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은 지휘가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겁니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수십 명이 하나의 소리를 낼 때,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한국 합창 지휘의 선구자 윤학원(73) 선생. 1978년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을 세계합창경연대회 최우수상에 올려놓음으로써 세계에 이름을 알린 그는 카네기홀을 비롯한 해외 유명 연주장에서 무려 3백 회, 정기 연주회 등을 수천 회 가진 세계적인 지휘자다. 그의 손짓에 하나의 소리가 되고, 그의 눈빛에 하나의 마음이 된다.
가장 화제가 된 이는 지휘를 맡은 박칼린씨. 지휘자로서 자신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을 무렵 그녀는 자신이 평소 존경해 마지않았던 한 대가를 언급하며 잘하고 있다는 그분의 칭찬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고 했다.
합창에 평생을 바친 사람, 한국 합창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한국 음악을 세계에 알린 사람, 바로 윤학원 선생이다.
방송의 위력이 대단합니다. 합창에 대한 관심을 실감하시는지요.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박칼린씨를 만났을 때 합창 문화 발전에 크게 도움 될 수 있으니 잘해달라고 했는데, 아주 잘해냈어요. 나도 눈물이 나던데요.
사람들로 하여금 합창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 것 같습니다.
합창이란 여러 사람이 모인 거잖아요. 각자 자기 나름대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이 자기의 개성을 죽이고 같이 맞춰 나가려는 게 참 멋있잖아요. 제일 중요한 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게 해준다는 거예요. 독창은 자기만 잘하면 되지만, 합창은 다 같이 해요. 누가 멜로디를 하면 그 사람을 돋보이게 받쳐주고, 자기가 멜로디를 하면 맡은 바를 충실히 하고. 그게 합창의 정신인데 우리가 사회생활 하는 데도 굉장히 필요한 거거든요.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은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굵은 소리도 있고 빼죽한 소리도 있고 걸걸한 소리도 있고 소리의 질이 사람마다 달라요. 그걸 하나로 모으는 합창은 한 번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아’ ‘오’ 모음 하나를 갖고 계속해서 맞춰요. 그래서 제가 지휘자는 쩨쩨한 것이다, 그런 얘길 합니다.(웃음) 어떤 때는 곡 하나 갖고 천 번이고 연습을 해요. 그런 작업을 통해서 하나의 소리가 만들어질 때의 일치감, 그 희열은 굉장합니다.
지휘자는 단원들의 마음까지 잘 조율해줘야 할 듯합니다.
사실 여러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서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해결하고 하나로 만들어 가느냐가 중요해요. 좋은 지휘자란 훌륭한 대통령 같아야 된다는 생각도 들어요. 대통령은 국민들 마음도 잘 헤아리고 나라 운영도 잘해야 하잖아요. 지휘자도 단원 한 명 한 명을 배려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합창단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부터 어떻게 해야 많은 청중이 듣게 하느냐까지, 다 생각해야 되거든요.
선생님이 이끄셨던 합창단은 모두 세계에서 인정을 받았지요.
너무나 감사한 일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제 복이기도 합니다.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은 세계 순회 공연을 여러 번 했고요, 대우합창단은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합창대회에서 깜짝 놀랄 만한 공연을 해서 외국 지휘자들이 내 앞에 쭉 서서는 사인해 달라고 했었죠. 또 인천시립합창단이 작년 ACDA(미국합창지휘자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초청 공연에 갔을 때도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어요. 그럴 때 정말 보람 있죠.
– 제프리 맥코이, ACDA 총재.
“첫 곡부터 기립 박수가 나온 합창단은 인천시립뿐이다.”
– 브렌트 벨웨크, ACDA 운영위원.
지난해 3월 미국 오클라호마에서는 ACDA가 세계적인 합창단 네 팀만을 초청한 공연이 있었다. ACDA는 50년 역사를 지닌, 전 세계 합창인들의 꿈의 무대. 그곳에 온 미국의 내로라하는 지휘자 6천여 명은 심금을 울리는 인천시립합창단의 공연에 감동해 마지않았다. 예일대 음대 교수 사이먼 캐링톤은 “인천시립합창단 공연 봤어?”라는 말이 한동안 인사였다고 후일담을 전했을 정도. 인천시립합창단의 전임 작곡가 우효원씨가 편곡하고 창작한,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깊이 있는 곡들은 ‘윤학원 지휘’에 맞춰 아름다운 하모니와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완벽한 공연으로 감탄을 자아낸 것이다.
