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니 합창단 단원장 열다섯 살 헤린느 타카 양
열다섯 살의 소녀 헤린느 타카(Heryne Taka) 양의 고향은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외곽의 빈민촌 고로고초 마을이다. 학비가 없어 학교를 그만둘 위기에 처했었고, 병약한 어머니를 도와 길에서 좌판을 놓고 과일을 팔기도 했던 타카의 삶이 변화된 것은 지라니 합창단의 단원이 되면서였다.
4년 전, 합창단에 들어온 타카는 올해 1월, 이젠 세계적인 합창단으로 성장한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 한국 콘서트팀의 리더인 단원장이 되었다.
글 최창희 사진 홍성훈
지난 11월 28일, 청주에서 펼쳐진 공연, 마지막 곡 ‘아리랑’이 끝나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던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와 앙코르 요청이 이어졌다. 앙코르 곡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이 우리말로 불려질 때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는 소녀가 있었다.
헤린느 타카에겐 이번이 세 번째 한국공연이다. 총 26회로 예정된 공연의 두 번째 공연. 한국어로 부르지만 감동이 전해질 땐 언어가 필요 없단다. 내년에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합창단을 떠나야 하는 타카에겐 이번 한국 공연이 각별하다. 이런 것을 두고 어른들은 만감이 교차한다고 표현할까. 타카는 그 감동의 한가운데서 고향 케냐를 떠올렸다고 한다.
“부모님 생각, 고향 생각 그리고 모든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노래가 유난히 감동적이고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노래와 하나가 되는 것 같아요.”
타카는 케냐의 수도 외곽에 위치한 고로고초라는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쓰레기’라는 뜻의 ‘고로고초’라는 말 그대로, 타카가 사는 마을은 전체가 거대한 쓰레기 야적장이다. 합창단에 들어오기 전에는 한 번도 다른 지역에 가본 적이 없는 타카에겐 그곳이 세상의 전부였다. 늘 악취가 풍기고 구정물이 도랑을 이루는 그곳에서도 불편한지 모르고 자랐단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 탓에 병든, 가족 같은 이웃들의 죽음을 수없이 바라봐야 했단다. 살아서 어른이 되는 게 삶의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하는 아이들. 생존을 위한 절박한 삶의 조건들은 어린 소녀를 일찌감치 철들게 했다.
오히려 그런 가난한 형편 덕에 합창단에 들어오고 후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학비 걱정 없이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고, 타카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생각이 깊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의젓한 소녀 타카는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나눔의 가치들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합창단원이 되고 나서 생활이 크게 변화되었겠네요.
어떤 변화라는 건 생각도 못 했지요. 이곳과 관련된 모든 게 다 좋았어요. 모든 사람들이 나를 격려해주고 도와줘서 정말 감동했어요.
한국엔 세 번째 공연 여행인데,
이렇게 다른 나라에 오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한국도 좋지만 고향도 참 좋아요. 케냐는 굉장히 아름답고 평온하고, 우리 마을도 사람들이 모두 가족같이 서로를 위해줘요. 물론 저도 쓰레기 야적장이라는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죠. 저는 커서 꼭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케냐에 관한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요.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케냐를 도울 수 있도록.
합창단 활동이 타카의 꿈인 기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되겠네요.
격려와 경험은 제일 좋은 선생님이잖아요. 저는 지금 제 경험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해요. 지금 제가 받은 격려들이 나중에 기자가 되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를 주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좋은 기자는 용기 있는 사람이고 또 용기와 격려를 주는 사람이잖아요.
어떤 격려가 가장 큰 힘이 되었나요?
신은 나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항상 나와 같이 계신다는 말이요. 언젠가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말도요. 늘 기도할 때면 내가 아직 살아 있음에 감사드려요. 또 가족을 지켜달라고 기도하고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죽었고, 많은 아이들이 고아로 살아가는데 나는 아직도 살아 있고, 여전히 부모님이 계세요. 그래서 난 아주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마치 가족이 사라지는 것처럼 굉장히 슬프죠.
해외 공연 가면 모두 쓰레기 마을에서 왔다 하고 불쌍한 아이들이 노래를 하네, 하는데 그런 표현이 듣기 싫을 때는 없나요?
아니요. 괜찮아요. 왜냐하면 그게 사실이기 때문에 기분 나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난한 나라에서, 쓰레기 마을에서 왔지만 고향이잖아요. 당당하게 여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잘 알려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도록 해야죠.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눔의 소중함을 알리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언론을 통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자가 돼서 저도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합창단의 설립 의미도 나눔이지요.
‘지라니(Jirani)’는 이웃이라는 뜻이에요. 지라니문화사업단은 우리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설립된 문화NGO(비정부 민간단체)라는 걸 알아요. 그렇게 나누는 단체이기 때문에 성공을 거둘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일은 나눔을 통해서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이 나눔이고 나눔이 인생이기 때문에요.
합창에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일까요.
순종이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지휘자님의 요청을 빠르게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행동을 취하며 따르는 것이지요. 아무리 자기가 리더의 자리에 오르고 유명해졌다고 해도 순종은 굉장히 필요할 거예요.
내 생각이 남과 다를 때는 어떻게 하나요.
처음에 상대의 의견을 잘 경청하면 다음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어요. 저는 주로 듣는 편이에요. 자주 아이들이 와서 많은 이야기를 해요. 웃기고 재미난 이야기도 하고, 가끔 힘든 얘기도 하고요. 웃을 땐 같이 웃고 힘들어할 땐 얘기 들어주고 고민을 얘기할 때는 다 듣고 난 뒤에 제 의견을 얘기해요.
타카의 합창단 활동은 올해로 끝난다. 2012년 지라니문화사업단에서 아트스쿨을 세울 계획이지만 그때까지는 새로운 환경과 마주해야 한다. 타카에게는 몹시 아쉽고 낯선 일이지만 지혜로운 소녀 타카는 역시 삶에 긍정적이다.
“언제나 제 능력보다 더 좋은 기회들이 왔었어요. 합창단에 들어올 때도, 단원장이 되었을 때도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과분했지만 참 행복했어요. 헤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앞으로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삶의 다른 면을 많이 배우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를 도와주신 분들께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