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이웃에게 나눠준 찐빵 65만 개_ 강봉섭 할아버지

아직은 어두운 새벽 6시. 대전시 중구 대전노인복지관 옆 가건물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강봉섭(80) 할아버지가 찐빵을 만들고 있다.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소금, 이스트, 물로 반죽하고, 앙꼬를 넣어 큰 솥에 10분 정도 쪄내자 따끈따끈한 찐빵이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빵은 그날그날 양로원, 요양원 등에 배달이 된다.

취재 정하나, 사진 홍성훈

강봉섭 할아버지가 하루도 빠짐없이 찐빵을 만들어 나눈 것은 2001년 경로당 노인회장직을 맡고서였다. 몸이 불편한 분들을 병원에 데려다주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가뜩이나 기운 없는 노인들이 더욱 지쳐서 나오는 것이었다. 안타깝게 지켜보다 생각해낸 것이 찐빵이었다. 당시 밀가루 한 포대 가격이 8천 원. 앙꼬까지 계산해도 3만 원 정도면 육칠 백 명에게 빵이라도 나눠줄 수 있겠다 싶으셨단다. 강할아버지는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처음 찐빵을 쪄내어 나눠주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아, 옛날 생각나네.’ ‘배고픈 시절에 먹었던 빵이네’… 작은 찐빵 하나에, 그렇게 좋아하는 거야. 나 같은 늙은이도 뭔가 할 수 있구나 자부심이 들더라고.”

강할아버지는 “만날 자식들이 사오는 것만 받다가 직접 빵을 만들어서 주니까 자꾸 해주고 싶은 의욕이 생기더라”고 한다.

그 후 점점 요양원, 양로원, 어린이 보호센터, 경로당, 파출소 등으로 그 대상이 늘어났다. 한 달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방문을 하기도 하고, 2007년에는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태안으로, 숭례문 화재 사고 후엔 복구 작업 현장으로 큰 솥과 찐빵을 준비해 달려갔다. 이렇게 저렇게 지금까지 나눠준 찐빵만 해도 65만 개나 된다.

“빵을 호호 불면서 먹는 모습을 볼 때의 기쁨은 나밖에 모를 거야. 내가 정성 들여 만든 빵을 맛있게 먹어주니 감사한 거지.”

1932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강봉섭 할아버지는 늘 이웃과 나누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먹을 것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었고, 언제나 웃음이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찐빵을 나눠줄 때면 그 시절 어머니의 따듯한 사랑이 생각 나 가슴 한 켠이 짠해져 온다고 한다.

10년 동안 찐빵을 쪄서 나눠주는 일이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지금도 한 달에 드는 재료비만 90~110만 원 정도. 처음에는 폐지와 재활용품을 수거해서 충당했지만, 점차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일이었기에 부족한 부분은 늘 저절로 채워졌다.

“신기하게도 비용 걱정을 할 때면 도움을 주는 후원자가 나타나곤 한다”는 할아버지는 “이 일을 하면서 뜻이 있으면 언제나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 도와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신다.

요즘엔 찐빵 제조 기술도 나눠주고 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성심성의껏 가르쳐주며 “좋은 일을 하며 살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이 사랑의 찐빵 2호점, 3호점을 냈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치셨다.

“나는 무조건 주는 사람이다, 하면 걱정이 없잖아. 욕심을 부리는 순간부터 괴로워지는 거지. 앞으로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한없이 만들어서 나눠주고 싶어.”


하루 평균 200개 정도의 찐빵을 만든다.
포실하게 쌓인 모습만 봐도 모든 피로가 싹 가신다고 하신다.
대한노인회 대전광역시 동구 지회장을 맡고 있는 할아버지는 이곳 직원들 뿐 아니라,
건물의 이웃들, 방문객들에게도 항상 빵을 나누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