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글 이창수
“3년, 700일 동안의 여정, 히말라야는 내게 한 걸음이 무엇인지 가르쳐줬어요. 처음엔 의식적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어느 순간 그 욕심이 사라지더라고요. 밤새 5,000m 설산을 넘으며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극복하니 걷는 게 달라지더군요. 많은 생각을 하다 어느 날 굉장히 가뿐하게 치고 올라갔더니 벌써 에베레스트에 와 있더군요. 그때 어떤 깨달음이 왔어요. 한 걸음, 한 걸음일 뿐이야… 한 걸음만 떼면 돼. 오래 걷다 보니 무시간성(無時間性) 시간이라는 게 느껴져요. 나 없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게 뭔지 어렴풋이 알게 됐고, 그게 시간성, 현재성이 주는 실재 아닐까 생각했죠. 그렇게 걷는 것에 집중하면서 다가오는 것을 한 장 한 장 담았습니다.”
‘자연’이라는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시간의 변화를 안고 간다. 그곳에서 작은 한 점 되어 걸었다. 길을 걷다 보면 앞에 있는 산이, 그 산을 감싸는 구름이, 그 구름 사이를 비집는 빛이, 꿈틀대고 넘실대는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은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없다. 큰 기쁨이다. 너도 나도.
어느 한순간 마음으로 한 장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비록 한 편의 일부일지라도 대상과 맞닿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의 순간이 ‘영원한 찰나’라는 살아 있음이다. ‘사진 찍기’는 대상을 마음으로 꿰뚫어 보는 것이다. 그 순간의 진정한 마음만이 필요할 뿐이다.
시작도, 끝도 찰나.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다는 현존. 그 길을 걸었다. 높은 산, 먼 길. 살 수 있는 땅과 죽을 수 있는 땅의 경계까지. 너무 빨라 멈출 것만 같은 심장의 뜀박질과 희박한 산소를 한껏 마셔야만 될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걸음, 다시 또 한 걸음 내디뎠다. 히말라야 산중에서, 히말라야 산중을.
언제였는지도 모를,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묵은 눈, 빙하에 지금 눈이 내린다. 더 짙을 수 없는 푸른빛이 설산을 감싸 안아 더 투명할 수 없는 세상을 연다. 2000억 개인지, 4000억 개인지도 모를 만큼, 많은 별이 모였다는 은하의 강이 먹빛 어둠을 밝힌다. 그런 시간 속에서 얼키설키 엮여 만들어진 나의 DNA에 이 모든 것들이 내려앉는다.
한 호흡과 한 걸음에 깊이 빠질 때, 산과 내가 ‘한 존재’로 느껴지는 바로 그때, 감히 사진 한 장 찍곤 다시 걷는다. 히말라야가 품고 있는 내면의 숨결 또한 가슴 깊이 새긴다. 그런 산의 모습을 오롯이 느끼는 순간은 곧 자신의 본성을 보고 느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