푸른 초원이 펼쳐진 마을로 복원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권병현(74) ‘미래숲’ 대표,
그에게서는 녹색의 짙푸른 젊음과 활력이 넘쳐났다.
글 최창원 사진 홍성훈
‘한국 노인의 녹색 열정이 사막의 확장을 막고 있다.’ 지난 2008년 10월 29일, 중국 인민일보는 ‘쿠부치 사막 식수 프로젝트 초보적 성공’이라는 기사를 전면 특집으로 보도했다. 사막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녹색장성을 만들기까지의 전 주중대사 권병현씨의 노력과 그 결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쿠부치 사막은 중국 서북부에 동서로 넓게 펼쳐 있는 거대한 사막.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초원이 남아 있었지만 급격한 사막화로 모두 자취를 감추고, 계속 동진하며 사막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권병현씨는 “이 사막의 최 동쪽에 나무를 심어 사막의 확장을 막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가능할 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묵묵히 나무를 심어나가기 시작했다. 2006년부터 시작된 나무 심기는 2010년 그 첫 결실을 맺었다. 최 동쪽 400만 그루의 나무로 구성된 길이 15km, 폭 0.5km의 방풍림이 조성된 것이다.
보통 사막에서 나무가 자란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깁니다.
다 비웃었어요. 그 당시까지는 사막에 나무를 심어도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었거든요. 사실 저도 겁이 났죠.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막을 막을 수 없다,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사막이 베이징 쪽으로 오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한국은 시도 때도 없이 황사에 시달릴 거고….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문제를 인식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사막이라는 건 고정돼 있지 않습니다. 산만 한 사구가 엄청나게 센 바람으로 이동하면서 계속해서 사막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나무를 심어놓으면 다음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또 사라지고….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더 많은 나무를 심고 또 심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모래 바람이 방향을 틀기 시작하더라고요. 정말 놀라웠습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는 ‘황색룡을 길들이다(Taming the Yellow Dragon~)’라는 제목으로 취재하기도 했어요.
사막에서 나무가 자라는 것을 볼 때 느낌이 남다르시겠어요.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참 신기하죠. 몰아치는 모래 바람과 그 찌는 열기, 밤이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살아남은 거잖아요. 마치 나무가 말을 하는 것 같아요. ‘나 살아남았어요, 정말 살아남았어요, 그래서 내 주변을 이렇게 살렸어요'(웃음). 나무가 자라면서 죽었던 땅도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사귀 등이 썩으면서 미생물이 생기고, 미생물을 먹고 사는 지렁이가 생기고, 그걸 먹는 새들이 오고. 옛날에는 거기도 초원이었고 마을이었잖아요. 잘못된 인간의 활동들로 사막이 만들어졌는데, 자연은 무한한 힘으로 스스로 회복하더라고요.
사막이 되려는 곳에 나무를 심어 가꾼 경우는 있지만,
이미 사막이 되어버린 곳에 나무를 심은 경우는 최초라고 들었습니다. 가장 큰 성공의 원인을 꼽는다면요.
사막 옆에 사는 마을 사람들이지요.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굉장히 냉담했어요. 사실 중국의 사막화로 빼앗긴 마을만 2만 5천 개입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에 대한 절망과 원망뿐이었죠. 어쩔 도리 없이 살고 있는데, 생활이 참 어려워요. 강풍으로 모래들이 집안 가득 스며들고, 심할 땐 집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무들이 자라면서 모래 바람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아, 나도 어릴 때 태어났던 마을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긴 거죠. 나중에는 주민들이 밤낮으로 물을 주고 나무를 가꿨어요. 결국 그 주민들이 있었기에 성공을 가져왔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제가 가면 웃으면서 안아줘요.(웃음) 서로 희망의 눈빛을 교환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보람인지 몰라요. 이제 사막 식수 사업은 최고의 ‘한중우호’ 상징 사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처음, 사막에 나무를 심겠다는 마음을 어떻게 가지게 되셨나요.
1998년 봄에 주중대사로 부임을 할 때였어요. 북경공항에 도착한 순간 처음으로 나를 맞아준 것은 지독한 황사였습니다. 내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문명의 앞에는 숲이 있고 뒤에는 사막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맨 뒤, 잿빛 문명을 본 겁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서울에도 황사가 심하다는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때 뭔가 깨달음 비슷한 게 왔습니다. 아, 뭔가 굉장히 잘못돼가고 있구나 하는.
바로 대사관 직원을 시켜 조사를 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적으로 이미 엄청난 사막화가 진행 중이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1997년 통계에 따르면 벌써 지구의 3분의 1이 사막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산림 벌채, 과도한 경작 및 방목, 온실가스 등 인간의 활동 때문이었다. 특히 20세기 들어 가장 심각한 사막화 지역 중 하나가 중국이었다. 중국은 해마다 서울의 4배가 넘는 지역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었고, 이러한 사막화는 매년 우리나라에 황사 피해를 심화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심각한 현실 앞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사실 그렇게 결심한 순간부터 그의 삶은 이전과는 정반대의 삶일 수밖에 없었다.
