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교생 선생님들이 실습하는 동안 내 인기가 추락했다. 교생 실습이 끝난 월요일, 나는 우리 반 아이들한테 쪽지를 나누어주고 소원을 적으라고 했다. 선생님이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라면 들어줄 것이고, 부모님이 해줄 수 있는 소원이라면 너희들 대신 부탁드리겠다고 했다. 열한 살 꼬마들이 나에게 바라는 소원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 옆 짝꿍은 여자끼리 앉기
* 중앙 현관으로 다니고 싶다
* 제티를 하루만 우유에 타 먹을 수 있게 해주기(제티: 우유에 타서 맛을 내는 분말)
* 언제 한번 학교에서 함께 컵라면 먹기
* 나 혼자 칠판을 예쁘게 꾸며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다
* 쉬는 시간에 선생님하고 축구하고 싶다
* (선생님) 식빵 복근 보여주기(식빵 복근 : 초콜릿 복근에서 유래됨. 중년의 복스러운 복근)
* 수업 시간에 교실 바닥에 누워 잠자기
그중 ‘제티를 하루만 우유에 타 먹게 해주기’는 내일 당장 실시 가능하고 ‘교실에서 컵라면 먹기’는 가장 추운 토요일 3교시에 실시하면 딱이다. 좋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쿠폰과 스티커를 팍팍 풀고, 그것을 빌미로 우리 반 아이들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줄 작정이다. 그래서 바닥을 기는 내 인기도를 회복하고 말 것이다.
내가 이렇게 아이들의 소원을 겁 없이 경청하게 된 것은, 오로지 작년 이맘때 함께 학교생활을 했던 열세 살 유리 덕분이다. 여학생 중 제일 키가 작았던 유리는 어느 날 나에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이루고 싶은 소원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뭐냐고 물었더니 하나는 골마루 이쪽에서 골마루 저쪽 끝까지 신나게 달려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담임 선생님인 나와 ‘야자타임’을 가져보는 것이라고 했다.
맹랑한 녀석. 하지만 내가 그 발랄하고도 소박한 바람을 무시할 수 없었던 까닭은, 지난해 매일 이른 아침, 그 아이가 제일 먼저 등교해서 우리 교실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주는 일을 도맡아주었기 때문이다. 유리는 가지런히 창문을 열다가 가끔씩 운동장으로 걸어 들어오는 나를 발견하면 두 팔을 올려 커다란 하트를 날려주었다. 상쾌한 아침에 4층 교실과 운동장 사이 먼 공간을 두고 우리는 정겨운 텔레파시를 주고받곤 하였다.
그래서 나는 우선 신나게 골마루 달리는 비법을 아무도 몰래 귓속말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난겨울 끝자락, 운동장 한쪽에 혼자 앉아 있는 유리한테 다가가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의 두 번째 소원을 풀어보자’고 했다. 유리는 마주 앉은 날 보고 할 듯 말 듯 망설이더니 결국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다음에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면 하겠다며 웃었다. 아이는 제가 말한 두 가지 소원 중 하나는 제 스스로 이루고, 또 하나는 제 스스로 풀었다. 어른인 나는 그냥 귀를 열고 들어주기만 하였다.
그것이 내가 열세 살 유리를 통해 깨우친 소원풀이 비결이다.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는 것보다, 내 관심이 필요한 누군가에 다가가 ‘소원을 말해봐’라고 속삭이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나는 그 방법으로 인기를 회복할 계획이다. 그런데 고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원한 식빵 복근이 문제다.
글 최형식 일러스트 유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