윤학원 선생의 지휘도 화제가 되었다. 저명한 작곡가 폴 카레이는 이렇게 평했다. “그는 작은 제스처로도 원하는 소리를 창조함으로써 모든 지휘자들에게 큰 교육이 되었고 모두를 강타하며 마음을 흔들었다. 그들이 들려준 매우 재미있는 공연 덕에 우리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 내가 들은 것 중 최고의 합창이다.”
공연 후 미국의 지휘자들은 한동안 ‘윤학원’을 연호했다. 평생을 합창에 바쳐온 백발의 노장, 최고의 합창을 선물해 준 한국의 지휘자에게 경외와 존경을 표한 것이다.
선명회어린이합창단 34년, 대우합창단 5년, 인천시립합창단 15년째…. 그리고 악보와 지휘봉. 윤학원 선생은 평생을 합창 지휘자로 헌신했다.
어릴 때부터 지휘자가 꿈이었나요?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때는 학교 전체에 손풍금 하나가 다였어요. 그걸 칠 줄 아시는 여선생님도 딱 한 분 계셨는데, 제 노래를 들어보시더니, 저를 반마다 데리고 다니시며 시범 창을 시키셨어요. 그때부터 내가 노래를 잘하는구나, 나는 음악가야, 생각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화학자가 되길 바라셨지만 저는 공고에 들어가서도 밴드부를 했죠. 색소폰을 불다가 상급생이 되면서 지휘를 하기 시작했고, 대학을 작곡과에 들어갔는데, 3학년 때 연대기독학생합창단 지휘를 맡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지휘자의 길로 들어섰어요.
1971년, 제일 먼저 합창에 안무를 넣어 화제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는데 다 노래를 하면서 움직이더라구요. 그렇게 움직이는 노래를 보다가 그냥 서서 하는 노래를 보면 안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 민요 같은 건 본격적으로 안무를 짜기도 했고요. 그때만 해도 파격적인 시도였죠.
전임 작곡가 제도를 시작하셔서 한국의 음악을 세계에 알리셨지요.
언젠가 외국에 나가서 연주를 하는데 현지인들 말이 바흐나 모차르트 음악은 자기네 음악이니까 너희가 아무리 잘해도 우리보다 못한다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 음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인천시립합창단 지휘자가 되면서 인천시에 전임 작곡가 제도를 요구했지요. 처음엔 참 어려웠어요. 한국에서 합창을 전문으로 작곡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함께 의논하면서 지금까지 개발해 나가고 있는데, 그게 적중했어요. 세계 대회에 나갈 때마다 외국인들이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우리 곡에 기립 박수를 터뜨렸어요. 너무 새롭고 깊이가 있다고.
우리나라에서는 합창단이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합창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죠.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합창단이 1만5천~2만 개가 있거든요. 근데 우리나라는 4~5백 개밖에 없어요. 그 원인이 어려서부터 점수, 입시 위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음악, 특히 합창은 부모도 선생님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각 학교에서 합창이 활성화되고, 대회도 많이 열려야 해요. 마음을 합해 다른 사람과 같이 하나의 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아이들 인성 교육에 아주 중요한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을 말씀해주세요.
우리나라에 합창단이 한 1만 개 생겼으면 좋겠어요. 동마다 마을마다 합창단이 있어서, 엄마가 합창을 하고, 엄마는 아이에게 하나가 되는 마음을 가르쳐주고…. 그런 날이 곧 오겠지요.(웃음)
언젠가 그의 손짓에, 그의 눈짓에 하나가 되는 합창을 꼭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 마음을 안다는 듯, 백발의 노장이 문밖까지 배웅을 해주며 말했다.
“합창이 재밌습니다. 공연하는 거 보러 꼭 오세요. 허허.”
“각자의 다른 모습, 다른 생각, 다른 감정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게 합창의 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