2000년 8월 퇴임 후, 전 외교관으로서의 보장된 편안한 노후를 뒤로한 채 그는 2001년 ‘미래숲’이라는 비정부기구(NGO)를 만들었다.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한 일이었기에, 기업과 정부를 대상으로 지원금을 받기 위해 수도 없이 발로 뛰어다녀야 했다.
외교관이었다는 명예와 자존심도 내려놓고 먼저 고개를 숙였다. 몸이 약한 사람은 사막에 한 번 갔다 오면 쓰러질 만큼 사막의 환경은 열악했지만, 칠십 노구에도 한 번도 쓰러져본 적이 없었다. “망가지는 땅을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그 염원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고 점차 함께하는 기업과 전문가, 후원자들도 늘어났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에 비해 심각성이 덜 알려진 사막화에 대해 세계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래숲’은 2008년 국내 최초로 유엔환경계획(UNEP)의 환경 NGO로 등록되었고, 권대표는 2010년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에서 ‘사막화 방지에 공헌한 세계 15대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외교관으로서 많은 걸 누렸던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하셨는데요.
오랫동안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국익을 위해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지구가 위기를 맞고 있는데, 국경, 국익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돌아보게 된 거예요. 결국 우리 모두가 하나인데, 다 같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신납니다. 지나보면 힘든 순간도 많았습니다. 기존의 권위와 가치를 버리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으니까요. 이걸 시작하고 난 뒤에 제 목뼈가 없어졌어요, 하도 구걸하고 다녀서.(웃음) 사람들이 필요성을 알도록 하는 데는 내가 먼저 고개를 숙여야 하잖아요. 사실 그동안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걸 누렸는데, 지금은 그걸 되갚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 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왔나요.
혹시 태어나서 지구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지 생각해본 적 있으세요? 더 이상 빚을 지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넓은 우주 속에 아름다운 별, 유일하게 인간의 거주지인 지구가 빠른 속도로 망가지고 있어요. 지구는 정말 우리한테 좋은 어머니고 아무 대가 없이 무한정 주기만 했죠. 망가져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용서하고 포용하며 다 주려고 하고 있어요. 너무 늦기 전에 어떻게든 돌려놓고 싶었습니다.
‘미래숲’에서 하고자 하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저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무엇보다 미안합니다. 나와 내 세대의, 내 전 세대의 욕심으로 인해 망쳐진 지구를 물려줬잖아요.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신나게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저는 뒤늦게 제 길을 찾았지만, 청년들은 지금부터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마음을 쏟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2002년부터 매년 봄이면 한국의 대학생들이, 중국의 대학생들과 같이 나무를 심어왔습니다. 사막에 나무를 심기 위해 한마음으로 모이는 젊은이들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아이들도 한번 나무를 심고 나면, 가장 큰 마음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앞으로 이 사막에 전 세계의 청년들이 나무를 심으며 우정을 나누고, 우리가 만들어갈 평화로운 세상에 대해서 토의, 연구하는 녹색기지가 만들어질 겁니다. 이제는 뒤에서 조용히 청년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주고 싶어요. 2009년부터는 전 세계인이 참여하는 ‘사막에 내 나무 심기 운동’을 시작했어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첫 나무를 기증받았고, 앞으로 많은 이들이 사막에 나무를 심을 것입니다. 자연이 우리를 아끼듯이 자연한테 돌려주고, 자연과 한마음이 돼서 같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거지요.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이
엄청난 일을 하게 만든 거잖아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진정으로 바라고 진정으로 노력하면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자연은 그 마음과 노력을 받아줍니다. 그 핵심이 마음이에요. 사막을 막았다는 건 인간의 진정한 뜻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지를 실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 된다는 것은 하나의 고정관념이에요. 사실 사막화도 그렇고, 마음이 흐려져서 세상이 어지러워진 거잖아요. 그러기에 우리가 얼마나 진정한 마음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느냐, 마음을 수련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자연 사랑, 나무 심기 이런 것들이 본심을 찾는 지름길이 될 거예요.
그는 지난 2월 또 한 번 중국 내몽고를 방문했다. 녹색장성이라는 가느다란 띠를 동서로 확장해서 잃어버린 마을을 복원하는 ‘한중우호 녹색생태원’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올해에도 이곳에 1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 이제 몇 십 년 후면 이곳에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가장 친환경적인 마을이 만들어질 것이다.
거친 모래 바람, 그리고 그게 정말 가능하겠냐는 인식과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미래에 대해 희망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고, 그 진심을 자연이 받아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경남 하동군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흙의 아들이니 흙으로 돌아가자’라는 것을 이상으로 품고 살았다는 권병현씨. 인생의 굽이굽이를 돌고 돌아, 이제야 그 꿈의 길을 걷고 있다. 나무 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 사막이 푸른 숲으로 바뀌는 그 순간까지 나무를 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