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 듣기가 어디 쉬운가요. 상대방이 말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생각은 딴 나라(딴 세상)로 가버리기 일쑤인 걸요. 사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우리네 모습을 보면, 잘 듣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이청득심(以廳得心), 귀 기울여 들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처럼, 잘 들어주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비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 지혜를 모아보았습니다.
듣지 못하는 것은 사람과 멀어진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것이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힘들 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주위 사람이었어요. 내가 힘들다고 얘기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조용히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나에게 말하라고 다그치지도 않았어요. 그냥 조용히 내 옆에 있어준 사람들 덕분에 힘을 냈죠.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존재 자체로 위로가 돼요. 고통을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거예요.
누구나 누구에게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말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사람이 없어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뭘 하라고 시키는 사람만 있고 뭘 하고 싶은지 들어주는 사람이 없죠. 사상이 뭔지 얘기하는 사람만 있고 듣는 사람이 없어요. 난 사실 그런 역할을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들어주는 역할, 옆에 있어주는 역할이요.”
도전자를 상담원과 의뢰인으로, 다시 상담원을 친절, 불친절한 상담원으로 나누어 대화하게 하는 것. 결과는 흥미로웠다. “그게 고민이라는 거예요?” 의뢰인들은 불친절한 상담원들 앞에서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잘 들어주는 친절한 상담원과의 대화에서는 마구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미션이라는 걸 모두가 알았지만, 그러한 간단한 장치 앞에서도 인간은 속수무책이라는 것. 그게 경청의 힘이라고 방송은 결론을 내린다.
데일 카네기는 ‘절대로 사람은 논쟁에서 이길 수 없다’ 했다. 이긴다 해도, 진 상대는 자존심에 상처받고, 그 의견은 바꾸지 않을 것이기에. 그래서 논쟁을 피하고, 대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말한다.
들어주기는 대인 관계에 있어 정말 중요하다.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정말 온 힘을 다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반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내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어도, 결국 내 얘기를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선생님들은 나의 필터링되지 않은 온갖 고민과 잡념들을 판단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셨다. 적재적소에 터져 나오는 선생님의 “맞아” “정말 그래”라는 말씀이 그렇게 맛깔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한 후 나설 때면, 나는 온전히 이해받았다는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고민 자체는 해결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내가 말한 것을 누군가가 열심히 들어주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아내의 말을 다정하게 들어주는 남편 한번 되어볼랍니다!
부부간의 다툼은 대부분 사소한 일이나 싸울 일도 아닌 일상의 대화에서 시작하지요.
부끄러운 제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루는 아내가 친구 부부가 해외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사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그 집 아이들이 외국 문화를 쉽게 접하며 사는 것도 좋아 보인다고 하더군요. 여행을 좋아하는 아내가 얼마나 가고 싶기에 저런 말을 할까? 하는 생각과 가고 싶어도 갈 시간도 돈도 부족한 제 현실에 슬슬 한쪽이 꼬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아내에게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아 실천하지도 못할 말들을 내뱉습니다. “우리도 해외여행 가자! 가면 되지!” 하구요. 하지만 아내는 현실적이었습니다. 돈도 없고 휴가도 못 낼 거면서 왜 그런 말들을 하느냐고 핀잔만 돌아왔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저는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고 말았죠. 아내도 누가 해외여행 가고 싶어 그런 거냐고 화를 냈고 부부 싸움이 돼 버렸습니다.
아내는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 친구 사는 모습이 부럽다고 얘기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게 그거 아니야?” “가고 싶은데 못 가서 짜증 내는 거 아니냐?”며 화를 냈습니다. 전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저의 무능력을 원망하는 것 같아 화가 났습니다.
뒤에 아내가 “뭘 해달라는 게 아니잖아! 그냥 들어줄 수 없어?” 하는데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했습니다. 아내가 바라는 건 그저 자기 얘기에 동조해 달라는 것임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냥 “우와! 걔들 참 좋겠다. 부럽다 그치?” 하면서 호응해 주면 되는 것을, 제 자신을 무능력자로 만들고 화내면서 머릿속은 휴가 때 해외여행 계획까지 짜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는 듣기를 정말 못 했던 겁니다. 아내의 말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었으니까요.
해외여행 자주 가는 친구네가 부럽지만 그래도 친구 남편보다 내 남편이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내 남편이라는 아내의 말에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저와의 행복한 삶을 꿈꾸기에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저 같이 부러워해주며 우리의 행복한 앞날을 함께 계획했다면 싸우지 않았을 것이란 걸 싸운 뒤에야 깨달은 것이지요. 아내에게 뭐든 해줄 수 있는 슈퍼맨이고 싶은 남자의 욕심과 자존심은 빼고, 아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아내는 선물을 가득 안겨주는 능력 있는 남자보다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다정한 남편을 원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