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너무 무서웠다는 한 여교사가 있습니다. 드세고 까칠한 요즘 ‘고딩’들을 작은 체구로는 상대하기 어려워 굳은 표정으로 잔소리 고문을 해댔다는 그녀. 방학 때마다 이직을 준비했다는 그녀가 마음 빼기를 한 후 교육의 참 보람과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는군요. 이제 아이들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행복한 13년 차 교사. 그녀와의 유쾌한 빼기 토크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나?
아니다.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갔는데 어쩌다 보니 하게 되었다. 근데 막상 되고 보니까 진짜 내 길이 아닌데 싶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면역력도 떨어지고 하루하루가 피곤했다.
잉? 다들 부러워하는 직업 아닌가?
선생은 방학도 있고 잘릴 걱정도 없다고 부러워하는데 알고 보면 17일(월급날)이 있으니까, 방학이 있으니까, 참고 견딘다. 처음엔 ‘선생님 같다’는 말도 싫었다.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가 꼼꼼하고 보수적이고 재미없고 그러니까. “직업이 선생님이세요?” 하고 누가 물어보면 “네? 제가요? 왜요? 선생님처럼 보여요?!” 하면서 정색을 했다.(웃음) 또 요즘 애들은 선생님을 친구보다 더 쉽게 생각하고 무시를 한다.
근무하는 곳은 어디인가?
농업계 고등학교에 있다. 가정에 결손이 있거나 부모님으로부터 방치된 애들이 많다. 친구들과 술 먹고 담배 피고, 그런 애들을 전혀 이해 못 했다. 도무지 인생에 대책이 없어 보이고 너무 막 사는 것 같고 솔직히 무슨 가르치는 재미가 있겠나 싶었다. 입학식 날부터 슬리퍼에 추리닝에 껌 씹고, 퇴근할 때 보면 낮술 먹고 취해 유리를 깨고 팔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뛰어가고 있고. 아, 진짜 멘붕. 너무 암담했다. 무섭게 보이려고 인상도 팍팍 쓰고 절대 웃지 않았다. 태권도 학원도 등록했다. 근데 이걸 가지고는 애들을 제압하는 데 써먹을 수는 없겠다 싶어 그만뒀다. 나중에 애들이 얘기하더라. 하나도 안 무서웠다고.
평소 꿈꿔왔던 학급 분위기는 어땠나?
애들은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고, 좋아하는 선생님께 음료수도 드리는 그런 훈훈한 분위기? 선생님은 여유롭게 시험 문제 내고 감독하고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수업보다 업무가 더 많고 생활 지도 할 것도 많고, 일이 나한테만 오는 것 같았다. 마치 몸 안에 시계가 있어서 재깍재깍거리는 것같이 잠시도 쉬지 못했다. 나름 등산 동호회 활동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면서 ‘삶을 컨트롤하는 괜찮은 사람’인 척 살았다. 하지만 주말 행복은 잠깐이고 학교에 돌아오면 여전히 스트레스였다.
마음수련 하고 학교 생활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나?
교직 생활 5년 차에 마음수련을 시작했는데, 5년이란 짧은 기간인데도 권위 의식이 대단했다는 걸 알았다. 말투나 행동이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거슬려 하고 ‘내가 선생인데~’ 하면서 대접받으려 하고. 그런 기준과 틀을 다 버렸다. 모범적인 척, 긍정적인 척 행동하면서 힘들었던 마음, 일하기 싫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마음도 버렸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억지로 강해 보일 필요도 없었다. 내 마음이 넓어지니까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고 장점을 먼저 보게 되었다. 우리 학교 애들은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순수하다. 거칠게 보이지만 솔직해서 좋다. 또 자기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집안일도 돕고 친구들한테도 잘하고 놀고 싶으면 놀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현재를 즐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많이 배우게 되었다.
그럼 요즘은 학교에서 인상 안 쓰나?
완전 반대다. 맨날 바보처럼 웃고 다닌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만약 나한테 막말을 했던 아이가 있다면 아이에 대한 안 좋은 마음을 싹 버린다. 그러면 다음 날 깨끗하게 포맷된 마음으로 언제든지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가 있다. 아이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으면 객관적으로 생각도 못 하고 지도도 잘 안 된다. 아이도 선생님이 미우니까 반성하기 싫을 거다. 근데 서로 감정이 없다는 걸 알면 혼을 내도 쿨하게 끝나고 아이도 빨리 제자리로 돌아온다. 애들한테 ‘학교 다니는 이유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너희들이 행복하려고 학교에 다니는 거다.’ ‘나만 생각하다 보면 힘들어진다. 주변 사람들이 원래 다 ‘나’니까 친구들을 배려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학생들도 선생님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렸나.
2년간 담임을 맡았던 한 아이는 보호시설에 살았는데 마음이 닫혀 있고 자기표현을 전혀 안 했다. 그런데 졸업 때쯤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선생님은 참 한결같다고 하던데,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애들이 힘들게 해도 맨날 웃고. 피곤할 텐데 왜 그래요? 나는 쌤처럼 되기 싫지만 또 쌤처럼 되고 싶어요.” 그렇게 까칠했던 아이가 눈물을 보이며 그 말을 하는데, 참 뭉클했다. 교육이란 게 2년 3년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야 효과가 나타나는구나, 선생님들이 얘는 안 된다고 포기해서는 안 되고 인내하고 꾸준한 사랑을 표현해야 되는구나 느낀다. 그러면 애들은 저절로 바뀌는 것 같다.
오, 좀 감동임다. 요즘은 반 분위기도 엄청 좋겠다.
솔직히 우리 반은 더 좋은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들도 짬짬이 마음 버리기를 하니까. 10대에는 친구가 인생의 전부인데 왕따를 당하거나 부적응해 버리면 자퇴한다면서 곧 죽을 것같이 힘들어한다. 그때 어른들 입장에서 대수롭지 않게 시간이 가면 나아지겠거니 그대로 놔두면 애들은 어떤 돌발적인 행동을 할지 모른다. 그때 마음 빼기를 하게 하면 금방 마음이 버려지면서 그 지옥 같다,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온데간데없어져 다시 웃으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걸 종종 본다.
이직을 고민하는 선생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물론 세상에는 정말 훌륭한 스승님도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왜 학교를 다니는지 애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모른 채 종 치니까 수업 들어가고 방학까지 참고 버티면서 사는 선생님들도 많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선생이라면, 참 스승으로서 학교와 학생에 대해서 비전을 가져야 한다. 또 나부터 행복해야 학생들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라는 직업이 학교에 한번 들어온 이상 멈추지 못하고 그냥 Go~ 하기 쉬운데 잠깐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장에 보람을 느끼면서 스트레스 없는 교직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